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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재벌의 삶!-21화 (21/244)
  • 21- 둘 다 성공.

    경선호텔의 레스토랑 스태프들은 곧바로 음식을 준비했다.

    각종 김치와 갈비찜, 신선로 등의 고급 한식 메뉴들이 테이블에 올라오고 있었다.

    재환은 그것을 보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경선호텔이 옛날부터 한식당으로 유명했지. 특히 전국 8도의 명장들 모아서 만든 스페셜 김치가 최고였고.’

    그래서 훗날 경선호텔은 배송팀을 따로 운영하여 브랜드 김치 등의 반찬을 고급선물로 취급하곤 했다.

    유기그릇에 담긴 반찬들을 보고 재환이 활짝 웃자 대현이 손을 내밀었다.

    “자~ 드시죠? 경선호텔이 자랑하는 한식 코스입니다.”

    경선에서 가장 자신 있는 메뉴로 대접하자 재환은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여 밥부터 한 숟갈 먹었다.

    밥과 반찬을 하나씩 음미하면서 연신 맛을 칭찬했고, 대현 역시도 기분이 좋은지 같이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앞으로도 호텔 이용하실 일이 있으면 경선호텔 많이 이용해 주세요.”

    “하하, 네. 그랜드 호텔이나 삼신 호텔, 고려호텔 등하고 비교해도 여기가 정말 좋은 곳 같습니다.”

    재환은 서울 내에서 5성급 호텔에 관해 이야기하며 경선을 띄워줬다.

    그러면서 수시로 대현이 손가락을 움직이는 모습을 확인했다.

    ‘저 양반 주산을 하네?’

    오른손으로 식사를 하면서 왼손으로는 손가락을 계속 움직이면서 암산을 하는 것이 현재 혜성해운의 주가를 두고 계산하는 것 같았다.

    거기에 중고선박이지만 LNG선과 유조선의 도입, 그리고 각 지역에 지을 경선의 LNG터미널 등을 생각할 수요 등을 잡아 합리적인 가격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기획실에 맡길 줄 알았는데, 저걸 직접 계산하다니··· 빨라서 좋긴 하군.’

    재환은 그러면서 식사를 하고 조용히 기다려줬다.

    그리고 밥 한 그릇을 비웠을 때, 조용히 웨이터들이 그릇을 치우고 디저트를 준비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최대현이 입을 열었다.

    “신 이사님, 오늘까지 혜성해운이 장 마감으로 주당 11700원으로 알고 있는데요.”

    “네, 맞습니다.”

    재환 역시 그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알았다.

    “1600억에 맞춰서 지분을 매수하고 싶군요.”

    ‘흐음.’

    나쁘지 않은 금액이었다.

    현재 국내 해운회사 중 1위인 아성 상선이 현재가치 3000억 정도인데, 상윤에서 인수한 중고선박까지 합쳐도 남는 금액이었다.

    “물론 이 금액은 이사회에 안건을 올리고 찬성이 나온다면 최종적으로 확정될 금액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일단 그 정도로 알고서 저희 역시 매각 건에 대해 찬반투표를 올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사회 결과를 기다리면 되겠는데···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해결할 게 하나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재환은 거래는 거래고 경선이 저지른 짓 하나를 짚고 넘어가려 했다.

    “저희 혜성에서 비리를 저지르고, 위기설을 퍼트린 임원이 경선에 갔다고 들었습니다.”

    “···.”

    정말로 성윤규가 언론사 끼고서 위기설을 퍼트려 주가를 떨어트린 배후가 경선이라면 좋게 거래할 생각은 없었다.

    “설마 재계서열 5위인 경선이 그런 언론플레이를 한 건 아니죠?”

    “저기··· 저··· 한 가지만 말하겠습니다.”

    시종일관 여유가 넘치던 최대현이 처음으로 당황해서 그 상황에 대해 해명했다.

    “저희가 스카우트한 게 아니에요. 먼저 찾아와서 건설사 인수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보고 임원으로 영입하긴 했지만···.”

    ‘그걸 잘도 믿겠다.’

    “네, 그러시겠죠? 재계에서 승부사라 불리시는 최 부사장님이 설마 그런 식으로 베팅을 하셨을 리가요?”

    이대로 갔다간 겨우 해운사 M&A를 좋게 협상했는데, 파토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직감한 대현이었다.

    그리고 재환은 ‘내가 납득할 수준으로 성윤규를 처리해달라.’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람··· 조만간 해외로 내보내지요.”

    “네?”

    “동남아에 해양플랜트 영업을 위해 보내려고 합니다. 임원이라면 그 정도는 해야겠죠.”

    혜성과의 관계 진전을 위해 아예 해외 지사로 사무실 하나 주고 좌천시켜버리겠다는 말이었다.

    아예 한국에서 쫓아내겠다는 말에 재환이 그나마 기분이 풀리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더 없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재환과 대현의 협상 사이에서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위이이잉- 위이이이잉-

    “?”

    재환은 전동휠체어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정장을 갖춰 입은 백발의 노신사가 호흡기를 낀 채, 비서들과 같이 오고 있었다.

    대현은 깜짝 놀라 일어났다.

    “앗, 아버지!”

    “최 회장님?”

    경선그룹의 회장 최성종의 등장에 아들인 대현이 다가와서 손을 붙잡았고, 재환 역시도 인사를 올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회장님.”

    “허허, 그래요. 혜성의 신재환 이사지요?”

    최성종은 초대 회장인 최성건이 이른 나이에 요절한 뒤 회사를 물려받아 지금의 경선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한 최성종 회장은 아들을 보며 천천히 말했다.

    “대현아. 이야기 들었다. 신 이사에게 사과해라.”

    “네?”

    “어서 사과하거라!”

    재환은 그것을 보고서 아버지가 서울대병원에서 최 회장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온화하면서도 정도 경영을 하는 최 회장이 그런 일을 절대 넘어갈 리가 없었다.

    “네가 잘못한거야. 떳떳하게 협상해서 인수하지. 왜 조직 내에서 배신자인 사람을 영입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든 거냐?”

    “···.”

    “인사에 대해서는 신중, 또 신중이라고 말하지 않았니?”

    아버지의 말에 대현은 할 수 없이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 재환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이번 일은 혜성에게 큰 잘못을 했어요.”

    최대현이 고개 숙여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자 재환은 그제야 성윤규 건에 대한 기분이 풀렸다.

    이것으로 그룹 내의 배신자는 땡볕의 동남아로 가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해양유전을 찾아 먼 길을 떠날 것이다.

    “쿨럭, 쿨럭!”

    최 회장이 거칠게 기침을 하자 대현이 황급히 손수건을 꺼내 아버지에게 건넸고, 피가 석인 객담을 내뱉은 뒤 조용히 치우게 했다.

    그리고는 테이블로 다가가 비서가 준비한 보온병을 올려놨다.

    “자~ 다들 앉아서 차나 한잔 하십시다.”

    아래 직원들에게도, 손자뻘의 재환에게도 인자하게 존대를 하는 성종은 폐에 좋다는 도라지 차를 따라 한 잔씩 돌렸다.

    “아, 이거!”

    재환이 그 맛을 보고 알아차리자 최 회장은 웃으며 말했다.

    “역시 어머니의 차라 아는군요. 신 이사 어머님이 저에게 차를 끓여주셨더군요. 허허허.”

    폐암을 앓고 있던 최성종 회장은 외환위기를 막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이후 1년 뒤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신 이사는 한번 보고 싶었어요.”

    “아, 네. 저도 만나뵈서 영광입니다. 최 회장님.”

    “허허허, 영광은 무슨···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인네인데 말이오.”

    아까의 빅딜 설에 대해서는 넘어가고 인자한 최 회장와 담소가 오가는 자리가 되었다.

    “신 이사, 그리고 우리 아들인 최 부사장. 모두 잘 들어요.”

    대현과 재환 모두 성종의 말에 집중했다.

    “이제 정말로 큰 위기에요. 우리 대한민국뿐만이 아니라 아시아 전체가 연쇄적으로 큰 경제위기로 몇 년간 침체에 빠질 겁니다.”

    최성종 회장은 재벌가의 몇 안 되는 아시아 경제위기와 한국의 외환위기를 경고했던 경영자 중 하나였다.

    “아주 힘들 겁니다. 금리는 떨어질 것이고, 환율은 치솟으며 외화 보유액은 고갈될 겁니다.”

    ‘네~ 그렇게 되겠죠.’

    “내수보다는 해외시장을 적극적으로 노려 수출을 늘려야 해요. 그런 의미에서 대현이 너는 해운사 인수 잘 한 거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그리고 신 이사? 혜성도 매각대금으로 신사업을 준비하는 게 좋을 거예요.”

    성종의 말에 재환은 이분에게라면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저희가 현금을 모아서 신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호오, 그래요? 역시 미래를 보는 눈이 있군. 그래 어느 쪽으로 진출할 생각입니까?”

    “세 가지가 있는데 컴퓨터, 그리고 정보기술입니다.”

    “한 가지는 비밀계획이니 못 말씀하시는 것이오?”

    “네, 그렇습니다.”

    재환은 내년부터 준비할 사업에 대해 넌지시 흘렸다.

    근 10년간 경선하고는 딱히 겹칠 일이 없는 사업이니 말한 것이었다.

    “하하하, 역시 젊은 분이라 그쪽으로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겠군요. 혜성의 앞날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경선 역시도 무한히 성장하고 회장님이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허허허, 말이라도 고맙구만, 쿨럭쿨럭.”

    기침을 크게 한 성종은 도라지 차를 마시면서 겨우 진정시켰다.

    “그래, 앞으로 잘 해봅시다. 신 이사.”

    대현은 재환에게 다시 한번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

    [다음 소식입니다. 동성그룹과 시멘트와 레미콘 사업 빅딜을 한 혜성그룹이, 이번에는 경선그룹에 해운사를 매각하는 체결식이 열렸습니다.]

    총금액 1600억원 규모의 혜성해운이 매각되어 경선그룹의 산하로 들어갔다.

    신희경 회장과 최대현 부사장이 최 회장을 대신해서 나와 악수를 하면서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희경의 옆에서 재환은 손뼉을 치면서 미소를 지은 모습이 드러났다.

    재미나게도 혜성을 떠나기 싫다고 파업을 한 해운노조들은 인수하는 회사가 경선그룹이라는 말에 전부 파업을 철회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건설에 대한 협상이 끝이 났다.

    [광주의 사업가 오현우 대표의 꿈이 이뤄진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이다스 건설은 혜성건설과의 인수합병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습니다.]

    11월 4일.

    혜성해운에 이어 혜성건설 역시도 상당한 웃돈을 받고서 매각이 성공했다.

    마이다스 건설 산하에 들어가 기존 혜성 임직원의 잡음이 조금 있었으나 전원 고용승계에 동급의 복지를 제공하겠다는 조건으로 극적 타결이 되었다.

    [특이하게도 이번 인수에는 한화가 아닌 일부 인수대금을 달러와 금으로 거래를 했다는 점이 돋보입니다.]

    달러와 금괴로 팔아넘긴 혜성건설의 매각.

    그것이 11월 4일에 이뤄졌다는 게 참으로 묘했다.

    ‘후우~ 1997년 11월 4일··· 운명이 바뀌었구만.’

    그 날은 바로 전생에서 혜성그룹이 부도 처리된 날이었다.

    그리고 혜성이 최소한의 출혈로 살아남았을 때, 대한민국에 암흑이 드리워졌다.

    ***

    [속보: 정부, IMF에 200억 달러 구제금융 요청.]

    [달러 폭등 겨우 막았다. 1달려 환율 1425원으로 겨우 조정.]

    [기어도 망했다! 기어모터스 구조조정 신청.]

    [재계서열 12위 은하그룹. 부도]

    [S&P사. 대한민국 국가신용등급 하향조정.]

    뉴스만 봐도 살 떨리는 이야기들이 나왔고, 재환은 생애 두 번째 겪어보는 외환위기를 씁쓸하게 바라봤다.

    “우리는 살았어도, 무너진 곳은 너무나 많구나.”

    회장실에서 재환과 같이 TV 뉴스를 보고 있던 희경 역시 줄담배를 태웠다.

    남은 비자금과 혜성해운, 혜성건설을 빠르게 매각해서 마련한 사내 현금으로 겨우겨우 연명은 됐지만, 23위였던 재계서열이 25위로 하향조정됐다.

    “이 정도로 끝난 게 정말 다행이에요. 아버지.”

    “그래. 수고했어 종합기획실장.”

    IMF 외환위기에 맞춰 기획조정실은 그룹내 구조조정과 위기대책까지 마련하는 종합기획실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물론 아직은 입에 착 붙지가 않아서 기조실과 종합기획실이라는 이름이 혼용됐다.

    “금고에 있는거 중에 딱 이만큼 가져왔는데 정말 영롱하군요.”

    재환은 그렇게 말하면서 아타셰 케이스에 있는 골드바를 만지작거렸다.

    이번에 마이다스건설에서 받은 달러와 금은 신의 한 수였다.

    대부분을 해외 무역사업부와 기획실 산하의 금고에 담고 그중에 케이스 하나 분의 양은 온스당 250달러로 환산해서 현금으로 환산하면 7, 8억 정도 되는 금액이었다.

    “재환이 너, 금이랑 달러로 인수대금 받을 생각은 어떻게 한 거냐?”

    “미래를 보는 선구안으로 했습니다.”

    “풋! 쿨럭! 쿨럭!”

    담배를 태우다가 뿜은 희경이 기침을 할 때 재환은 크게 웃으면서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여기 있는 골드바에서 일부는 제가 쓰게 해 주세요.”

    “뭐?”

    “이 정도는 솔직히 보너스잖아요? 좋은 데 쓸게요.”

    8억원 어치 골드바가 담긴 가방을 어루만지며 요구하는 당돌한 아들에게 희경은 버럭 화를 냈다.

    “야 이 자식아! 너 미쳤냐? 회사 팔아서 얻은 대금을 네가 멋대로 쓰면 뭐가 되는 줄 알아?”

    “영웅이 되겠죠.”

    “뭐? 그게 무슨 개소리야!”

    재환은 태연하게 리모콘을 들어 다른 채널을 돌렸다.

    여러 번 돌렸을 때 한 곳에서 재환이 찾던 뉴스가 나왔다.

    [비상경제대책위원회에서는 새마을부녀회에서 주관하는 ‘애국 금반지 모으기 운동’계획을 보고 받고 민간단체 차원의 바람직한 활동이라 논평을 냈습니다.]

    “뭐야 저거?”

    TV에서 보이는 것은 시민단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아기들 돌반지, 결혼식 패물 등의 금붙이를 모으고 있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재환은 금고에 잠들어 있는 수많은 금괴중에서 아타셰케이스 분량인 금괴를 손바닥으로 두들기며 말했다.

    “요정도만 바쳐도 나라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혜성그룹은 부도 안 나고 건재하다는 걸 알리는 거고요.”

    “야··· 재환아. 저런 건 한때의 유행이야. 전 국민이 들고일어난다면 모를까 저렇게 금딱지 모으는 게 얼마나 갈 거 같냐?”

    “제가 봤을 땐 갈 것 같은데요? 한 몇백 톤 모일 정도로요. 그리고 딱 요거 일부로 알차게 쓸겁니다.”

    “쳇,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내 이사회를 열어서 기증용 금괴에 대해 논의를 해보마. 하지만 지금은 안 돼.”

    "네~ 알겠습니다."

    ‘물론 지금은 아니죠. 한참 뒤에 이야기니까.’

    지출을 최대한 막아도 모자랄 판에 기부에 대해 생각까지 하는 아들 녀석을 도저히 이해 못할 희경이었으나, 재환은 느긋하게 TV를 보면서 손가락으로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집에 가면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는지 한 번 논해볼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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