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19화 (19/244)

19- 내가 직접 다녀올게.

재환은 다음 날 아침 일어나 아버지에게 ‘경선그룹’에 대한 이야기를 일단 비밀로 하기로 했다.

“너, 인수 진행 잘 되는 거야?”

“네, 문제없어요.”

“쯧, 베팅 길게 하지 말고 빨리 진행해라. 잘못하면 철회건 날 수도 있겠다.”

“네~ 알겠습니다.”

물론 재벌가 사이에서 금방 이야기가 나오긴 하겠지만, 이미 협상 담당자인 재환과 범준이 함구하고 있으니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획실에서 어제의 그 해운사 프레젠테이션 준비에 매달렸다.

다들 피곤함에 젖어있어서인지 재환은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한 잔 돌리고 먹으면서 일하라고 다독였다.

“그래도 먹을 거는 잘 챙겨주네.”

“이거라도 해 주는 게 어디야? 빨리 끝내자고.”

재환이 없는 사이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직원들은 일에 몰두했다.

그때 재환은 세 명의 사장단과 회의를 하고 있었다.

“아니, 건설사도 마이다스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는데, 해운이 그런다고요?”

“죄송합니다. 이사님.”

혜성해운의 이중선 부사장은 고개 숙여 현 상황에 대해 사과했다.

“난감하긴 하네요. 해운노조가 움직인다니.”

아직 민주노총이 정식으로 인가받기까지 2년이나 남은 기한이었다.

‘전노조인가···.’

재환은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머리를 부여잡았다.

민주노총의 전신이자 90년대 금속노조와 항운노조를 중심으로 일어난 노동조합이었는데, 대다수의 운동가 출신이 훗날 정치계의 거물이 된다.

“하~ 이래서 노조란··· 확 쓸어버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혜성건설의 노병각이 한마디 했지만, 재환은 손을 들었다.

“긁어 부스럼 나면 큰일 납니다. 현장에서 들고 일어났다는 건 그 사람들도 배수진 친 거예요.”

일단 차분하게 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배경이 필요했다.

“이 대표님. 이유가 뭐라고 합니까?”

“건설사는 어떻게 설득이 되었지만··· 해운은 마이다스 같은 규모의 회사에 인수되는 것을 결사반대한다고···.”

“위나 아래나 똑같군요.”

한 끗발 낮은 회사가 모기업이 되는 것을 극히 거절하는 마인드는 오너뿐만 아니라 밑에 있는 베테랑도 똑같은 듯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대기업 사원의 프라이드가 웬 듣보 중소기업에 넘어가서 그들의 오더를 받는다는 것이 불쾌할 일일 테니 말이다.

“더군다나 지금의 혜성그룹 내 복지를 생각한다면, 아무리 협상을 잘 한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회사입지는 점점 더 축소될 것이라 합니다.”

“네, 그렇겠네요. 그럴 일 없을 거라고 말해줘도 안 믿겠죠?”

“그렇게··· 보입니다.”

“차 준비해주세요.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재환이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

“지금 가장 시끄러운 곳이 평택항이라고 했죠?”

“네, 그 뒤로 낌새가 보이는 곳이 인천하고, 당진 쪽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평택으로 제가 출발하죠.”

“실장님. 저도 동행하겠습니다.”

중선도 같이 가려 했지만, 재환이 만류했다.

“아닙니다. 여기 남아서 프레젠테이션을 계속 진행하세요.”

“네?”

“하세요.”

재환은 자신이 직접 움직이기로 했으니 다른 임원들이 필요 없었다.

그리고는 기사를 부르고 곧바로 평택을 향해 달렸다.

“한 100km쯤 되지? 평택이.”

“평택항까지 간다면 그 정도 될 겁니다.”

“흐으음~”

기사의 말을 들은 재환은 조수석에서 생각에 잠겼다.

‘평택 하니 옛날 생각나네···’

재환이 삼신전자에 있던 시절 세계 최대 규모의 삼신 산업단지를 짓는다는 프로젝트에서 평택시가 낙찰되어 88만평 규모의 반도체공장을 지었을 때를 떠올렸다.

그 당시 재환은 부사장직으로 그 프로젝트를 완수해내 사장으로 올라갔다.

‘삼신이 이 세상에서도 반도체로 계속 뜬다면 그 땅은 적당히 팔게. 어차피 우리는 다른 쪽을 노릴 거니까.’

재환은 그것을 생각하면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만약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으면 저 일대 매입해서 공장 짓겠지만 말이야.’

하지만 차 안에서 잠시 쉬려고 할 때 전화가 왔다.

누구인가 봤더니 현규였다.

“어, 현규아.”

[재환아. 좋은 정보가 있는데 하나 들어봐.]

지난번 해운업 매각에 관해 이야기했던 것이 드디어 결과가 나왔나 보다.

[지금 해운이 필요한 회사가 하나 딱 있어.]

“용도는 뭐래?”

[가스선하고, 유조선, 그리고 자회사에 있는 경공업 제품들을 수출하는 용도야. 해양플랜트도 있고.]

“으흠~”

종합기업이라면 오히려 해운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석유화학과 경공업을 다루는 기업이 10대그룹 중에서 네다섯 곳 되었다.

“그래서 어디야? 내가 알만한 이름이지?”

재환의 물음에 현규가 대답했고, 재환은 수화기 너머의 그 이름을 들었을 때 눈썹이 약간 흔들렸다.

“···진짜야?”

[일단은 그래. 너희 이야기는 안 했고, 그곳이 해운회사 인수 고려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좋아! 그 정도면 충분해. 나머지는 내가 협상해서 해결해야지. 짜식, 고맙다.”

[하하, 뭘 그런 것 가지고. 다음에 술 한잔하자고. 딱 ‘그때’ 맞춰서 말이야.]

“오케이!”

재환은 통화를 마치고서 입가에 미소가 생겼다.

“노조는 바로 끝낼 수 있겠구만.”

재환은 일이라는 게 하다 보니 참으로 쉽게 흘러간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잠깐 눈을 붙였다.

“이사님. 도착했습니다.”

“으음, 그래요?”

평택까지는 빠르게 도착했으나 그곳에서 평택항의 혜성해운 터미널까지 가는 데는 시간이 꽤나 걸렸다.

재환이 내려서 서해안을 한 번 둘러보자 짠 바닷내음이 확 풍겼다.

“돌아가기 전에 회나 한 점 때리고 가야겠다.”

회를 먹든 매운탕을 먹든 일단은 혜성해운 노조와 하는 이야기가 중요했다.

[혜성해운 각성하라!]

[우리는 버리는 패가 아니다!]

[위기는 경영진이! 피해는 현장직이?]

[우리는 혜성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애사심 한 번 넘치는 현수막들이었지만, 실제 속내는 다르다는 것을 들었으니 재환에게는 우스운 일이었다.

재환은 먼저 사무실로 들어갔다.

여직원이 홀로 뭔가를 계속 적고 있다가 재환을 발견하고 물었다.

“네, 어떻게 오셨죠?”

“본사에서 왔습니다. 지금 지부장님을 만나고 싶은데요.”

“네? 아, 잠시만 기다리세요.”

카운터의 여직원은 황급히 전화했고, 잠시 후 다급히 달려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잠시 후 모두가 사무실로 오게 되었다.

“먼저 인사드리겠습니다. 현재 혜성해운 평택지부를 맡은 최두성이라고 합니다.”

본사에서도 이사대우를 받는 두성은 그 뒤로 한 명씩 소개했다.

“여기 이 분이 혜성해운 평택터미널을 맡은 염준식 팀장이고, 여기가 노조를 맡은 이영오 위원장입니다.”

셋 다 50대 초중반에 다들 눈매가 날카로웠다.

그나마 지부장인 최두성은 온건파로 보였지만, 준식과 영오는 정말로 타협 따위는 없다는 얼굴로 재환에게 기 싸움을 걸고 있었다.

두성의 소개가 있는 뒤로 영오가 먼저 말했다.

“신재환 이사라고 하셨죠? 신 회장님의 아드님이라 들었습니다.”

“네, 회장님의 유일한 외아들이지요.”

“그런 분이라면 더 들으셔야죠! 혜성그룹이 이러면 안 되는 겁니다!”

격한 반응을 보이는 영오의 옆으로 준식도 말했다.

“이사님. 저희 혜성해운 지금까지 모두 잘 해왔습니다. 수익도 준수했고, 지금은 시국 때문에 조금 위기이긴 하지만 이렇게 함부로 매각될 회사가 아닙니다.”

“그래요! 우린 여기 계속 남고 싶소이다!”

타협은 없다는 식으로 강경하게 나오는 반응을 보고서 재환은 뺨을 긁적였다.

“뭐라고 말 좀 해 보시지요? 저희가 원하는 것은 혜성그룹의 해운사 매각 철회입니다.”

노조위원장이 특히 싸움닭처럼 덤벼드는 것을 보고서 재환은 잠시 정리한 다음 말했다.

“자, 그렇다면 혜성해운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끝까지 가겠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자 재환은 오기 전에 현규한테 전화를 받은 게 정말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하고 천천히 말했다.

“흠~ 좋습니다. 그럼 일단 이야기만 들어보시죠. 혜성해운에 대해서 인수를 원하는 기업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희는 그런 거 신경 안 쓴다니까요?”

“마이다스, 그 콩알만 한 곳이 저희를 감당이나 할 수 있을 거 같습니까? 멋대로 매각해보십시오. 해운노조 전부 다 드러눕는 거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재환은 환기를 시킬 겸 박수를 한 번 치고 말했다.

“자~ 그럼 한 번 따져봅시다. 지금 혜성해운에 대해서요.”

재환은 이 자리에서 이들에게 확실하게 우위를 가지기 위해 말했다.

“먼저 혜성해운은 과거 목포에서 시작한 ‘목포중앙상선’이 그 전신이었죠. 여기에도 그 출신 분이 계실겁니다.”

그 말에 노조위원장인 영오가 흠칫했다.

비록 마지막 1년이긴 했지만, 재환이 말한 그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때 목포중앙상선은 그렇게 좋은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연안해운을 중심으로 했지만, 그때 육로수송도 힘든데 해로는 더 심했죠. 제주도만 겨우 다니다가 결국 정부에 의해서 강제로 대아상선과 합병됐습니다. 그때 이름이 대아해운이었죠?”

“!”

영오가 흠칫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평택터미널을 맡은 준식이 흠칫했다.

바로 그가 목포중앙상선과 대아상선의 합병 시절에 입사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적자투성이 두 회사 합병해서 어찌어찌 나가나 했는데, 또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87년 우리 혜성그룹이 과자와 라디오 수출을 위해서 인수한게 지금의 혜성해운입니다.”

혜성해운에 있는 역사를 모두 외우면서 말하자 세 명은 재환이 절대 아버지 빽을 믿는 풋내기 기조실장이 아니란 것을 직감했다.

“그래서 컨테이너선으로 운용을 했는데, 이게 계륵이었어요. 적자가 크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수익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그 해결책을 위해 현재 유조선과 LNG선에 대한 수출 항로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

“저, 저기 실장님? 그런 플랜이 있다면 왜 본사는 매각 의사를 밝히시는 겁니까?”

지부장인 최두성의 물음에 재환은 그 상황에 대해서도 말했다.

“상황이 안 좋으니까요. 눈 뜨고 일어나면 부도 나는 회사 명단이 수두룩해서 도저히 그럴 상황이 아닙니다. 큰 그림 그리려다가 연필이 부러지게 생겼어요.”

재환의 말에 의해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럼 결국 타협은 없는 거 아닙니까?”

영오는 다시 파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재환은 거기에 몇 마디 더 붙였다.

“하지만 그 큰 그림을 같이 그려주실 혜성해운의 새 주인이 나올 것 같습니다.”

“마이다스는 안 된다니까요?”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제가 마이다스에 혜성해운을 판다는 이야기를 한마디라도 한 적이 있습니까?”

“!?”

사실이었다.

혜성건설은 마이다스와 협력을 하고 있다고 해도, 혜성해운은 아니었다.

“더 큰 기업입니다. 열 손가락 안에는 꼽힐 수 있는 기업이에요. 그리고 지금 협상을 하고 있어 혜성때보다 더 좋은 조건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사님··· 마이다스가 아니라··· 다른 기업이라고요?”

“네, 건설하고 해운은 다르니까요.”

재환은 거기에 관해 이야기 한 다음에 한 번 지켜봤다.

노조위원장인 영오는 그래도 아직은 탐탁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10대 기업이 인수를 생각한다는 말에 두성과 준식은 눈이 돌아가는 것이 딱 보였다.

‘저 둘을 노리면, 노조야 해결할 방법이 많이 있지.’

어차피 지금은 타이밍 싸움이었다.

“이사님. 그 회사가 어디입니까?”

“기획실에서 준비하고 있는 거니 비밀입니다.”

재환은 그러면서 주도권을 잡으며 자신의 조건을 말했다.

“제가 이곳에 직접 온 것은 몇 가지 당부의 말씀이 있어서입니다.”

그리고는 재환은 먼저 노조의 파업부터 끝내기로 했다.

“지금 당장 파업 끝내세요. 그리고 생업에 돌아가세요. 안 그러면 협상에서 노조만 인수회사에서 고용 승계가 안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게 될 거 같습니까?”

“당장 해볼까요?”

노조위원장을 지긋이 바라본 재환이었고, 영오는 결국 한 발짝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러분께 인수회사 이야기를 못 드리는 이유는 언론사의 쓸데없는 설레발과 사전에 협상하려고 하는 깨방정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아세요.”

한 번 주도권을 잡았으니 이제는 재환이 요청한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그들이었다.

“그리고 노조뿐만이 아니라 평택 사업지부의 전 사 직원들에게 현 고용승계를 가지고 10대 대기업에 인수될 시 찬,반 투표를 해주세요. 그 결과에 따라 어디로 매각할지는 고려해보겠습니다.”

할 말을 다 마친 재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상입니다. 저는 다른 일이 있어서 가봐야겠군요.”

“이사님! 바로 서울로 올라가시는 겁니까?”

셋의 다급한 질문에 재환은 느긋하게 말했다.

“여기서 회나 한 접시 먹고 가기로 했거든요. 그리고 따로 할 일도 많으니 천천히 기다릴 셈입니다.”

그 말에 다시 한번 세 간부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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