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30화 (30/244)

30- 능력을 보이세요.

재환은 이사회에서 선언을 마친 뒤로 사장실로 들어갔다.

“여러모로 충격적인 말을 많이 들었군요.”

진욱은 떨리는 손으로 커피잔을 들었다.

“이제부터는 현상유지하는 혜성전자는 없을 겁니다.”

“스테레오 라디오 단종··· 휴대용 기기 개발···스피커 사업부 재편이라···.”

“거기에 컴퓨터 사업부와의 협력으로 R&D까지요.”

하나하나가 지금 시작하려면 예산이 상당히 들 일이었다.

혜성전자 내부에 있는 재무임원들 머리 깨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릴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부터 변하지 않으면 살 수 없어요. 자고 일어나면 부도행렬인데, 신기술로 물건을 팔지 않으면 도태되는거에요.”

재환의 말에 진욱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 역시도 알고 있었다.

“신 상무, 혜성전자는 예전부터 스피커와 라디오에 모든 것을 걸고 성장한 곳이에요.”

“네, 저도 잘 알죠. 1959년 금화전자가 최초의 라디오를 만들고 그 뒤로 삼신, 대윤의 전신인 대한전자, 그 다음이 저희 혜성전자 아닙니까?”

“맞아요. 지금에 있는 임원들이 모두 그때 개발자 출신입니다.”

진석은 중간에 전문경영인으로 영입된 몸이라 잔뼈가 굵은 기술자 임원진들과 조율하는 것이 주임무였다.

“저도 그분들의 공은 인정하지만, 이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 상무,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렇게 자신들이 만들었다는 제품을 단종시킨다고 했을 때, 개발이나 스펙에 대해서 언급한 인간이 하나도 없었어요.”

“!”

개발자 출신이라는 양반들이 자신의 제품에 대해 ‘안된다’라고만 말했지 ‘왜 안되는지’에 대해 설명한 이가 없었다.

“거기에 단종제품 대비한 신제품에 이야기도 없었죠? 연구개발팀은 그동안 놀았습니까?”

“아, 그건 아니에요. 저희 역시 R&D 연구소에서 신제품을 개발하지만, 아직 미진해서···.”

“네, 그것때문에라도 그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더 해야될 것 같네요.”

재환은 커피를 다 마신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표님. 지금 화성에서 가장 번화가가 병점 일대죠?”

“네? 그렇긴 한데.”

아직 동탄신도시 개발 전이니 화성시 내에서 술 마실곳이야 한정되어있었다.

***

그날 저녁 병점에 위치한 한 가라오케에서는 혜성전자 임원들의 술자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한 잔씩들 받아.”

“네, 상무님.”

혜성전자의 상무 이기남은 근속으로 치면 가장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다.

사실상 혜성의 라디오 산업을 여기까지 발전시킨 인물이었고, 경영자로 영입된 장진욱 대표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 방에 있는 이들은 모두 기남의 밑에서 배운 후배들이었다.

“상무님, 이번에 올라오는 신 상무 이야기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부하 임원 한 명이 걱정스럽게 묻자 기남은 위스키를 쭉 비우고는 담배를 물었다.

“컴퓨터 사업 배팅한것도 그렇고, BQ사업도 그렇고 일머리는 있어보이는 사람이야.”

하지만 그래도 혜성전자에서는 조금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스피커 사업부 쪼갠다고 했지? 그러면 그 자리에서 임원이 더 추가될게 아닌가? 자네들이 올라와야지.”

부장급 인물들에게 한마디 하자 그들은 자신들의 상사 이기남만 믿었다.

“저희는 그저 상무님이 끌어주실거라 믿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상무님.”

기남은 후배 직원들의 말에 빙긋 웃으면서 그들의 빈 잔에 위스키를 채워줬다.

그렇게 자기들끼리 이사로 끌어주겠네, 상무 라인을 타겠네 하는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기남의 담배가 떨어졌다.

“음?”

“이걸 피시죠. 상무님.”

“아냐, 난 피는 것만 펴.”

기남은 웨이터를 불러서 지갑에서 만 원을 꺼내줬다.

“마일드 캐스트 두 갑 사다 주고, 거스름돈은 자네가 써.”

“네, 손님.”

언제나 이 술집에 올 때마다 심부름을 시키고 거스름돈은 그냥 팁으로 줘서 우수고객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노크 소리가 나면서 담배를 들고온 재환이 있었다.

“자, 1400원짜리 담배 두 갑 받으시오.”

“아, 고맙··· 신 상무님?!”

웨이터가 아니라 재환이 담배를 들고 건네주자 안에 있던 기남을 포함해 임직원들은 혼비백산하면서 곧바로 일어났다.

“아, 앉으세요. 저도 술 한잔 하러 온 거니까요.”

재환은 기남의 옆에 앉으면서 담배를 건네줬다.

“담배 한 갑이 1400원인데, 요새 시급도 1400원이에요.”

재환은 현재 한국의 경제상황을 이야기하면서 빈 잔을 하나 준비했다.

“그래서 임원진 누구 올려줄지 이야기는 다 끝났습니까?”

기남은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가 모두 재환의 귀에 들렸다고 직감했다.

“아이고 이거···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오신 겁니까?”

“화성에서 술 마실때가 이 동네 말고 더 있습니까?”

그러면서 재환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임원 짬밥이 몇 년인데.’

지방 계열사에서 그들이 어느 동네에서 술을 마시고, 임원진에 따라 어디에서 모이는지 정도는 꿰고 있던 재환이었다.

그리고 새 인사이동이 있을 때마다 각 기업의 사람들이 애용하는 단골 가게 같은 곳은 발품 조금만 팔면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자~ 같은 상무끼리 한 잔 하시죠?”

“같은··· 상무요?”

“괜찮아요~ 저도 혜성 일원입니다.”

이기남과 훈훈한 술자리가 재환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호러쇼가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재환은 느긋하게 술 한 잔을 마시면서 기남에게 말했다.

“이기남 상무님, 커리어가 아주 화려하시던데요?”

“과찬이십니다.”

기남은 멘탈이 조금 안정 되었는지, 재환에게 위스키를 따라주면서 평정심을 찾았다.

“혜성전자 내에서 근속년수가 제일 높으시다 들었어요. 거기에 라디오와 오디오 스피커 히트 모델은 다 맡으셨다고요?”

“하하, 저 혼자 한 것도 아니고 모두의 도움이 컸습니다.”

“네~ 압니다. 상무님을 포함하셔서 혜성전자 내에 안암대 전자공학과 분들이 신제품에 관여 많이 하셨더라고요.”

재환의 말에 흠칫하는 이들이 상당했다.

여기 있는 이들의 대다수가 바로 기남의 대학이자 그쪽 라인의 출신들이었기 때문이다.

“선배가 앞서나가고, 후배 끌어주고. 뭐, 그래서 성과 나오면 보너스와 승진은 자연스럽게 따라와요.”

재환은 그러니까 더욱 신기술에 몰두하라고 임직원들을 다그쳤다.

“제가 특히 이기남 상무님에게 기대하는 게 많습니다. 이번에도 신모델에 대해 부탁드립니다.”

재환이 정중하게 나오자 기남은 거기에 대해 자신도 고개를 숙였다.

“스테레오 라디오 단종 이후 신제품··· 네, 한번 해 보겠습니다.”

재환은 그 말에 기남과 술잔을 부딪치면서 말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트로이카 컴퓨터의 임원 분들하고도 유기적인 소통을 좀 해 주세요. 제가 주최하면 모양새가 그러니까요.”

“알겠습니다. 그것도 준비하지요.”

“초대해주시면 참여는 하겠습니다.”

재환은 그렇게 말한 뒤에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여기에서 저는 가봅니다.”

“상무님, 가시려고 합니까?”

다른 임직원들이 일어나자 재환은 그들을 만류했다.

“아, 아니에요. 일어나지 마세요. 다들 조용히 드시고 가실 때 택시나 대리운전 꼭 부르세요.”

재환은 그렇게 말한 뒤로 그들을 나오지 못하게 한 다음 조용히 계산해 주고 사라졌다.

***

다음날 재환은 술 냄새를 팍팍 풍기는 기남과 독대를 했다.

“어제 얼마나 드신겁니까?”

“하핫, 죄송합니다. 상무님.”

근태도 불량하고, 대표보다 권한이 강하며, 자기 측근 챙기는 일에 몰두하는 고액연봉자 임원.

하지만 이런 그를 계속해서 두는 이유는 역시 하나였다.

“···이게 뭡니까?”

이기남이 내민 서류봉투에는 ‘신사업 계획서.’라고 쓰여 있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집에 공방을 차려놨습니다. 혼자 연구하던 것이 있었죠.”

“···회사물건 그렇게 다루면 큰일나실텐데요?”

“궤도에 오른 순간 모든 게 다 혜성 전자의 라이센스입니다.”

재환은 일단 서류봉투를 열고 거기에 있는 내용을 읽어봤다.

“!?”

그 안에 있는 것은 이기남이 구상한 신제품 카세트 플레이어는 물론이고 CD 플레이어, 그리고 자동차 카오디오 등과 컴퓨터용 스피커 등의 사업에 관한 내용이었다.

“어떻습니까?”

“하아, 어쩐지~ R&D센터에서는 개발상태가 부진하다고 생각했는데, 핵심은 여기에 있었군요.”

“사실 시간과 예산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완제품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재환은 그것을 보고 얼굴을 긁적이다가 조용히 물었다.

“담배 펴도 됩니까?”

“그러죠. 같이 피십시다.”

재환과 기남은 담배를 입에 물고, 서로 불을 붙여준 다음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이걸 대표님이 아니라 저한테 먼저 보인 이유가 뭡니까?”

“문제가 크게 세 가지 있어서입니다.”

“말하세요.”

기남은 담배를 뻐끔거리면서 재환에게 모든 것을 털어놨다.

“첫 번째로 첫 기획서는 장 대표가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트로이카 인수 이후로 혜성전자 단독으로 이 정도 규모의 투자는 힘들다고요.”

“그럴 수 있습니다. 말했듯이 혜성전자는 매출대비 수익이 계속 줄고 있었으니까요.”

“두번째는 디자인 문제입니다.”

“흐음~ 확실히···.”

첫 기획서인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만 하더라도 현재 국내에서는 일본 제일의 전자기업 소니아의 ‘워크피플’ 그리고 삼신의 ‘마이에스’가 있는데 둘의 디자인과 아주 흡사했다.

“지금 내놨다가는 기업 간의 소송문제가 커질 겁니다. 제가 기계는 잘 만들어도 거기에 대한 디자인은 젬병이라···.”

“좋은 디자이너를 골라야겠군요. 마지막은 뭡니까?”

“제가 다른 팀하고 협업을 못 하겠습니다.”

“네?”

재환은 그것에 대해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다.

“저는 10년 넘게 손발 맞춘 우리 연구팀 아니고서는 다른 개발팀과 협업을 못 하겠습니다. 몇 번 다른 팀과 공동 작업을 해 봤지만, 결과도 시원찮았고요.”

자신의 단점을 솔직하게 말한 것을 보아 재환은 이 사람이 원하는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말인즉슨··· 예산과 시간이 풍부하면서, 다른 라인에 구애받지 않고, 손발이 맞는 연구팀과 같이 한다는건데 말이죠.”

“그렇습니다.”

“연구개발의 전권을 달라는 거군요?”

“역시··· 무리겠습니까?”

재환은 담배를 끄고는 쿨하게 말했다.

“그럼 하세요.”

“네?”

“한 번 더 말씀드릴까요?”

재환은 이기남에게 전권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근데 거기 있는 사업 전부 다 하는데 얼마나 걸리는 지 직접 말해주시죠?”

“휴대용 CD플레이어와 카세트는 7개월이면 됩니다.”

“그렇다면 올해 3분기···. 나머지는요?”

“카오디오 같은 경우도 1년 안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컴퓨터 스피커의 경우···.”

“그건 제가 트로이카에 이야기 하죠. 단 호환성과 그쪽에서 개발한 제품과 1:1로 테스트를 해서 임원회의로 선택하게 할 겁니다.”

“그건 문제 없습니다!”

기남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자 재환은 생각보다 합의가 쉽게 될 것 같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안건에 대해 장 대표님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제로 ‘이기남 사업부’라고 두고서 독립된 연구개발소를 추진해보죠.”

기남은 자신의 혜성전자 30년 인생을 모두 걸고서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재환은 그에게 전권을 주면서 다른쪽도 생각했다.

‘남은 개발팀은 다른회사와 교류해서 만들테니 완제품 나오면 그때 직접 대결을 해 보자고요.’

재환은 그것을 위해서 좀 더 바쁘게 전자사업에 움직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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