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11화 (11/244)
  • 11- 이 회사는 이제 제겁니다.

    [야, 임마! 너 잘 하고 있는 거야? 동성의 이원구 회장이 나한테 전화를 다 걸더라.]

    “문제없어요. 아버지.”

    재환은 대구까지 전화한 희경의 목소리에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하여튼 잘 좀 해봐. 이거 자금출처 자연스럽게 하려고 내가 얼마나 노력하는 줄 아냐?]

    “네~ 이 시국이니까 할 수 있는 행동이죠. 그러니까 최대한 이 기회를 노려야 해요.”

    [짜식이 말은 쉽지···. 알았다! 믿고 기다릴 테니 해결하고 돌아와. 이만 끊는다!]

    희경과의 통화가 끝나자 재환은 피식 웃었다.

    “세상에 아버지가 신경 쓰시는 것도 다 있네. 비자금 끄집어내는 것 때문에 그러신가?”

    혜성은 이미 사내 현금을 운용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언론사가 갈겨대는 위기설에서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했다면, 정말로 은행이자와 채권 막는 데 급급하다가 무너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재환이 신 회장의 전직 왼팔이자 비자금 금고지기였던 성윤규의 열쇠들을 모조리 빼앗고 쫓아낸 뒤로 그 안의 돈을 꺼내 회사 재정에 물꼬를 터주고, 그걸 넘어 타 회사 인수까지 진행하고 있었다.

    물론 마구잡이로 쓰면 검찰청과 국세청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 그것을 티 안 나게 조절하는 것은 재환의 몫이고, 그걸 해결하는 것은 신회장의 몫이었다.

    성공하면 신의 한 수고, 실패하면 분식점 죄수 번호 찍히면서 기업은 공중분해 될 것이다.

    “어차피 그 돈 가지고 해외 나가시려다 걸린 거잖아요? 쌓여있으면 화에요. 그러니 적어도 사람들에게 돌려서 숨통을 터 줍시다. 그게 모두에게 행복할 테니.”

    재환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사업을 계속 확장하기로 했다.

    그때 재환에게 또 다른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동성의 복철원 사장 전화였다.

    “여보세요?”

    [아, 이사님. 저 동성그룹의 복철원입니다. 오늘 저녁에 인수 논의로 뵐 수 있겠습니까?]

    목요일이 되어서 온 연락에 재환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일사천리로 진행하기 위해 곧바로 철원에게 말했다.

    “저녁이 아니라 좀 더 빨리 만나서 이야기해도 될 것 같습니다.”

    [네?]

    “오늘 인수 문제가 끝나야지 금요일에 헤드라인으로 가죠? 주말에 발표하면 그거 다음 주 월요일이나 돼야 보도 나올 것 아닙니까?”

    그것을 계산하고 한 말에 복철원은 확실히 시간이 촉박하다고 생각하며 답했다.

    [···좋습니다. 그러면 지금 동성호텔로 차 준비시키겠습니다.]

    “네, 진행 빨리하시고 저녁은 대표님이 사시는 거로 하죠.”

    수천억이 오갈 수 있는 자리에서 재환은 저녁값까지 논하면서 나갈 준비를 했다.

    “룸서비스죠?”

    [네, 고객님.]

    “사이즈 부를테니 정장 하나 맞춰주세요. 스타일리스트도 불러주고요.”

    [알겠습니다.]

    재환은 차가 오기 전까지 공들여서 스타일을 준비하고 여유있게 호텔을 나섰다.

    ***

    “다시 한번 확인하겠습니다. 혜성그룹과 동성그룹의 M&A에서 동성시멘트와 동성레미콘 인수, 그리고 인수 인력은 10%를 감축하고 포함되는 것입니다.”

    동성그룹 임원들의 이야기를 들은 재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제가 감축하는 인력 10%는 먼저 이야기하셨다시피 임원진하고 고위 간부진 우선으로 감축을 해 주십시오.”

    아예 윗선부터 쳐내고서 새로 시작하겠다는 의지에 복철원은 쉽게 승낙했다.

    어차피 계열사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며 수십 년 간 있었던 임원들을 이 기회에 쳐내는 것은 동성그룹 승계 내에서도 문제 될 게 없기 때문이다.

    재환은 모든 것을 확인하고 만년필을 꺼냈다.

    “바로 사인 하실 겁니까?”

    철원의 물음에 재환은 쿨하게 대답했다.

    “네, 어차피 회장님에게 전권을 받은 몸입니다. 이사회 승낙은 이전에 끝냈고요.”

    시원시원한 답변에 철원은 자신의 조카뻘이 되는 이 청년을 보고 깊은 호감을 느꼈다.

    ‘신재환 이사··· 앞으로도 자주 알아가야겠군. 이 친구 진짜 거하게 사고 칠 것 같아.’

    이 불황에 수천억을 안겨주어 동성의 숨통도 트이면서 혜성의 위기설을 정면으로 깨트릴 빅딜을 벌이고 있었다.

    복철원이 그렇게 생각할 때 재환은 품 안에서 곱게 포장된 만년필 두 자루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필기구 중에서도 명품으로 유명한 몽레알 만년필이었다.

    “계약서는 이것으로 쓰시죠. 그리고 빅딜 기념으로 복 대표님에게 드리는 선물이기도 합니다.”

    “어, 하···하하. 몽레알 브랜드 만년필이라··· 이건 귀하네요. 직접 준비하신 겁니까?”

    철원은 큰 선물을 받고서 멋쩍게 웃었고, 재환은 만년필 포장을 뜯으며 말했다.

    “네, 앞으로 혜성이나 동성이나 둘 다 경제위기에서 살아남아 큰돈을 벌자고 제가 준비한 겁니다.”

    재환의 그 말에 철원을 포함해 동성의 임원들 역시도 감격한 모습을 보였다.

    이 자리에 사람 보는 눈은 천하에 따를 자가 없다는 이원구 회장이 없다는 것이 정말 아쉬웠었다.

    그렇게 몽레알 만년필로 두 임원의 멋들어진 싸인이 끝이 났고, 계약서를 든 채 악수를 했다.

    짝짝짝짝짝-

    임원들은 손뼉을 쳤고, 다른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대구의 지역지 기자들이 모조리 달려와서 사진을 찍었다.

    재환과 철원 역시 웃으면서 그 셔터 세례를 받아들였고, 이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기자회견은 바로 옆에서 이뤄졌다.

    “TK방송에서 왔습니다. 혜성그룹의 신재환 이사님. 이번 동성시멘트와 동성레미콘을 인수하신 배경이 뭡니까?”

    재환은 그 질문은 예상했다는 듯이 말했다.

    “어~ 일단 저는 서울에서부터 사업을 재편하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무 크게 인수대금을 질렀다는 말이 있는데, 혹시 오버슈팅이라고 생각 안 하시나요?”

    그것 역시도 예상했던 답이었다.

    “저희가 원해서 인수한 금액인데, 싸게 사고 비싸게 사고가 어디 있나요?”

    그러면서 마이크를 좀더 입술에 가까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동성시멘트는 현재 업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시멘트 업계의 강자입니다. 다들 1인자만 생각하는데, 일단 어느 현장에서나 한 손가락으로 셀 수 있다면 그 가치는 충분히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에 다른 기자들이 질문했다.

    “낙동일보의 이수철 기자입니다. 저는 이번 인수 건에 대해 혜성그룹에 대해 질문드리고 싶은데요.”

    “네, 말씀하세요.”

    “현재 혜성에서 위기설이 몇 번 나왔는데, 이번 인수는 거기에 대한 경영 퍼포먼스라 볼 수 있겠습니까?”

    기업 빅딜을 두고 경영자의 퍼포먼스 운운한 것을 보아 꽤나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 같아 보였다.

    재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질문에도 대답했다.

    “네,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사람들이 알아서 평가해 줄 거고요. 그리고 계속해서 혜성에 대한 위기설이 있는데 이 자리에서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재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 대를 뽑았다.

    뚝-

    “!?”

    옆에 있던 철원이 놀라서 뭐 하시는 거냐고 물으려 했지만, 재환은 마이크를 들고서 조용히 탁자 앞으로 나와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정면으로 받으며 말했다.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혜성에 대한 위기설 찌라시가 계속해서 울리고 있는데, 분명히 말씀드리죠. 제가 있는데 혜성그룹이 왜 위기입니까?”

    “!”

    혜성그룹 젊은 후계자의 패기 넘치는 발언에 기자 중 일부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게 메이저 신문사가 아니라 대구 지역지를 두고 말하니 ‘대구 선언’이라고 해 두죠. 앞으로 혜성에서 회사에 대한 매각과 인수가 아주 많이 있을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저와 회장님의 의지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재환은 그 말을 마치고 마이크를 옆에 있는 동성 임원 한 명에게 건네주면서 돌아갔다.

    “기자회견은 이만 끝내겠습니다. 나머지는 신문을 통해서 잘 써주세요.”

    재환의 말과 함께 혜성그룹과 동성그룹에 대한 빅딜 기자회견은 끝이 났다.

    그리고 기자들 역시도 재벌가에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 2세대 경영에 대해서 아주 깊은 감명을 받았다.

    ***

    그날 저녁.

    “하하하하! 진짜 멋진 발언이었습니다!”

    동성호텔에서 코스요리를 주문하고 고급술을 대작하는 재환과 철원이었다.

    철원은 재환의 행동이 매우 감명 깊었는지 다시금 낮의 일을 떠올리면서 언급했다.

    “히야~ ‘제가 있는데 혜성이 왜 위기입니까?’ 이 말은 진짜 끝까지 남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하도 언론사가 저희 혜성을 긁어대서 한 번 해봤습니다.”

    “제가 진짜 신 이사님 나이 때 그런 패기를 갖추지 못했던 게 아쉽네요.”

    철원의 말에 재환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사람이라는 게 80살 정도까지 살다 보면 한때쯤은 객기를 부릴 나잇대가 있죠. 저는 그게 지금일 뿐입니다.”

    “하하하하, 그러면 저는 아직 그 상황이 안 왔나 봐요.”

    그것을 두고서 철원은 크게 웃다가 넌지시 말했다.

    “근데 앞으로도 간간히 볼 거 같은데, 호칭이 너무 어색하지 않나? 말 편히 해도 돼요?”

    “제가 복 대표님에게 형님이라고 불러도 된다면 좋습니다.”

    “어, 아! 그래. 재환아.”

    “네, 철원 형님! 한 잔 받으시죠.”

    마흔넷과 스물아홉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둘은 그냥 형님 동생 하기로 정하고서 크게 웃었다.

    그때 철원이 혜성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동생, 이번에 야구 어때? 또 타이거즈가 우승하겠네?”

    “아···.”

    재환은 야구 이야기가 나오자 잊고 있었던 혜성그룹 내의 야구팀을 떠올렸다.

    “···네, 그렇네요. 우리 회사 야구팀 있었지. 그것도 우승 8번이나 한 팀.”

    혜성 타이거즈.

    당시 한국프로야구 8개팀 중에서 가장 연봉이 적었지만, 가장 우승을 많이 한 팀으로 유명했던 광주 연고의 야구팀.

    그리고 혜성그룹이 부도가 났을 때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것을 아성그룹이 250억에 인수해서 아성그룹 의 기어(Gear)모터스 산하로 들어가 Gear 타이거즈로 부활했다.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어요.”

    “음? 혜성그룹의 자랑 중 하나인데, 자네는 별로 야구 안 좋아하나?”

    “싫어하진 않죠. 하지만··· 글쎄요. 지금은 애물단지겠네요.”

    우승을 도맡아 하는 명문 팀인데, 시들한 반응의 재환을 보고 철원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도··· 매각은 안 할 거지?”

    “네, 당장은 안 할 거예요.”

    ‘당장은’이라는 말이 참으로 무섭게 들렸지만, 철원은 자신들도 농구팀을 운영하는지라 경제위기에 따라 어떻게 대기업이 살려낼지 궁금했다.

    하지만 재환은 여기에서 스포츠 이야기는 끝냈고,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철원 형님에게 궁금한 게 있는데, 그 김미금 여사라는 분은 원래 친한 분입니까?”

    “어··· 그분?”

    재환은 재벌가 사람들도 ‘그분’이라 말하는 것을 보고 김미금이 생각 이상으로 거물이라고 짐작했다.

    “저는 지방에 있는 그런 ‘쩐주’ 분들에 대해서는 사실 신경 안 썼거든요, 근데 유명하다고 하더라고요. 경상도를 넘어 전국구라고···.”

    그 말을 끝냈을 때 갑자기 문이 열렸다.

    그리고는 동성의 임원 한 명이 다급히 다가와 철원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철원은 그 소리를 듣고서 흠칫하며 당황한 표정이 보였다.

    “아, 그걸 왜 지금···.”

    철원의 반응을 보고서 재환은 눈치껏 통빡으로 생각했다.

    ‘곤란한 사람 이야기를 들었군. 아니면 설마 방금 말한 쩐주 아줌마인가?’

    그리고 그 답은 바로 나왔다.

    철원이 먼저 술잔을 비운 다음 물어본 것이었다.

    “재환이. 자네, 아까 김미금 여사 이야기했지?”

    “왜요? 여기 와 있답니까?”

    “···양반은 못 되나보다. 그렇게 됐어.”

    재환은 그 말을 듣고서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그래요. 좋습니다. 그냥 부르세요.”

    “뭐? 아니, 그래도 되는 건가?”

    “네, 그냥 부르세요.”

    재환의 말에 잠시 후 다시 문이 열리면서 고운 한복 차림의 귀부인 김미금 여사가 들어왔다.

    “와, 다들 여기 있었네?”

    재환은 처음 미금을 만났을 때 한 약속을 상기했다.

    “아, 네. 오랜만이네요. 김 여사님.”

    재환은 예의상 먼저 인사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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