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27화 (27/244)
  • 27- 친구 찬스.

    며칠 뒤 재환은 안산으로 향했다.

    안산 반월산업단지에 있는 트로이카 컴퓨터의 공장을 보러 온 것이다.

    이이잉- 이이잉-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CRT모니터와 육중한 크기의 본체가 조립되고 있었다.

    “공장이 깔끔하고 좋군요.”

    “이사님이 지난번에 선언하신 BQ인증 시스템.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트로이카 컴퓨터 안산공장의 공장장이자 창업주의 사위인 김영수 전무는 공장 이곳저곳을 보면서 설명했다.

    “저희도 혜성의 BQ시스템까지는 아니어도 공장 내부의 청결은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중요한 게 아니라 기본입니다.”

    “네, 그 기본을 언제나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민감한 전자제품이니 당연한 일이지요. 기본적인 거지만 그걸 잘 지켜주는 트로이카 컴퓨터는 역시 대단해요.”

    “하하, 과찬이십니다.”

    작업복 차림의 중년 여성들로 이뤄진 생산팀 직원들은 정성 들여 본체를 조립하고 있었다.

    절연장갑과 헤어 캡을 쓰고 있어서 머리카락 한 톨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분위기였다.

    “어제는 대윤전자에서 다녀왔습니다. 둘 다 회사를 인수하기 위해 열심히 시더군요.”

    영수는 그 말에 약간 씁쓸함을 느꼈다.

    청계천에서 자본금 1000만원으로 시작했던 트로이카 컴퓨터에서 자신 역시 장인이자 사장을 도와서 자신도 많은 고생을 했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견딜 수 없었고, 신기술을 만든 뒤로 그 특허를 노리며 두 대기업이 달려들었다.

    “저희 혜성은 트로이카에 한 명의 구조조정도 없이 직원들과 경영진까지 모두 영입하고 싶습니다.”

    “그 이야기는 대윤그룹에서도 제안했습니다.”

    ‘그쪽도 나름 필사적인 거겠지.’

    재환은 본체와 모니터 제작을 본 다음 옆동의 공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얇은 구리선을 두고 긴 전선을 만들고 있었다.

    “호오~”

    “저희 트로이카가 가장 공들이고 있는 연구입니다.”

    “랜선이군요.”

    “아, 아시는 겁니까?”

    케이블 인터넷 랜선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숨길 것도 없죠. 제가 이것 때문에 트로이카와 함께하고 싶다는 겁니다.”

    초고속 인터넷.

    기존의 전화선으로 하는 모뎀에서 발전한 기술로 딱 이때가 태동기였다.

    “트로이카가 ISP(인터넷 제공자 사업)을 한다는 이야기는 듣고 ‘이거다!’ 싶었어요.”

    “하지만, 출자하는데 상당한 돈을 썼습니다. 대기업이라도 재정 감당이 힘들 정도로 말이죠.”

    “네~ 하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지금의 위기가 나중을 위한 도약이 될 겁니다.”

    재환은 랜선 하나를 매만지면서 영수에게 말했다.

    “현재 기업용은 있어도, 가정용은 없죠?”

    “네, 그렇습니다. 빨라도 내후년은 돼야 가정용 인터넷 보급이 될 겁니다.”

    “저희 혜성과 같이한다면 딱 1년, 98년에 초고속 인터넷을 보급할 수 있을 겁니다.”

    “후우, 일단은 인수가 끝난다면 말이죠.”

    아직도 트로이카의 수뇌부는 대윤전자와 혜성전자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재환이 이 자리에서 어떤 미사여구를 붙여도 경쟁자가 대윤그룹인 이상 그쪽으로 트로이카 사람들이 마음이 그쪽으로 기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 이제 구경은 끝났습니까?”

    “아직 한 곳 남아있잖아요?”

    “네?”

    “삐삐··· 그러니까 무선호출기 공장이요.”

    “네? 아, 알겠습니다.”

    그곳은 점점 쇠퇴하는 사업이어서 아예 정리하려고 했는데, 재환이 무선호출기 공장까지 요청하자 영수는 그곳도 안내했다.

    “요새는 PCS폰 나온 뒤로 잘 쓰이지 않죠. 휴대폰 시장이 엄청나게 커졌어요.”

    “네, 하지만 아직 산지에서는 안 터지죠.”

    안테나 기술과 위성 기지국에 대한 한계로 인해 아직 휴대폰이 전국 방방곡곡에 퍼지기에는 1,2년 정도 부족한 시대였다.

    재환은 한산한 무선호출기 공장을 보고 입가에 미소를 드리웠다.

    ‘삐삐를 삐삐로만 쓰지 않고 저 기술이 각광 받는 날이 오지.’

    재환은 트로이카 컴퓨터에 있는 기술들을 아주 알차게 쓸 생각이었다.

    ***

    “김 이사님 정말 이 금액이 맞습니까?”

    기업 융자에 대해서 대윤그룹과 논의하는 대한산업은행의 윤기철 상무는 몇 번이고 되물었다.

    “네, 8600억원 대출이 맞습니다.”

    웬만한 회사 몇 개는 살 수 있는 금액을 요구한 대윤그룹이었다.

    품의서에 대해서 임원 회의로 인해 승낙은 되었지만, 자칫하면 산업은행도 위험할 수준의 거액 대출로 인해 기철은 꼼꼼히 확인하고서 승낙했다.

    “흐음, 트로이카 컴퓨터, 상윤자동차, 경상엔지니어링에 대한 인수대금이라···.”

    셋 다 법정관리를 받고 있었고, 그 모든 것을 삼키려고 하는 대윤그룹이었다.

    “대마불사라는 말 아십니까? 대윤은 절대 쓰러지지 않습니다.”

    재계서열 2위를 굳건히 지키고, 1위인 아성을 넘보기 위해 움직이는 빅딜.

    산업은행은 그것을 믿고 같이 가기로 했다.

    “아, 김 이사님. 잘 아시겠지만, 대윤증권과 대윤건설에 대한 채무 만기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네, 새 기업 인수 이후 거기에 남은 채무 역시도 청산할 겁니다.”

    선규는 대한산업은행에 자금 수혈을 받고 의기양양했다.

    ‘트로이카 컴퓨터의 현재 주가가 4200원. 두 배로 매수해도 이건 남는 장사야.’

    트로이카는 오버슈팅을 해도 1천억 안에서 끝낼 수 있는 기업이었지만, 훗날 5배는 물론이고 10배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유망한 강소기업이라고 생각했다.

    “혜성 녀석들은 주당 5천원 정도 생각하고 있겠지?”

    선규는 밖으로 나오면서 피식 웃고는 차에 올라탔다.

    ***

    동대문구 신설동에 있는 트로이카 컴퓨터 본사에는 혜성그룹의 임원들과 대윤그룹의 임원들이 모였다.

    “아, 안녕하십니까? 신 이사님?”

    선규가 반갑게 인사하자 재환 역시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이군요.”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되었군요. 혜성그룹이 대윤을 상대하기 위해 말이죠.”

    “은행 대출은 승낙되셨습니까?”

    “저희는 증권사입니다.”

    “네, 최근에 신라증권이 금융사 최초로 은행 융자를 막지 못해서 부도처리가 돼서 말이죠. 저흰 금융업을 안 해서 다행입니다.”

    “25위의 혜성의 덩치로는 금융업은 좀 힘들겠죠?”

    “글쎄요, 그 이전에 이자 놀이가 제 취향이 아니라서 말이죠.”

    한 마디도 지지 않으며 팽팽하게 맞서는 김선규와 신재환의 반응에 양사의 임원들 역시도 굳은 의지가 단긴 눈으로 서로를 응시했다. 오늘 이 자리는 트로이카 컴퓨터를 위해 각 사가 이사회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자리였다.

    우선순위는 돈이지만, 그 전에 이사회에게 얼굴도장을 확실히 찍기 위해 재환은 직접 PPT를 만들어왔다.

    [자, 그럼 천천히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이사회 속에서 트로이카 컴퓨터의 사장 임용태가 지켜보는 가운데 대윤이 먼저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대윤전자의 윤상우 전무라고 합니다.”

    윤 전무가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동안 선규는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재환을 바라봤다.

    “저희 대윤전자는 1971년 남동전자를 인수한 이래 공격적인 M&A로 업계의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대윤에 대한 소개를 시작한 뒤로 윤상우는 대윤전자와 트로이카 컴퓨터에 대한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대윤전자는 현재 67개국에 수출을 하고 있으며, 그 인프라를 위해 SJ컴퓨터와 대윤인터내셔널과 함께 하면서 트로이카를 세계적인 컴퓨터 브랜드로 만들 생각입니다.”

    그래프를 보여주면서 기존 트로이카에 대한 수출 루트와 앞으로 대윤과 손을 잡고 진행할 예상 기대수익을 올리고 인프라를 중심으로 컴퓨터 수출을 선도하겠다고 다짐한 상우의 프레젠테이션이었다.

    “또한, 현재 트로이카에서 개발하고 있는 케이블 인터넷 사업 역시 전국적으로 인프라를 확충하여 국민들에게 디지털 정보화 시대를 선두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10분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모두가 박수를 쳤다.

    대윤전자와 트로이카 컴퓨터의 장밋빛 미래를 내건 아주 좋은 프레젠테이션이었다.

    [네, 잘 들었습니다.]

    임용태 사장 역시도 흡족한지 연신 미소를 띠고 있었다.

    [자, 다음은 혜성전자의 프레젠테이션이 있겠습니다.]

    창훈과 혜성전자 대표 장진욱등의 걱정스러운 반응 속에서 재환은 여유있게 엄지를 올리면서 자신이 직접 단상 위로 올라갔다.

    재환은 마이크를 잡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혜성그룹 종합기획실의 이사 신재환이라고 합니다.”

    재환은 차분한 목소리로 먼저 임용태를 포함한 트로이카 컴퓨터의 임원진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먼저 인사를 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삑-

    -트로이카는 어떤 기업인가요?-

    “!”

    기업에 대한 플랜이 아닌 의문형으로 시작한 PPT에 임용태를 포함한 임원들의 이목이 쏠렸다.

    그리고 나온 사진은 세 명의 젊은이들이 손을 맞댄 사진이었다.

    “아···.”

    임용태가 탄식했고, 그 옆에 있는 두 이사도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1980년, 청계천에서 세 명의 엔지니어가 자본금 1천만원으로 창업한 트로이카 컴퓨터는 17년동안 대한민국의 정보화 산업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임용태를 포함해 창업멤버인 3인은 옛날 사진을 보고 추억에 잠겼다.

    “그리고 현재 트로이카 컴퓨터는 사무기기 보급과 컴퓨터사업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재환은 트로이카에 금칠을 해주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사업계획에 대해 말했다.

    “현재 트로이카 컴퓨터에는 수많은 사업이 있습니다. 컴퓨터, 사무기기, 케이블 인터넷, 그리고 무선호출기 사업까지 다양한 곳에서 활약하는데, 저는 단 한 명의 구조조정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으음.”

    임용태가 관심을 보이자 재환은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또한, 사양길이라는 무선호출기에 대해서도 신사업을 두고 있습니다.”

    “!”

    재환은 감성으로 마음을 움직였으니 자신의 아이디어를 말했다.

    삑-

    “무선호출기는 PCS폰에 밀리면서 점점 점유율이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이 제품이 필요한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재환이 건넨 것은 신문기사였다.

    [RH-혈액형. 갈수록 구하기 힘든 수혈문제.]

    “현재 전국민중 1%밖에 되지 않는 특수 혈액형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이 사람들에게 나눠주어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게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각지의 3차 종합병원에 사진들을 올렸다.

    “물론 무료로 배부한다면 수익이 문제가 되겠죠. 그러기 위해 의료인들을 이용하는 겁니다. 현재 무선호출기가 유일하게 휴대전화보다 많이 쓰이는 곳입니다.”

    휴대폰의 전자파 문제 때문에 대다수 의사나 간호사들은 응급실에서 불편하지만, 무선호출기를 더 많이 썼었다.

    “그리고 무선호출기 기술에 대한 새 사업이 있지만, 이것에 대해서는 인수 후 발표하겠습니다.”

    재환은 대윤그룹 임원들을 보고 말했다.

    “특허를 올린 다음 말하겠지만 말이죠.”

    재환은 그 뒤로 컴퓨터사업과 인터넷 사업에 대해서도 자신의 플랜을 말했다.

    “앞으로는 기업뿐만이 아니라 집집이 가정용 컴퓨터가 보급되는 날이 올 겁니다. 저희는 그것에 맞춰서 사업을 진행할 겁니다.”

    현재 시가 2-300만원이나 하는 컴퓨터를 외환위기 시절에 어떻게 배포되나 하겠지만, 재환은 차트를 보이면서 자신감을 보였다.

    “저희 혜성이 트로이카와 같이 앞으로 21세기의 정보화 선두에 설 것입니다.”

    재환은 PPT를 마치면서 인사했고, 박수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리고 자리에 앉았을 때 김선규 역시도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인상적이네요. 감성 건드리는 거 잘 하시나 봐요?”

    “사람의 마음이 가장 중요한 거니까요.”

    “자, 그러면 돈 이야기를 해 볼까요? 저희 대윤전자는 대윤증권과 함께 인수전에 총력을 기울이실 겁니다.”

    “네, 저희 혜성 역시도 마찬가지에요.”

    “재계서열 1위를 노리는 우리하고 돈 싸움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25위에 전경련 말석이나 지키는 몸이?”

    재환은 손목시계로 시간을 보면서 느긋하게 끄덕였다.

    “네~ 저희에게 아주 든든한 아군이 있거든요.”

    “누구 기다리시는 분 있어요?”

    “네, 제 친구에게 30분 뒤에 오라고 했는데 시간이 됐네요.”

    그 순간 임원실의 문에서 노크가 울렸다.

    그리고 문이 열린 순간 거기에는 말끔한 정장 차림에 오스트리아제 실루엣 안경을 낀채 미소가 가득한 얼굴이 보였다.

    “어, 어억?!”

    “음?”

    “휘유~”

    트로이카 컴퓨터 임원들도, 대윤그룹의 사람들도 흠칫할 거물이 들어온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 늦었네요. 삼신증권의 인베스트먼트 사업부 이현규 전무라고 합니다.”

    그 이름과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만, 현규는 직접 자신의 직함을 말하면서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리고 재환은 팔짱을 낀 채로 그를 맞이했다.

    “이번 사업을 도와줄 제 베스트 프렌드죠. 혜성전자와 트로이카의 M&A사업에 삼신증권이 함께 할 겁니다.”

    이것으로 판은 뒤집혔다.

    상대가 대윤이라 하더라도, 이쪽의 원군이 삼신그룹의 황태자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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