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9화 (9/244)

09- 보여줘야 믿는다.

“야! 김 사장! 우리 사이에 진짜 이러기냐! ···뭐라고? 경제부에서 유력한 정보를 얻··· 에라이 망할 새끼야!”

국내 5대 일간지 중 하나인 한경일보의 기사로 인해 혜성은 또다시 위기에 빠졌다.

그룹의 첫 위기설이 일어났을 때, 당사자와 친분이 있는 임원을 쳐내는 것으로 끝냈는가 싶었는데 다른 언론사가 또 갈겨댄 것이었다.

이 상황에 대노한 희경이 한경일보 사주한테 직접 전화를 걸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거기에 대해서 전혀 정정할 생각이 없는 신문사였다.

콰앙!

“찢어 죽일 새끼들! 진짜!”

희경이 헐크가 되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재환은 그 앞에서 한경일보의 신문들을 보다가 인상이 찌푸려 들었다.

“저기··· 아버지.”

“뭐야?”

“이 신문사에 혜성제과 광고, 작년에 끊었어요?”

“뭐? 그게 언제 쩍인데. 너 한국에 오기 전이다.”

“맞네 그럼!”

재환은 한경일보의 신문을 가지고 기사를 정확히 가리켰다.

“아버지, 이거 보여요? ‘한편 혜성그룹은 제과 산업으로 시작한 기업집단으로 최근에는 기세가 줄어 모든 광고를 줄이고 비상 경영에 들어갔다고 한다.’라고 쓰여있네요?”

“!?”

정말 노골적인 기사였다.

신문사에 기업이 광고를 내면서 그 이익을 얻는데, 그것을 끊자 바로 이런 기사를 갈겨대고 그 이유를 마지막에 쓴 걸 보면 말이다.

“이 새끼들, 이유가 있었구만!”

희경이 다시 한번 전화기를 잡으려 할 때, 재환은 조용히 손을 붙잡았다.

“왜, 왜 임마?! 이걸 그냥 넘어간다고?”

“아니요. 다른 신문사에 전화하는 게 나아요.”

“뭐?”

“이것도 제가 해결할게요. 딱 이틀만 주세요. 지금 이 신문 나오고 추락하는 주가 곧바로 돌려드릴게요.”

재환은 언제나 퓨즈처럼 터지는 아버지를 말린 다음 또 하나의 퀘스트가 생겨 움직이기로 했다.

***

“홍보실 모두 모였습니까?”

“네, 실장님.”

홍보실은 기획조정실 산하여서 여기 있는 사람들은 실장까지 모두 직급상 재환보다 밑에 사람들이었다.

그들 역시 신문을 보고서 한경일보에 전화를 했지만, 요지부동인지라 가시방석을 걷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홍보실장님. 저희가 신문사에 홍보 안 해줬다고 이렇게 지랄 같은 기사가 나옵니다.”

재환은 한경일보의 기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즉시 조치하겠습니다.”

홍보실장 김한석 이사는 50대의 나이에 재환 앞에서 쩔쩔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아니요. 제가 여기서 해결하죠.”

“···네?”

“전화기 돌리세요.”

김 이사는 곧바로 전화기를 건네줬고, 재환은 그 자리에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것도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전화기의 스피커 버튼을 누르면서 말이다.

[여보세요?]

“아, 김낙진 차장님? 저 혜성의 신재환입니다.”

[아, 신 실장. 무슨 일이에요?]

삼우일보의 거물과 다이렉트 통화를 하자 홍보실은 마른침을 삼키며 그 내용을 들었다.

“이거 너무하네요. 저희가 새로운 혜성을 만든다고 광고도 돌리려고 하는데, 한경일보 이거 뭡니까?”

[아, 그거 쓴 기자가 제 대학 시절 신방과 후뱁니다. 그렇지 않아도 따끔하게 한마디 하려고요.]

“!”

한경에 바로 전화를 않게 아니라 삼우일보를 통해 말한 것은 상당한 효과였다.

언론계에서 서로가 엮여있는 바닥이니 더 효과가 보일 것이다.

“저 이제는 진짜 한국 언론에 서운할라 그래요. 이래서야 우리 혜성의 새 광고는 어떤 신문사가 합니까?”

그러자 수화기 너머의 낙진은 자신의 통화가 홍보실 전체에 들린다는 것을 모르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야···. 우리 홍보팀 부르고, 혜성 광고 따내자. 내가 한경 긁는 기사 쓸게.]

속삭이는 소리였지만, 홍보실 모두가 똑똑히 들었다.

그리고는 잠시 후 헛기침을 하면서 김낙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흠, 흠. 여보세요? 아무튼, 저희는 계속 혜성하고 함께 할 겁니다. 언론사가 지금 시국에 대기업을 흔들면 안 되죠.]

“그렇죠? 삼우일보는 정론·직필로 유명하니까 저희 쪽 기사 좀 잘 써주시리라 믿습니다.”

[아이고,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오늘 다른 신문사에 있는 후배들 군기 좀 잡아야겠습니다.]

“하하하, 네. 그러면 한 모레쯤에 우리 홍보실하고 제품 광고 논의 좀 할 수 있을까요?”

[모레요? 네 당연히 그래야죠. 일단 내일부터 신문기사 기대하셔도 됩니다. 신 실장님!]

이제는 님이라 붙이면서 깍듯이 모시는 낙진을 보고 역시 당대의 경제지 거물도 돈 앞에서는 숙이는 모습에 쓴웃음이 나온 재환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모레 저희 혜성하고 좋은 이야기 나누시길 바랍니다.”

통화를 마친 재환은 녹음 버튼을 한 번 더 눌러 종료했고, 그 모습을 본 홍보실은 입이 떡 벌어졌다.

“다들 왜 그러십니까? 이 정도는 재량껏 할 수 있잖아요?”

“시, 실장님. 진짜 저렇게 신문광고를 다시 올려도 됩니까?”

“네, 됩니다.”

재환은 쿨하게 말한 다음 돌아갈 준비를 했다.

“홍보실장님은 내일모레 삼우일보하고 계약 준비해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실장님!”

재환이 밖으로 나갔을 때 홍보실 안에서는 큰 소리가 오가면서 당장 움직이자고 분주한 소리가 들렸다.

재환은 그 반응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어쨌건 이틀 만에 다른 언론사를 이용해 한경이 갈겨댄 것은 해결했지만, 당장 주가 손해가 문제였다.

재환은 그것 역시 해결하기 위해 출장계를 회사에 냈다.

“자, 일단은 대구부터 가 볼까?”

건설사와 해운사 매각 전에 이런 암초를 만났으니 그걸 만회하기 위해서 계획을 돌렸다.

원래였으면 매각 후 시도할 시멘트와 식품업체 인수를 먼저 하고, 주가 안정을 시킨 다음에 움직이려는 계획이었다.

재환은 그것으로 눈여겨본 시멘트 회사 중 대구를 중심으로 한 동성시멘트로 향했다.

그곳은 예전부터 혜성과 라이벌이었던 기업이었다.

서울 엿 공장을 시작으로 ‘아토스 식품’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여 시멘트, 건설, 고속버스, 가스렌지등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 역시 현재 위기설이 가득한 곳이었다.

재환이 대구로 향할 때, 이미 아버지에게 이야기해둬서 사업 논의는 했고, 인수에 관한 이야기는 가서 풀 셈이었다.

대구에 도착한 재환은 대구역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저기도 눈여겨봐야지.”

과거에는 대구에 도심이었지만, 기차역은 동대구역에 위상을 빼앗겼지만, 민자역사 사업으로 인해 백화점이 지어지고 화려하게 부활해 경북권에서 매출을 올리는 곳이었다.

지금 혜성 내의 유통사업은 지방에 있는 아울렛에 가까운 소규모 백화점 2개였지만, 이제는 그쪽도 신경 써볼 생각이다.

동성그룹 대구지사에 도착한 재환은 곧바로 안내데스크로 가서 약속을 확인하고 안내를 받았다.

위로 올라갈 때까지 주변 여기저기에는 현수막으로 [동성그룹 각성해라!] [우리를 내몰지 마라!]라는 내용이 가득해 한눈에 봐도 위기설이라는 것이 가득했다.

똑똑똑-

노크 소리가 나고 문이 열리자 기다리고 있던 중년의 남성이 맞이했다.

“어서오세요. 대표이사 복철원이라고 합니다.”

“처음뵙겠습니다. 혜성그룹 기획실장 신재환이라고 합니다.”

“네, 여기 앉으세요.”

경상도 억양이 묻어나는 표준어로 안내하는 인물은 동성그룹의 대표이사 사장 복철원이었다.

동성의 창업주 이원구 회장의 맏사위로 서울에 있는 부회장을 대신해 대구지사의 경영은 그가 맡고 있었다.

“차 한잔하시죠?”

“네, 부탁드립니다.”

비서를 시켜서 홍차를 준비한 복 사장은 차를 음미하며 말했다.

“커피보다는 역시 차가 좋더군요. 이게 저희 아토스 식품 공장에서 나온 찻잎인데, 아주 좋습니다.”

“하하, 얼그레이네요?”

“홍차를 좋아하시나요?”

“저는 다즐링을 좋아하지만, 이 차도 아주 맛있습니다.”

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대화의 물꼬를 튼 둘은 이제 본론에 들어갔다.

“혜성 일은 유감이네요. 건실한 회사인데, 언론사가 그러면 안 되는데 말이죠.”

“그래서 제가 직접 왔습니다. 우리 혜성이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요.”

“흐음.”

복철원은 재환의 눈을 마주치며 그에 대해 살폈다.

나이는 자신보다 15살이나 어리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것 같은 포스에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어수룩한 친구는 아닌 것 같군. 그럼 제대로 일 얘기 시작해 볼까?’

철원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서울에 있는 지사가 아니라 대구로 오신 걸 보면 이쪽에 공장을 생각하신 것 같네요?”

“네, 그렇습니다.”

“서울 쪽 사업은 조금 어렵다고 이야긴 들었지만, 저희는 아직 건재합니다. 동성고속과 동성 아토스제과, 동성식품은 혜성과 1, 2위를 다투는 업체 아닙니까?”

일단은 자신들이 혜성보다 점유율로도 재계 순위로도 우위에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보였다.

“네, 그래서 말인데 대구에 있는 시멘트공장은 어떨까요?”

“시멘트요?”

‘건설업 매각설 나오더니 노리는 게 시멘트라고? 처음부터 블러핑인가?’

철원은 곧바로 ‘시멘트를 노린다.’라는 재환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저희 동성시멘트는 업계 탑 5의 우량 회사입니다. 거기에 매출도 좋아서 핵심계열사인데, 거기 말고 다른 곳을 이야기하지요.”

재환은 그걸 듣고 미소를 지었다.

반은 거짓이고, 반은 진짜였다.

일단 동성 시멘트는 말석이지만 업계 탑5에 향하는 건 맞았고, 수익도 순위권이어서 알짜 계열사로 유명했다.

하지만, 그룹 전체의 위기로 인해 거기서 번 돈은 곧바로 서울에 있는 동성건설과 동성가스렌지로 넘어가 위기계열사 숨통 트이는 역할로 해서 내부의 불만도 크고, 대구 내에서도 불안했다.

“돈은 대구에서 버는데, 쓰는 건 서울이라고 현수막이 보이던데요.”

“!”

“죄송합니다. 신경 안 쓰려고 했지만, 오면서 현수막이 너무 많았습니다.”

아픈 곳을 찌르고 들어가는 재환의 발언에 철원은 헛기침을 연신 했다.

여기서 승부수를 띄우기 위해 재환은 자신이 준비한 서류봉투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저희 혜성에서 준비한 인수대금입니다. 항간에는 저희가 사내 현금이 부족해서 위기라고 하지만, 금액 보시면 그게 질 나쁜 헛소리라는 걸 잘 아실 겁니다.”

“하하, 저희 매각 의사는 여기서 말 못 드리는데···.”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슬쩍 봉투를 열어 인수계획서를 한 번 본 철원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읽던 중 철원은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이 놀랬다.

“왜요? 인수대금이 적습니까?”

“아니··· 이 금액은···.”

철원이 놀라는 것은 금액이 생각 이상으로 커서였다.

현재 시멘트 업계에서 1위 이자, 재계서열 1위인 아성그룹의 아성 시멘트를 인수해도 될 정도의 금액이었다.

철원 역시 경영자로서 정중히 거절이고 뭐고 금액을 보면 이건 진행해야 했다.

“아, 제가 설명을 추가로 못 드렸군요. 죄송합니다. 그건 동성시멘트 대금만이 아닙니다.”

‘그럼 그렇지···.’

김샜다는 말에 어디를 또 추가로 받겠냐고 협상하려는 찰나 재환이 말을 꺼냈다.

“레미콘과 시멘트 운송 사업을 하는 동성 레미콘 역시도 같이 인수할 금액입니다.”

“네?!”

순간 철원이 들고 있던 찻잔이 흔들렸다.

동성레미콘은 동성시멘트와 협약을 맺지만, 내부거래용도라 그다지 인프라가 높지 않고 업계에서도 애물단지였다.

게다가 매출도 100억대 남짓이어서 동성 타이틀 빼면 중소기업이라고 해도 그만인 회사였다.

그 정도면 합동대금이 아니라 그냥 ‘덤’이라고도 할수 있는 회사다.

“하하, 동성시멘트와 동성레미콘이라··· 이거는 저희도 회의해야겠습니다.”

“이원구 회장님의 의사가 필요하신 거군요. 압니다. 저도 회장직에 계신 아버지와 회의 끝에 내건 금액이거든요.”

“혹시 대구에서 얼마나 머무실 생각입니까? 저희 호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아, 토요일에 올라가려고 합니다.”

지금이 화요일이니 시간은 촉박했다.

원래였다면 이건 이사회를 열어서 진행하고, 찬반을 가려야겠지만, 장인어른인 이원구 회장의 승낙만 있다면 자신이 당장 도장 찍고 싶은 계획이었다.

“고맙습니다. 그러면 신세 좀 지죠.”

자사의 호텔을 이용하겠다는 말에 반은 승낙이라 생각하고 재환을 극진히 모시기로 한 철원이었다.

***

동성호텔에 도착한 재환은 스위트룸을 안내받고 푹신한 소파에 앉았다.

“히야~ 좋다. 역시 지방 출장은 이 맛에 오는 거야.”

재환은 담배 한 대를 꺼내물고 여기까지 왔으니 특식 한번 먹기로 했다.

“룸서비스죠? 여기 음식 주문도 만들어서 줍니까?”

[아, 네. 고객님. 무슨 음식을 원하십니까?]

“납작만두랑 막창볶음이요. 소주는 참소주.”

[···네?]

“만드세요. 얼른.”

[아, 네. 금방 준비하겠습니다.]

호텔 스위트룸에서 특산품이라고 길거리 음식에 지역소주 한 병을 시킨 재환의 주문에 황당했지만, 셰프들은 움직였다.

그리고 재환은 토요일까지 이곳에서 편함을 만끽하기로 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