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15화 (15/244)

15- 루트는 다양해야 한다.

재환은 마이다스랑 거래하는 게 나쁘지 않았지만, 또 다른 루트가 있을 수 있으니 생각해야 했다.

그래서 다시금 물었다.

“정말 제가 앞으로 말하는 걸 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마이다스가 인수할 의지가 넘치니 일단 1순위로 생각하기 위해 지금부터 그를 띄워줄 계책을 제안한 재환이었다.

“뭘 시킬라는지는 몰라도 혜성건설 인수하려면 뭐든 하란대로 다 하것소!”

“오 사장님은 정말 야망과 소신이 크신 분이시군요.”

“그라제~ 신 이사님도 내 의지를 알겠는가?”

“네,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제가 오 사장님을 좀 바쁘게 해드리죠.”

“음마, 그게 뭔 말이당가?”

“별거는 아니고요. 그냥 ‘언론플레이’입니다.”

재환은 자신이 마이다스 건설이었다면, 인지도가 부족한 자가 큰 기업을 인수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현우에게 말해줬다.

처음에는 뭔 소리를 하냐 싶었던 오현우의 눈이 점점 커졌고, 나중에는 떨리는 손으로 계란 노른자 두 개 담긴 쌍화차 찻잔을 들다 흔들렸다.

“진짜··· 그래도 되는겨?”

“네, 지금 시국에는 됩니다.”

“이거 잘못하면 나가 다 뒤집어쓰는 거 아닌감?”

“그러면 웃돈 얹어서 인수해주세요.”

“아, 알겠구먼···.”

재환은 유익한 이야기를 나눈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사를 해주는 오현우 사장을 보니 재환은 역시 혜성건설은 저 쪽이 인수할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자~ 광주 사장님. 만난 다음에 해야 할 일이···.”

그 순간 재환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리고 발신자를 보고서 무슨일인가 싶어서 바로 전화를 받았다.

“어, 무슨 일이야?”

전화를 건 것은 현규였다.

[하하, 재환아. 오늘 저녁에 혹시 시간 있어?]

“없어도 만들어야지. 삼신의 황태자님이신데.”

[왜 그래, 부담스럽게~ 이따가 차 회사로 보낼게.]

“어, 내가 지금 외근 나가 있어서 주소 알려주면 갈게.”

직접 차를 보내줘서 안내한다는 말에 뭔가 있어 보여서 무슨 일이 있어도 찾아가기로 했다.

통화를 마친 재환은 앞으로의 스케줄을 생각했다.

“자~ 그럼 저녁 약속은 정해졌고, 나머지 일을 좀 해 볼까?”

재환은 집으로 돌아가서 컴퓨터를 좀 해보기로 했다.

무선인터넷과 노트북으로 상황 둘러보려면 아직 몇 년이 남은 게 컸다.

택시를 타고 양재동으로 갈 때, 재환은 일전에 봤던 그 ‘더 갓 세븐’의 멤버들을 발견했다.

“어? 아저씨. 여기서 내려주세요.”

“네, 손님.”

재환이 내렸을 때 그들 중 한 명인 제이준이 재환을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헤이, 미스터 재환!”

“아, 여기서 또 보네요?”

그러면서 주먹을 내민 제이준을 보고, 피스트 범프를 요구하는 것 같아서 같이 주먹을 쥐고 맞닿아 인사했다.

다른 멤버들도 달려와서 지난번 큰 도움을 줬던 재환을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여섯 명이었던 멤버들이 네 명으로 바뀌어 있었다.

재환은 혹시나 해서 넌지시 물었다.

“근데 그 여성분하고, 귀엽게 생겼던 막내분은···.”

“···나갔어요.”

네 명 중 한 명이 말하자 재환은 헛기침했다.

“흠, 흠. 미안합니다.”

하지만 제이준은 애써 밝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미스터 재환, 저희 연습실도 언제 빠지지 못할거 같아요.”

확실히 저 그룹은 양재동 숙소에서 빠진 다음 일산에 있는 폐건물에 방치되고, 그런 고생을 겪고 나서야 결국 추가멤버로 5인조로 데뷔해 ‘국민그룹’의 영예를 누리게 된다.

그때까지 이 사람들의 고달픈 연습생을 데뷔시켜주긴 힘들었고, 재환은 급한대로 제이준에게 물었다.

“밥은 먹었어요?”

“네? 아직···.”

“이 근처에 치킨집 유명한 데 있는데 같이 가시죠? 저도 가볍게 먹으려는데.”

저녁에 좋은 거 먹을테니 잠깐 뭐 좀 먹는 거는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갓식스 멤버들을 근처 치킨집에 데려간 뒤로 콜라와 치킨을 한 사람당 한 마리씩 먹는 모습을 재환은 흐뭇하게 바라봤다.

“프라이드 치킨! 정말 언제 먹어도 좋네요. 한국 닭도 튀김이 좋아요.”

제이준의 말에 재환은 같이 먹으면서 물었다.

“그러고보니 교포 같으신데, 어디 출신이세요?”

“캘리포니아. 헌팅턴 비치에요.”

“아~ 서부 사람! 나는 동부에 있었는데, 필라델피아.”

“오우~ 그래요? 헤이 씨니! 이리 와봐!”

“음?”

제이준의 사촌이자 같은 교포 출신인 씨니 안이 오자 그의 머리를 기름묻은 손으로 쓰다듬으며 소개를 해줬다.

“이 친구는 시애틀 출신이에요. 같이 음악 하자고 제가 데려왔죠.”

“아, 그래요. 같은 동네인데 자주 만나자고.”

“예, 예!”

나이도 한 살 차이에 미국에서 살다 온 경험이 있는 둘은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한층 더 가까워졌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던 중 치킨 한 마리를 순식간에 비우는 다른 세 명을 보고서 재환은 미소를 보이며 갓식스...아니 갓포 멤버들에게 말했다.

“더 먹을래요?”

“오우, 얼마든지요.”

“진짜··· 더 시켜줘요?”

이 당시는 굉장히 풋풋했던 윤철승과 손영준을 보며 재환은 아빠미소로 카운터에 말했다.

“여기요. 포장좀 해주세요. 치킨 다섯 마리에 넉넉하게 치킨무랑 콜라 많이요.”

재환은 포장을 주문하고 가서 먹으라고 말해줬다.

어차피 저 닭들도 저들의 사정상 오늘 저녁으로 먹고, 남겨서 내일 아침까지 아껴먹을 것 같지만 말이다.

이들은 소속사의 경제위기로 몇 년동안 방치되어서 엄청나게 굶주리고, 끼니는 물론 기본적인 의식주도 못했다고 하니 이때 마음껏 도와주기로 했다.

‘지금 고생 다음에 어서 빨리 데뷔해라. 식품회사 광고할 때 CF모델로 마음껏 써줄테니까 말이야.’

이후 파급력을 생각하면 이런 밥값으로 얻을 신뢰는 비교하는 게 실례일 정도였다.

“잘 들 먹으라고, 나는 이만 갈테니까.”

“미스터 재환, 지금 가요? 같이 더 먹죠.”

“아, 약속이 있어서. 이따가 포장한 것도 제이준이 챙겨요.”

“탱큐 재환, 정말로 고마워요.”

그들 역시 알고 있었다.

재환이 엄청난 집안의 사람이라는 것과 대가없이 어려운 상황의 자신들을 보고 선뜻 지갑을 열어 베풀어주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재환은 지갑을 꺼내 카운터에서 수표로 계산을 했다.

“엇?!”

9만원 정도 계산을 하는데, 100만원짜리 수표를 꺼낸 재환을 보고 당황한 직원을 향해 재환은 살짝 귀뜸해줬다.

“거스름돈은 천천히 준비해주세요. 저 친구들 식사 끝내면, 남은 돈 저 친구에게 주시고요.”

“아··· 네, 알겠습니다.”

재환은 그러면서 갓식스의 네 명에게 손을 흔들면서 돌아갔다.

***

그날 저녁 재환은 현규가 알려준 곳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대학동 가주세요.”

“엥? 대학동이 어디여?”

"거기가 관악구 대학...."

순간 재환은 현규가 알려준 곳이 현대에 행정구역 이름이 바뀐 곳이라는 것을 알고서 머리를 긁적였다.

“죄, 죄송합니다. 기사님. 녹두거리요.”

“엥? 아아~ 그 서울대 근처 거기 말하는 거기 맞죠?”

“네, 네~”

현규가 부른 곳은 뜬금없게도 관악구 녹두거리에 있는 먹자골목이었다.

그리고 재환의 과거 생에는 행정구역이 서울대 앞에 있다고 ‘대학동’이라고 개명된 구) 녹두거리 일대였다.

“친구가 거기서 부르네요.”

“녹두거리에서 한잔한다고요? 친구가 거기 학교 다니나 봐요?”

“아, 예. 거기 대학교 나오긴 했죠.”

서울대 친구라는 말에 택시기사는 신이 나서 말했다.

“와~ 그 친구 공부 엄청 잘했나 봐요? 우리 아들놈도 내년이면 고3인데 그런 학교에 가야 하는데.”

실제로 현규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나오긴 했다.

“그래도 뭐~ 지금 대윤그룹이나 아성그룹 위험하다는 더 보면 좋은 대학 나와도 다 상관없는 거 같아요. 요새는 자고 일어나면 회사 망했다는 이야기잖아.”

“아하하, 그렇죠.”

택시기사는 그러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요즘 보고 있으면 공무원이 제일인 거 같아요. 동사무소 일하는거··· 옛날에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시험만 잘치면 붙는 거였는데.”

“그래도 공무원분들이 정년이 보장되죠.”

“그러게나 말이에요. 나도 아들놈 대학 좋은데 못 갈 거 같으면 확 고향 가서 면서기나 시켜버려?”

지방 노인들이나 말하던 인 면서기라는 단어를 들으니 택시기사분 연배가 보기보다 높으신 것 같았다.

“거, 총각도 생각있으면 한 번 공무원 도전해봐요. 대기업보다 더 나을 것 같아.”

“네~ 고려해볼게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택시는 녹두거리에 도착했다.

“여기있습니다.”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택시에서 내린 재환은 현규가 말해준대로 녹두거리에 ‘주택은행’앞으로 걸었다.

그때 멀리서 현규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여기야 재환아~”

“아, 그래.”

그 곳으로 달려가 현규를 만나고서 악수를 한 다음 주변을 둘러봤다.

저 멀리 서울대가 쪽방들이 가득한 곳.

여기는 지방에서 서울대까지 올라온 하숙생들이 청춘을 보낸 장소였다.

훗날 대학동으로 개명되고 자취방 원룸촌과 공무원 시험의 메카가 되긴 하지만 그건 20년 뒤에나 나올 이야기였다.

“어디 이런 데까지 불렀어? 무슨 대단한 맛집이 있길래?”

“아니, 그냥··· 옛날 생각나서 잠깐 모교에 왔다가.”

졸업한지 5년이 넘었는데, 옛날 생각이 났던건지 이곳으로 부른 현규의 뒤를 재환이 따라갔다.

언덕이 많아 구두를 신고 걷기 힘든 동네였는데, 현규가 안내한 곳은 그 중에서도 위로 올라가서 골목을 건너간 곳이었다.

거기에는 정말 옛날 치킨··· 아니, 통닭집이 보였고, 여닫이 유리문으로 들어가서 재환을 안내했다.

“여기야.”

“아··· 치킨?”

“응? 닭 안 좋아해?”

“아니 그게 아니라···.”

여기 오기 전에도 회나 코스요리 먹을 줄 알고, 갓식스 애들하고 치킨으로 요기했는데 졸지에 하루 두끼가 치킨이 되었다.

“아주머니 통닭 두 개 주세요. 집게도 네 개 주시고요.”

“네~”

삼신의 황태자가 이런 고시촌의 허름한 곳에서 쇼트닝 냄새나는 통닭을 먹는 모습은 참으로 기묘하게 보일 것 같았다.

“···이것도 사진찍고 싶다.”

“어, 어? 재환이 너는 왜 나랑 뭐 먹을 때 남자끼리 사진을 찍자는 거야?”

‘지금이야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먼 훗날에는 너랑 사진 한번 같이 찍는 인증샷이 명함보다 더 유명할 때가 온단다.’

잠시 후 노릇노릇한 통닭 두 마리가 왔고, 재환이 맥주를 시켜서 한 잔 따라줬다.

“자, 먹자!”

두 재벌가 자제가 건배하고 한 잔 마신 다음 통닭을 한 마리씩 먹었다.

“음~ 오랜만에 먹으니 더 맛있네.”

“···.”

재환은 현규가 치킨 먹는 방식을 보고서 상당한 위화감을 느꼈다.

손으로 집거나, 포크로 찍는 게 아니라 아예 집게 두 개로 살을 뜯어 먹어 손을 절대 더럽히지 않았다.

“먹을 만하네.”

반면 재환은 다리 한쪽 뜯어서 그냥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뭐 먹는 방식이야 어떻든 간에 둘 다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란 생각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통닭 한 마리씩을 뜯어먹었다.

반 마리 정도 먹을 때까지 말도 없던 둘은 두 번째 맥주를 따를 때쯤에서야 현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재환아.”

“음?”

“너 혹시 해외주식 하니?”

그 질문에 재환은 피식 웃었다.

“왜?”

“아니··· 좀 궁금해서.”

‘그거 때문에 부른거구만.’

그리고 흔쾌히 대답해줬다.

“요새 시국이 하도 어려워서 달러는 좀 괜찮을까 하고 여기저기 투자 좀 했지.”

“그래··· 우리 회사에 계좌 넣었더라.”

“어, 삼신증권은 해외주식 수수료 한 달 무료잖아?”

“그래서 삼신전자가 인수하려는 ‘그 회사’를 그만큼 매수했니?”

재환은 여기서 어떻게 대답해줘야 할지 잠시 생각했다.

지금 말하는 거에 따라 다시 만난 친구가 전생과 같이 상하관계가 될지, 대등한 절친으로 이어갈지가 정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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