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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재벌의 삶!-49화 (49/244)
  • 49- 커넥션

    마산항에 도착한 혜성특실 객차는 전 직원의 박수 속에서 혜성중공업 공장에 도착했다.

    철도청에 납품할 ‘무궁화호 특실’은 편의성과 디자인이 기존 열차들보다도 훨씬 뛰어났으며 상위등급의 객차에 준하는 편의성이 있었다.

    “이 정도면 차기 객차 사업에 납품 문제 없겠군요.”

    “그렇습니다.”

    재환은 그 뒤로 아성정공의 연락을 받고 그쪽에서도 개발하고 있는 신형 객차를 보러 갔다.

    그리고 아성 역시도 공들여 만들긴 했지만, 편의성과 인체공학적인 좌석 등은 혜성의 우위라는 것을 확인했다.

    ***

    “상무님, 전 사원 투표결과가 나왔습니다.”

    성 대표의 말에 재환이 귀를 기울였다.

    “어떻게 나왔습니까?”

    “찬성 80% 이상의 표를 받았습니다.”

    성 대표의 말에 재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합병 문제에 대해 직원들이 찬성하고, 등기임원들도 25% 보장해준다고 했으니 인수합병 논의는 수월하게 진행됐다.

    “자~ 그럼 이제 대윤이 문제인데.”

    대한산업은행에 대해 대규모 융자 연장을 한 뒤로 미국의 대형은행이자 설립 시 지분을 투자했던 코아은행에 손을 뻗친 것이었다.

    “앞으로 이 나라 금융계를 위해서라도 여기서 제지해야겠어.”

    이렇게 대마불사로 대윤이 계속 폭주한다면 역사대로 수십조 원이 허공에 사라지는 초대형 부도가 일어나는 것이었다.

    적어도 이쯤에서 브레이크를 걸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재환이었다.

    재환이 그것을 생각하고 움직이려 할 때, 갑자기 전화가 왔다.

    “상무님을 찾는 전화입니다.”

    성 대표의 말에 재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랍니까?”

    “부산··· 대한중공업이랍니다. 상무님과 인수합병 논의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쪽에서 오라고 하세요.”

    재계서열 14위의 대한그룹은 재환에게 있어서 엮이기도 싫은 곳이었다.

    K-항공과 대한물산, 대한유통, 대한해운 등의 물류 종합 수송 업체였으나 오너 일가의 평판이 워낙 좋지 않고, 지랄 같은 오더가 많아서 과거에도 리스크를 감안하고 다른 수출업체를 생각했으니 말이다.

    ‘대한하고 대등한 거래할 일은 없어. 그 녀석들 평판을 생각하면 말이야.’

    재환은 과거의 삶에서 서라벌 호텔에서 식사하던 중 그릇을 집어 던지고 헤드셰프 나오라고 행패를 부렸던 대한가를 떠올렸다.

    게다가 그쪽하고는 엮일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대한이 있는 부산으로 가야 할 일이 생겼다.

    ***

    “상무님, 도착했습니다.”

    “여기군요.”

    재환은 부산교통공단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렸다.

    새 정장을 맞추고 옷매무시를 단정히 하고, 들어갈 준비를 했다.

    “어서오십시오. 하하하!”

    부산교통공단 허명수 이사장은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으로 혜성그룹 사람들을 맞이했다.

    “앉으시지요.”

    “네.”

    재환은 자리에 앉아서 먼저 온 상대와 눈을 마주쳤다.

    40대 중후반에 푸짐한 체구였지만, 그에 대비되게 날카로운 눈은 상대를 깔보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처음뵙겠소. 나 대한중공업의 조원범 부사장이라고 하오.”

    “혜성의 신재환입니다.”

    명함을 교환한 뒤로 연신 재환을 노려보고 있는 조원범을 보고서 창원에 있던 자신을 부른 게 저자라고 직감했다.

    “자~ 여기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지난번 부산 지하철 2호선 공사에 대해 최종 입찰로 두 업체가 선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재환은 지난번 혜성중공업에서 만든 지하철 차량이 입찰된 사실을 알고 미소를 지었다.

    재환은 준비한 차량 스펙의 카달로그를 건네줬고, 대한중공업 역시도 내밀었다.

    “일단 차량의 스펙은 비슷한 상태이고, 입찰가에 대해서 알아봐야겠네요.”

    허 이사장은 그것에 대해 공정하고 철저하게 검토해 볼 것을 약속하고 스펙에 대해 논의했다.

    1시간 정도 기계에 대해 묻고 있는 상황에서 재환은 허 이사장 역시 기계에 대해 상당한 조예를 가졌다는 것을 알았다.

    ‘부산교통공단에 대한이 부산에 공장이 있어서 팔이 안으로 굽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구만.’

    그렇다면 비집고 들어갈 틈은 확실히 있었다.

    알찬 이야기를 나눈 뒤 혜성과 대한의 관계자들 모두 들은 뒤로 토론을 마쳤다.

    재환이 밖으로 나갔을 때, 조원범 부사장은 그를 불렀다.

    “신재환 씨?”

    대놓고 ‘씨’라고 부르는 대한중공업의 조원범을 향해 재환이 고개를 돌렸다.

    “이야기를 좀 하고 싶은데, 제 이야기를 씹으셨더군요?”

    “경쟁업체인데 딱히 할 말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재환은 엮이기 싫다는 식으로 말하자 조원범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삼신 따까리짓 하더니만, 그새 아성으로 갈아탔다는 이야기는 들었소.”

    “조, 조 부사장님!”

    성 대표가 혜성을 모욕하는 말에 목소리를 냈지만, 조원범은 오히려 노려보며 외쳤다.

    “머슴은 빠져있어.”

    “!”

    전문경영인을 ‘머슴’이라 취급한 말에 재환은 역시 대한가 놈들이랑은 엮이지 않는게 상책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거들먹거리는 조원범에게 말했다.

    “그쪽도 대윤에게 손바닥 비비고 있는 것 같은데 빚더미 오른 썩은 동앗줄 평생 붙잡아보시죠.”

    “뭐?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

    조원범이 불같이 화를 냈지만, 대한의 임원들이 황급히 말렸다.

    “부사장님! 참으시지요!”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맞부딪치는 상황에 대해서 임원들이 필사적으로 말려서 조원범을 데려갔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재환을 보며 말했다.

    “허약한 새끼들이 빌붙어서 어디까지 먹고 살지 한 번 지켜보마!”

    “네, 그러세요. 끈떨어질 연.”

    “저 새끼를 진짜!”

    열받은 상태에서 겨우 차량에 올라탄 조원범 전무는 차 안에서 자신을 말린 임원을 향해 손찌검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개판이구만.”

    저런 기업에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비극인지 알 것 같았다.

    재환은 그 뒤로 창원으로 돌아갈 차에서 성 대표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상무님, 괜찮으십니까?”

    “안 괜찮을 게 없죠. 대한 따위하고 노닥거릴 시간 없어요.”

    재환은 눈을 감으며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일주일 뒤 정부가 고용한 해외 투자사 P&C가 옵니다.” “피터 앤 컴퍼니···.”

    재환은 그 이름을 알고서 피식 웃었다.

    미국 내에서 손꼽히는 경영자문사이자, 이번 빅딜 사업에 나오면서 재벌들 여럿 피눈물을 흘리게 만든 곳이었다.

    피같은 반도체 사업부를 타 회사에 넘기도록 해준다거나, 자동차 회사들끼리 먹고 먹히게 만들었다거나, 지금도 개입할 것이다.

    “알고 있어요.”

    재환은 그것을 두고서 잠시 성 대표에게 물었다.

    “사장님, 창원공장에 가면 국제전화좀 써야겠습니다.”

    “네? 아, 네.”

    국제전화 조금 쓰는 거야 크게 신경쓸 건 없었다.

    재환은 그날 밤 10시가 넘어서 창원공장에 도착한 뒤로 사무실에서 전화를 돌렸다.

    [Hello?]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을 때, 영어로 응답한 음성에 재환은 반갑게 말했다.

    “케빈 장씨! 오랜만이야!”

    [···재환?]

    “그래, 이게 얼마만이냐?”

    재환은 와튼스쿨 시절의 동문 케빈 장, 한국이름 장진우와 반갑게 통화했다.

    그리고 전략컨설팅 업체인 피터 앤 컴퍼니에 소속된 컨설턴트이기도 했다.

    “이번에 너네 회사가 큰 건 물었더만, 한국 언제 와?”

    [곧 도착해. 하지만, 사적으로 만나기는 힘들 것 같다.]

    비록 동창이긴 하지만, 컨설턴트와 평가받을 기업 임원의 관계이니 로비 같은 구설수가 생기면 안될 일이었다.

    물론 재환 역시 그것을 알고서 말했다.

    “알고 있어. 차라리 네가 와 준다면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어서 한 말이다.”

    [그래, 컨설팅 전부 끝나면 그때 봐서 술이나 한 잔 하자.]

    “좋지~ 근데 말이야. 그 공정한 평가를 위해서 네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게 있어.”

    [음? 그게 뭐야?]

    재환은 해외 컨설턴트가 오기 전 그들이 기업 평가를 할 때 ‘아주 중요한 정보’를 그들이 오면 바로 알수 있게 언론사보다 먼저 말해줬다.

    [!!!]

    그 말을 들은 진우는 수화기 너머에서 탄식을 내뱉었다.

    “잘 알았지? 선택 잘해야 될거다.”

    [아, 알았다.]

    재환은 통화를 마친 다음에 성 대표에게 말했다.

    “자, 그럼 이제 정 회장님 한 번 뵈야겠군요.”

    재환은 이 상황을 느긋하게 넘길 준비를 했다.

    “잠시 서울 좀 다녀오겠습니다. 컨설턴트들이 올 때 다시 돌아오죠.”

    “알겠습니다. 상무님.”

    ***

    며칠 뒤 경선호텔에서는 수많은 기자들이 모인 가운데 폭탄 선언이 나왔다.

    “저희 혜성그룹은 정부의 빅딜 방침에 의해 아성정공과 손을 잡기로 했습니다.”

    “!!!”

    연신 플래시가 터져나오면서 기자들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신 상무님, 혜성중공업이 아성으로 가는 것입니까?”

    “매각입니까? 합병입니까? 자세히 말해주십시요!”

    “전략적 제휴입니다. 그것을 위해 오늘 또 한분을 초대했습니다.”

    재환이 손뼉을 치자 그 타이밍에 맞춰서 다가오는 여성이 있었다.

    기자들이 고개를 돌린 순간 그들은 모두 경악했다.

    단정한 정장을 갖춰 입고 칼 같은 도도함이 묻어나며, 구두소리가 경선호텔 전체에 퍼지고 있었다.

    시대를 앞서간 ‘차가운 도시여자’ 포스를 풍기는 여성은 재환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악수를 나누면서 마이크를 잡았다.

    “아성정공의 홍보실장 정성희라고 합니다.”

    정몽균 회장의 장녀이자, 아버지를 대신해서 나온 정성희 이사였다.

    “저희 아성정공은 혜성중공업과 손을 잡고 새 철도차량 제작회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존 창원에 있는 두 공장은 제휴를 통해서 같은 기술과 자본을 공유할 것이며, 각자의 지분에 맞춰 새 업체를 만들고 있습니다.”

    정 이사는 그러면서 품 안에 쪽지를 꺼내 재환에게 건네줬다.

    [한국철도기술(KoreaRailroad Technology).]

    약칭 KRT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재환은 그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걸 바로 터트려버렸다.

    “혜성중공업과 아성정공의 합작회사 이름은 한국철도기술! 약칭 KRT라고 합니다.”

    “!”

    그걸 그 자리에서 터트려 버린 말에 기자들의 카메라 세례가 배 이상 늘어났다.

    “이, 이건 가칭인데 어쩌려고 그랬어요?”

    “그냥 이 이름이 좋아보이는데요? 혜성도 아성도 이름이 들어있지 않은 종합기업.”

    정성희는 아버지한테 이야기는 들었지만, 막 나가는 재환을 보고서 이 사람하고 같이 사업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분명 큰 뜻이 있다고 생각하고 일단 마지막은 재환과 악수를 하면서 카메라를 향해 흰 치아를 드러낸 미소를 지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은 곧바로 다른 철도중공업들에게도 큰 사건이었다.

    ***

    “김 회장님! 어떻게 된겁니까? 분명 컨설팅 업체가 오면 대윤쪽에 점수를 주겠다는 장담을 받아낸다고 하셨잖습니까?”

    대한의 조원범과 천리마중공업 대표 임종욱 사장이 나서서 대윤 김우준 회장에게 말하고 있었다.

    “오늘 저놈들 발표 보니까 작정한거 아닙니까? 이러면 우리쪽의 점수가 더 낮을 수 있다고요!”

    그렇게 된다면 이 셋의 연합은 그대로 혜성과 아성의 연합인 KRT에게 모든 철도사업부를 넘겨야 했다.

    김우준은 그것을 두고 주먹을 꽉 쥔채로 소파를 내리쳤다.

    퍽-

    “이 자식들이··· 제대로 맞붙어 보자 이거지?”

    결국 싸움은 2파전이 되었다.

    먼저 선빵을 날린 대윤-대한-천리마의 연합군과 혜성-아성이 손을 잡은 KRT의 대결이 말이다.

    “김 회장님··· 대윤··· 문제 없겠죠?”

    “조 부사장. 그 무슨 서운한 말이요?”

    사실 다른 기업 대표들도 알고 있었다.

    현재 대윤은 최악의 재정난을 겪고 있고, 98년 2분기에 갚지 못한 대한산업은행의 융자채무를 99년 2월로 겨우 연장한데 성공한 상태였다.

    여기에서 오히려 몸집 불리기에 들어가 철도청과 단독사업권을 놓고 돈을 벌려고 했지만, 거기에 재를 뿌리고 있는 상황이다.

    “해외 컨설팅 업체에 성의를 보인게 있어. 그리고 거기에는 대윤재단이 후원한 한국인 장학생들도 많이 있단 말이오.”

    인맥을 통해 한 방을 노리는 상황, 대윤은 전략컨설팅 업체 피터 앤 컴퍼니가 대윤 연합 쪽으로 높은 점수를 준다면 게임은 끝났다.

    ‘미국 컨설팅 회사가 재무상태 기업점수 찍는거 공개적으로 해주면 좋겠는데···.’

    재환은 이번에 올 컨설턴트 중 일단 친구가 한 명 있다는 것을 두고서 그 녀석이 제대로 된 판단을 해주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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