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23화 (23/244)
  • 23- 삼신가의 초대.

    재환이 집에 돌아왔을 때, 희경은 새 집권당이 되신 분께 ‘자그마한 후원’에 효과로 수많은 전화를 받고서 흡족한 모습이었다.

    “읏차~ 정치후원이라는 게 이렇게 도움이 되는구만.”

    정치자금이라는 게 참 웃긴 것이 ‘기업’이 정치인을 후원할 수는 없었지만, ‘기업가’가 사재로 정치인을 후원하고 영수증 떼는 것은 또 되는 세상이었다.

    예전에 사뒀던 골동품과 산수화, 한 번도 안 썼지만, 수집품으로 가치를 뒀던 고급 골프채, 고향에서 직접 담근 김치 등의 선물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을 말이다.

    재환은 그것을 보고 쓴웃음을 짓다가 말했다.

    “아버지.”

    “왜?”

    “혹시나 해서 말인데 저희가 가진 금으로 금두꺼비 만들 생각은 하지 마세요.”

    기증이라는 것을 잘못된 방법으로 할까 봐 미리 경고 식으로 말했을 때, 희경이 버럭 화를 냈다.

    “야 임마, 그런 건 개인 사재 금으로 하는 거야. 이제껏 난 회삿돈을 두고 떡값 쓴 적 없어.”

    “바친 적은 있었단 말이구만!”

    재환은 왜 외환위기 때 특검이 걸렸는지 알 것 같았다.

    재환 자신도 전생에서 혜성그룹이 해체순서를 밟을 때 아예 발을 빼버렸던 게 그 이유였는데, 결국 그때의 진실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알고 허탈했다.

    ‘내가 처음부터 알았다면, 그거 사내감사 먼저 해서 문제가 되는 걸 되돌렸을 텐데...’

    재환이 얼굴을 긁적일 때, 희경은 넌지시 말했다.

    “뭐, 그래도··· 네 말 아니었으면 여당이 계속 갈 줄 알고 내 지갑만 거기에 털었을 거다.”

    ‘왜 특검 조사에서도 제1 표적이 됐는지 알 거 같네요···. 줄도 잘못 탔다니!’

    ***

    며칠 뒤 재환은 가지고 있던 디스램 주식을 처분한 뒤로 구매자에게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다.

    “휘유~ 어렸을 땐 별생각 없었는데 긴장되네.”

    재환이 향하고 있는 곳은 범 삼신가가 집결해 있는 한남동 사옥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삼신그룹의 현규 가족뿐만 아니라 그 일가친척까지 모두 모여있다고 들었다.

    재환은 마지막으로 옷차림을 한번 살피고 향수를 뿌린 다음 차에서 내렸다.

    “같이 못 가는 게 아쉽네요.”

    “아닙니다. 잘 다녀오십시오. 이사님.”

    재환은 지갑에서 수표를 한 장 꺼내 김 기사에게 건네줬다.

    “기사님도 식사하고 오세요. 아마 몇 시간 걸릴 겁니다.”

    재환이 차에서 내리고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이사님.”

    삼신그룹 오너일가의 전담 경호팀이자 보안업체 ‘에스가드’ 직원들이었다.

    “아, 안으로 들어가면 되나요?”

    “그렇습니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재환은 삼중으로 닫힌 문을 들어오고 드디어 한남동 삼신그룹 저택에 들어왔다.

    한 18년 만에 온 것 같았다.

    베이지색 벽에 공기청정기 돌아가는 소리가 가득했고, 안에서 기다리던 현규가 재환을 맞이했다.

    “안녕, 나 왔어.”

    “아, 어서 와!”

    재환은 들고 온 선물로 프랑스 와인 세 병을 현규에게 건네줬다.

    “이거 다 같이 드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

    “뭐, 이런 걸 사 왔어? 술이야 안에 많이 있는데.”

    재환이 안으로 들어오자 거실에서는 음식준비로 분주히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고,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이들은 재환을 보고 반갑게 맞이했다.

    “아이고, 네가 재환이구나?”

    “처음 뵙겠습니다.”

    삼우일보의 사장이자 삼신 회장의 처남인 홍석준이 재환을 맞이하며 악수를 했다.

    그 뒤로 삼신의 안주인인 홍서희 화송미술관 관장이 맞이했다.

    “어머, 재환이 오랜만에 보는구나. 세상에~ 아주 훤칠한 청년이 됐네?”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머님.”

    “그래, 김 여사님도 잘 계시고?”

    과거 혜성그룹 일가하고는 자주 만나 쇼핑도 하고 고미술품 관람도 같이했던 각별한 사이의 홍 여사였다. 그 뒤로 삼신 회장의 동생이자 신누리쇼핑의 회장 이서호 회장이 있었다.

    “처음 뵙겠어요. 현규 친구라고요?”

    “말씀 낮추셔도 됩니다. 회장님.”

    재환은 기품있는 귀부인의 자태를 가진 이서호 회장에게도 인사했다.

    “호호호, 그건 다음에 만날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인 집무실에 계신 분을 만나러 갔다.

    “아버지가 조금 바쁘셔. 해외 사업 문제로.”

    “그렇구나.”

    ‘한창 바쁘실 때겠지. 디스램을 넘어 인터콘과 D램 계약 다시 하실 때니.’

    현규의 노크 이후 문이 열린 순간 방안에는 수많은 시계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북미, 남미, 동남아, 아대륙, 중국, 중동, 유럽의 시간이 모두 기록된 시계들이 벽에 걸려있고, 고풍스러운 앤틱 책상에서 수많은 서류에 파묻혀 있는 그분이 모습을 드러냈다.

    작고 다부진 체구에 두꺼비상의 얼굴로 눈을 껌뻑이며 재환을 바라보는 이는 삼신그룹의 회장이자 국내 제 일의 거부 이건호 회장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어, 그래. 오랜만이구나.”

    이건호 회장은 돋보기안경을 벗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재환에게 다가와 어깨를 토닥이며 입을 열었다.

    “네가 요새 신문에 많이 나오더구나. 회사 일은 할 만한 게냐?”

    “네, 일이 재밌는 것 같습니다.”

    “···그래, 일은 원래 재미를 가져야 하는 법이다.”

    이건호 회장이 같이 나온 순간 삼신가의 식사자리가 시작됐다.

    삼신가의 식사는 그야말로 화려함 그 자체였다.

    삼신 산하의 서라벌호텔의 일류 셰프들이 모여 만든 음식이었고, 갈비찜, 능성어, 송로버섯, 돌문어, 전복, 샥스핀 요리 등이 가득했다.

    재환도 나름 먹는 것에 대해서는 자부했는데, 삼신은 확실히 달랐다.

    재환은 식사예절에 맞춰 조용히 먹고 있었다.

    밥그릇과 젓가락 소리가 오가는 가운데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은 홍석준이었다.

    “재환이 이번에 사업 크게 했더구나? 정말 대단했다.”

    “하하하, 아닙니다.”

    “달러와 금으로 매각한 건 정말 대단한 거지, 몇 수 앞을 내다본 거야?”

    “그냥···지금 시국에는 기축통화와 금, 은이 더 가치 있을 것 같아서 제안한 겁니다.”

    그러자 식사를 하던 홍 여사도 말했다.

    “그래, 그런 작은 회사에 판다면 크게 받아내야지.”

    마이다스는 삼신가 앞에서는 언급하는 게 영광일 수준의 작은 기업이었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묵묵히 식사하던 이건호 회장이 입을 열었다.

    “마이다스··· 삼신광주전자 공장을 그 친구들이 만들었어.”

    “어, 그렇습니까? 매형?”

    이건호는 조그만 지방기업이라도 눈여겨봤다는 듯이 말했다.

    “이대로 10년만 유지한다면, 그럴듯한 기업으로 성장할 거다.”

    삼신가는 식사하면서도 일 이야기를 자유롭게 말하는 분위기였다.

    “아버지, 이번에 재환이가 넘겨준 디스램 지분 합하면 주주총회에서 잘 쓰일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부족해. 딱 10만 주만 더 매수했으면 좋았을 텐데.”

    “좀 더 적극적으로 매수하겠습니다.”

    “으흠···.”

    식사가 계속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고, 대부분은 재환에 관한 이야기를 이것저것 했다.

    “재환이는 장가 안 가니? 지금 현규도 참한 아가씨 찾고 있는데.”

    “하하하, 아직은 사업을 더 집중하고 싶습니다. 어머님.”

    “아이고, 올케. 빨리 시켜도 문제 많아요.”

    그 말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엄숙해졌다.

    ‘그러고 보니 신누리 쇼핑에 그 친구가 안 보이네··· 나랑 동갑이고 톱스타랑 결혼했던 그 친구···.’

    훗날 이혼하는데 이때부터 사이가 안 좋은 것인지 일가 저녁 모임에 불참한 상태였다.

    “으흠- 다들 밥 먹자. 식겠다.”

    이건호의 제안에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다시 침묵이 이어졌을 때, 이번에는 이건호가 입을 열었다.

    “재환이··· 이번에 매각한 계열사로 새 사업 하려는 거 있는 게야?”

    “네, 그렇지 않아도 여러 개 준비하는 게 있습니다.”

    “오호, 그래? 내가 물어봐도 되는 건가?”

    이건호 회장이 흥미를 보이며 묻자 재환은 바로 이 자리를 준비하기 위해 여기 온 것이라는 것을 상기했다.

    그리고는 갈비 한 점을 꼭꼭 씹어먹은 다음 물을 들이켜고 대답했다.

    “반도체, 전자통신, 자동차 사업입니다.”

    “!”

    “뭐?!”

    “엥?”

    “어머!”

    화목한 식사자리에서 나온 폭탄선언이었다.

    그리고 가장 표정이 굳어있는 것은 이건호였다.

    “혜성이··· 무슨 사업을 한다고?”

    “반도체, 전자통신, 자동차입니다.”

    두 번 말해줄 정도로 그 임팩트는 어마어마했다.

    그건 다름 아닌 삼신그룹이 가장 공들이는 프로젝트였고, 자동차가 지금 위기이긴 하지만 셋 다 이건호의 의지가 가득한 사업이었다.

    “신 회장의 계획인가?”

    “아닙니다. 제가 추진하는 겁니다.”

    “···으으음.”

    이건호는 들고 있던 수저를 탁 내려놓고 물을 마셨다.

    그리고는 다 먹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 마치면 재환이하고 현규는 잠깐 나 좀 보자.”

    그리고는 조용히 서재로 돌아갔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 세 사업은 말하면 안 되는 건데···.”

    홍 사장의 말에 재환은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이거 오프 더 레코드입니다.”

    “아, 아~ 그래. 제대로 사업할 때나 이야기해야지.”

    그리고는 옆에 있던 현규도 거들었다.

    “상상도 못 했다. 혜성이 그걸 다 한다고?”

    “다른 기업도 그런 반응일거야.”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양치를 한 다음 재환과 현규는 이건호의 서재로 들어갔다.

    그 자리에서 이건호는 반도체와 자동차 관련 서류를 가지고서 재환에게 건네줬다.

    “이게 뭡니까?”

    “읽을 수 있겠느냐?”

    재환은 그것을 받아들고서 그것을 천천히 읽어봤다.

    이건호는 자리에 앉아 목캔디를 꺼내 우물거리고는 재환에게 물었다.

    “우리가 반도체를 처음 시작한 게 74년이야. 그래도 아직 부족한데, 잘 생각하길 바란다.”

    그래도 아들 친구니 뭘 몰라서 한 소리라 생각하고 그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충고하는 이건호였다.

    하지만 재환은 그것을 빠르게 읽고서 대답했다.

    “네, 상당히 큰 자본이 필요하죠. 혜성 전체의 계열사를 걸어도 부족할 정도로 말입니다.”

    “그런데 네가 그 사업을 한다고? 한 가지도 아니고 세 개다.”

    “물론 혜성 혼자서는 무리입니다. 그래서 동행할 곳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 어?!”

    그것을 듣고 놀란 것은 현규였다.

    그리고 이건호는 재환이 말하는 게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네가··· 현규한테 여기 오고 싶다고 한 이유가 있었구나.”

    재환은 그 말에 빙긋 웃으며 답했다.

    “네, 맞습니다. 회장님.”

    재환은 삼신자동차와 삼신반도체에 관련된 서류를 들고 정중하게 이건호에게 건넸다.

    “회장님, 지금은 친구 아버지이기 이전에 사업에 대한 논의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아들 친구가 이렇게 당돌하게 말하자 이건호는 유심히 재환을 바라봤다.

    1분여 시간 동안 침묵 속에서 눈빛을 교환한 이건호와 신재환.

    그리고는 조용히 이건호가 말했다.

    “현규야. 가서 차를 좀 내오라고 해라. 천천히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구나.”

    그 순간 재환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현규가 나가고 둘만 남았을 때 이건호가 말했다.

    “네가 그걸 알고서 디스램 지분을 샀던 거냐?”

    “사실··· IT 주식에 대해 투자한 것은 개인적인 소신이었습니다. 하지만 현규가 다급히 말하더군요. 디스램 지분 문제로.”

    “···그 녀석이 문제였군.”

    이건호는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이고는 재환을 보면서 말했다.

    “그래서 원하는 걸 말해보아라.”

    “정말 말해도 됩니까?”

    “하거라.”

    재환은 그 말에 심호흡을 크게 하고 자신의 사업 플랜에 대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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