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20화 (20/244)
  • 20- 경선그룹과의 담판

    “역시 회는 바닷가에서 먹어야 해.”

    재환은 인근에 있는 소규모 관광단지에서 회와 소주 한 잔을 곁들였다.

    “기사님도 한잔해요.”

    “네? 아닙니다. 저는 운전을 해야 되기 때문에···.”

    “차 여기 놔도 됩니다. 호텔 이 근처에 잡아뒀거든요.”

    “네?”

    재환은 느긋한 마음으로 근처에 있는 관광호텔 하나를 가리켰다.

    “오늘 일은 끝이에요. 그냥 진탕 먹은 다음에 내일부터 협상이나 해 볼까 합니다.”

    재환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휴대폰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피식 웃으면서 손을 들었다.

    “사장님. 여기 재떨이요.”

    “거기 종이컵 하나 쓰면 되유.”

    재환은 나열된 종이컵을 꺼내 물을 조금 붓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식당과 술집이 전면 금연화 됐을 때 재환도 가장 안타까워했던 사람 중 하나였다.

    “술 안 드시면 회라도 많이 드세요. 한 접시 더 시키게요.”

    “네, 많이 먹고 있습니다.”

    김 기사는 재환을 보고서 매우 특이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는 이제껏 오너 일가를 모시면서 재환같은 케이스를 못 봤다.

    일개 기사가 감히 오너 일가랑 겸상하고, 거기에 술까지 한잔하자고 친근하게 나온다.

    “기사님. 연세가 어떻게 되셨죠?”

    “아, 저 말입니까? 올해로 마흔하나입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가족도 알 수 있을까요?”

    “아, 부인하고 아들 둘 있습니다. 큰놈이 내년에 중학교 들어갑니다.”

    “오우~ 대단하시네요.”

    재환은 담배를 태우면서 통짜 유리로 된 벽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 땅이 있죠. 앞으로 관광단지로 변해서 엄청 발전합니다. 앞으로 10년 뒤에요.”

    “네?”

    “지난번에 미리 알아뒀는데, 부동산 관심 있으면 사 두세요. 평당 3만원도 안되는 곳입니다.”

    훗날 평당 70만원 대까지 호가하니 지금 말하는데 나름 고급 정보였다.

    10년 동안 기다리지 않아도 잘만 가지고 있으면 10배는 우습게 오를 구역이니 말이다.

    “아, 네··· 고려해보겠습니다.”

    “꼭 사세요. 노후대책은 확실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이사님.”

    그날 저녁 거나하게 취한 재환은 걸어서 호텔로 향했고, 체크인한 다음 곧바로 침대에 누웠다.

    “후우-”

    아직 전화는 없었다.

    “몸이 단 쪽이 먼저 움직이겠지.”

    재환은 그것을 생각하고 피식 웃었다.

    김범준은 더는 경선과 협상을 하지 않고 재환의 명함을 건네줬다고 한다.

    그리고 혜성해운 역시 할 말은 다 했으니 지금쯤 밤새 회의를 하면서 어느 쪽이 자신들에게 이득이 될지 생각할 것이다.

    다음날 편하게 한숨 잔 재환은 옷을 갈아입고 조용히 아침 식사를 즐겼다.

    그리고 점심까지 뉴스를 보거나 신문을 보면서 부도가 나는 회사들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RRRR-]

    그 순간 재환의 휴대폰이 울렸다.

    역시 전화가 먼저 올 줄 알았다는 듯이 받았지만, 그것은 회사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었다.

    [재환아. 엄마야.]

    “네,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이긴~ 지난번에 우리 아들이 준 건강검진권 가지고 병원 왔다가 연락했지.]

    “아, 어떻게 결과 잘 나왔나요?”

    재환은 바쁘게 움직이던 시절에 현규에게 받았던 건강검진권을 떠올렸다.

    서울대에서 우수 동문들에게 나눠준 건강검진권이라고 하는데 삼신의료원이 있는 삼신에게는 필요 없는 거라고 받은 것을 부모님에게 드렸었다.

    “어디 이상한 거 없죠?”

    [옛날에 용종 떼어낸 자리 봐도 이상한 거 없대. 혈당만 조금 조심하라고 하더라고.]

    “휴우~ 다행이네요.”

    과거의 삶에서 암으로 돌아가신 분이니 지금부터라도 건강관리는 케어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간하고 위가 조금 안 좋다고 하시더라. 술 줄이라고 의사한테 한 소리 들었어.]

    경영 이야기는 아니어도, 이것 역시 중요했다.

    그래도 부모님 두 분 다 큰 문제는 없다고 하니 내년부터는 한 10년 치 건강검진권을 가져다가 정기적으로 받게 해드려야겠다.

    “앞으로도 건강 조심하세요. 올라갈 때, 영양제 좀 사서 갈게요.”

    [아이고, 너도 챙겨. 매일같이 열심히 일하는 건 좋은데, 건강도 중요해.]

    “네~ 네~ 알겠습니다.”

    부모님 건강은 확인했으니 슬슬 통화를 마치려고 했을 때 명숙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참, 그러고 보니 병원 갔다가 최 회장님 만났지 뭐니?]

    “네?”

    [경선그룹 최 회장 말이야. 미국에서 암 치료 중에 잠깐 한국 오셨다고 하더라고.]

    “···.”

    재환은 경선그룹 최 회장이 갑작스럽게 귀국해서 서울대병원에 있단 말에 곧바로 외쳤다.

    “거기 아버지 계세요? 바로 바꿔주세요.”

    [어, 어?!]

    “엄마, 빨리요!”

    아들의 다급한 요청에 명숙은 어리둥절하면서 잠시 후 희경을 바꿔줬다.

    [어, 뭐야?]

    “건강검진 잘 끝내셨죠?”

    [지방간이 있다더구만, 술 좀 줄여야지.]

    “네, 그건 나중에 말하고요. 다급하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회사문제에요.”

    회사문제라는 말에 희경은 흠칫해서 되물었다.

    [뭐야, 혜성해운 협상이 잘 안 되냐?]

    “협상하려면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해요. 지금 병원 근처에 경선 최 회장님이 계시다고 했죠?”

    [어, 바로 옆자리에 계신다.]

    재환은 그 말을 듣고서 주먹을 불끈 쥔 채 ‘그 이야기’를 꺼내버렸다.

    “그럼 이것만 들으세요. 아버지하고 혜성 뒤통수 쳤던 ‘성윤규’가 잘린 다음에 바로 경선 갔습니다.”

    [뭐, 뭐야? 야, 너 그 말 진짜냐?]

    “네! 그러니까 옆에 분과 대화 어떻게 하실지 기다리겠습니다! 이따 서울에서 뵈요!”

    재환은 통화를 마친 뒤로 시간을 본 다음에 숨을 길게 내쉬었다.

    “오늘 안에 경선그룹 연락 무조건 올 거다.”

    ***

    [R-RRRRR-]

    그날 점심 갈비탕 집에서 밥을 먹던 중 테이블 위의 휴대폰이 마구 울렸다.

    “여보세요?”

    [아, 혜성그룹의 신 이사 되십니까?]

    호탕하고 걸걸한 목소리의 사내였다.

    “네, 맞는데요?”

    [제대로 전화 걸었구만, 나 경선그룹의 최 대표입니다.]

    ‘···최대현 부사장?’

    성윤규 이야기를 최 회장에게 했을 테니 아들 대현도 들었을 것 같은데 놀랍도록 차분한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듣고 있어요?]

    “아, 네. 최 부사장님. 그렇지 않아도 연락드리려고 했습니다. 계열사 인수합병 문제로 연락해주신 거 맞습니까?”

    [그래요. 이왕이면 빨리 만났으면 좋은데, 시간이 언제쯤 괜찮을까요?]

    적극적으로 먼저 달려오는 최대현의 전화에 재환은 쿨하게 답했다.

    “언제든 좋습니다. 오늘이건 내일이건 말입니다.”

    [그래요? 그럼 잘됐네. 내친김에 오늘 저녁에 이야기합시다. 광장동에 있는 경선호텔에서 여섯 시 어때요?]

    충분히 넘치는 시간이었다.

    “네, 그렇게 하죠.”

    재환은 통화를 마치고 김 기사에게 말했다.

    “기사님 빨리 움직여야겠습니다. 오늘 6시 서울 경선호텔에서 회동있어요.”

    “알겠습니다. 곧바로 차 준비하겠습니다.”

    재환은 혜성해운 평택지부하고는 나중에 말하기로 했다.

    “그래도 본사에 말은 해 둬야겠지.”

    재환은 그것을 염두에 두고 기획실과 서울 혜성해운 본사에 전화를 두 통 남겼다.

    ***

    저녁 6시가 되었을 때, 재환은 경선호텔 지배인의 안내를 받았다.

    한강의 야경이 돋보이는 레스토랑에서 기다리고 있는 최대현이 보였다.

    최대현 부사장은 180이 넘는 키에 100kg에 육박하는 큰 체구에 대비되는 서글서글한 인상이었다.

    “아, 오셨군요.”

    대현이 먼저 일어나서 반갑게 손을 내밀자 재환은 악수한 뒤로 창가에 앉았다.

    “경선호텔은 언제봐도 경치가 좋습니다?”

    “하하하, 그래서 이 호텔을 인수한 거니까요.”

    호탕하게 웃는 최대현은 여유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자~ 곧바로 이야기 시작하고 식사나 하실까요?”

    대현은 수천억이 오갈 수 있는 사업 이야기를 너무나도 쉽게 꺼냈다.

    이제껏 대기업의 오너 일가들은 초면에 만나서 적당히 주변 이야기도 하고, 근황도 물으면서 한두 시간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서서히 꺼내는데 대현은 정반대의 유형이었다.

    ‘그만큼 계산이 미리 끝난 상태다 이거겠지. 그리고 아직도 성윤규 문제는 안 꺼냈고.’

    이렇다면 상황은 두 개였다.

    최대현이 최 회장 아들이긴 해도 모르는 상황에서 경영진이 성윤규 포섭한 것, 그게 아니라면 다 알면서도 사업 이야기에서 일부러 태연한 척을 보인다는 것.

    재환은 그런 최대현에게 바로 승부를 보기로 했다.

    “네~ 사업 이야기. 저도 좋습니다.”

    “저희가 혜성의 김범준 대표에게 먼저 혜성건설 인수에 대해 논의 드렸는데, 그분이 신재환 이사를 말하더군요.”

    “네, 그래서 말인데 경선의 혜성건설 인수는 없을 겁니다.”

    “!”

    재환은 그 자리에서 철벽을 치고 혜성건설에 인수해 대한 이야기를 끝냈다.

    “저기··· 지금 혜성건설 매각을 거부하신다고 하신 건가요?”

    “네, 맞습니다.”

    여유 넘치던 최대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해지고 있었다.

    오늘을 위해서 자리를 준비하고, 약속장소까지 잡아놨는데 만난 지 10분도 안 돼서 이런 소리를 하니 열 받을 만 했다.

    “하, 하하. 조금 당황스러운데요?”

    “죄송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혜성건설이 경선에게 인수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제는 재환이 느긋하게 앉아있고, 대현의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저 사람이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하더라도 재환은 느긋했다.

    “그럼 여기 오신 이유가 뭡니까? 피차 서로 바쁜 몸 아니에요?”

    최대한 분노를 억누르고 차분하게 말하는 대현에게 재환은 몸을 기울여 가까이 눈을 마주친 다음 말했다.

    “저는 건설은 넘기지 못해도 해운업에 대해서 경선과 논의하고 싶어서 온 겁니다.”

    “!”

    뜬금없는 역제안에 대현의 눈썹이 다시 움직였다.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어? 삼신의 이현규 친구라더니만, 완전 제멋대로 움직이는 놈인데?’

    대현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재환은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현재 경선이 건설만큼이나 중시하는 사업이 있죠. 석유화학 아닙니까?”

    “아, 그렇게 생각해요?”

    대현이 일부러 퉁명스럽게 대답했지만, 재환은 동요 없이 말을 이어갔다.

    “현재 민영화된 대한석유공사와 대한해운, 그리고 경선 가스가 합쳐서 종합 석유화학기업을 만드신다고 들었습니다.”

    “!”

    그건 내부에서도 종합기획실에서 논의했던 일인데 그 아이디어를 구상한게 최대현이었다.

    “훗, 그래요. 경선에 대해 공부 많이 하셨군요.”

    “저는 사업 논의를 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분석하고 대화에 임합니다.”

    재환의 말에 건설업 매각논의를 파토낸 것에 대해 대현은 조금이나마 화가 풀렸다.

    “하지만 말이죠. 저희가 혜성해운을 딱히 인수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저희가 원하는 건 LNG선과 유조선의 해운업이지, 컨테이너선 몇척 운영하는 소규모 해운엔 관심 없습니다.”

    딱 잘라서 말한 대현을 향해 재환은 이미 계산대로라는 듯 말했다.

    “그럼 LNG선이랑 유조선 끼워 드리면 인수하시겠습니까?”

    “네?”

    “경선이 혜성해운을 인수하신다면 혜성그룹의 이름으로 석유화학에 도움이 될 배를 구매해서 덤으로 껴 드리죠.”

    “!”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구미가 당길만한 일이었다. 어차피 석유해운에 대한 노하우는 대한해운이 있으니 터미널이 늘어나면 더욱 이득이기 때문이다.

    “하, 하하··· 혜성해운은 그쪽 사업하고는 관련 없는 일반 화물운송만 하셨잖아요?”

    “네~ 그래서 매각을 위해 석유화학쪽을 생각했죠. 최근에 상윤그룹 구조조정 들어간 것 아시죠? 거기에서 상윤해운에게 중고 LNG선과 유조선, 그리고 물류터미널을 인수하려고 합니다.”

    “!”

    이것은 재환이 평택에서 서울에 올라갈 때 아버지와 논의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런다고 경선이 건설 대신 해운을 사가겠냐?’라는 말이 있었지만, 재환은 ‘아버지가 상윤과 협상해서 해운의 배들을 가져오시면 무조건 자신이 팔겠다.’라는 이야기까지 끝냈다.

    “현재 저희 아버지, 즉 혜성그룹의 신희경 회장님께서 상윤그룹과 협상해서 배들 인수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대현은 빠르게 머리 회전을 했다.

    ‘흐음··· 서해안에 알짜 터미널을 가지고 있으니 차후 중국 쪽 수출도 생각해야 하고···. 거기에 덤으로 오는데 유조선이랑 가스선이면··· 중고라도 몇 년 써먹을 수는···’

    분명 약속을 잡고 여기 올 때만 하더라도 혜성건설을 반드시 손에 넣겠다는 의욕으로 왔는데 지금은 혜성해운 인수에 대해서 흥미를 느끼게 된 대현이었다.

    재환은 그것을 두고 쐐기를 박기로 했다.

    “자~ 그럼 나머지 이야기는 식사하면서 해도 되겠습니까? 제가 혜성해운의 평택사업소에서 바로 올라온 지라 배가 좀 고프네요.”

    4시간 동안 남영동 본사에서 회의를 마치고 왔지만, 대현에게 일부러 던져본 제안.

    그리고 그것은 먹혔다.

    “···흐음, 네. 그러죠. 우리 저녁을 먹으면서 혜성해운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봅시다.”

    ‘먹혔어!’

    재환은 지금 이 순간 혜성해운은 매각 성공했다고 쾌재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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