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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재벌의 삶!-46화 (46/244)
  • 46- 갑자기 안좋은 기억이...

    재환은 서라벌 호텔에서 저녁 초대를 받았다.

    “자~ 맘껏 먹어라. 부른건 현규여도 밥하고 술은 내가 쏜다. 하하하하!”

    경선 최대현 사장은 흡족한 얼굴로 재환과 현규에게 대접했다.

    경선건설이 최근 굵직한 공사를 따지 못해 고민이었는데, 재환의 추천으로 국가 단위의 대공사를 입찰을 공해 귀에 걸려 있었다.

    “내가 재환 동생하고 친하게 지내길 잘했다니까?”

    “형님네 회사가 잘 한 거죠. 전 그냥 정보만 전달했을 뿐이에요.”

    “그게 중요한거지!”

    대현은 흡족해서 재환에게 준비한 선물을 내밀었다.

    “이게 뭐에요?”

    “열어봐.”

    재환이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롤렌스 시계 플래그십 모델과, 황금으로 장식된 몽레알 만년필이 있었다.

    “와, 이거···.”

    둘 다 엄청난 고가의 상품이었고, 특히 만년필은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몽레알 독일 본사에서 고수해온 것이었다.

    “주변에 물어보니까 네가 만년필을 그렇게 좋아한다며? 계약서 쓸 때마다 거래처에 선물로 준다고 하고. 그래서 좋은 거로 하나 준비했어.”

    재환의 취향에 딱 맞는 선물이었다.

    “고맙게 받을게요.”

    재환은 시계를 어루만지다가 품 안에 넣었다.

    “당분간은 국산 써야 되지만.”

    “음? 아, 이제 삼신시계 혜성이 운영하지?”

    대현의 물음에 현규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우리 계열사긴 했지만, 임원들도 잘 안 썼지. 품질은 좋아도··· 명품 이미지가 부족해서.”

    삼신그룹 내에서도 전무 이상 올라가면 스위스나 독일제 명품 시계를 선물로 주는지라 본인들이 만들고도 중저가 이미지로 잘 쓰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저런 쪽으로 판매처를 생각하고 있죠. 일단 군납도 준비하고 있고.”

    “아, 그건 우리가 시도했는데 안 됐어.”

    현규의 말에 재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제가 원체 튼튼하긴 하지.”

    일본의 종합기업인 카시오페아에서

    전자계산기와 카시G 전자시계는 엄청난 내구성과 뛰어난 가성비로 이미 군 내에서 인기였다.

    “알긴 아는데 좀 더 싸고 튼튼한 걸 만들어봐야겠지.”

    “얼마인데 더 싸다고 하는거야?”

    “동네에서 사면 8만원 정도 하고, 면세로는 4,5만원 할걸요?”

    재환의 물음에 대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 와인을 마셨다.

    “뭐야, 너무 싸잖아?”

    대현은 그걸 못 사는 집안이 있나 어리둥절했다.

    “형님, 근데 지금 우리나라 군인 월급이 얼마인 줄 아세요?”

    “어··· 안 가봐서 모르겠네? 한 20만원 하나?”

    “한 달에 2만원도 안되요. 만 2천원”

    재환의 말에 현규나 대현이나 머쓱해진 얼굴이었다.

    “어우··· 걔들에겐 전자시계가 롤렌스 값이겠구나.”

    대현과 현규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혀를 차고는 다른 화제를 돌렸다.

    “자,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오늘 내가 여기 왜 불렀냐면···.”

    현규는 가방에서 작은 선물과 고풍스러운 카드를 꺼내 둘에게 건네줬다.

    “뭐야, 이건?”

    “휴대폰이네?”

    기존의 플립형이 아닌 좀 더 슬림해지고 국내 최초로 폴더로 만들어진 방식이었다.

    “브랜드 이름은 ‘애니셀’이고 신제품 나와서 선물로 돌리는 거야.”

    “와~ 휴대폰 선물. 근데 이 카드는···.”

    “제가 날짜가 잡혀서요.”

    현규가 날짜가 잡혔다는 말에 재환이 놀라 물었다.

    “아, 결혼하냐?”

    “다다음달 6월 19일.”

    “하하핫, 축하할 일이구만.”

    대현은 손뼉을 치면서 축하해줬지만, 재환은 그것을 보고서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너 분명 11년 살고서···.’

    지금도 언제나 웃는 상으로 미소를 지었지만, 그 당시에는 자신을 붙잡고서 밤새 술을 마신 다음에 ‘이제야 속이 후련하다.’라면서 이혼 썰을 풀었던 것도 다 기억했다.

    물론 이 자리에서 ‘너 그 여자랑 결혼하면 11년뒤에 파국을 맞는다.’라는 악담을 할 생각은 없었다.

    상대 역시 호남권 제일의 거부라는 조미료 회사 감미그룹의 장녀로 키도 크고 미모도 상당히 뛰어났지만··· 아무튼 그랬다.

    “야, 총각파티 해야되는 거 아니냐? 주변에 애들 싹 모아볼까?”

    “아, 형님. 얘한테 무슨···.”

    “아니면 요새 애들은 그런 거 안하나? 형이 함 정도는 들어줄 수 있는데.”

    함진아비 이야기가 나오자 진짜로 저 사람이 그걸 하면, 그건 다음날 뉴스에 대문짝만하게 나올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재환이는 결혼 안하냐?”

    “푸웁!”

    재환은 와인을 마시다 대현의 말을 듣고 순간 뿜을 뻔했다.

    재환은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귀는 여자 없습니다.”

    “여자 없으면 소개 한 번 시켜줘? 좋은 집안 아가씨들 많이 아는데 말이야.”

    “됐어요.”

    사실 재환이 누구 결혼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 역시도 결혼에 대해서는 실패했던 몸이니 말이다.

    “휘유-”

    재환은 불현듯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혜성그룹을 포기하고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사업을 하다가 현규의 요청을 받고 한국에 왔을 때 중매로 들어왔던 여성이었다.

    교육자 집안으로 상당한 명문가에 재벌가 쪽과도 친분을 가졌고, 재환이 현규의 부름을 받고 임원 생활을 할 때 결혼을 하게 됐다.

    의절까지 갔지만, 부모님도 모셔와서 그래도 살아가려고 했지만··· 첫 아이가 생기고 나서 파국을 맞이했다.

    ‘나를 원한 결혼이 아니었어. 내 주변의 인맥을 원한 정략혼이었지.’

    삼신그룹의 비자금 사태와 이현규의 고용승계 사태로 인해서 재환의 위에 있던 미전실 사장단까지 갈려나가고 일시적으로 지방으로 떠나자 곧바로 본색을 드러내 불화가 일어났고, 2년 동안 쇼윈도 부부로 지내다가 이혼했다.

    더 열받는 것은 아들을 자신에게 맡긴 뒤로 이혼했던 그 여자는 또 다른 모 재벌가의 방계 인척과 양쪽 모두 재혼으로 새 시집을 갔고, 재환이 훗날 현규의 복귀에 맞춰 후임 삼신 미래전략실 부사장으로 복귀하자 다시 찾아와서는 양육권에 대해 소송으로 거액의 돈을 썼다.

    그렇게 홀아비 생활하다가 고등학교 졸업 이후 바로 아들을 유학 보냈고, 신세 한탄하다가 정신차려보니 지금 살고있는 지금의 삶.

    “재환아,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거야?”

    “어? 아니야. 결혼 축하한다고.”

    “그래, 백년해로해야지.”

    재환은 그 말에 그래도 바뀐 삶이니까 한번 잘 해보라고 새 와인을 준비했다.

    ***

    재환은 성남에 위치한 혜성시계에 도착해 공장을 둘러봤다.

    신임 대표이사 김명진 체제에서 철저한 품질관리와 회사 내 위생을 지키고 있었다.

    “깔끔해서 좋네요.”

    “준비 많이 했습니다. 상무님.”

    김명진 대표의 말에 재환은 돌아서서 정중하게 말했다.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회장님의 고향 형님 아닙니까?”

    생소한 관계도 아니고 극존칭은 뭔가 어색했다.

    거기에 아무리 재환이 본사 기전실 임원이라 해도 계열사 대표보다 의전상 위가 아니었다.

    하지만 김명진은 깐깐하고 꼼꼼한 사람이라는 평가와 다르게 자세를 낮췄다.

    “아닙니다. 이제는 혜성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저는 고용된 몸입니다.”

    “그, 그렇게까지 않으셔도 되는데요.”

    어쨌건 그렇다고 하니 재환은 시찰을 끝내고 본사 사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재무제표를 한 번 살펴 본 다음 이곳에 오면서 준비했던 것을 김 기사에게 전화해서 가져오게 했다.

    “이게 다 뭡니까?”

    “시계 회사니 경쟁사 시계를 좀 준비했습니다.”

    한 박스 넉넉하게 가져온 재환은 먼저 신상품 손목시계들을 하나하나 올려놨다.

    그것들은 모두 전자시계로 일본의 유명 브랜드 제품이었다.

    “아, 이건.”

    그중에서 김명진 대표가 꺼낸 것은 군용시계로 유명한 카시G 랜드맨이었다.

    “좀비 시계로 유명하다죠?”

    “맞습니다. 저도 군 시절에 밑에 장교들이 쓰는 걸 많이 봤습니다.”

    30층 아파트에서 떨어트려도 버텨내고 진흙탕에 빠지거나, 바닷물에 담가도 작동을 한다는 내구성 하나는 정말 손꼽히는 시계였다.

    “문제는 가격이죠. 사병 월급으로 이거 살 수 있습니까?”

    “대부분은··· 그래서 입대 전에 미리 사오는 장병들이 있습니다.”

    “네, 그래요. 그래서 이만한 내구성을 가지면서 국산으로 더 싼 시계를 좀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이미 군납에서 잡고있는 일제 전자시계에서 어느 정도 파고들기만 하더라도 손해 볼 장사는 아니었다.

    “일단 내구성 좋은 손목시계, 그리고 수출을 적극적으로 노려봅시다. 전자시계를 위해 화성의 혜성전자하고도 많은 교류를 해 주시고요.”

    “네, 그 외에 다른 시계도 있습니까?” “물론이죠.”

    재환이 다음에 꺼낸 것은 벽걸이용으로 쓰는 나무 장식품 같은 시계였다.

    김명진은 그것을 보고서 흥미를 보였다.

    “이건 뻐꾸기 시계군요?”

    매 시간마다 뻐꾸기가 안에서 튀어나와 울음소리로 시간을 알리는 괘종시계.

    95년에 국내에 나온 뒤로 이 상품은 높은 가격대에도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지금도 아직 그 인기는 사그라들지 않았고, 혜성시계의 매출 중에서 상당량을 차지하는 효자상품이었다.

    하지만 그 인기는 몇 년뒤 사라지는데, 대세가 된 이후로 싸구려 저질품질의 시계들이 난립했고, 불량률도 상당해서 아예 외면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재환은 다른 각도로 생각했다.

    “이거를 조금 고급스럽게 만들 수 없을까 해서요.”

    “네?”

    “시계에서 가장 중요한게 시간을 알리는 거죠. 혜성시계는 삼신때부터 일본 제이와치에서 무브먼트를 배우고, 상당수의 기술력을 갖췄잖아요.”

    “네, 저도 그건 확인했습니다.”

    “시계를 넘어 명품 가구, 그러니까 엔틱가구 스타일로 만들어서 장식품으로도 가치를 있게요.”

    “흐으음.”

    재환은 이건 확실히 수요가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가 살았던 미래에도 사람의 소비 기호는 어떤 제품이든지 싸고 튼튼한 제품을 선호하지만, 미적 감각으로 비싸더라도 오래가는 제품을 하나쯤은 구비하고 싶어한다.

    ‘스웨디쉬 조립가구가 아무리 싸도 엔틱가구 시장은 계속해서 수요가 있는것처럼···.’

    김 대표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괘종시계라면 확실히 어느 집에나 필요한 필수이니 차라리 가구 시장과 협업해서 노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요.”

    “가게에 배치하기에도 그림이 좋고요. 특히 분위기 있는 커피숍이나 박물관 같은 곳 말입니다.”

    재환이 그것을 말하자 김 대표는 곧바로 개발을 준비하기로 했다.

    “디자이너 고용 문제에 대해서는 일임하겠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수제품을 하나 의뢰하고 싶네요.”

    “수제품이요?”

    “네, 두 달 뒤에 친구 선물로 줄 겁니다.”

    재환은 그것을 명한 뒤로 혜성시계에 대해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갈 준비를 했다.

    ***

    성남에서 곧바로 화성에 도착한 재환은 임원진들을 부르고 혜성시계에 전자시계 사업을 교류할 것을 명하고 전자 내의 신제품에 대해 논의했다.

    “혜성의 CD플레이어가 3분기에 나올 수 있다고요?”

    “네, 이대로라면 7월에 시판 가능합니다.”

    재환은 이기남 팀이 개발한 CD플레이어를 테스트하고, 음악을 듣다가 별안간 소파 아래로 떨어트려봤다.

    툭- 투툭-

    “앗!”

    하지만 떨어진 뒤로도 별 문제없이 작동하는데다가 기스도 별로 안난 것 같았다.

    “튼튼하네요?”

    재환의 말에 이기남은 흰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그거 하실 것 같아서 내구성 신경썼습니다.”

    모 전자회사 CEO가 보였던 임팩트로 인해 이런 제품을 만들면 꼭 한 번씩 바닥에 떨어트려봐서 내구성 테스트를 해보는게 경영자들의 유행 중 하나였다.

    재환은 그것을 두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제품은 이번에 인수한 혜성백화점 강남점에서 시판을 해 볼겁니다. 거기에 전자관을 만들 계획이니 홍보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재환은 예상 기간보다도 빨리 나온 신제품에 대해 흡족했다.

    그리고 CD플레이어 다음에 MP3시장을 위해서 움직일 준비를 했다.

    “아, 그래서 말인데 CD플레이어 이후로 MP3플레이어 사업을 준비할까 합니다.”

    “MP···3요?”

    아직은 상용화도 된지 얼마 안됐고 생소한 개념인 시장이었다.

    그나마 공학자인 이기남은 그것을 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개발 가능합니다. 그거 만든 연구원이 저희 팀에 있습니다.”

    “!”

    재환은 그 말에 놀라 물었다.

    “정말요?”

    “네, 그 친구가 과거 디지털매니아라는 벤처기업에 있었을 때 연구팀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일은 쉬웠다.

    “아, 그러면 관련 기술 저작권 라이센스만 따면 되겠네요. 그쪽 개발에 대해서도 이기남 상무님이 해 주실수 있겠습니까?”

    “신제품 개발이라면 얼마든지 하겠습니다.”

    재환은 무릎을 탁! 치면서 일이 쉽게 풀어진다고 생각했다.

    “아, 그리고 지금부터 개발해야 될 아이디어가 하나있습니다.”

    “차량용 GPS 네비게이션 사업입니까?”

    장 대표는 사장단 회의에서 들은 이야기를 두고 다른 임원들에게 일러둔 셈이었다.

    재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사업계획에 대해 말했다.

    “삼신전자쪽에서 액정보급을 해 주고 저희가 상윤정보통신과 라이센스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하드웨어 개발은 우리 혜성이 할 거예요.”

    합작사업이니만큼 여기에 대해서는 상당히 공을 들여야 했다.

    “잘 해봅시다. 혜성전자 한 번 멋지게 성장시켜보자고요.”

    “알겠습니다!”

    경영과 기술담당 임원들 모두 강한 의지를 가지고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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