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41화 (41/244)
  • 41- 우리 이사가죠? 강남으로.

    기획전략실은 한국종묘 인수 이후 재환이 내놓은 제안에 밤새도록 회의를 했다.

    그 회의는 하루로 끝난 것이 아니라 몇 날 며칠 동안 계속됐다.

    그리고 아직 신희경 회장은 모르는 일이었다.

    “정말 되겠습니까?”

    “되게 해야죠.”

    임창훈 실장의 걱정스러운 반응이 충분히 이해됐다.

    “그럼 상무님이 직접 보고 올리실 겁니까?”

    박찬우 이사의 말에 재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 겁니다. 이건 일종의 기전실에서 준비한 큰 선물이죠.”

    “선물이 아니라 폭탄이 될 수도 있습니다. 회장님이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임창훈 역시 수십 년간 이 회사에 있었지만, 요 1년간은 재환이 합류한 뒤로 엄청난 사건들이 일어나 스펙타클한 회사생활을 가졌다.

    “이사회도 설득해야 할 것 아닙니까?”

    “김범준 대표님은 인천시하고 혜성바이오 사업에 대해 청라지구 규제안에 대해 협의하고 있고, 다른 임원들이라 해야··· 이미 제가 4연승 하지 않았나요?”

    성윤규 전무 해임안, 혜성건설과 혜성해운 매각, 동성시멘트 인수, 그리고 한국종묘 인수안까지 모두 재환이 만들어낸 쾌거였다.

    어차피 차기 오너이니 임원들은 어지간해선 충돌 없이 들어주는 상황, 재환은 거기에 대해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딱 한 명만 설득하면 되죠, 우리 아버지.”

    재환은 기획전략실에서 준비한 서류들을 가지고 퇴근 준비를 했다.

    아마도 이 건은 집 안에서 벌어질 것이다.

    ***

    희경은 재환이 기전실 사람들과 기획한 서류를 다 읽어보고는 정색하며 물었다.

    “···돌았냐?”

    “네, 아이디어가요.”

    “이런 미친!”

    희경은 그것을 책상에 내 던지면서 머리를 부여잡았다.

    “백화점 사업··· 그래 이야기는 들었다. 근데 이게 뭐야!?”

    “제대로 된 계획이요.”

    “너 진짜 간이 부은거냐? 이 시국에 그런 돈이 어딨어! 1660억? 한국종묘 인수한 뒤로 그 돈을 또 어디서 마련해 임마!”

    “융자 좀 받고 본사 건물 팔려고요.”

    “뭐?”

    “아, 그러니까 뒷 내용도 같이 읽으셔야지 중간만 보고 서류 던지니까 그렇잖아요.”

    재환은 책상에 있는 자료 중에 ‘혜성그룹 남영동 사옥 매각 건.’의 서류를 건네줬다.

    “남영동 체제 끝냅시다. 우리 이사하자고요.”

    재환이 백화점 사업을 내밀면서 본사를 이전한다는 곳은 바로 ‘강남 도곡동 한티 사거리’였다.

    “현재 그랑블루 백화점 강남점이 매각대상으로 나왔죠? 근데 공교롭게 그 옆에 혜성건설이 소유했던 땅이 있네요?”

    “야, 거, 거기는!”

    “알아요. 투자용으로 상가건물을 원한 건데 ‘샤를로트 그룹’이 팔라고 했다죠?”

    임창훈이 재무팀 시절부터 혜성과 샤를로트 사이에 논의하고 있는 사업 건이라고 알려준 정보였다.

    “후우~”

    희경은 담배를 물고 연신 라이터를 돌려 불을 붙였다.

    국내 최대의 유통 공룡 샤를로트 그룹은 소공동 ‘샤를로트 호텔’과 국내 매출 1위인 ‘샤를로트 백화점’을 소유한 재계서열 9위의 기업집단이었다.

    몇 해 전부터 유통계 라이벌인 아성백화점이 압구정과 삼성동에서 강남권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그 뒤로 강남고속터미널 부지에 대규모 쇼핑몰을 준비하는 신누리그룹이 있었다.

    강북권은 몰라도 강남권에서는 88올림픽에 맞춰 오픈했던 잠실점을 제외하고는 시원찮은 상태라 이번에 도곡동에 있는 그랑블루 백화점을 노린 것이었다.

    그리고 혜성그룹의 상가부지 역시 인수해서 증축해서 강남 남부에 대규모 쇼핑단지를 만드려는게 그 계획이었다.

    “그러니까 여기를 우리가 인수하는 거에요.”

    광주에 있는 조막만한 아울렛 말고 진정한 혜성의 백화점 사업 진출, 그리고 옆의 명품관을 임시본사로 쓰고, 저희가 가진 부지를 지어서 새 본사로 만들 계획이었다.

    “현재 남영동 사옥을 매각하고, 인수할 그랑블루 백화점의 수익 다각화를 만들면 충분히 메꿀 수 있는 금액입니다.”

    재환의 말에 희경은 연신 담배를 태우다가 조용히 물었다.

    “그래도 1천억은 필요해. 이거 어쩔 거야?”

    “투자 좀 받아야죠.”

    재환은 이미 거기에 대해서 계획을 하고 있었다.

    “그거 꼭 다 읽어주세요. 저는 지금부터 움직일 겁니다.”

    “내가 허락할 거 같냐?”

    “다 보시고 판단하셔도 늦지 않을 겁니다.”

    재환은 희경에게 당부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희경은 담배를 비벼끄고, 재환이 가져왔던 기전실의 기획서를 처음부터 다시 읽어봤다.

    ***

    재환은 초대를 받고 서라벌 호텔 VIP실로 향했다.

    “오~ 불도장이군요.”

    불자가 그 냄새에 담을 넘을 맛이라는 뜻으로 불도장(佛跳牆)이라 붙여진 이 중국 요리는 국내에서 서라벌 호텔 아니면 맛볼 수 없는 특급요리였다.

    불도장부터 각종 서라벌 호텔의 중화요리 셰프들이 모인 코스요리들이 나열되자 재환은 푸짐한 대접이라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재환을 초대한 것은 현규와 같이 온 삼신의 사돈가인 삼우일보 홍석준 사장이었다.

    “지난번에 혜성 덕분에 기사 좋은 거 많이 나왔다?”

    “하하, 바이오연구소 착공되면 더 좋은 기사 써 주세요.”

    한국종묘를 인수해 국산 농산물 유출을 막았다고 금칠을 해주는 기사를 많이 써줘 혜성그룹 주가가 오르는데 도와준 홍석준 사장이었다.

    그리고 현규는 식사하면서 본론을 꺼냈다.

    “이번에도 삼신증권 이름으로 투자자문 요청했다며? 그랑블루 백화점.”

    “그렇게 됐어. 아예 본사까지 옮길 계획이다.”

    “대공사네.”

    재환은 그러면서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일단 명품관을 본사 건물로 쓰고 그 옆에서 브랜드들 재편을 한 다음에 제대로 키울 거다.”

    재환의 발표에 현규와 홍석준은 그것을 원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최상층은 비워줘라. 우리가 입주하게.”

    현규의 말에 재환은 잠시 생각하다가 삼신그룹이 원하는 게 뭔지 알아차렸다.

    “아, 아! 그렇구나.”

    “뭔지 알아?”

    “백화점이나 대형 상가에서 맨 윗층 비워놓는 거 하면 뭐겠냐?”

    “그, 그런가?”

    현규가 머쓱한 눈으로 재환이 그걸 알고 있다는 사실에 말했다.

    “멀티플렉스 사업. 삼신가에서 예전부터 노리는 거였지?”

    일전까지 영화 하면 대규모 프랜차이즈 복합상영관이 적었지만, 이제야 막 태동기가 생길 때였다.

    그리고 앞으로는 영화의 흥행척도를 ‘서울 관객수’로 따졌지만, 곧 ‘전국 관객수’로 집계를 따져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의 시대가 열린다.

    “알고 있다면 다행이네, 이야기가 잘 될 거 같아. 그럼 최상층은 비워주는 거지? 물론 거기에 따른 투자는 있을 거야.”

    재환은 가뜩이나 1천억 마련하기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일부는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당연히 땡큐였다.

    “어차피 우리가 인수 못 하면 그 자리는 샤를로트의 영화관으로 가겠지.”

    샤를로트 역시 ‘샤를시네마’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복합영화관 사업에 준비하고 있으니 강남 진출을 위해 꼭 필요했다.

    “암튼 그 자리에 영화관으로 확실히 들어오는 거지?”

    “물론이지!”

    “범 삼신가 이름일테고.”

    “물론이지!”

    “씨네무비 강남점이냐?”

    “물··· 야, 미쳤냐?”

    언제나 싱글거리던 현규가 순간 정색하면서 재환을 노려봤다.

    “어··· 제일그룹의 씨네무비 말한 거 아니었어?”

    삼신그룹의 분가이자, 이건호의 형 이명호 회장의 제일그룹은 삼신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설탕, 비료, 문화, 조미료, 제약, 방송 산업으로 진출했다.

    그리고 98년 씨네무비 강변점을 시작으로 11개 지점인 복합상영관 영화사업을 시작했는데··· 아니란다.

    그 분위기 속에서 홍석준이 헛기침을 하면서 재환에게 말했다.

    “저기, 신 상무? 우리가 그쪽하고 사이가 좀··· 그래서··· 따로 진행하는 거야.”

    재환은 잠시 생각하다가 제일그룹 말고 범 삼신가가 하는 또 다른 영화사업을 떠올렸다.

    “어, 음··· 그걸 벌써 한다고?”

    시네박스.

    전국의 극장주들끼리 연합한 조합인데 00년대 이후 삼우일보가 인수해서 삼우시네박스라는 이름으로 복합영화관 운영업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말이지. 우리가 이번에 진출하는 사업은 시네박스라고···.”

    실제 계획이 이때 진출 계획이 있었을 것을 몰랐던 재환은 일단 현규에게 사과했다.

    “미안하다, 사촌이라 그쪽 돕는 줄 알았다.”

    “우리 큰집하고 사이가 정말 나쁘··· 아니다, 집안 문제를 말하는 건 그렇지. 신경 쓰지 마! 내가 좀 흥분했다.”

    현규는 쿨하게 받아들이고, 사업계획에 대해 논의했다.

    “만약 시네박스가 입주한다면 그 뒤로 백화점에 필요한 업체는 우리가 도울게.”

    “어디 괜찮은 데 있어?”

    “써니 코퍼레이션 입주.”

    “써니···? 아, 태양화장품.”

    국내 화장품 업계 1위이자 미국의 유명 화장품 체인 스킨골드 코스메틱 사와의 제휴로 강남 신도시 부인들의 사랑을 받는 브랜드였다.

    “화장품 들어오고 영화관 들어오고, 혜성시계도 관하나 만들어야겠고, 지하는 혜성유통으로 마트 채우면···”

    현금장사이니 괜찮은 상황이다.

    거기에 명품관을 본사로 쓰니 그 자리에 있는 곳 중 진짜로 매출, 수익이 높은 브랜드만 옮기면 그럴듯하게 돌아간다.

    거기에 그 땅은 4년 뒤에 지하철 분당선의 개통으로 초역세권의 자리였다.

    재환은 그 이야기를 듣고 조용히 계산했다.

    “일단 우리가 인수대금으로 천억쯤 마련해야 한다. 그거 완성되는 대로 협상 시작할게.”

    “아, 그래.”

    재환은 그 이야기를 끝내고 다시 식사했다.

    그때 현규는 뭔가 생각났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재환이 너 혹시 부동산 사업에 관심 있어?”

    “···뭐?”

    ***

    재환은 돌아가면서 생각에 잠겼다.

    ‘원래 우리 삼신이 도곡동에 본사를 지으려고 했어. 103층짜리 빌딩인 초거대 프로젝트였어.’

    그런 일이 있긴 했었다. IMF 외환위기로 허공에 뜬 사업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 수익사업을 위해 그 땅을 모두 주상복합 아파트를 짓기로 했어. 기존에 63빌딩보다 큰 69층 규모에 2500세대야.’

    ‘아~ 삼신그룹의 주상복합단지? 그럼 그거 이름은···’

    ‘삼신타워팰리스’

    재환은 그때 이야기를 듣고 표정관리를 못 했었다.

    초반 분양이 가장 쌀 수 있으니 한 세대당 평당 800만원 이하로 해줄 테니 관심 있으면 몇 채 사보라고 제안했던 현규의 말이었다.

    “뭐, 그게 초반에 미분양이 많이 터지긴 했지. 삼신 임원들한테 떠넘기듯 분양도 했었고.”

    물론 앞으로 생각하면 그곳의 가치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재환은 차를 타고 가다가 운전하는 김 기사에게 물었다.

    “기사님. 지금 사시는 동네가 어딥니까?”

    “네? 아, 성수동에 조그만 빌라입니다. 조만간 적금 모은 거로 아파트 한 채 구매하려고는 하는데··· 하핫, 워낙 비싸서요.”

    “회사에서 지원 드릴 테니까 강남으로 이사하실래요?”

    “···네?”

    멀리 갈 것도 없이 주변에 있는 인물에게 정보를 주고 재환 역시 회삿돈이 아닌 주식투자 했던 개인 돈으로 몇 채 구매할 생각을 했다.

    물론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재환은 남영동에 돌아와서 현재 남영동 사옥에 대한 매각대금을 살펴봤다.

    “아무리 잘 쳐줘야 620억 정도인가.”

    강남으로 이사하기엔 아직도 모자란 금액이었다.

    이 자리에서 더 팔 만한 계열사를 확인하고 있을 때, 눈에 보이는 몇몇개가 보였다.

    “···야구단 팔자고 하면 아버지가 재떨이 날리겠지?”

    작년 한국시리즈 우승팀에 도합 9회 우승의 프랜차이즈 명문 구단을 판다면 지역에서도 난리가 날 것이다.

    물론 이번에 유명 선수 몇몇을 일본 구단으로 보내면서 이적료를 받아 그걸로 운영하고 있으니 본사에서도 크게 돈을 쓰는 일은 없으니 현상유지만 하면 될 곳이었다.

    “생각해 보자. 생각을···.”

    그때 재환의 눈에 띈 경제지 기사가 보였다.

    “어? 잠깐.”

    재환은 곧바로 그 신문을 들어 올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