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달구벌의 인연들.
“지금 모델YM에 냉동탑차 모델도 같이 만드시지요. 그리고 장축형 모델을 보강할 때 같이 개발해서 그쪽을 먼저 출시하는 겁니다.”
“음?!”
재환은 품 안에서 수첩과 만년필을 꺼내 건호 앞에서 그림을 그렸다.
“현재 일반 1톤트럭을 판다면 과적 문제로 무너질 거라 말씀드렸죠? 하지만 냉동탑차 모델을 지금부터 같이 개발해서 먼저 출시하면 그 경우는 다를 겁니다.”
재환은 트럭을 그리고 거기에 박스를 그려서 설명했다.
“일단 냉장, 냉동 기능으로 인해 식품 위주로 수송을 할 겁니다. 그리고 박스의 크기로 인해 부피가 크고 무게 있는 것을 잔뜩 실지 못합니다. 그리고 특수목적이니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식품이나 의약품 위주로 수송을 하겠지요.”
“냉동탑차라···.”
건호는 돋보기를 꺼내 유심히 그림을 보다가 중얼거렸다.
“신누리 쇼핑, 그리고 현재 삼신플라자 같은 곳에서 식품 운송을 할 때···.”
“네, 그렇습니다. 게다가 저희 혜성또한 식품사업으로 큰 기업이니 이런 박스트럭은 수요가 많이 필요할겁니다. 즉시전력감이라 할수 있죠. 혜성도 테스트해서 OK되면 바로 전국 유통망을 위해 바로 구매하겠습니다.”
“흐음.”
“그리고 사내 캠페인을 하시죠. [과적금지],[안전운전] 캠페인을 하셔서 1톤을 넘으면 불이익을 주게 하는 겁니다.”
"애초에 1톤 트럭이니 그걸 넘기는거 규제하는거야 일도 아니니까?"
"맞습니다."
기존 모델이 재설계에 들어갔는데, 거기에 가지치기로 박스 트럭을 만들어 먼저 내놓는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한다면 상용차가 아슬아슬하게 굴러가기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삼신의 유통사업에서 그걸 미담으로 포장하면 적절하게 언론 플레이도 된다.
"이걸 승낙하신다면, 부산의 승용차 뿐만 아니라 여기 대구의 삼성상용차 역시도 좀 더 스케일이 커질겁니다."
“후우... 일반 장축형 트럭도 보강해야 되는데, 거기에 가지치기 모델을 먼저 출시하라니...이걸 상용차 공장에서 논의할 걸 그랬군.”
건호는 재환의 제안을 머릿속에 담아두고 스스로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차 한잔을 마시다가 넌지시 말했다.
“신 이사의 제안은 생각해보겠소. 내가 여기에 대해 뭐라도 하나 해줘야 할 것 같은데.”
“보답이라면··· 삼신이 저희 혜성을 꼭 도와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말하시오.”
재환은 이 자리에서 지금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해 말했다.
“저희가 컴퓨터 회사를 인수하는 문제로 M&A를 삼신증권과 같이 진행한다는 이야기는 드렸죠?”
“기억하고 있소.”
“현재 대윤전자가 저희가 노리는 트로이카 컴퓨터를 노리고, 대윤증권을 통해 M&A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흐음~”
혜성을 두고서 쉽게 이기기 힘든 5대그룹 대윤에 대해 언급하자 건호는 무슨 상황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삼신증권에 직접 연락해야겠군. 무슨 일이 있어도 혜성이 그 트로이카 컴퓨터라는 곳을 인수할 수 있게 하라고.”
“그렇게만 된다면··· 저희 사업 역시도 정말로 수월해질 겁니다.”
“이 실장.”
“네, 회장님!”
다른 자리에 있던 이상학이 황급히 달려와 건호의 옆에 섰다.
“삼신증권 사장··· 전화 돌리시오.”
“예, 알겠습니다.”
재환은 혜성만으로 대윤그룹과 싸우긴 힘들지만, 삼신이 개입한다면 이 싸움은 70% 이상 승기를 잡았다고 확신했다.
이건호 회장은 전화기 너머로 삼신증권 사장에게 공포스러운 전언을 남겼다.
“이번 트로이카 컴퓨터 인수전에서 혜성전자가 인수 못 하면 모두 사표 낼 각오하시오.”
탁-
전화를 마친 건호는 재환과 차를 마시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 사업 문제에 대해 신 회장과 논의는 하셨는가?”
“네, 사업계획에 대한 걸 논의 드렸지요.”
“그럼 이제 제대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단 말이군. 알겠소. 내년 1분기에 정식으로 혜성과 삼신의 협력 회의를 해 봅시다.”
건호는 재환에게 그것을 약속한 뒤로 일어날 준비를 했다.
“아, 올라가십니까?”
“나는 이 자리로 부산 공장을 가야겠소.”
승용차 공장 시찰을 하려는 것 같았는데, 그 분야는 재환의 계약과 관계가 없어서 여기서 헤어져야 했다.
‘뭐 사실 승용차는 문제없었지. 그거 적자를 못 메꿔서 일찍 매각된 거라 그렇지.’
“회장님.”
“음?”
“2000cc 모델은 LPG차량으로 택시운송 쪽을 점거하시는 것도 좋습니다.”
“···한 번 고려해 보겠소.”
준대형급 고급 세단으로 준비했는데, 택시용을 생각해보라는 재환의 제안에 건호는 떨떠름했지만 일단 머릿속에 담아뒀다.
재환은 차를 다 마신 뒤 건호의 배웅을 나간 뒤로 인사를 올렸다.
“이따 돌아갈 때, 여기 전화를 하면 서울까지 모셔다드릴 겁니다.”
이상학은 대구 일대에 대기해 있는 비서실 직원의 명함을 건네줬다.
그리고는 노파심에서 한 마디 했다.
“다음에는 조금 주의해 주십시오. 회장님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면, 어떱니까?”
“아, 조금 심했나요?”
“좀 더 예의를 지키고 대화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재환이 삼성상용차의 큰 문제를 하나 짚어주긴 했지만, 회장님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문제 삼은 이상학의 주의였다.
뭐, 아버지뻘이긴 했으니 적당히 신경 써 주기로 한 재환은 떠나는 이 회장의 차에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갔을 때, 재환은 차 한잔을 추가로 시키면서 지역지의 신문을 보게 되었다.
그 사이 대구의 지역경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 확인하고 있었는데, 재환의 얼굴이 출력된 기사가 있었다.
[혜성그룹, ‘대구 선언’ 이후로 시멘트와 레미콘사업으로 지역경제 상승을!]
“오호~”
지방신문들의 대다수 수입은 이런 향토기업이나 지역 계열사에 관한 광고기사로 이뤄졌다.
대구에 있는 계열사를 총괄하는 양준모 부사장이 얼마나 이야기했는지는 몰라도 혜성그룹에 대한 금칠을 해주는 기사들이었다.
“대구 선언··· 이름 참 좋다.”
확실히 이때부터 재환의 이름이 방송에 퍼지기 시작했으니 흡족한 일이었다.
그 외에 다른 기사를 보면서 괜찮은 회사가 있나 봤을 때, 재환이 눈여겨본 것은 유통회사였다.
[달구벌플라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
[지방백화점들의 고군분투기. 하지만 우리는 버틴다.]
“흐음, 달구벌플라자라···.”
재환은 달구벌플라자에 대한 기사를 보고 깊은 흥미를 보였다.
“그래, 경북권에서 유통업 진출하려면 여기가 참 좋은데 말이야.”
달구벌 플라자그룹은 대구에서만 70년을 넘게 터줏대감으로 들어온 유통 공룡 중 하나였다.
외환위기에도 지방백화점들이 수없이 부도가 났을 때, 견고한 재무상태로 인해 버텨내어 이후 삼신플라자, 신누리쇼핑, 아성백화점, 샤를로트백화점 등의 대기업 자본에서도 대구권에선 우위를 점했다.
“이분도 언제 한 번 약속 잡고 만나봐야 하는데.”
재환이 그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음?”
전화를 건 것은 양준모 대표였다.
“아, 네. 부사장님.”
[이사님. 지금 이사님을 뵙고 싶어서 하시는 분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누군데요?”
[명함을 남기고 가셨는데, 성함이··· 김···미금?]
“···흠.”
재환은 반갑지만, 달가워해야 할지 모를 이름을 듣고서 준모에게 물었다.
“직함이 뭐랍니까?”
[미금···상호금고라는데요?]
“만나죠. 전화하세요. 제가 지금 인테르치오날레 대구에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사님.]
통화를 마친 뒤 재환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사님. 수완 좋네? 양지로 올라가시면 사업적으로 이야기할 거라니까 그새 저축은행···이 아니지 상호신용금고.”
물론 지금은 저축은행이란 칭호대신 상호신용금고라는 이름을 쓰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쩐주’나 ‘사채쟁이’아줌마가 아니라 제대로 논의를 해야 할 사업 상대였다.
***
“아이고, 신 이사 오랜만에 보네요.”
지난번과 다를 바 없이 명품 가방에 장신구를 채운 귀부인의 모습을 한 김미금을 보고 재환이 인사했다.
“네, 오랜만이네요. 김 사장님.”
자리에 앉아서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호텔 직원에게 커피 두 잔을 주문하는 미금이었다.
“지난번에 신세 많이 졌소. 양지 돈도 나쁘지는 않은기라.”
미금은 다시 만든 자신의 명함을 두 장 건네줬다.
[미금신용금고 대표 김미금.]
[수성상호금고 대표 김미금]
“···두 곳이나 인수하셨군요.”
“캐피탈이나 상호금고는 인수가 쉽더라고. 빚더미인 곳들 탕감해서 부실자산 제외하고 인수했어요.”
“아, P&A방식.”
“상호금고는 한 동네 하나밖에 안 된다 카니 구미나 포항 쪽도 알아봐야겠어.”
어쨌거나 경북권에서 2금융권으로 사업을 하시는 분이니 만류할 리 없었다.
“그래, 이제 우리 신용금고 쓸 생각 있나?”
“네, 일단은 3000억 정도가 필요하긴 한데요.”
“그 정도는 심사만 받으면 금방 되지.”
“오우~”
음지에서 끌어올린 돈이니 심사가 필요하지만, 금액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반응의 김미금 사장이었다.
“흠, 일단은 알겠습니다.”
“신 이사가 꼭 우리 회사로 융자해주소. 내는 그래서 양지 올라온 거다.”
미금의 말에 재환은 자신의 계획에 대해 조금 말해줬다.
“지금 서울에서 인수건만 끝나면 유통업 쪽을 재조정 하려고 합니다.”
“유통업 좋지.”
“다음에 대구에서 올 때는 여기 향토업체하고 합작해서 마트와 백화점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이게 아마 내년 4월쯤이란 말이죠.”
“오호~ 그래요?”
“네, 그러니 그때 맞춰서 합작할 수 있는 향토업체 하나만 알선해주세요. 협상은 제가 하죠.”
“호호호, 그건 뭐 일도 아니지. 알았어요. 신 이사.”
재환은 그 외에 현 지역경제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잠시 나눴다.
“태백프라자도 부도 위기라고요?”
“아유~ 거기 상황 장난 아니야. 직원들이 아침마다 매대 펼치고 빤스나 티샤쓰 걸어놓고 팔고 있다니까?”
‘거기가 분명 부산 해운대 중심이었지? 목은 정말 좋은 자리인데···.’
재환은 머릿속을 멀티로 돌리고 있었다.
트로이카 컴퓨터 인수문제는 삼신이 도와줄 것이고, 거기와 협력 이후 2500억 대금문제도 자신이 어떻게 융통 가능할 수준이다.
그리고 유통업 진출로 좋은 자리들을 알아보는데, 미금이 말해주는 정보는 하나하나가 알짜였다.
“성서지구에 유통단지 만들려고 합니다. 지금부터 땅을 사놔야 해요.”
“아이고, 안목 좋네~ 거기는 삼신상용차도 그렇고, 지금 대구에 지하철 뚫린거 알지? 거기도 곧 지을거야.”
“네, 일단 회사 이름으로 매입 좀 해야겠네요.”
“그랴, 또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연락주고.”
재환은 좋은 정보를 많이 얻은 채로 대구를 떠날 수 있었다.
***
그날 저녁 식사를 하면서 재환은 대구에서 있었던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 회장이 너한테 호되게 당했겠구나.”
“그래도 지금 알았으니 고쳐지겠죠.”
트럭 이야기를 하자 희경은 거기에 관해서 관심을 보이며 자연스럽게 이야기했다.
“내년 1분기에 본 다면··· 2500억 한번에는 못 구해도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마.”
“감사합니다. 아버지.”
결국, 2500억 규모의 삼신가와 제휴를 받아들이기로 한 혜성그룹이었다.
“그리고 대구에서 큰 손을 하나 만났어요.”
“김미금 말하는거냐?”
“네, 상호신용금고 몇 개 인수하더군요. 저한테도 몇 번이나 접근했고.”
“햐~ 그 아줌씨가 너한테 관심있나보네.”
희경은 옛날 혜성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재환에게 말했다.
“예전에 그 화개장터있지? 하동하고 구례에 관광단지 만든다고 해서 혜성건설이 거기 공사를 했어. 근데, 불이 나서 자재 5억원 어치를 홀라당 날렸지 뭐냐.”
희경은 그때를 떠올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경상도 제일의 쩐주라던 김미금이가 하동에 와서 10분 만에 5억을 융통해주더라고.”
“아버지하고도 인연이 많았군요.”
“그 아줌씨 특징이 뭔 줄 아냐? 주변에 관상가나 역술인들 데리고 다니면서 유망한 기업인들 사주나 관상을 보고 자기가 꽂힌 사람한테 아낌없이 후원하는거야. 돈복이 있는 사람을 찾는거지.”
“관상하고 사주라··· 저한테 계속 접근하는 이유가 그거였나 보네요?”
확실히 예전에는 그런 상황이 많았었다.
재벌 회장들마다 개인 전담 역술인 있는 것은 기본이었고, 수천억에서 수조원 대의 거대한 사업을 앞두고서 점을 치는 이야기도 특이할 게 없었다.
재환은 관상이나 사주는 안 믿지만, 자신이 그렇게 ‘쩐주가 꽂은 사주’라는 말에 피식 웃었다.
“뭐가 됐든 간에 교류하면 돈 걱정할 일은 없겠군요.”
“잘 해봐. 어쩌면 그쪽 지방에서는 지역은행보다도 더 신뢰가 갈 테니까.”
재환은 밥을 다 먹고는 그릇을 싱크대에 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디 보자. 내일은 또 트로이카 컴퓨터 쪽 상황을 봐야 할 텐데.”
출장 다녀온 뒤로 자신이 해야 할 혜성그룹 일에 집중하기로 한 재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