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8화 (8/244)
  • 08- 방해하는 놈이 너무 많아.

    재환은 자신의 이름으로 이사회에 안건을 올렸다.

    그리고 이 안건이 들어가서 열띤 토론 속에서 투표가 들어갔다.

    그 상황을 재환은 느긋하게 기다렸다.

    여기서 가결된다면 지금 당장 두 회사를 매각할 기업을 찾으러 가면 되는 거고, 부결된다면 매각할 수 있는 중공업이나 리조트 등의 다른 계열사를 노릴 것이다.

    어차피 외환위기가 다가오는 이 시국에 어떻게든 사내 보유 현금을 늘려야 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투표 결과가 나왔다.

    발표는 신희경 회장이 이사회 의장의 권한으로 발표했다.

    “찬성과 반대 표수는 말하지 않겠어. 그냥 발표하지. 신재환 이사.”

    “네, 회장님.”

    “축하한다. 혜성건설과 혜성해운에 대한 매각 건이 이사회 통과됐다.”

    임원들은 2인자인 김범준 대신 재환의 손을 들어줬다.

    물론 반대표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재환을 완전하게 믿지 않는다는 임원들도 있다는 것일 거다.

    하지만 재환은 개의치 않았다.

    51%건 99%건 만장일치건 중요한 건 가결되었다는 것이니 말이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대한 회사에 큰 이익이 될 수 있게 매각 건을 처리하겠습니다.”

    재환은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움직였다.

    ***

    재환은 기획실 회의장에서 두 명의 대표를 불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잘 운영해 주셨는데, 이렇게 돼서 유감이고요. 일단 고용승계를 모두 할 수 있도록 한 번 노력해보겠습니다.”

    재환이 부른 둘은 혜성건설의 대표이사 노병각 부사장과 혜성해운의 대표 이중선 부사장이었다.

    “먼저 기획실에서 알아온 정보와 대표님들이 가져오신 기업 가치 산출에 대해 알아볼게요.”

    “아, 네. 저희부터 먼저 하지요.”

    혜성건설 대표인 노 대표는 서류를 준비해서 재환에게 보였다.

    현재 부채가 얼마나 있고, 소유한 땅과 아파트 단지, 그리고 건설 기술력 등이 종합된 자료였다.

    재환은 그것을 하나하나 눈여겨보다가 간간이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아~ 진짜 시대를 잘못 탔네요.”

    “네? 그게 무슨 말인지···.”

    재환이 그렇게 한숨을 쉰 것은 혜성건설이 보유한 토지 때문이었다.

    “이게 전부 아파트랑 빌딩 올리려고 사 놓은 땅이란 말이죠?”

    “네, 지금은 불경기라 계속 놀리고 있지만, 이제는 매각될 곳들이니···.”

    “아뇨,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네?”

    “당장요. 혜성건설 재무팀 불러야겠습니다.”

    재환의 명에 곧바로 혜성건설의 재무팀들이 소환됐다.

    그리고 뻘쭘하게 앉아있던 혜성해운 대표에게는 재환이 따로 말했다.

    “이 대표님? 죄송하지만, 일단 먼저 건설 매각 건에 대해서 재조정이 필요할 것 같네요. 일단 해운 역시도 사업부와 재무 구조에 대해서 다시 정해주시고 회의를 다음에 하겠습니다.”

    “네? 아, 네. 알겠습니다. 실장님.”

    이중선은 다음 기회를 노리고 먼저 물러났다.

    그리고 재무팀의 간부들이 온 자리에서 재환은 서류를 늘어놓고 토지문서 한 장을 꺼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에 이 땅. 이건 매각 안 합니다.”

    “네?”

    훗날 일어날 판교신도시. 그중에서도 아주 노른자 땅만 가득한 곳인데, 이게 건설사를 매각하면 덤으로 딸려오는 토지로 잡혀 있었다.

    “제가 쭉 지켜봤는데, 건설사 매각에서 중요한 토지는 남겨두는 쪽으로 가겠습니다.”

    “저기, 실장님. 그곳은 과거 분당 일대 신도시 조성을 위해 구했지만, 그린벨트 지정으로 못 쓰는 곳이 됐습니다.”

    “네, 넓이가 아파트 1만 세대를 지을 곳이지만··· 규제로 인해 몇 년째 애물단지로 세금만 축내는 곳입니다.”

    재환은 그 말을 듣고서 피식 웃었다.

    그들의 말이 맞긴 했다, 딱 2000년까지만···.

    2000년 이후 분당신도시의 포화로 인해 그린벨트 규제가 풀리고 2001년에 평당 시가 2만 원이 안되는 땅은 10년 만에 평당 1100만원이 된다.

    “오히려 그래서 문제없겠네요? 그린벨트 땅을 끼워서 괜히 높게 부를 필요 없겠죠? 그래서 이 땅은 계열사로 돌리겠습니다.”

    “!”

    일단은 그렇게 결정을 하자 건설팀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기 이 땅. 서울 은평구죠?”

    “실장님. 거기 역시 그린벨트입니다.”

    “네, 지금 그래서 말하는 겁니다. 지금부터 그린벨트 지정 구역 땅들은 전부 분류하세요.”

    “네?”

    “하세요.”

    재무팀은 그렇게 해서 혜성건설 매각에 대해 소유한 토지를 전부 분리해서 처음부터 다시 조사해야 했다.

    물론 재환 역시도 그것을 조사하면서 같이 기다렸다.

    야근까지 했지만, 아직도 한참 남은 서류들을 보고 재환은 그것들을 몇 개 챙겨 가방에 넣었다.

    “다들 수고했습니다. 이만 퇴근하세요.”

    “네? 아직 일이 안 끝났는데요?”

    노 대표의 물음에 재환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건 내일 합시다. 일단 쉬고서 일을 다시 해야 힘이 나는 법입니다.”

    건설업에 종사하면서 야근은 기본에 철야도 자주 했던 팀이었지만, 재환의 명에 의해 다들 퇴근 준비를 했다.

    물론 재환은 본보기로 자신이 먼저 짐을 챙기면서 떠났고, 노 대표 역시도 같이 퇴근하게 했다.

    밑에 사람들만 남은 자리에서 재환은 확인사살 하듯이 말했다.

    “미리 말해두는데 남아서 일 안 하셔도 됩니다. 경비실에 의뢰해서 전원 내리라고 할 거니까요.”

    그렇게 강제 퇴근을 시킨 다음 양재동 자택으로 돌아간 재환이었다.

    ***

    집에 돌아와서 한가득 서류를 가져온 희경은 그것을 보고 조용히 말했다.

    “재환이 너, 서재로 좀 들어와라.”

    “네. 그러죠.”

    희경의 부름에 옷을 갈아입고 서재로 가려는 재환을 보고 명숙은 걱정스럽게 물었다.

    “재환아. 무슨 일이야?”

    “아, 회사 일이에요. 계열사 매각 건이라 좀 바쁘거든요.”

    이제는 아버지와 불화는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준 재환은 웃으면서 어머니를 안아주고 방으로 들어갔다.

    서재로 들어왔을 때, 희경은 담배를 태우면서 서류들을 보고 있었다.

    “노병각이가 전화했더라. 건설사 매각할 때 소유 토지는 뺀다며?”

    “아까운게 많아서요.”

    “이 녀석아! 그린벨트 땅은 얼른 넘겨서 몇 푼이라도 건져야지. 그걸 천년만년 가진다고 오를 것 같냐?”

    “올라요.”

    “···뭐?”

    재환은 자신이 미래에서 알고 있는 정보를 희경에게 살짝 알려주기로 했다.

    “이번에 대통령선거로 정권이 바뀔겁니다. 그리고 이 불경기를 다시 살리려면 각종 규제를 풀거에요. 그 중에 그린벨트도 풀릴겁니다.”

    “그건 네 예상이지. 그리고 정권이 왜 바뀌어? 사전 지지율 뉴스로 못 봤어?”

    “바뀌어요. 이건 제 모든 걸 걸고 말하죠.”

    “으으음···.”

    희경은 그 말에 이제껏 준비했던 정치자금을 떠올렸다.

    여당 2에 야당1의 비율로 후원금을 내긴 했고, 그건 그냥 묻어둔 돈이라고 생각했는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정권 교체 차원에서 다르게 움직일 수도 있었다.

    “대체··· 그걸 어디서 알아온거냐? 미국 대학교에선 그런것도 가르쳐 줘?”

    “계산하다 보면 다 나와요. 그리고 절대 틀리지 않을 겁니다.”

    재환은 그렇게 얼버무리면서 아버지와 일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시국이 어떤 줄 알지? 자고 일어나면 전부 부도가 나는 세상이야. 그런 상황에서 건설하고 해운··· 이거 공개 매각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알아?”

    “잘 알죠. 기자들이 갈겨댈거 아닙니까? 혜성 위기설이라더니 아들이 계열사 매각하고 긴축경영한다고.”

    “그래서 다른 계열사에 불똥튀는거··· 어떻게 할 셈이냐?”

    “다른 계열사를 사서 그런 이야기 안 나오도록 할겁니다.”

    “뭐야?”

    재환은 자신이 적어놓은 수첩을 꺼내 아버지에게 보였다.

    “뭐야 이거?”

    “현재 매물로 나온 기업들입니다. 여기에서 시멘트 사업하고, 식품사업, 지방의 유통매장을 몇 개 인수할 겁니다.”

    그 말에 희경은 깜짝 놀라 물었다.

    “뭐, 뭐야? 이 녀석아! 그러면 기껏 매각하고 남은 대금으로 다른 회사를 먹겠다는 거야?”

    “절대 안 망할 기업으로요. 먹거리 사업하고, 다른 건설사들이 계속 찾을 수 있는 거로.”

    재환이 선택한건 시멘트와 푸드빌 사업, 그리고 지방의 목 좋은 곳의 유통매장이었다.

    현재 외환위기의 전초로 지방에 수많은 회사가 부도났지만, 그중에서 알짜를 골라 안고 가는 것은 그의 선택이었다.

    “시멘트 사업을 하게 되면 건설에 손을 뗐어도 언제나 그 업계와 협력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푸드빌 사업은 사내 식당··· 지금은 함바집이라고 하죠? 전문적인 식자재 납품으로 건설인력하고도 관계를 맺는 겁니다. 그리고 유통매장은 설명 안해도 아시죠? 혜성식품 판매에 필요한 겁니다.”

    “그렇게 해서 뭐가 남는데?”

    “그린벨트 땅 있잖아요? 그거 규제 풀리는 순간 건설업은 다시 하면 됩니다. 한 5년에서 10년 뒤 쯤에 적당한 중견 건설사 하나 인수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거죠.”

    “하아··· 도급업체 6위인 우리 혜성건설을 판 다음에 나중에 어중이떠중이 회사 하나 사서 다시 시작한다고?”

    “그러니 남길 인력에 대해서도 알아봐야죠.”

    막힘없이 대답하는 재환을 보고 희경의 눈은 점점 달라졌다.

    “그걸··· 너 혼자 다 하겠다는 거냐?”

    “원래 조직에 어려울 때마다 해결할 슈퍼맨은 필요한 법이죠. 그리고 그걸 제가 한번 해보려고요.”

    재환의 자신만만한 반응에 희경은 잠시 지켜보다가 의자에 몸을 맡겼다.

    “내가 이제 늙었나··· 갑자기 찡해지네.”

    그렇게 못마땅하고, 윽박질렀던 아들이 일 처리 하나는 시원시원하게 처리하는 걸 보니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진 것이었다.

    “내가 말이다. 우리 마누라 빼고 집안 식구들을 죄다 싫어했다.”

    “···.”

    재환은 그 말을 들으면서도 수첩에 앞으로 알아볼 사업 명단을 하나하나 적었다.

    “동생 놈들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하나같이 죄 맘에 안 들었어. 특히 너도 서울대를 가라니까 비싼 돈 내고 미국 가겠다는 말 들었을 때, 그냥 등록금 끊어버리려고 했다.”

    ‘안 그러면 아버지 그 성질머리에 어떻게 견뎠겠어요? 유학은 사실 도피용이었는데.’

    물론 도피성으로 아이비리그를 선택한 것은 재환의 머리로 이룬 거지만 말이다.

    “근데 말이다. 너는 좀 일을 신통하게 하는 것 같다. 계획이 아주 괜찮아.”

    재환은 그 말을 듣고서 아버지에게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미소를 지었다.

    “놀라는 일은 제가 성공한 다음에 하셔도 될 겁니다.”

    “짜식이···.”

    재환은 서재에서 희경과 계열사 매각건에 대한 회의를 하고 기분까지 일어나 술 한잔의 시간도 가졌다.

    그리고 재환은 아직 아버지에게 두 가지 폭탄선언은 말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 혜성이 반도체 전자산업과 자동차를 말한다고 하면 정말 우시려나?’

    ***

    며칠 뒤 다시 작성된 혜성건설 매각 건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 됐네요.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재무팀의 인사를 받은 재환은 나중에 황금알을 낳을 그린벨트 지역과 중요 인원에 대해서는 남겨놓고 나머지에 대한 고용승계와 회사 매각을 두고 움직일 준비를 했다.

    그때 갑작스럽게 기획실에서 달려오는 준호가 있었다.

    “실장님. 큰일입니다!”

    “김 대리, 무슨 일이죠?”

    “이걸 한 번 보시지요.”

    석간신문을 가져온 준호의 말에 재환이 본 순간 그의 표정도 일그러졌다.

    [혜성그룹 또다시 위기? 건설과 해운 매각을 추진한다는 소문도···]

    “!”

    “마, 말도 안 돼! 이게 어떻게 흘러간 거야?”

    “저희 건설팀은 아닙니다! 해운팀 역시도 철야를 해서 기자들과 닿은 사람도 없고요.”

    재환은 그것을 보고 신문을 찢어발겼다.

    “하아···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계속 선 넘는 장난질을 하네?”

    재환은 분노에 차서 그놈을 꼭 잡아서 밀고자의 최후가 어떤 건지 보여주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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