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31화 (31/244)

31- 믿었으면, 의심 안 한다.

재환이 다음에 향한 곳은 안산에 있는 트로이카 컴퓨터였다.

이제는 간판이 바뀌어 [혜성 트로이카]라는 이름으로 고쳐진 공장에서 재환은 임용태의 환영을 받았다.

“어서오세요, 신 상무님.”

현재는 합병 속에서 전무 대우를 받은 임용태였다.

“자~ 컴퓨터 사업이나 한번 봐 볼까요?”

재환은 화성공장과는 다른 텐션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이게 현재 프로젝트입니다.”

임용태가 건네는 서류를 본 재환은 하나하나 검토해 보면서 중요 포인트를 잡았다.

“이번에는 ‘컴팩트’의 ODM을 따내셨네요?”

“네, 그렇습니다. H&T에 이어서 컴팩트 수주까지 받았으니 공장이 바쁠 것 같습니다. 허허.”

“흐으음.”

이 당시 완성 PC가 대당 200만원 하던 시절인데, 수출용으로 이 정도 물량을 만들어낸다면 확실히 가만 놔둬도 될 정도였다.

“컴퓨터는 계속 이렇게 한다 하고, 부품에 대해서 조금 조정이 가능할까요?”

“네? 부품이라 하시면.”

“현재 쓰는 부품들이 디스램하고, 아성전자 것을 쓰고 있죠?”

“네, 모델에 따라 각기 조정을 합니다만, 두 회사 것을 씁니다.”

“원가 절감을 위해서 삼신전자 D램으로 바꿉시다.”

“네?!”

“바꾸죠.”

재환의 말에 당황한 임용태는 곧바로 그게 왜 안되는지에 대해 말했다.

“상무님. 삼신전자의 메모리는 기술력은 좋지만, 그만큼 비쌉니다. 단가를 맞춘다면 오히려 정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한참 D램 시장이 떨어지고 있어서 작년초 60불 하던 D램가가 30달러 선까지 붕괴되고 있었지만, 그래도 삼신표 램은 가격이 비쌌다.

하지만 재환은 방법이 있다는 듯이 말했다.

“한 100억원어치 삼신에서 부품을 사 오려고 합니다. 그걸로 만들어주시죠.”

“네?”

그동안 부품 수급 계약으로 수십억 단위로 움직인 것은 많았는데 한 번에 100억 이상의 부품을 한 번에 수급한 적은 없었던 트로이카였다.

‘그 정도 수량이라면 2공장까지 돌려야 할 텐데···.’

대기업이 다르긴 다른지 오너 일가가 직접 와서 그 정도 부품을 수급해 오겠다고 했으니 믿어야 했다.

“싸게 잔뜩 구매해 올 테니 조립 준비나 해주세요. 어차피 설계부터 생산까지 모두 저희 소관 아닙니까?”

같은 위탁생산이라도 ODM방식은 하도급 업체가 모든 설계와 생산을 위임받았으니 스펙만 맞추면 부품을 뭘 쓰던지는 상관없었다.

“일단 이 문제에 대해서 제가 협상을 하겠습니다. 딱 이틀만 주세요. 나머지 사업은 그 이후에 하죠.”

“알겠습니다.”

재환은 밖으로 나가서 차에 탔다.

그리고 안산에서 바로 약속을 잡기 위해 구매회사에 연락했다.

***

과거 수원에서 60만 평이 넘는 땅을 사들여 이곳에 반도체 공장을 만든 것은 삼신의 초대회장 이인철 회장의 의지였다.

“그때 초대회장님이 그러셨죠. ‘내 눈에는 돈이 보여.’라고.”

재환은 삼신그룹 회장 이건호와 연락해서 수원에서 반도체 공장을 거닐고 있었다.

“신 상무가 삼신에 관해 공부를 많이 했나 보군.”

이건호 회장은 삼신전자 연구소를 걸으면서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하자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저도 어렸을 때는 회장님께 세뱃돈 좀 받았습니다.”

‘과거의 삶에서 10년 동안 핵심부서에 다 관여했었고요.’

이 회장은 재환과 걸으면서 한 가지를 넌지시 물었다.

“신 상무에의 눈에는 우리나라의 반도체가 뭐로 보이시오?”

반도체를 보고 ‘내 눈에는 돈이 보여.’라고 말한 이인철 회장의 이야기를 언급하며 이건호가 묻자 재환은 곧바로 대답했다.

“미래가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흐음.”

이건호는 그 말 이후 조용히 사무실로 불러서 차를 대접했다.

“그래서 부품 협상을 하러 왔다지? 이제 한 번 이야기 해보시오.”

“D램을 좀 사려고 합니다.”

“얼마나?”

“현재 시가에 약간의 가격조정해서 100억 어치입니다.”

“흐음~”

천하의 삼신그룹 회장을 불러놓고 그 정도의 거래 금액을 논하냐는 이건호의 표정이었다.

“그리고 곧 저희 아버님하고 사전조율 회담을 주선하려고 합니다.”

이제는 작년이 된 혜성에서 삼신에 2500억 규모의 투자 이야기가 나오자 이건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신 상무, 이 100억 규모는 포함된 거요?”

“물론 아니죠. 이번에 인수한 트로이카 컴퓨터에 ODM부품을 삼신으로 쓰려 합니다.”

“그거였구만.”

재환은 재킷 안주머니에 담겨있는 봉투를 꺼내 이 회장에게 내밀었다.

“현재 PC에서 D램을 포함한 각 회사의 가격표입니다.”

재환이 직접 인터넷을 뒤져 현재 시장가를 오늘 아침 자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우리 삼신이··· 국내에선 비싸긴 하지.”

“그래서 대량구매로 할인을 생각합니다.”

동경전자, 디스램, 삼신전자, 아성전자 등의 수많은 회사의 D램 중에서 국내의 삼신전자 반도체의 가격을 비교한 표에 이 회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현재 그 컴퓨터 회사에 쓰는 부품은 아성과 디스램 거고?”

“네, ODM방식이니 같은 스펙이면 삼신께 어떨까 하고 온 겁니다.”

“그럼 100억원 어치의 반도체를 모두 최상급으로 보내줘야겠지.”

“그렇게 해주신다면 대금은 곧바로 치르겠습니다?”

“즉시구매라면 달러도 조금 껴주겠소? 한 200만 불로.”

“!”

현재 1800원대까지 치솟은 달러를 가지고 그걸 쓰겠다는 재환의 말에 다른 임원들이 흠칫했다.

하지만 이건호 회장은 그 말을 듣고 커피를 조용히 마신 다음에 말했다.

“딱 200만 달러만 포함하시오.”

“1/10이요?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일전에 현규한테 ‘600만달러는 가능하다.’라고 했었으니, 200만달러면 삼신가와의 친분을 위해서라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러면 이번 주 목요일에 정식으로 구매서를 보내겠습니다.”

“좋아, 그 일은 삼신전자 대표에게 맡기겠소.”

재환은 그것을 약속한 다음 인사를 받으면서 삼신전자 수원 공장을 나섰다.

그리고 이건호 회장은 조용히 재환이 떠난 자리를 보다가 그대로 앉아 주먹으로 소파를 내리쳤다.

쿵-

푹신한 소파라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 모습에 임원들이 겁에 질리고 비서실장인 이상학은 긴장한 얼굴로 다가왔다.

“어이가 없네, 모고 이거!”

“!”

삼신그룹 비서실에서는 두 가지를 정말 두려워해야된다.

첫 번째는 이건호 회장이 사투리를 쓴다는 것, 그건 대노한 상태라는 것이다.

“담배 있나?”

“아, 예! 준비하겠습니다.”

지난날 폐에서 용종을 떼어낸 수술을 한 회장님이 담배를 찾는다는 것.

이건 정말로 극대노라 그 자리에서 임원 몇 명 잘라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상학 실장이 담배를 가져와 정중하게 불을 붙이자 건호는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말했다.

“지금 딱 D램 가격 폭락할 때 연락을 했네. 안그래도 해외시장 수출할 거 똥값 되게 생겼는데, 거기서 딜을 걸어? 뒤에 2500억 투자금이 일시불이라는 조건으로?”

이 회장이 그렇게 화가 난 것은 고작 100억원대 거래에 자신을 부른 게 아니었다.

대체 저 신재환이란 녀석이 어떻게 알고 딱 삼신이 급전 필요할 때마다 현금을 가져와서 딜을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투자계약 역시도 월납이 아닌 일시납으로 2500억을 투자하겠다고 자기 아버지에게 승낙받았단 이야기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모든 것을 계산하고서 철저히 움직이는 이 회장에게 있어서 신재환은 정말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었다.

“누가 우리 재무제표를 건네주는 것도 아니고, 저 친구가 타이밍을 왜 저리 잘 맞춰?”

게다가 이 회장이 말한 달러 200만 달러도 그냥 불러본 게 아니었다.

사실 그 정도야 전화 한통이면 가방에 담아 들고올 은행장은 수두룩하다.

진짜 이유는 혜성이 환율 800원대에 달러로 대금을 받았다길래 벌써 환전했나 싶어 일부러 던져본 것인데, 곧바로 승낙한걸 보면 아직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준 이야기었다.

즉 지금 혜성의 사내 현금은 그때보다 두 배는 늘어나있다.

“내 아들놈하고 동갑내기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 친구야. 여러모로 그 재주가 아쉽구먼.”

“회장님···.”

이 회장이 재주가 아쉽다고 한 청년이 셋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둘은 이건호 회장의 두 딸에게 장가갔고, 다른 한 명은 사촌의 딸과 이어졌다는 것이었다.

이상학은 ‘신재환 역시도 사윗감으로 생각하시는가?’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회장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뜻밖이었다.

“그 녀석이 신 회장 외아들만 아니었어도 당장 양자로 삼는건데!”

“!”

재능이 아까우니 사위로 삼겠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이 회장이 직접 ‘아들로 삼고 싶은 놈’이라고 이야기한 것은 정말 처음 듣는 말이었다.

***

그날 양재동 저택에서 재환은 어머니 명숙에게 말했다.

“엄마.”

“응?”

“그냥 가정부를 더 고용하시죠?”

“갑자기 무슨 말이야?”

식사를 끝낸 재환은 그릇을 비우고 말했다.

“아침 여섯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12시간 근무인데, 그러니까 저녁 설거지는 직접 하시잖아요?”

“어머, 지금 우리 아들이 엄마 설거지한다고 신경 쓰는 거야?”

“최근에 손에 습진 생기신다면서요? 2교대로 가정부를 고용하세요. 그거는 아버지랑 제가 월급 줍니다.”

재벌가 사모님이 직접 설거지한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수군거릴 이야기였다.

결혼하고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힌다는 이야기가 상류층에서도 나온다는데 재환은 보다못해 엄마에게 제안했다.

하지만 명숙은 아들의 말에도 웃으면서 그릇을 치웠다.

“저녁 그릇 치우는 건 그냥 엄마가 하고 싶어.”

“아니, 왜요? 가정부 더 고용하는 게 무슨 죄도 아니고.”

재환 역시 과거의 삶에서 독립한 뒤로는 집안일은 전부 가정부 잔뜩 고용해서 처리했었다.

그런데 재벌가로 돌아온 과거의 삶에서 어머니가 이러니 정말로 궁금했다.

명숙은 그릇을 싱크대에 담고 물을키며 아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냥 그렇더라고··· 혜성가에 시집오면서 바느질이다, 요리다, 차림새다, 제사 지내는 법이다. 뭐 그런 거 배웠는데 막상 오니까 필요 없게 되니 내가 할 일이 없더라고.”

“···.”

혜성가에 시집오기 전까지 재환의 어머니는 당시 보건사회부 차관의 무남독녀 외동딸이었던 고관대작 아가씨였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는 그냥 혜성가 사모님이었지만, 그래도 그때 배운 것을 언제나 쓰려는 분이셨다.

그리고 희경 역시 거기에 대해서는 재환을 말렸다.

“으흠~ 놔둬라. 내가 몇 번이나 말려도 저건 끝끝내 한다더라.”

“휴우~”

“너 그거 말고도 집에서 할 말 많지 않아?”

“···.”

재환은 그 말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서재로 들어온 재환은 아버지가 건네준 담배를 조심스레 받고, 서로 한대씩 태우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 오늘 실수했다.”

“100억짜리 거래에 이 회장님 부른 거요? 그거 저번에 말한 일시불 이야기도 같이하려고 한 거였어요.”

“네 친구 있다면서 왜 이 회장을 직접 불러? 그거 얼마나 예의에 어긋나는지 아냐?”

“저 삼신전자 수원 공장에 들른다니까 사장 대신에 직접 온다고 하셨어요. 따지고 보면 그분이 먼저 움직이신 거죠.”

“새끼가 허리춤에 간덩이를 몇 개 차고 다니나? 천하의 삼신가를 상대로 뭐 이리 뻗댔어?”

“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 겁니다.”

재환은 여유있는 모습을 보이며 아버지에게 이야기했다.

“어차피 수습은 아버지가 전경련 가서 해주실 거잖아요?”

“미친놈아! 그것도 한계가 있어!”

“에헤이~ 괜히 그러시네.”

이제는 아버지 욕설에도 넉살 좋게 받아치는 재환은 희경에게 한 가지 더 부탁했다.

“아버지, 아성그룹 상황 좀 이야기 해주세요.”

“아성은 갑자기 왜?”

“이번에 트로이카 컴퓨터의 부품들을 삼신이 맡는다는데 그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수입산 반, 아성전자 반도체 반이었는데.”

“오호~ 이번엔 아신 상대로 딜을 하려는거냐?”

“그것도 좋긴 한데, 일단은 어떻게 움직일지 몰라서요.”

재환이 그것을 부탁했고, 희경은 흔쾌히 승낙했다.

“너 이번에는 내가 예상했던 선에서 예산을 써서 특별히 해 주마.”

“감~사합니다!”

재환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다음은 어쩔 거야? 저울질이라도 하려고?”

“이제 협상할건 대충 했고, 혜성전자 내의 임직원들 한번 나사 조여야죠.”

“뭐?”

“내일부터 혜성전자 사람들 좀 괴로울 겁니다. 포스트잇도 10통 준비했어요.”

재환은 앞으로 있을 일을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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