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25화 (25/244)
  • 25- 물건은 잘 만들어야 하죠.

    오랜만에 대구에 도착한 재환은 인수합병 논의가 거의 다 끝난 혜성 시멘트와 혜성 레미콘을 한 번 시찰했다.

    차를 보내주겠다는 이건호 회장의 제안에 재환이 부탁해서 미리 자신의 자회사부터 다녀온다고 말한 것이다.

    그래서 삼신상용차 공장 둘러보는 약속을 두 시간 정도 미룬 뒤 자회사를 한 번 시찰했다.

    “간판이 새로 올라오고, 청소도 말끔하네? 깨끗해서 좋네요.”

    “그렇습니다. 이사님.”

    동성시멘트의 대표 양준모는 다른 임원들이 물러난 뒤에도 인수 이후 혜성에서 그 자리를 1년간 유임하게 됐다.

    일단 시멘트나 레미콘이나 모두 그에게 맡기고, 추후 내려올 혜성 임원진들에게 그 노하우를 알려주도록 재환이 부탁한 것이었다.

    “저희가 건설은 매각했지만, 타 회사에 시멘트 공급은 계속할 겁니다.”

    “네, 그래서 영업팀하고 서비스직들을 늘리고 있습니다.”

    준모의 대답에 재환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구조조정 이야기가 오겠지만, 최대한 사람 안 자르는 쪽으로 가 보겠습니다. 힘든 시국에 새 일자리도 못 구한 사람들 자르면 마음이 편치 않아서 말이죠.”

    재환의 말에 준모는 한숨 돌렸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아, 그리고 트럭 말입니다.”

    “네, 대표님.”

    “현재 레미콘과 시멘트에서 쓰는 상용 트럭들을 정비한 다음 그 보고서를 올려주세요.”

    “네?”

    “추후 신형트럭을 구매하려고 하는데, 그 전에 얼마나 교체해야 할지 알아봐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사님. 그건 제가 착실히 조사해서 보고서 올리겠습니다.”

    낡은장비와 차량은 버리고 새로 한번 시작해 볼 셈이었다.

    그리고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시멘트와 레미콘 사업을 키워볼 생각도 넘쳤다.

    “잘 해주세요.”

    “네,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사님.”

    재환은 혜성시멘트, 혜성레미콘 임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삼신상용차로 향했다.

    삼신상용차 대구공장은 성서에 있는 곳으로 한때는 삼신을 포함해 많은 대기업이 있었지만, 이후에는 모두 철수하여 황량한 땅이 되어버리는 곳이었다.

    그 뒤로 대구 경제를 살리기 위해 대규모 유통단지와 복선전철 공사가 생기지만 그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재환은 미리 그 사실을 알고 있어 이 지역의 땅을 차근차근 사들여서 혜성의 이름으로 사업을 계획을 구상했다.

    '이제부터 여기를 잘 살려야지. 그래야 나중에 내가 유통단지를 만들고 경북과 충북, 강원, 경남 통하는 허브가 되지 않겠어?'

    재환은 앞으로 20년 뒤에 벌어질 일을 미리 계산하면서 이미 설계도를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했다.

    삼신그룹 비서실에서 온 차에 탄 재환은 엄중한 경계를 넘어 삼신상용차에 도착했다.

    98년 출시를 앞두고서 연구에 몰두한 삼신상용차의 트럭을 본 순간 재환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삼신 최악의 흑역사가 여기 다 있겠군.’

    재환은 만약 이 자리에 건호가 있다면 눈앞에서 자동차 연구를 전면 다시 하게 만들 셈이었다.

    재환이 내리자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노년의 임원이었다.

    “어서 오시죠. 신 이사님.”

    “아, 네. 안녕하십니까?”

    50대 중후반에 올백의 이마, 작은 체구지만 눈매가 아주 날카로운 인물이었다.

    “삼신그룹 비서실장 이상학이라고 합니다.”

    “아, 이 실장님이셨군요.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신재환이라고 합니다.”

    삼신의 2인자이자 훗날 경영승계 설계사라고 불렸던 이 회장의 오른팔이었다.

    상학은 재환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안내했다.

    자동차 회사답지 않은 화려한 디자인의 건물로 들어가자 안에서는 막 조립이 끝난 1톤 트럭들이 있었다.

    그리고 많은 임원을 대동한 채, 공장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건호 회장이 있었다.

    “회장님, 모셔왔습니다.”

    “어, 신 이사 왔소?”

    건호가 다가와 손을 내밀자 재환은 악수하면서 말했다.

    “여기까지 잘 와줬어요.”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회장님.”

    “지금은 동업자 관계, 공적인 자리에선 친구 아들이라 생각하지 않겠소.”

    이건호가 자신에게 존대하는 게 굉장히 멋쩍었지만, 재환은 일단 존중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회장님, 이게 삼신의 트럭입니까?”

    “YM-1000이라고 하오. 야무지게 달리라고 해서 YM이라 붙였지.”

    “뒤에 1000은 1톤 트럭이라는 뜻이고요.”

    “맞소.”

    재환은 트럭을 한 번 보고는 이리저리 살펴봤다.

    “니혼모터스의 설계로 만들어졌지. 하지만 5년 이내에 기술이전을 받아서 국산 트럭을 만들 계획이오.”

    승용차 부문은 부산에서, 트럭과 버스등의 상용차 부문은 대구에서 만드는 삼신자동차의 이원화 공장 계획이었다.

    그리고 자동차에 대해서는 가전제품만큼이나 좋아하는 이건호가 스펙을 술술 읊었다.

    “니혼자동차의 JT10엔진인데 출력이 좋아서 시골길에서도 잘 돌아가는 차량이오. 회전반경 5.2m에 3200mm의 초장축 적재를 하고 있지.”

    “네, 좋네요. 아성 PT-1와 경쟁이 되겠습니다.”

    재환은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직접 주행하는 것까지 이건호와 살펴봤다.

    트럭치고는 상당한 승차감과 정숙성까지도 확인한 재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삼신의 임원진들 역시 처음 출고된 트럭에 대해 상당한 만족감을 보였고, 이건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주행이 끝나자 재환은 손뼉을 치면서 다가갔다.

    짝- 짝- 짝-

    “네, 잘 봤습니다. 트럭치고는 주행성이 좋네요.”

    “우리 삼신자동차의 주력 상품이 될 테니까. 그리고 신 이사가 말한 대로 공장은 혜성이 짓고.”

    이건호의 말에 재환은 별안간 트럭의 적재함을 열었다.

    그리고는 점프를 뛰어 올라탄 뒤로 그 위에서 쿵쿵 뛰었다.

    “!”

    “뭐, 뭐하시는 겁니까?”

    “신 이사! 지금 무슨···.”

    직접 적재함 부분에서 뛰어다니면서 내구성을 확인한 재환은 여유있게 내려와서 이건호에게 말했다.

    “회장님.”

    “말하시오.”

    “이거 안되겠습니다.”

    “!”

    순간 돋보기 너머 이건호의 눈이 몇 배는 커졌다.

    그리고 공장장을 포함한 삼신의 엔지니어들과 임원진들 역시 회장앞에서 저런 소리를 당당하게 하는 재환을 보고 경악했다.

    “신 이사! 무슨 소리를 하는거요!”

    보다못한 삼신자동차의 대표이사 김익준이 한 마디하자 재환은 손가락을 까딱이며 말했다.

    “프레임이 약해요. 저 트럭 그대로 내놓으면 3달도 못가서 리콜 단어만 귀따갑게 들을 겁니다.”

    “이봐요! 신 이사!”

    아무리 회장님과 협력을 하고 앞으로 공장을 같이 가동할 전략적 파트너라지만, 혜성가의 사람인 재환의 행동은 삼신그룹의 임원진들 앞에서 너무나도 무례했다.

    특히 자신의 주군인 이건호 회장 앞에서 저런 불경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걸 이상학 역시도 참지 못했다.

    “그만하시죠! 이 자리는 신 이사가 이렇게 할 이유가···.”

    그 순간 이건호가 손을 들었다.

    “아니 됐소. 신 이사가 계속 말하게 하시오.”

    “회장님!”

    “하시오.”

    이상학과 김익준 등의 고위간부들은 회장님의 말에 곧바로 입을 닫았다.

    “신 이사. 지금 저 트럭이 왜 리콜 감이라는지 한번 말해주겠소?”

    “회장님께서는 기계에 조예가 깊으시고, 자동차에 대해서는 웬만한 엔지니어 이상으로 전문적인 지식이 있으시다 들었습니다.”

    “용건만···.”

    건호의 단호한 말에 재환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휴대폰을 꺼냈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 트럭이 왜 문제인지 직접 알려드리겠습니다.”

    재환은 그렇게 말하고는 조금 전 다녀간 혜성 시멘트의 양준모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지금 당장 1톤 트럭 한 대와 대형 트럭에다가 40kg짜리 시멘트 60포를 담아와 삼성상용차 본사 앞에 대기시키도록 했다.

    어리둥절한 일이었지만, 양준모는 그 명에 따라 삼신상용차 본사 앞에 차를 대기 시켰고, 삼신의 직원들을 통해 그 트럭 두 대를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두 대의 트럭이 오는 순간 이건호의 커졌던 눈은 점점 가늘어졌다.

    시멘트 60포씩를 담아온 대형 트럭 옆에 있는 1톤트럭은 앞으로 삼신트럭의 경쟁자가 될 아성자동차의 88년식 PT-1이었다.

    “저 트럭은?”

    왜 경쟁사의 트럭을 가져온 거냐고 묻는 익준을 보고 재환은 박수를 치며 외쳤다.

    “자~ 여러분! 지금부터 제가 재미난 거 보여드릴게요!”

    재환은 60포씩 담긴 두 대의 트럭을 두고 공장 직원들에게 말했다.

    “여기 이 60포를 여기 1톤 트럭에 몰아주려고 합니다. 한번 해 볼까요?”

    재환의 말에 이건호 회장이 곧바로 명했다.

    “지금 당장 신 이사를 도우시오.”

    “예, 회장님!”

    엔지니어들이 달려들어 묵직한 시멘트들을 들어 다른 트럭에 싣기 시작했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이건호의 눈은 점점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리고는 삼신 트럭이 무엇이 문제인지 단박에 알아차려 주먹을 불끈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잠시 후 몇 톤이 넘는 시멘트가 실린 트럭에 시동을 걸게 하고, 재환이 직접 운전을 해서 가볍게 한 바퀴를 돌고는 차에서 내려 두 팔을 벌렸다.

    “자~ 여러분! 이게 1톤 트럭의 위엄입니다!”

    40kg짜리 시멘트 60포를 한 트럭에 담았다.

    도합 2.4톤의 무게였는데 10년 전 만들어진 1톤 트럭이 그것을 버틸 뿐만 아니라 프레임 하나 휜 것 없이 멀쩡했다.

    “자~ 그럼 우리의 삼신자동차 YM은 몇 포를 실을 수 있을까요?”

    “시, 신 이사!”

    익준은 그제야 무슨 상황인지 알고 황급히 제지하려 했으나 이건호가 외쳤다.

    “왜 다들 가만히 있는 거야? 신 이사가 말하는 대로 시멘트를 옮겨 적재해야 되는 거 아니야?”

    노기 어린 이건호의 외침에 직원들이 황급히 달려가 시멘트를 실었다.

    일단은 시멘트 25포를 담아서 딱 1톤 트럭의 적재량을 마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건호는 이미 두 배가 넘는 과적을 하고도 너끈하게 버티는 아성 트럭을 보고 외쳤다.

    “계속 나르시오. 60포 아예 다 실어봐!”

    “회, 회장님!”

    “하시오!”

    결국, 내년 출고를 앞둔 YM-1000은 회장님 앞에서 내구성 테스트를 했다.

    그리고 시멘트 30포를 실었을 때 결국 하중을 버티지 못해 적재함이 U자로 휜 게 확연히 보였다.

    “···.”

    재환은 그 상황에서 넌지시 말했다.

    “이탈리아의 페루치오사나 국내의 아성이나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오너가 농기계를 먼저 다뤄서인지 차 하나는 엄청나게 튼튼하게 만든다는 거죠.”

    “···.”

    삼신의 임원들은 재환이 지금 회장님을 조롱하는 거라고 달려들려 했지만, 이건호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사실 우리나라 화물유통이 과적 문제가 심하긴 하지만, 그걸 넘어서라도 두 배 이상 버틸 수 있는 1톤 트럭이 경쟁 상대입니다.”

    “김 대표.”

    이건호는 곧바로 익준을 불러 명했다.

    “내년 6월에 출시한다고 했지? 우리도 2톤 이상 버틸 수 있도록 설계를 다시 해보시오.”

    “···네?”

    “하시오.”

    이건호의 명령은 곧 삼신의 법이었고, 김익준 대표는 속이 타들어 가면서도 그 명을 따라야 했다.

    그리고는 프레임이 휘어버린 YM-1000을 보고 꼴도 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려 떠났다.

    “신 이사.”

    “네. 회장님.”

    “차나 한잔합시다.”

    재환은 이건호와 같이 차에 탔다.

    ***

    대구의 향토기업인 호텔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만난 건호와 재환은 조용히 차를 음미했다.

    “오늘 신 이사 안 불렀으면 큰 낭패를 볼 뻔했어.”

    “아닙니다. 회장님의 눈썰미셨다면 분명히 출시 전에 아셨을 겁니다.”

    재환이 그렇게 말하면서 슬쩍 옆을 봤을 때, 그곳에는 여전히 그를 못마땅해하는 이상학 비서실장이 있었다.

    “덕분에 상용차는 좀 더 출시를 연기해야겠어.”

    “납기일에 맞춰 출시하신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음?”

    “어차피 상용차 트럭이 승용차와 같이 나오긴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하지만··· 프레임 문제는···.”

    건호가 프레임이 휘는 것을 봤고, 재환이 그것을 지적했다.

    하지만 재환은 그 상황에서도 태연하게 삼신 트럭 출시에 대해 다른 방법을 말했다.

    “1톤 트럭을 그대로 유지하고, 기골 보강만 조금 한 다음에 빠르게 출시할 수 있죠.”

    “그 방법이 뭐길래?”

    재환은 즉시 대답했다.

    “그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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