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38화 (38/244)

38- 터집니다, 모든게요.

재환은 안암재단의 두 임원들과 유익한 대화를 나누고 그들을 돌려보냈다.

“이걸로 어떻게 친구 복수는 해결된 거냐?”

대현이 능글거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재환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 친구 논문 도용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는데, 해임한다고 하잖아요. 그럼 안 되지.”

“뭐?”

얼마나 구린 게 많은 사람이면, 먼저 와서 해임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뭔가 아니에요. 그 놈들 잘라내려면 제 친구가 한 방 찔러버려야 하는데···.”

“그럼 조율해. 지금 간 사람들 다시 한번 불러줘?”

대현은 쿨하게 대답했다.

“아뇨, 제가 직접 당사자 데리고 이야기해 보죠.”

“그래 뭐, 근데 그 친구 괜찮으려나?”

재벌가도 아니고 평범한 집안의 사람이 자기 담당 교수를 찌른다는 건 학계에서 어떤 대우를 받을지 나올 상황이었다.

“제가 케어할겁니다. 끝까지 안고 갈 친구예요.”

“그래, 뭐 그런 친구라면 좀 밀어줘 봐.”

이미 대현이 한번 정리를 해줘서 재환은 좀 더 쉽게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재밌는 일 말해줄까?”

“네?”

“안암재단이 왜 저렇게 쩔쩔맸는지 알아? 삼신에서 이건호 회장님이 안암대 이사장에게 전화하고 난리 쳤다고 하더라. 어우~ 그분 화나시면 진짜 무서워.”

삼신이 한 번 열 받으면 정부 빼고는 그 어느 곳이라도 움찔하게 된다.

그리고 안암대재단역시도 방법이 없었다.

“이유야 뭐 현규 여동생하고, 안암대 이사장 아들하고 사귀는 거 때문이겠지.”

‘아, 그러고 보니···.’

재환은 과거에도 결혼식 초대를 받았었으니 똑똑히 기억했다.

“그거 2000년으로 아는데···.”

“응? 뭔 소리야? 지금 사귀고 있어. 현규랑 현아가 시집 장가 안 가서 결혼 못 하는 거지.”

확실히 결혼은 00년이었으니 재환이 괜히 미래 이야기를 한 것 같았다.

“예비 사돈인데 이거 너무하는거 아니냐고, 있는 욕 없는 욕 다 했다고 하니 봐바. 안암대 재단에서 부랴부랴 수습 나섰잖아? 안암대재단 지금 발바닥에 불 날거다~”

재환은 대현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아직 경제련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았어.”

“네, 그쪽도 서서히 무너지겠지만, 일단 한숨 돌렸네요.”

재환의 말에 대현은 키득거리면서 작게 속삭였다.

“그리고 니 말이 맞았어. 정부에게 멱살잡힌 쪽은 김우준인거 같다.”

“흐음~”

“그 양반 앞으로 경제련에서 괴로울 거다. 이번 기회에 대윤그룹의 그 자리는 우리 경선이 제껴야지.”

결국, 경선은 안암대 문제와 경제련 내의 스파이도 잡으면서 차기 회장감인 김우준한테 한 방 제대로 먹인 상황이 되었다.

물론 그건 재환과 현규의 도움이 있었지만 말이다.

“암튼 자주 좀 봐서 좋은 이야기 좀 하자고, 경제련이 자네 엄청 주목하는데, 좋은 건수 있으면 나도 좀 듣고.”

대현의 말에 재환은 잠시 생각하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좋은 정보라면··· 이건 어떻습니까?”

“뭔데, 말해봐.”

재환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다음 사업에 대해 말했다.

“이 시국에···?”

“대박 나겠죠?”

“....조언을 못 주겠네. 우리 경선은 그쪽하고 아예 담을 쌓아서··· 뭐, 열심히 해봐. 곧 경기도 좋아지겠지.”

“이만 일어나볼게요. 다음에 와인 좋은 거 있으면 또 불러주세요.”

“야, 언제든지 와라. 술자리는 언제나 열린다!”

재환은 경선호텔을 나가면서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

“자~ 이게 안암대 재단에서 보내준 서류고, 이게 우리 회사 계약서야.”

“후우··· 진짜 질러야 하는구나.”

석찬을 부른 뒤로 재환은 두 개를 모두 그에게 내밀었다.

“너를 엿 먹였던 교수들에게 한 방 거하게 날리는 거야.”

“근데··· 이거 정말 써도 되는 거냐?”

대학원생이 담당교수를 포함해서 학과장, 학장까지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살생부였지만, 탐탁치가 않았다.

“내가 그쪽 있어봐서 아는데··· 내부고발이 얼마나 무서운건지 잘 알아. 게다가 다른 동기들은 어쩌고···.”

“아, 그것도 걱정 마라. 안암대 교수들 줄줄이 날아가면 남은 대학원생 케어할 곳도 마련했으니.”

“!?”

“현규가 명륜대랑 영북대, 우리 집안도 재단 있어. 거기만큼 명문공대는 아니어도.”

정 학위가 필요하다면 다른 곳들에서 융통하게 해주겠다고 선언했다.

“그것도 하나 써 주리?”

“아니야. 그냥 쓸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자기가 가진 모든 자료를 가지고 총대를 메기로 했다.

원래 꿈이었던 공학 교수가 아니라 친구들과 같이 사업을 시작하려는 것이었다.

“그럼 계약 성립?”

“나를 얼마나 써먹으려는지는 몰라도 잘 부탁한다. 낙하산 소리는 안 듣게 노력할게.”

재환은 그 말을 기다렸다며 손을 내밀었고 석찬과 악수했다.

‘됐어, 이제 이 녀석 왔으니 반도체랑 디스플레이 산업은 차차 키워나갈 수 있다.’

재환은 새 삶에서 하나하나 진행돼가는 것에 대해 미소를 지었다.

***

“지금 이게 뭐하자는 겁니까?”

안암대 재단 이사회에 소집된 조성길과 학과장 김 교수 모두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

“다시 한번 말할까요? 이 자리에서 공과대학 학장 조성길 교수와 전자공학과 학과장 김명수 교수에 대한 해임안건이 제출되었습니다.”

안암대재단 이사 권명진은 자신들이 조카뻘 재벌 2세에게 고개까지 숙이면서 겨우 수습한 것을 처리해야 했다.

“이사님들. 이거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이번 안암대재단에 기부금 누가 제일 많이 얻어왔습니까? 그리고 연구 논문 피인용 어느 단과대가 가장 많이 쓰였습니까?”

이 자리에서 ‘내가 세운 공이 얼만데, 나를 잘라?’라는 반응을 보이는 조성길.

하지만, 이사회는 싸늘한 눈으로 바라봤다.

“죄목을 일일이 다 말해야 시인하시겠습니까?”

유영수 본부장 역시 조성길을 압박했다.

“대윤전자와 대윤엔지니어링 산업 협력, 공학도서관 기부금 조달, 기업간 기술교류 활성화! 이거 제가 다 했습니다. 저 교육자로써 이 학교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 쏟아부었습니다!”

사색이 된 김 교수와 다르게 조성길은 자신에 대해서 필사적인 PR을 했다.

하지만 이사회는 더 이상 못 들어주겠다는 듯이 문쪽을 향해 말했다.

“그 사람 들어오라고 해.”

덜컹-

문이 열리면서 강석찬이 모습을 드러냈다.

“!?”

“아앗?!”

화들짝 놀라는 학과장과 시종일관 당당했던 조성길도 흠칫했다.

재환이 맞춰준 정장을 갖춰 입고 이런 날을 위해 모아둔 서류가 그의 품 안에 가득했다.

석찬은 먼저 이사회를 향해 고개숙여 인사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전 안암대 대학원생인 강석찬이라고 합니다.”

“저, 저런!”

김 교수가 제지하려고 했지만, 이사회가 막아섰다.

“이 서류에는 현재 안암대 공과대학 내에서 벌어진 논문 도용과, 근로장학금에 대한 횡령 및 배임, 그리고 번역 대필에 대한 자료들이 있습니다.”

“저런 미친 새끼가··· 야, 임마! 너 학위 안 딸 거야? 어디서 그딴 걸 가지고 와?”

김 교수가 욕을 하며 달려들려고 하자 본부장은 곧바로 직원들을 동원해서 그들을 붙잡았다.

그리고 조성길 역시 지금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해 곧바로 인맥을 머릿속으로 돌렸다.

***

[다음 소식입니다. 서울 모 대학에서 초유의 연구비리 사태가 터져 교육부 내에서 특별 감사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어머, 어느 학교가 저런 일이 있었던거야?”

“안암대요.”

재환은 TV를 보면서 나오는 뉴스를 어머니에게 설명해줬다.

그렇게 정치권, 경제부의 고위공무원단에 인맥을 자랑했지만, 결국 교육부라는 다른 조직에 의해 영혼까지 털릴 일만 남은 안암대 공대였다.

“뭐, 빅5대학이 저런 거로 무너지진 않겠고, 라인 몇 개 갈아치는 선에서 끝나겠지만.”

아직까지 사임 안하고 버티는 거라면, 지금 여기저기에 전화 불나도록 굴리고 있을거다.

재환은 그것을 보고 전화를 걸었다.

“뉴스 잘 봤다.”

[하하··· 그동안 준비한 비리 자료, 거기가서 다 털어버렸다.]

“잘했어! 친구!”

석찬은 자신이 도둑맞은 논문과 번역에 관한 이야기, 기술장학금을 받고 다시 교수에게 돌아가는 문제 등에 대해서 모두 털어놨다.

그리고 안암대는 뉴스에서 나온 것처럼 교육부의 특별 감사에 들어갔다.

[아무튼, 그쪽으로는 함부로 다니지도 못할 거 같다.]

“됐어. 이제 우리 회사 면접 준비해라.”

재화는 석찬에게 앞으로의 이야기를 해주면서 약속을 확실히 잡았다.

그때 갑자기 집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어머, 누가 오신 건가?”

명숙이 확인하자 안에서는 많은 손님이 찾아왔다.

“여, 여보!”

“음?”

희경은 집무실에서 나와 찾아온 사람들을 보고 놀랐다.

“아니, 어떻게 다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아성그룹의 정목헌 부회장, 경선그룹의 최대현 사장, 범 아성가의 분가 백두그룹 정목원 회장, 그리고 삼신그룹의 이현규 전무까지 모두 혜성가를 찾아왔다.

***

“다들 들어요. 우리 집사람이 차 끓이는 솜씨가 아주 예술이거든.”

전통차를 대접하고 집무실에 모인 경제련 사장, 회장단을 보고 분위기가 일순 무거워졌다.

재환은 이 사람들이 밤에 온 것은 뭔가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경제련에서 이번에 집단행동에 나서게 됐습니다.”

이야기의 물꼬는 대현이 먼저 터트렸다.

그리고는 가져온 서류를 놓고 모두에게 돌렸다.

“상반기 30대 기업 공채··· 이게 뭐야?!”

희경은 그 내용을 보고서 화들짝 놀라며 다른 회장, 사장단을 바라봤다.

“아니, 이 사람들! 어쩌려고 이런 걸 내놨어요?”

“말했지 않습니까? 경제련에서 집단행동 들어갈 거라고요.”

아버지 왕회장보다 더욱 냉혹한 인상의 정목헌 부회장이 말했다.

“어차피 은행 대출 규제 받은 상태에 우리도 리스크 감수하고 움직이는 겁니다.”

“하, 하지만 매년 기업에 사람쓰는데 그걸 줄인다니.”

재환 역시도 그걸 보고서 얼굴을 긁적였다.

“30대기업이 일제히 상반기 공채신입사원을 절반으로 줄인다니.”

한 곳도 아니고 30대기업 전체가 그런다면 그건 취업시장에 찬물··· 아니 빙산을 통째로 집어던지는 꼴일거다.

“어차피 선빵은 경제부가 때렸어요. 실컷 조사해 보라죠. 그럴 때마다 우린 신입 채용이나, 공장사업 모두 보수적으로 움직일 거라는 의사를 보냈습니다.”

어차피 외환위기로 인해 있는 사람들도 감축해야 하는 상황이니 이것을 가지고 뭐라고 할 높으신 분은 없을 것이다. 그저 속이 조금 타들어 갈 뿐···

“저희는 전문연구원 빼고는 기존인원 감축하니 동의했습니다.”

현규 역시도 말하자 재환은 자신들도 움직여야 하나 생각했다.

“그래도 다른 기업들은 눈치껏 특채나 회사 인수로 은근슬쩍 늘릴 텐데요. 예를 들면 대윤이라던가.”

그때 대현이 말했다.

“그래서 차기 경제련 회장에서 김우준 회장 지지 안 할 겁니다.”

“!?”

“네, 그 양반 지지해줄 필요가 없죠.”

아성가, 경선가, 삼신가가 모두 등을 돌린다면 대윤이 아무리 5대 그룹이라 하더라도 표수에서 밀려서 경제련 회장은 나가리다.

이렇게 되면 정권하고 계속 손을 벌려 국책은행과 같이 대마불사를 외치던 대윤그룹은 원래 역사보다 더 빨리 무너질 수도 있었다.

“쯧, 그러면 차기 경제련 회장은 누가 되는 겁니까?”

희경의 말에 모두가 침묵한 채 그를 바라봤다.

“···.”

“···.”

정말 묘한 분위기가 일어나자 재환은 자신 역시도 아버지를 바라봤다.

그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던 희경은 머쓱한 얼굴로 자신을 가리켰다.

“누, 누구? 설마··· 나?”

“이번에 경제련 회장 올라가신다면 삼신가는 지지하겠습니다.”

현규 다음으로 대현도 나섰다.

“저도 아버지에게 여쭤봤는데, 후임으로 신 회장님이 오시면 안심한다고 하십니다.”

“아니, 내가 무슨 경제련 회장··· 위에 기업에 회장님들 하시라고 해.”

상윤, GH, 삼신, 아성, 경선 등의 10대 그룹이나 하던 자리였는데 별안간 자신에게 돌아오자 멋쩍어하는 희경이었다.

재환은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하고 말했다.

“한번 나가 보세요. 아버지가 경제련 회장 되시면 재계하고 이야기는 잘 통하겠네요. 집에서 하시던 대로 아주 화통하게 할 말은 다 나올테고.”

“뭐야? 이 자식, 너 지금 나 놀리냐?”

“경제련을 위해서 한 번 움직여 주십쇼. 신 회장님.”

대현까지 거들어서 밀어붙이고, 옆에 현규도 서포트 했다.

“아버지께서 돕겠다고 하십니다. 이번에 신 회장님이 한 번 움직여 주시죠.”

인제 보니 경제련에서 경제부와 싸우려고 하는 것도 있지만 차기 회장을 김우준이 아닌 신희경을 밀어주려고 나선 것 같았다.

‘김 회장님. 속 뒤집히시겠네. 게다가 아까 내가 보낸 팩스까지 생각하면···.’

재환은 피식 웃으면서 내일을 기대했다.

***

“이봐요. 조 교수! 당신네 비리를 왜 나한테 도와달라고 하는 거야? 뭐, 그분? 에라이!”

김우준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전화기를 집어 던졌다.

경제련의 주요 멤버들이 차기 회장에 대해서 김우준을 지지하지 않을 거라는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으드득, 네놈들이 나 없이 될 거같아? 그동안 정부 규제 풀어주고, 은행융자문제 해결해준 게 누구인데!”

그때 우준의 집무실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뭐야?!”

“회, 회장님···.”

김선규가 떨리는 손으로 종이 한 장을 들고왔다.

“지, 지금 막 온 팩스인데, 이거···.”

김우준은 신경질적으로 그 팩스를 받아들고 읽었다.

“!?”

[대한산업은행 만기채무로 인한 위기의 대윤그룹의 구제책, 대윤백화점 인수합병계획 논의서]

[혜성그룹 기술전략팀 상무 신재환.]

[대윤의 백화점 사업을 인수할 겁니다.]

그런 패기 넘치는 문서를 논의서랍시고 팩스로 보낸 것에 김우준은 분노하여 그 종이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이, 이 새파랗게 어린놈이!”

그 새파랗게 어린놈에게 당한 조롱에 김우준의 쌓여있던 분노가 한꺼번에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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