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32화 (32/244)
  • 32- 종이가 좀 많이 붙어있을겁니다.

    얼마 뒤 혜성전자 공장에는 수많은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아니, 이게 다 뭐야?”

    제 1공장인 라디오 파트를 담당하는 이경수 부장은 아연실색했다.

    직원들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보며 만년필로 써진 포스트잇 종이들을 떼고 확인했다.

    [이 공장에서 기판 불량률이 17%라고 합니다. 10% 미만 되게 신경 쓰세요.]

    [야간 조가 기계 돌리면 안쪽에 먼지가 많이 쌓입니다. 주간 조 출근하면 안 보이는 곳도 깔끔하게 닦아주시길 바랍니다.]

    [우레탄 바닥인데 일부분은 상당히 미끄럽습니다. X자 칠한 곳에 방지 테이프 붙이세요.]

    공장 이곳저곳을 밤새 돌아다녔던 흔적이 가득했다.

    “아, 이 부장 왔어요?”

    야간 팀을 맡았던 한철희 부장이 졸린 눈을 하고 다가오자 이경수가 물었다.

    “이거 다 뭡니까?”

    “신 상무님이 오셔서 하나하나 붙이고 가신겁니다.”

    “사, 상무님이 직접요? 아이고···.”

    “내가 20개 정도는 해결했는데, 나머지는 좀 부탁할게요.”

    야간 조에서 청소팀을 빼내서 당장 지적한 것에 대해서는 얼추 치웠지만, 아직도 한가득이다.

    “히야~ 기가 막히네. 이거.”

    그렇게 말하는 것은 이 부장뿐만이 아니었다.

    ***

    [자재창고 사다리 상태가 이게 뭡니까? 안전사고 예방하게 삐걱거리는거 모두 수리하세요.]

    [이 자리에 안전모 배치하세요. 높은데 올라갈때는 필히 쓰게 하고 안하면 벌금 뭅니다.]

    [조명 밑에 벌레전등 수시로 교체해주세요.]

    [창고가 이거보다 더 깔끔했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얼룩자국 지우는것부터요.]

    자재창고에도 재환이 만년필로 쓴 포스트잇들이 한 가득 붙어있었다.

    자재팀 부장 이원진도 한숨을 쉬면서 곧바로 직원들을 불렀다.

    “그래, 대청소 한 번 해보자! 모두 움직여!”

    재무팀 역시도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연구개발팀 역시 아연실색했다.

    [이게 R&D 센터 보안수준입니까? 비밀번호가 qwe4321이 뭐에요?]

    [앞으로 비밀번호는 자주 변경하세요.]

    [소형 너트같은게 자주 굴러다닙니다. 혹시나 싶어 맨발로 걷다가 두 개나 찔렸어요.]

    [소독제 다 떨어져 갑니다.]

    [각 방에 배치된 소화기에 점검 기간 라벨 떨어진 게 많습니다. 신경 쓰세요.]

    “허, 그 사람 진짜 꼼꼼하네?”

    이기남 상무 역시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물론 그가 다른 임원들에 비해 적당적당하고 밑에 직원들에게 지나치게 너그러운 편이기도 했지만, 재환이 이렇게까지 지적하니 바로 움직여야 했다.

    “바닥 한번 꼼꼼히 살펴봐. 나 개발하고 있는 동안 나머지는 좀 치워라.”

    “예, 상무님.”

    기남은 오더를 내린다음 디자인팀에서 준비한 도면을 보고서 한 번 맞춰 보기로 했다.

    “그래, 원하시는 대로 불량률 없는 쪽으로 꼼꼼하게 한번 해 보자고.”

    여기저기에 포스트잇을 붙이던 재환은 화장실에 와서 손을 씻으며 한숨을 쉬었다.

    “휴우~ 손댈 거 진짜 많네.”

    그래도 일전의 BQ시스템 때문인지 다른 계열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깔끔하긴 했어도 작정하고 털면 나올 게 많았다.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지 마세요. 흡연실을 따로 만들 겁니다.]

    [화장실 청소 철저히 하세요. 수시로 락스칠 하시고요.]

    이런 건 학교에서도 잘 안 할 일이지만, 포스트잇으로 붙여놨다.

    “자~ 그럼 점심 먹고 다시 해볼까?”

    재환은 기지개를 켜면서 밥을 먹으러 구내식당으로 갔다.

    새벽부터 움직였으니 슬슬 피곤할 법도 했다.

    ***

    식당은 분주했고, 재환은 직접 식판을 들고 가서 식사를 했다.

    재환의 모습을 보고 웅성거리는 직원들이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한술 떴다.

    ‘저분이 신재환 상무지? 회장님 아들.’

    ‘딱지 무지하게 붙이던데, 엄청 깐깐해 보이네?’

    ‘새벽부터 움직였대. 빡세겠어. 진짜.’

    수군거리는 소리에도 재환은 묵묵히 밥을 먹었다.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봤을 때, 임원진들 대다수는 안 보인다는 것이 보였다.

    ‘하긴 이사급만 되도 구내식당 밥 안 먹지.’

    게다가 재환 역시도 오늘 구내식당 밥은 처음 먹어보는데 정말로 맛이 없었다.

    그래도 안산 트로이카 컴퓨터 같은경우는 외주 케더링업체에서 배달을 받아서 밥맛은 좋았는데, 여긴 영 아니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가고 식사가 다 되어 갈 때, 재환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빈 식판을 치우려고 할 때 재환은 잔반대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한 통도 모자라서 두 통이 채워지고, 세 통까지 될 양이었다.

    “잔반 봐바 이거. 이게 얼마나 낭비인데.”

    재환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곧바로 설거지를 하는 조리실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서는 식당 아주머니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현주 엄마. 아까 봤어? 회장님 아들 온 거.”

    “키 훤칠하니 잘생겼더라고. 근데 여기까지와서 이런 딱지 붙일건 뭐야?”

    [행주가 더럽습니다. 새로 삶고 수시로 교체하세요.]

    [개수대 청소 꼼꼼히 하세요.]

    “아이고! 어깨 빠지겠네. 이거 다씻는게 제일 힘들다니까.”

    재환은 분주한 조리실 안으로 들어갔다.

    “어맛?! 누구세요?”

    “혜성전자 상무 신재환입니다.”

    “어머, 어머어머!”

    여섯명쯤 되는 조리사 아주머니들은 모두 모여서 인사를 했고, 재환은 설거지를 보면서 이야기 했다.

    “잠깐들 나오세요. 할 말이 있습니다.”

    “재환은 그녀들을 모두 이끌고 나와서 잔반통을 한 번 보여주고 빈 식탁에 앉았다.”

    “솔직히 오늘 처음 먹었는데, 밥맛이 좀 아니었습니다.”

    “···.”

    “아이고, 미안해요. 우리가 원래 그렇게 손맛이 없는게 아닌데···.”

    가장 고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의 말에 재환은 수첩을 꺼내 읽었다.

    “밥은 오늘 처음 먹어도 잔반량은 갈수록 늘더군요. 반도 안먹고 버린 사람도 상당합니다. 그래서 매점에 라면이랑 빵 판매량이 엄청나네요? 우리 회사는 라면 취급도 안하는데.”

    “···.”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거기에 저희 소속이 아니라 하청을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올해 6월에 계약이 끝나는데, 이러면 안 되죠.”

    “죄송합니다.”

    재환은 침울한 모습의 그녀들을 보고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현재 구내식당 인원이 얼마나 되죠?”

    “교대로 해서 12명인데요.”

    “월급들은 얼마나 되십니까?”

    “풀로 일해서 55만원 정도 되요.”

    고졸사원 생산직 월급이 80만원에 대졸이 140만원 정도인데, 확실히 적긴 했다.

    “한 가지 조건을 걸겠습니다. 2월이 될 때까지 밥맛을 개선해 주세요. 저기 있는 잔반 양을 절반으로 줄이시면 월급 5만원 더 드리겠습니다.”

    “네?”

    “그리고 3월에도 잔반 줄이시면 70만원으로 더 올려드리죠.”

    식사를 개선하면 월급을 올려준다는 말에 조리사 아주머니들은 서로 손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코다리나 임연수같은거 대량 조리 없으면 만들지 마시고요.”

    “네, 네! 아주 맛깔나게 식사 만들게요!”

    “아, 그리고 잔반 수거하시는 분이 식당까지 와서 가져가시는데 그거 못하게 하세요.”

    “네? 그러면···?”

    “문 밖에서 대기하라 하시고, 아주머니들이 손수레로 끌고서 전달해주세요. 그건 당번 하실수 있죠?”

    “네, 네! 알겠어요.”

    재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사항을 지키게 한 다음 돌아갔다.

    그리고 남은 조리사들은 어찌됐건 바뀌어야 된다는 마음에 머리를 맞댔다.

    한바탕 한 다음에 대표실로 온 재환은 졸음을 쓴 커피로 쫒았다.

    “히야~ 오늘 하루 정말로 매섭게 몰아붙이시더군요.”

    “그래도 대표님한테는 포스트잇 안 붙였습니다.”

    재환은 임원들에게도 각자 경고 포스트잇을 붙인 뒤였다.

    “모 이사님은 결혼 안한 여직원들한테 시집가라는 소리 하지 말라고 붙였고, 전무님은 주말에 일부러 직원들 등산 끌고 가지 말라고 했고요.”

    “하핫, 그건 좀 서운하게 보일수도 있겠네요.”

    “아뇨, 이런 것도 하나하나 지적해야돼요. 투자를 늘렸다면, 경비는 조금 줄여야죠. 사람을 줄이는 거보다는 나을 테니.”

    재환은 그것을 말한 다음 이제 큰 사업 이야기를 꺼냈다.

    “자, 그럼 왜 이렇게까지 직원들의 나사를 조여야하는지 말하죠. 혜성전자의 큰 프로젝트를 대표님하고 논의하려고 합니다.”

    “네, 말해주세요.”

    “저희 2분기부터 삼신전자하고 교류합니다.”

    “···풉?! 쿨럭! 쿨럭!”

    커피 마시다가 순간 뿜은 장진욱 대표는 손으로 입을 막으면서 연신 기침을 했다.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긴 하죠?”

    “아니 정말입니까? 저희가 삼신전자하고요?”

    업계 1위와 교류를 한다는 말에 진욱은 이것저것 물었다.

    “어, 어떤 사업입니까?”

    “신사업 하나에, 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하나요.”

    “바, 반도체···.”

    “그것 때문에 지금부터 나사좀 조이려고 합니다. 삼신반도체 파견 보낼 직원 50명은 필요하고요.”

    진욱은 엄청난 소식을 들어 손이 떨렸다.

    하지만 재환은 그것을 위해 장진욱 대표에게 말했다.

    “세부 조율이 있을때까지 이게 유출된다면 저희 집안 아니면, 장 대표님입니다.”

    “그건 당연히 자각하고 있습니다.”

    장 대표는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만간 종합기획실 한번 들리고 제대로 조율 한번 해 보죠.”

    “알겠습니다. 제가 바로 종기실로 올라가겠습니다.”

    “네.”

    재환은 그 말을 듣고서 뭔가 하나 걸리는게 있었다.

    ***

    “이번에 재무실하고 종합기획실 통합하기로 했다.”

    “아~ 그렇게 됐어요?”

    전 기획조정실장이었던 임창훈이 통합해서 다시 돌아온다니 재환은 한결 더 편하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름도 다시 바뀌겠네요.”

    “혼용하는 놈들이 너무 많았지. 누구는 기조실, 누구는 종기실... 너도 몇 번 헷갈렸잖아.”

    그동안 비서실, 기획실, 기획조정실. 그리고 재환이 종합기획실이라고 명명한 뒤로 계속돼서 혼용되는 말에 재환은 명함을 두 개씩 가지고 다녔다.

    “뭐, 사실 어감도 안 좋더라고요. 기획조정실 때는 기조실이라는데, 종합기획실이라니까 종기실이라고 하잖아요.”

    줄인 단어도 이상하게 몸에 나는 ‘종기’를 연상케 해서 계속 거슬리던 재환이었다.

    “이럴 거면 이름 바꾸지 말 걸 그랬어.”

    “새로운 마음으로 움직이고 싶어서였죠.”

    임원들도, 재환도 간간이 혼용하게 되는 이름을 확실히 바꿀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다.

    “새 이름은 뭐가 좋으려나?”

    “미래전략실....은 안 되고.”

    그건 과거 재환이 다른 회사에서 있던 조직이니 차마 이름 표절은 못 하겠다.

    “뭐 재무실과 종합기획실 통합 이야기는 차차 이야기하고 전자에 이야기는 했지?”

    “네, 아마 단체 모임할 때 이야기할거에요.”

    “좋아, 사전조율 준비하자!”

    ***

    삼신그룹 산하의 서라벌 호텔에서는 VVIP들의 회동이 열렸다.

    혜성그룹에서 희경을 포함해 재환, 창훈, 진욱이 도착했고, 삼신그룹에서도 네 명이 도착했다.

    “어서오세요.”

    “오랜만입니다. 이 회장님.”

    이건호 회장과 신희경 회장이 만나 악수를 했고, 그 뒤로 책임자들끼리도 악수를 했다.

    “오랜만이네.”

    “잘 지내지?”

    재환 역시 현규와 악수를 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삼신에서 있는 두 명이 있었다.

    한 명은 이상학 비서실장, 그리고 다른 한쪽은 안경을 기울이면서 웃는 얼굴로 혜성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이였다.

    재환은 그에게 먼저 가서 인사했다.

    “실제로 뵈는 것은 처음이네요. 인사드리겠습니다. 진 소장님.”

    과거에는 자주 만나서 서로 말술을 자랑했었고, 현재 삼신전자 반도체의 역사를 만들었던 인물이 있었다.

    “보내주신 선물은 잘 받았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만든 D램.”

    “네, 아주 잘 받았습니다.”

    진대현.

    한국 국비유학의 1기생이자, 스탠퍼드대 공학박사, 최초의 16메가 D램을 개발한 연구원, 현재 후진양성을 하는 중앙연구소 소장.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분한테 반도체 기술 배우면 인정이지!’

    재환은 진대현 소장과 인사를 한뒤 이제 네 명씩 모인 자리에서 사전조율 회의를 시작했다.

    “자, 그럼 천천히 논의해 볼까요?”

    이건호의 말에 모두가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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