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13화 (13/244)
  • 13- 암묵의 룰? 웃기지 말라 그래요.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었다.

    “성심껏 해결해서 좋은 가격에 매각해보라고.”

    “알겠습니다. 회장님.”

    범준은 인사를 올린 뒤 커피를 마시고 빠르게 일어나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재환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아 선 채로 희경을 바라봤다.

    “앉아, 이 녀석아. 너도 나가려고 그러냐?”

    재환은 신경질적으로 자리를 앉으면서 희경을 노려봤다.

    “어허~ 이 자식이 어디 아버지 앞에서 눈을 흘겨?”

    “···이유가 뭡니까?”

    “뭐?”

    “마이다스 이야기 들으셨잖아요? 그것 때문에 대구에서 여기까지 급히 올라온 건데 왜 협상하기도 전에 파토를 내고 김범준 사장에게 매각 건을 맡기신 거냐고요?”

    왜 잘나가다 회장님이 이렇게 초를 쳤는지 모를 행동이었다.

    재환은 겨우 화해했다고 생각한 아버지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희경은 그렇게 화를 내는 아들을 오히려 이해 못 하겠다는 듯이 말했다.

    “야 임마. 아무리 매각을 한다고 해도 어디 구멍가게에다가 회사를 파냐?”

    “···.”

    “마이다스의 오현우 그 녀석 나도 아는 녀석이야. 고향에서 제법 건설사 하나 굴리는 것 같은데, 그래도 코딱지만 한 중소기업이지. 그런데 계열사 팔면 우리 이미지만 안 좋아져.”

    “아~ 그러니까 동성그룹 같은 제대로 된 기업집단이 아니라 쪼끄만 회사에 계열사 파는데 보기 안 좋아서 파토내시란거다~ 이거죠?”

    “임마! 너 기업 사회에서 이미지는 생각 안 할 거야? 그딴 데 회사 팔면 혜성을 사람들이 퍽이나 좋게 보겠다.”

    서울에선 이름도 없는 듣보 중소기업에 알토란 같은 건설사를 파는건 이미지가 떨어진다.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근데 지금은 그런 거 생각할 때가 아니라 열이 받았다.

    재환은 그 말을 듣고서 순간적으로 주먹을 꽉 쥔 채 외쳤다.

    “그런 식으로 이미지 운영 생각하다가 회사 큰일나면 어쩌려고요! 아끼다 똥 됩니다!”

    “이 자식이 어디서 큰 소리야!”

    고성을 내지르는 희경의 소리에 밖에 있던 비서팀은 또 한바탕 시작한다며 겁에 질렸다.

    “적어도 얼마 부르는지는 보고! 그리고 대금을 비교해야지! 이름만 듣고 파토를 내요? 막말로 거기서 1조를 불러도 중소기업이라고 안 팔 겁니까?”

    “몇 번을 이야기하냐! 아무리 어려워도 그런 곳에 계열사 매각은 안 한다고!”

    “오히려 그런 기업이 더 비싸게 웃돈을 줄 거라고요! 대기업의 프라이드 찾다가 돈 날릴 겁니까?”

    “그래서 범준이 시켰잖아! 그 녀석에게 제대로 된 매각 진행하라고!”

    “지금 시국에 잘도 인수하겠다는 회사가 나오겠습니다! 상대방이 부르는 대로 팔아도 선방인 상황에서!”

    재환은 더는 견디다 못해 소리를 빽 지르며 나가려 했다.

    “야 임마! 어디가? 할 말 있으면 여기서 계속 말 해봐!”

    “됐습니다! 저 아직 출장계 안 끝났거든요? 퇴근합니다!”

    “저 새끼가 진짜! 야! 너 이리 안 와?”

    희경의 욕설에도 재환은 문을 세게 닫으면서 회장실을 나왔다.

    잔뜩 긴장한 비서팀 직원들을 보며 재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 진짜 노친네하고 같이 일하기 힘들다.”

    경영인 시절에는 신경 안 썼는데, 막상 재벌가에서 그때처럼 일하려는데 뭔 말도 안 되는 제약이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서도 재환은 아까 일을 생각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내려오자마자 재환은 도저히 운전할 기분이 아니어서 택시를 잡고 양재동으로 향했다.

    돌아가는 상황에서 계속 그 일이 떠올랐고, 양재동 자택에 가는 길까지 한숨만 나왔다.

    택시에서 내린 뒤 집에 들어오자 가정부들과 명숙은 얘기도 없이 들어온 아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재환아, 어떻게 된 거야? 부산 다녀온다며?”

    “그렇게 됐어요. 그러고 보니 올라오면서 엄마 선물도 못 사드렸네.”

    재환은 명숙을 한 번 안아주고는 방으로 들어가 정장을 벗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하아~ 진짜~”

    아빠하고 싸워서 삐진 사춘기 소년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방에서 뒤척거리는 건 아니라 생각했는지 재환이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는 담배를 꺼내 한 대 물면서 차분히 정리하기로 했다.

    “후우, 그래. 일단 문제는 재벌가의 그 ‘쓸데없는 개부심’이 큰 문제겠지.”

    국내 10대 재벌, 그리고 20대 재벌들에게 있어서 1, 2세대의 오너들의 고집이 하나 있는데, 지금이 바로 희경이 말한 상황이었다.

    [조그만 회사를 인수는 해도, 그런 곳에 계열사는 안 판다.]

    회사 사이에서 그런 걸 왜 따지냐고 싶었지만, 옛날 재벌 오너들은 정말 그런 경우가 있었다.

    일종의 자존심 문제였는데, 자신이 잠도 안 자고, 먹을 거 안 먹으면서 알토란 같이 키워서 드러난 회사를 웬 이름도 없는 어중이떠중이 놈들에게 팔아치운다면 그 자존심이 용납을 못 하는 것이었다.

    이건 역사가 있는 대기업일수록 더욱 심했고, 심하면 국제적인 자본이 들어간 컨소시엄이 인수하는 것도 ‘어디 해외 돈놀이하는 데다 내 회사와 사람들을 넘기냐’며 어깃장을 놓는 아주 꽉 막힌 꼴통들도 있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지금부터 2000년까지 딱 3년 만에 모두 물갈이돼서 시대의 흐름을 못 읽고 세계화 자본에 나가떨어질 것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마이다스 회장 그 사람··· 나중엔 우리만큼 성장했는데.”

    80년대 당시 건설 붐에 편승해 광주의 조그마한 건설사에서 시작한 마이다스 그룹은 이후 외환위기에서 해운, 건설, 리조트, 철강, 알루미늄 등을 인수해나가면서 정말 이름값 하는 '마이다스의 손'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재환이 전생에서 봤을때는 국내 20대 그룹에 들어가 말석이나마 대기업의 위치로 당당하게 들어와서 딱 지금의 혜성 수준으로 성장한 곳이기도 했다.

    “하아~ 그 양반 지금부터 알아둬야 꿀 정보 많이 얻을 텐데 왜 돈에 급을 나눠···.”

    그 순간 재환은 멈칫하면서 자신의 과거가 떠올랐다.

    ‘제대로 사업 이야기를 하고 싶으시면, 양지로 올라오세요. 캐피탈이나 신용금고 인수하셔서요.’

    ‘세상에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어요. 돈 주는 사람을 가리며 싫어하는 경우는 있어도요.’

    “···.”

    재환은 자신이 대구에서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그대로 주먹을 쥐어 자신의 머리를 한 대 쳤다.

    딱-

    통증이 확 올라왔지만, 재환은 머리를 어루만지지 않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 내가 8, 90년대의 쩐주니 큰손이니 하는 사람들 불신했던 것처럼, 아버지도 그런 거겠지.”

    더욱이 이 당시에는 ‘강소기업’이나 ‘중견기업’ 또는 ‘준대기업’이라는 식으로 세분화 되지도 않았으니 희경 앞에서 마이다스는 그냥 듣보잡 중소기업이었다.

    연달아 피는 줄담배에 머리를 식히면서 계속 생각했던 재환은 결국 이번에도 소통이 문제였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50 평생 살았던 자신도 이 당시 편견이 많았는데, 그보다 더 윗세대인 아버지는 얼마나 심했겠는가?

    재환은 그것을 이해하고서 따로 움직여보기로 했다.

    “좋아! 머리 좀 식히고 다시 움직이자. 까짓거 아버지하고 협상 한 번 걸어보고, 이사회에 알려봐야지.”

    재환은 그것을 생각하면서 마지막으로 한 대 더 피려고 했을 때 담배가 다 떨어졌다.

    “아, 진작 사 놓을걸.”

    재환은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는 방향제를 뿌린 다음 밖으로 나갔다.

    “재환아, 어디 가려고? 저녁 시간 됐는데.”

    “슈퍼요!”

    “뭐? 가정부 아주머니에게 이야기해. 장 보러 가신대.”

    “아닙니다. 다녀올게요.”

    ***

    재환은 차마 가정부들한테 담배 심부름을 할 순 없으니 바람이나 쐬러 나갔다.

    생각해보니 과거로 돌아온 뒤로 옛날 동네를 잘 돌아본 적이 없었다.

    “옛날에 양재동 방향은 쳐다보기도 싫었지.”

    문득 생각나서 자신의 자택을 바라봤을 때, 재환은 피식 웃었다.

    “저거 기억나네. 옛날에 아버지가 삼촌하고 싸우다가 홧김에 골프채 걷어차서 유리창 밖으로 튀어나온 거.”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와일드했던 삶이었다.

    그렇게 동네를 걷다가 마트에 도착했을 때, 재환은 옛날 생각이 나서 미소가 절로 생겼다.

    “키야, 수퍼마켙 저 간판 진짜 오랜만에 보네.”

    어린 시절 용돈만 받으면 저 가게로가서 과자를 있는 대로 사 먹었었다.

    그러다가 혜성제과 제품이 아니라 동성이나 샬로테 제과 과자를 사 오면, 아버지한테 한 소리 들으면서 혼나던 것도 추억이었다.

    “어서 오세요.”

    나이 지긋하신 수퍼 주인이 반갑게 맞이해줬다.

    평범해 보이는 노인이었지만, 저분이 여기에서만 수퍼를 40년이나 운영하셔서 이후 건물을 사서 자녀들에게 물려줬다는 게 전설로 남았던 분이었다.

    재환은 담배만 살 게 아니라 간식거리하고, 방에 담배 냄새를 뺄 캔들 종류를 찾으면서 하나하나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때 수퍼로 우르르 오는 인원이 있었다.

    남자 다섯에 여자 하나로 모였는데, 다들 외모가 상당히 받쳐줘서 연예인급이었다.

    재환은 그들을 보다가 뭔가 이상해서 몇 번 힐끗거리며 봤다.

    “쟤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분명 몇몇은 낯이 익은 얼굴이었는데, 그게 잘 기억이 안 났다.

    어쨌건 이것저것 사서 계산을 하려는 찰나 그 여섯 명이 앞에 보였다.

    그런데 그들이 계산한 것을 보고 절로 인상이 찌푸러졌다.

    “이거 두 개가 다요?”

    “···네.”

    인원이 여섯 명인데, 그들이 사는 것은 겨우 450원짜리 라면 두 개.

    그것도 서로가 주머니를 뒤적거려서 10원짜리, 50원짜리 동전을 탈탈 털어서 모은 돈으로 보였다.

    거기에 젓가락은 여섯 개를 챙기는 것을 보니 설마, 라면 두 개로 나눠 먹는 건가 싶어서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흐으음, 900원이요.”

    “아, 잠깐만요!”

    계산하려는 노사장을 두고 재환은 근처에 보인 5개들이 라면 세 봉을 손으로 집었고, 카운터로 가면서 매대에 있는 참치통조림이다, 햄이다, 통조림이다 죄 집어 들어서 카운터 위에 올려놨다.

    “여기, 라면 두 개까지 제가 계산할게요.”

    “음?”

    “얼마에요?”

    사장이 하나하나 가격을 보고 계산하는 동안 여섯 명의 남녀는 놀라면서 뭔가 말하려고 했다.

    “아니, 저··· 저기요.”

    “훗!”

    재환은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여기 통조림 종류하고, 라면은 따로 담아주세요.”

    “잉, 그려~ 간스메랑 라면은 따로 둔다고?”

    젓가락도 넉넉히 넣어서 여섯 명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두툼한 봉투를 그들에게 안겨줬다.

    “맛나게 드세요.”

    재환은 자기가 샀던 간식과 음료수도 넘겨주고, 캔들과 담배만 챙기고 나갔다.

    “헤이! 스윗가이!”

    여섯 명 중에서 한 명이 재환을 부르며 달려왔다.

    훤칠한 키에 근육질에 태닝을 한 피부를 한 친구를 보고 재환은 그제야 그들의 눈치를 챘다.

    ‘이 친구들이 여기에서 연습생을 했었네?’

    “미스터? 뭐에요? 지금 우리한테 그냥 음식 사준거에요?”

    교포 톤이 묻어나는 이야기에 재환은 지갑을 꺼내 그에게 명함을 건네줬다.

    “나 여기 건너 골목에 사는 사람이에요."

    "왓?"

    "보아하니 연예인 연습생들 같은데 한참 배고플때죠. 나중에 TV에 나오시면 싸인 한 번 부탁할게요.”

    자신들에 대해 잘 아는 투로 이야기를 하자 뭔가 적선을 받은 것 같으면서도 묘한 재환의 반응을 보이며 일단 인사를 했다.

    “아, 일단··· 고마워요. 저희 연습실이 이 근처에 있는데···.”

    “네, 압니다. 아주 ‘신’과 같은 친구들이 되겠네요?”

    “오우, 그거 어떻게 알아요? 저희 팀 이름이 ‘더 식스갓’이에요.”

    “그래요? 식스 갓 이름 좋네.”

    “저는 리더인 ‘제이준’이라고 해요. 오늘 일은 정말 고맙게 받을게요.”

    재환은 살다보니 이런 곳에서 아주 진귀한 인연을 만난다며 크게 웃었다.

    그리고는 자기 명함 잘 가지고 언제든 연락하라면서 훈훈하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리고 뒤에서는 며칠간 풍성하게 먹을 먹거리들을 가지고 아주 좋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재환은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떠나는 모습을 봤다.

    “그렇지 않아도 CF모델 생각했는데, 집 근처에서 이런 인연을 알게됐어?”

    훗날의 슈퍼스타를 연습생 시절 만나게 된 순간이었다.

    재환은 언제 또 마주칠지 모르겠지만, 다시 만난다면 연락처 한 번 교환해서 쭉 지켜볼 생각이었다.

    물론 그들이 성장할때를 대비해 광고 계약서도 차차 준비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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