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크리스마스의 선물
이현규가 다가와 재환의 옆에 앉았다.
이것으로 이번 트로이카 컴퓨터 인수전은 대윤그룹과 혜성그룹의 대결 속에서 삼신그룹이 개입하게 되었다.
임용태는 그 상황을 보고 어떻게 하든지 혜성의 인수대금이 늘어날 것이라 생각했다.
“자, 그럼 정확히 12월 23일에 인수대금을 확인하고, 최종 입찰 기업을 잡겠습니다.”
임용태의 말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갈 준비를 했다.
다른 임원들도 정리하고 있을 때, 현규는 임용태를 포함한 트로이카의 임원들에게 악수하면서 인사를 나눴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재환을 향해 선규가 다가와 말했다.
“꽤 든든한 우군이 있었군요. 이번 인수전은 삼신전자가 배후인겁니까?”
“배후라니, 친구 사이를 그렇게 표현하는 건 실례라고 생각하네요.”
“혜성이 호가호위한다고 생각합니다만?”
“호가호위는 은행 뒷배로 대마불사나 외치는 대윤그룹이나 하는 행동이죠.”
“··· 25위 회사가 참으로 당돌하군요.”
“재계서열 그렇게 집착하면 자신도 넘버2로 여겨지는 겁니까?”
선규는 성질 같아서 저놈의 주둥아리를 닥치게 하고 싶었지만, 주먹만 꾹 쥔 채로 발걸음을 돌렸다.
“삼신이 있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을 겁니다. 오버슈팅을 해서라도 트로이카는 저희 소유로 만들 꺼니까요.”
“네, 잘해보세요. 대윤그룹이 입찰금 얼마 쓸지 기대할게요.”
씩씩거리며 돌아가는 김선규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재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임 전무님, 장 대표님. 저희도 가 보죠.”
“네, 이사님.”
“이따 사옥에서 회의 좀 합시다.”
재환의 말에 두 임원은 그 뒤를 따랐다.
트로이카 임원들과 인사를 나눈 현규는 재환에게 다가와 서로 주먹인사를 하면서 반갑게 대화를 나눴다.
“등장 타이밍 멋졌다.”
“너 진짜 책임져야 한다? 아버지가 여기 인수 성공 못 하면 증권 사장님 사표 받는다고 해서 내가 파견 온 거야.”
삼신전자의 황태자가 증권으로 와서 M&A에 개입하게 된 상황이었다.
“그래도 우리 도와주면 신문에 금칠 받겠네? ‘빅딜의 승부사.’ ‘3세 경영의 시작’ 뭐 이런거 말이야.”
이때까지도 현규는 삼신가의 장남이면서도 제대로 된 커리어가 없었다.
이후에 삼신전자 내에 ESS라고 벤처기업을 투자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기획하나 그게 대실패해서 손실을 계열사들이 메꿔주는 헛발질을 했고 말이다.
그때 이런 일에 커리어 하나 추가해주면 적당히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 것이다.
“암튼 나는 전면 지원해줄게.”
“그래, 혜성에서 인수대금 정하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
재환은 현규와 인사하고 두 임원과 함께 본사로 향했다.
남영동에 있는 본사로 도착한 재환은 곧바로 회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현재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희경과 논의를 했다.
“최근에 소식 들었다. 대한산업은행에서 대윤그룹에게 8600억 대출을 해줬다는구나.”
“나랏돈 날아가는 소리가 들리네요.”
재환은 그게 다 국민의 세금으로 메꿔야 할 손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국책은행이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그만큼 지원한 거겠지.”
“대윤건설 저당 잡혔을 겁니다. 그쪽이 갚아야 할 채무가 내년 2분기에요.”
재환의 말에 희경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국책은행이니 연장해주겠지. 대윤 애들은 그쪽으로 도가 텄어.”
하지만 재환은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를 떠올리면서 2000년에 철저하게 부서질 대윤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어쩔 거냐? 삼신증권에 이현규까지 왔다며?”
“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번에 입찰에서 ‘오버 슈팅’을 해볼까 합니다.”
기존 가치보다 웃돈을 올리는 방식으로 비싸게라도 인수하겠다는 재환의 말에 희경이 물었다.
“얼마나?”
“250억은 넘는다고 생각하시죠.”
“뭐? 250억?!”
희경이 소리치고, 옆에 있던 임창훈과 장진욱도 화들짝 놀랐다.
“이사님. 매출 100억 남짓한 회사를 그 돈 주고 사는 것은···.”
“250억이면··· 주당 4200원의 회사를 3배 이상 주시겠단 말입니까?”
“더 쓸 수도 있어요.”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어? 정 컴퓨터사업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그 돈으로 다른 기업을 알아봐!”
희경의 말에도 재환은 자신이 생각한 계산을 천천히 설명했다.
“대윤은 처음부터 오버슈팅을 할 생각이었을 겁니다. 아마도 그 사람들은 저희가 주당 5천원 꼴로 살 거로 생각할 거에요.”
“그런데?”
“예전에 중앙산업은행에서 한국화학 민영화할 때 입찰 기억하세요?”
“그건 우리 회사랑 관련 없잖아?”
“아뇨. 그때의 상황이요. 삼신, 아성, DK, 대윤이라는 네 회사가 인수전을 뛰어드는데 주당 10만원 하는 회사를 경쟁해서 주당 33만원에도 사들여서 삼신이 차지했죠.”
재환의 말에 희경은 전경련 모임이 있었을 때, 그때 상황에 대해 들은게 있어서 말했다.
“입찰가 300억 오버 슈팅한 이야기였지?”
“네, 저희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수 못 할 겁니다. 이미 삼신 역시도 저쪽이 주당 1만원씩 쳐서 사들일 거라고 예상해서요.”
“흐으음.”
희경은 생각에 잠겼고, 재무이사인 창훈 역시도 계산을 다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담배를 계속 태우던 희경은 재환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신 있냐?”
“물론입니다. 3년 만에 천억대 매출 회사로 키워드리죠.”
“좋아, 그럼 300억까지 허용한다.”
아예 통 크게 나가라고 말하자 재환은 거기서 한술 더 떴다.
“좀 더 쓰시죠? 350억!”
“야이 씨! 이놈이 아주 은근슬쩍 올리네?”
그 순간 재환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임 전무님. 오늘 자 원·달러 환율이 얼마 나옵니까?”
“네? 아··· 1702원입니다.”
달러 이야기를 꺼내자 희경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분노를 삭였다.
1400원대까지 올랐다고 하더라도 알아서 사내 현금이 쌓이는 실정인데, 벌써 300원이나 더 오른 것이었다.
“이래도 안 됩니까?”
“에이씨 좋아! 350억! 대신 인수 실패하면, 너 대구 내려가서 네가 인수한 시멘트랑 레미콘회사 운영해!”
“네~ 기꺼이 그러죠.”
재환은 아버지와 약속을 한 다음 풍부한 실탄을 두고서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
***
“350억까지 쓰기로 했다.”
“쎄네.”
"네가 말했잖아? 대윤 얼마쯤 쓸지 가닥 잡혔다고."
"그러긴 했지."
재환은 현규와 조용한 바에서 현재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에 너를 보내준 걸 보면 이 회장님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아니야. 오히려 너한테 고맙다고 하시더라.”
“음?”
현규는 병맥주를 마시면서 아버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너 그 트럭공장에서 한 일 때문에 아버지가 밤마다 자동차 프레임에 관한 책을 다시 보고 계셔.”
“오우.”
“당신께서 20년 전부터 자동차 사업 하시겠다고 혼자 일본이나 미국 자동차 뜯어보시고 이것저것 하셨는데, 친구 아들한테 한 방 먹었다고 하시더라.”
“자그마한 조언이었을 뿐이야. 게다가 우리가 첫 기업고객이 될 텐데 신경 써야지.”
‘그리고 미래에는 우리 소유가 될 거고.’
재환은 그것을 계산하면서 냉동탑차나 좀 제대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구와 강원도, 그리고 호남에서는 군산 쪽을 생각하면서 대규모 유통단지를 만들고 이후 마트와 백화점 사업을 하려면 운송 중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냉동탑차는 필수였다.
“아무튼, 백억 대 인수합병에서 네가 온 게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다. 닭 잡는데 기관총이 온 느낌이야.”
“아, 근데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말이야.”
“뭔데?”
“내년에 우리 삼신하고 혜성하고 거래하는 그 규모에서 말이야. 혹시 대금 일부는 금과 달러 융통 가능해?”
“!”
재환은 삼신그룹도 금과 달러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는 말에 순간적으로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이거 이 녀석의 생각인 건가, 이 회장님이 시킨 건가?’
원화 가치가 떨어질수록 정말로 중요한 게 금과 달러여서 그것으로 일부 거래가 가능하냐는 말에 재환은 맥주를 비우면서 말했다.
“우리 아버지에게 이야기하면 내가 600만 달러까지는 융통 가능할 거다.”
“···아, 그 정도 규모라면··· 됐어.”
정말 최소한으로만 쓸수 있는 달러 이야기를 하자 현규는 깔끔하게 그 제안을 취소했다.
“나중에 자문료나 두둑하게 챙겨달라고. 증권사에 성과금 좀 돌리게.”
“그거는 걱정 하지마.”
재환은 새 술을 시키고 건배를 하면서 23일까지 기다렸다.
***
약속의 날 23일이 되었을 때, 재환은 임원들과 함께 트로이카 컴퓨터 본사에 도착했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김선규는 반갑게 인사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어서오시죠.”
“아, 저희가 좀 늦었군요.”
훈훈하게 악수를 했지만, 속으로는 칼을 숨기고 있는 두 명의 재벌가 임원이었다.
“살기 위해 건설사까지 판 혜성이 여기까지 오다니, 대단하군요. 확실히 재계 25위라도 저력이 있어요.”
역시나 도발로 시작하는 선규를 보고서 그 거만한 낯짝도 오늘로 끝이라고 다짐했다.
[자, 지금부터 트로이카 컴퓨터에 대한 매각 입찰과정을 진행하겠습니다.]
임용태 대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이 친구들과 같이 알토란처럼 키운 회사가 오늘 두 대기업 중 한 곳에 산하가 되는 자리여서 만감이 더 교차하고 있었다.
[대윤전자와 혜성전자는 직접 나오셔서 입찰가를 적은 종이를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혜성전자의 장진욱 부사장은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일어났다.
재환은 흰 봉투를 건네면서 자신이 적은 입찰가를 전달케 했다.
“이사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저 회사는 우리 혜성의 소유니까요.”
느긋한 모습으로 가서 전달하고 오라는 말에 장 부사장은 조용히 다가가 입찰금액이 담긴 봉투를 통에 담았다.
그리고 대윤전자 역시도 대표가 나와서 직접 적은 입찰금액을 냈다.
그리고 이사회가 금액을 확인하고 최종적으로 결정할 기업이 나왔다.
[이번 트로이카 컴퓨터를 인수할 기업은···]
모두가 긴장한 가운데 재환은 느긋하게 턱을 괸채로 보고 있었다.
“대윤전자 320억원. 그리고 혜성전자 325억 2525만원으로 혜성전자가 최종 인수자로 선정됐습니다.”
“와아아아!”
“후우~”
만세를 부르는 장진욱 부사장과 안도의 한숨을 쉬는 임창훈 전무가 있었다.
“!”
그리고 한 방 맞은 얼굴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김선규와 그런 모습을 비웃으며 지켜보는 재환이 있었다.
“그럴 줄 알았지. 오버슈팅으로 300억 넘는다 생각했는데, 딱 거기까지였군.”
재환은 변수가 있다면 2525만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5억이나 더 높은 건 혜성 쪽이었다.
“최종적으로 대윤이 기준 주가의 4배나 올린 건가? 250억으로 했으면 큰일 날 뻔했네.”
재환은 진작에 350억 맥시멈 걸어놓기를 잘했다고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밖에 나가려는 김선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이고~ 좋은 경쟁이었습니다.”
“···축하는 해 드리죠.”
그 말을 끝으로 밖으로 나가는 선규를 향해 재환은 키득거리며 입을 열었다.
“왜 25억 2525만원인줄 알아요? 재계서열 25위를 그렇게 강조하길래 25 맛 좀 보라고 썼어요.”
“···으드득!”
개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는 상황이었다.
대윤가의 사람으로 자신 역시 시가의 4배를 불렀는데, 그거보다 더 한놈이 나와서 5억 남짓한 돈으로 입찰을 졌으니 금융쟁이 타이틀 때려치워도 할 말이 없었다.
대윤팀이 돌아가고 재환은 임용태 사장과 악수했다.
“우리 한번 잘 해봅시다.”
“네, 혜성을 믿고 저희도 노력하겠습니다.”
재환은 임용태와 악수하면서 속으로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국민PC사업, 초고속인터넷 회사 상장, 무선호출기와 GPS기술로 만들 신상품. 뭐부터 해줄까?’
이제부터 약속한 대로 입찰가의 3배 이상 수익을 내주려면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