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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재벌의 삶!-16화 (16/244)
  • 16- 모든일엔 대가가 필요해.

    재환은 맥주를 마시면서 자신에게 진지한 눈으로 묻는 현규를 바라보고 웃었다.

    “너 디스램 때문에 그러는 거구나?”

    “···그래.”

    디스램은 현재 세계 반도체 업계에서 D램시장의 거물로 유명한 회사였다.

    원래는 그렇게까지 크진 않았지만, 업계 1위이자 이후에도 강력한 위상을 가진 다국적 반도체회사 인터콘과 협력을 맺어 CPU와 반도체를 종합 생산하는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삼신그룹은 삼신전자를 앞세워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D램 시장에서 인터콘과 삼신은 협력업체였지만, 그들이 삼신 대신 디스램과 손을 잡는 순간 자신들이 버려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진지하게 물을게. 진짜 알고 그런 거야?”

    현규가 매우 차분하게 물었지만,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고 있을 것이다.

    왜냐면 계속되는 미국시장의 견제에 열 받은 삼신전자가 아예 현금을 대규모로 투입해서 디스램을 아예 인수해버리려 했다.

    256MB의 D램을 단독개발하고 1GB의 D램 사업도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삼신이 노릴 수 있는 최고의 수였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갑자기 국내에서 디스램의 주식을 사들인 이가 있었는데, 그게 재환이었다.

    원래였으면, 고객이 산 주식 내용을 공개한 상황이었지만, 수뇌부가 아는 사람이고 현규가 그래서 온 것일 거다.

    “그럼 내가 이야기해도 되냐?”

    “아, 그래. 꼭 듣고 싶어.”

    재환은 맥주 하나를 더 시켜서 한 잔 따른 다음 쭉 들이키고 천천히 말했다.

    “우리도 전자 산업 하는 거 알지? 물론 아직은 기술이 부족해서 수입산 라디오 조립하고, TV는 진출도 못 했어.”

    “그래서 반도체를 노리고 혜성에서 매수한 거야?”

    “아니, 그냥 내가 미래를 보고서 개인 돈으로 한 거야. 시드머니!”

    재환은 품 안에서 자신의 통장을 흔들었다.

    “디스램과 삼신의 관계는 신문만 봐도 알 수 있었지. 그래도 나는 개미 수준밖에 안 샀거든?”

    “···슈퍼 개미겠지.”

    “그럼 어떻게, 너한테 그냥 넘길까?”

    “!?”

    현규는 그렇게 쉽게 재환이 가진 디스램 지분을 넘기겠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분명, 이 일로 인해 집안에서는 혜성에 대해 불같이 화를 냈는데, 너무 쉽게 해결된 것이었다.

    “딱 한 달, 그때까지만 가지고 있을게. 원한다면 여기에서 각서를 쓰게 해도 좋아. 지장으로 찍을게.”

    “아, 아니! 잠깐만! 그렇게 쉽게 팔 거였어? 그 큰돈 들여서?”

    현규의 말에 재환은 씨익 웃었다.

    “우리 사이에 이 정도 양보는 당연한 거 아니냐? 그리고 주권 개인 거래는 너나 나니까 할 수 있는 거지.”

    그 말이 현규를 움직였다.

    그리고 역시 이 녀석이 자기 친구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했다.

    “그, 그래··· 우리 사이에···.”

    “삼우일보 떠나고 삼신전자 경영진에 합류했다더니, 반도체부터 시작하려는 거 맞지? 그럼 기꺼이 도와줘야지.”

    “하하, 그래··· 정말 고마워.”

    “단 부탁할 게 세 개 있어.”

    “그래! 뭐든지 말해봐. 내가 들어줄게.”

    재환은 현규를 향해 손가락 세 개를 펼치고 말했다.

    “첫째, 아까 말한 대로 딱 한 달만 시간을 줘. 그다음에 너한테 넘길게. 원래 1, 2년 묵힐 거였는데 지금 파는 거야.”

    한 달이라면 그동안 주가가 많이 오르기는 하겠지만, 두 배까지 오른다 하더라도 현규 선에서 감당 가능했다.

    디스램이 별안간 2GB D램을 만들어 기적같이 한 달 만에 10루타라도 치진 않고서야 말이다.

    “두 번째, 우리 지금 건설하고 해운사 매각하는 거 알지? 좋은 자리 좀 알아봐 줘.”

    “어, 어?”

    “양반장사를 좀 해야겠어. 거기에 있어서 삼신가의 인맥은 국내 최고잖아?”

    “그렇긴··· 하지.”

    재환이 동성그룹과 빅 딜을 한 것에 대해 이미 그 능력은 알고 있었다.

    거기에 자신이 도움을 줘서 혜성의 해운사 매각을 수월하게 이끈다면 자신이 재환에게 ‘은혜’ 하나를 지게 해주는 거다.

    “그건 내가 바로 알아줄게. 미전실(미래전략실) 삼촌들이라면 그런거 알아주는 건 쉬우니까.”

    “핫하! 고마워 베스트 프랜드.”

    일단 이 정도만 해도 재환이 절대 손해 볼 일은 없었다.

    정확히 석 달 만에 디스램 주가는 4배로 뛰고, 훗날 20배까지 뛰지만, 그거 팔고 다른 닷컴 회사에 투자하면 그 정도 돈 마련은 쉬웠다.

    그걸로 개인 종잣돈을 조금 불린 다음에 해운사도 도와준다면 아주 땡큐였다.

    “마지막은 뭐야?”

    “세 번째는 이거야. 연말에 자리 하나 마련해 줘. 너희 집 가서 저녁 식사 한번 하고 싶다.”

    “어, 어?”

    이건 너무 쉬운 일이었다.

    재환은 학창시절에도 자신의 평창동 집에 몇 번 왔었고, 지금은 돌아가신 삼신의 창업주 이인철 명예회장에게도 인사를 했던 친구였다.

    “그거면 돼?”

    “그냥 너희 가족들 모두 모일 때 나도 가서 한 끼 먹게. 꼭 연말에 말이야.”

    “그래, 그건 바로 준비할 수 있어. 그 세 개면 되는 거야?”

    “물론이지. 그럼 정확히 내가 주식 매각할 날을 너에게 알려줄게.”

    재환은 입을 가리고 현규의 귓가에 매각할 날을 정했다.

    그리고 그 전날에 이현규는 디스램 풀 매수를 할 것이다.

    ‘열심히 해봐~’

    디스램의 인수는 결국 국내의 외환위기로 인해 실패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이 거래가 성사되면 삼신이 손해 볼 것은 없었다.

    디스램이 삼신의 주력인 D램에 대한 특허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역으로 삼신 역시 풀매수를 하고, 재환의 주식까지 받는다면 디스램의 지분을 가지고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

    결국, 물고 물리면서 삼신이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대신 반도체 말고 삼신이 실패했던 사업 하나를 이 자리에서 부활시켜줄게.’

    재환은 이미 거기까지 계산을 끝내고 있었다.

    통닭 한 마리씩 맛나게 먹은 재환과 현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계산이요.”

    “야, 내가 불렀는데 왜 네가 계산을 하려고 해?”

    현규는 곧바로 재환을 붙잡고서 자신이 지갑을 꺼내 계산했다.

    그리고는 차까지 두 대 준비해서 하나는 재환이 타고 양재동까지 보내줄 기사가 대기했다.

    “이사님. 모시겠습니다.”

    “이런 건 또 언제 준비 한 거야?”

    그러자 현규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택시 타고 왔다길래 가는 길은 기사 준비했어.”

    “진짜 꼼꼼하네. 고마워 친구~”

    재환은 현규와 악수를 하고 준비한 차의 뒷좌석에 탔다.

    “휘유~”

    “양재동으로 모시겠습니다.”

    “네, 주소 부를게요.”

    재환은 차에 탄 상태로 녹두거리를 나섰다.

    그의 입가에는 계속해서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

    다음 날 재환은 기획실에 들어왔다.

    “실장님, 이 기사 보셨습니까?”

    “흐음.”

    박 팀장의 말에 재환이 신문을 살펴보자 예상했던 기사가 올라왔다.

    [마이다스 건설! 혜성건설 인수하겠다!]

    [승부사 오현우, 혜성건설 인수를?]

    [‘내가 인수한다!’ 지방 건설사의 당돌한 선언!]

    여러 신문사가 너나 할 것 없이 나오는 기사들.

    이로인해 혜성건설의 주가는 요동치고 있었다.

    떨어지다 올라가기를 반복하고, 마이다스 건설에 관한 이야기가 경제지 케이블 방송으로 나오고 있었다.

    [마이다스 건설. 이곳이 수도권 분들이 모를 수는 있어도 호남권에서는 탄탄한 건설사거든요?]

    [네, 그렇다면 경제위원께서는 같은 호남 기업들끼리 빅딜이 한 번 더 있을수 있다는 말일까요?]

    [글쎄요. 일단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상황일지, 다윗이 골리앗을 잡는 상황일지는 봐야 될 것 같습니다.]

    “둘 다 아니야! 사업가 대 사업가라고!”

    어느 쪽이든지 꼭 삐딱하게만 보려는 인간들은 있었고, 그들은 대다수가 언론인들이었다.

    그것을 휴게실에서 보던 다른 임직원들은 눈치껏 재환의 근처에서 자리를 피했다.

    재환은 그것을 눈치채고 혀를 차며 자신도 나섰다.

    회사 내에 있는 흡연실로 가서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물었다.

    틱- 틱- 치익-

    “후우우~”

    재환이 분노의 흡연을 하고 있을 때, 그 뒤에서 조용히 다가오는 이가 있었다.

    “아이고, 신 실장님!”

    “?!”

    재환이 돌아보자 거기에는 아주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아, 임 이사님.”

    “이제는 전무입니다? 하하하!”

    전 기획실장이자 재환이 성 전무를 쳐내서 재무실 총괄임원에 오른 임창훈은 언제나 같은 호쾌한 웃음으로 다가왔다.

    “네, 승진 축하인사도 못 드렸네요. 임 전무님.”

    “아니에요. 저도 신 실장님 승진 축하 못 했잖습니까?”

    그리고서는 창훈도 자연스럽게 담배를 물어 둘이서 맞담배의 시간을 가졌다.

    “···요새 힘드시죠?”

    “안 힘든 임원이 어딨겠습니까? 하나하나가 회사의 중역을 맡아야 하는 사람들인데.”

    “그것도 그렇지만··· 건설사 매각 문제 때문에요.”

    “!”

    창훈도 마이다스의 이야기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재환은 이 양반이 눈치채고 말한다는 것을 보고서 슬그머니 말했다.

    “아버지는 김범준 대표를 통해서 대기업을 통해 매각한다고 하시더군요. 근데 제가 더 비싸게 팔거에요. 적어도 200억은 더···.”

    재환의 말을 듣자 창훈은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네, 그런다면 이사회에서 제가 안건을 올려 진행해야겠네요. 이사님도 아시잖아요? 목구멍에서 손이 튀어나와 돈을 뽑는데 지금 시국입니다. 눈치 볼 상황이 아니죠.”

    “와~ 진짜 대화가 통하는 임원분이 있다는 게 이렇게 반갑습니까?”

    재환은 90년대에도 열린 마인드로 기업의 명예보다는 돈을 우선순위로 해서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마인드의 임원을 한 명이라도 만난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실장님. 근데 말입니다.”

    “네?”

    “혜성그룹은 모두가 4년제의 명문대를 나오고 공채를 들어온 인재들이 온 곳입니다.”

    “네, 그렇죠.”

    “혜성건설과 혜성해운도 마찬가지입니다.”

    “!”

    재환은 그 말을 듣고서 이 사람 역시도 그것을 생각한다는 걸 알았다.

    “아무리 윗선에서 돈을 많이 주고, 사내현금을 위해 협상한다 하더라도 과연 밑의 사람들은 대기업 공채 뚫었는데 별안간에 인수된 중소기업으로 간다는 상황을 받아들일까요?”

    “흐으음.”

    “다른 대기업 오너들도 자기들보다 끗발 떨어지는 중견/중소기업에겐 회사 안판다고 어깃장 놓는데, 직원들은 어떨 것이고 그래서 전문인력의 유출은 어쩌겠어요?”

    물론 재환도 그것을 감안했지만, 그런다고 해봤자 윗선의 부장~임원급 그만두는 거로 끝날거라 여겼지만, 더 생각해보면 사람이라는게 그렇지가 않을 거다.

    “실장님. 세상에는 말이죠. 더 적은 돈을 받고도 고급 공무원이다, 대기업 사원이다, 명망있는 교수다. 하는 돈보다 명예를 찾는 친구들도 많아요.”

    “아, 네~”

    ‘괜히 혜성 망하고도 이 아저씨가 나한테 연락한게 아니었구만, 그리고 나를 삼신으로 소개시켜줬고...’

    과거에도 신세를 많이 진 분이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했는데, 현역에서 만나니 정말 생각 이상의 사람이었다.

    “전무님 이야기를 들으니 역시 생각의 폭이 넓네요.”

    적어도 아버지가 이런 이유로 반대했다면 이야기는 더 들을수 있었을 것이다.

    무턱대고 ‘거긴 안 돼!’라고 말했으니 한 바탕 싸웠던거고...

    재환의 말에 창훈은 빙긋 웃어보였다.

    “자, 제가 원래 줄담배를 안 피우지만 요거 하나만 더 피겠습니다.”

    한 대 더 꺼내고 말하려는 찰나 재환은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넣고 말했다.

    “네, 저는 이만 들어가 보려고 합니다.”

    “네, 네?! 아니 그게···”

    분명 재환과 이야기를 더 하려고 담배 한 대 더 피겠다고 이야기한거지만, 당사자는 매몰차게 떠났다.

    그러면서 재환은 창훈을 향해 말했다.

    “협상을 돈만으로 해서는 안 되는 거··· 그래요. 인수인계에 복지도 혜성과 동급, 아니면 이상으로 해줘야겠다는 조건을 넣어야겠습니다.”

    “!”

    떠나는 재환의 말을 듣고서 창훈은 불 안 붙인 담배를 들고 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휴우~ 공삿밥하고, 바닷밥 먹은 친구들에겐 그게 조율이 힘들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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