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7화 (7/244)
  • 07- 신재환의 체제

    혜성그룹 내에서 수십 년간 신 회장을 보좌해 왔던 성윤규의 사임.

    그것은 혜성의 대격변에 있어서 첫걸음에 지나지 않았다.

    일부 신문사들은 곧바로 석간으로 이 상황에 대해 보도했다.

    재환은 석간신문 하나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슬슬 효과를 보는구만.”

    오너의 아들이 2세 경영을 하면서 시작부터 오너 가신를 쳐낸 것은 뉴스감이 되기 충분했다.

    거기에 다음 주가는 아마도 상승 폭이 될 것이다.

    그것을 위해 재환은 전화를 들었다.

    “아, 안녕하세요? 삼우일보 기자님?”

    [네, 저희도 석간신문 봤습니다. 이야, 대단한데요?]

    “이건 시작이에요. 다음부터는 더 바쁠 테니까 내일 오시면 재미난 거 많이 볼 겁니다.”

    ‘그러니까 취재하러 오세요.’라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재환은 통화를 마치고서 다음 상황을 준비하기 위해 움직였다.

    통화를 마친 뒤 재환은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러 거실로 향했다.

    오랜만에 단란한 식사자리에서 희경은 연신 재환을 바라봤다.

    하지만 재환은 밥 먹는데 일 이야기에 대해서는 전혀 하지 않았다.

    “엄마, 이거 맛있네요?”

    “호호호, 이번에 새로 온 가정부 아줌마 요리실력이 아주 좋지 뭐니?”

    “그분 오래 일하셨으면 좋겠다. 확실히 반찬 맛이 다르네요.”

    반찬에 관한 이야기를 한 뒤로 저녁 식사를 마친 재환은 싱크대에 빈 그릇을 놓고 먼저 일어났다.

    그리고 방 안에 들어가서는 내일 발표할 자료를 프린터로 출력하고 있었다.

    지잉- 지이잉.

    잉크젯 프린터에서 하나하나 나오는 서류들을 확인한 재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덜컥-

    그때 문이 거칠게 열리면서 희경이 들어왔다.

    “아, 노크 좀 해 주시지.”

    “노크는 무슨! 안에서 뭔 짓 하는 거냐?”

    아들의 방으로 들어온 희경은 침대에 앉아서 재떨이를 찾았다.

    그러다가 종이컵 하나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두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 왜 여기서 담배를 태워요?”

    “너도 핀다며? 괜찮으니 물어.”

    자식 앞에서 맞담배를 권하는 희경의 제안에 재환은 그것을 받아들고 고개를 돌렸다.

    부자간의 자리에서 희경은 조용히 물었다.

    “성윤규 쳐낸 거 아주 잘했다. 게다가 비자금도 온전히 들어왔어.”

    “앞으로는 비율을 좀 줄이세요. 제가 청렴결백을 요구하지 않지만, 그래도 신경써야 돼요.”

    이 당시 재벌들이 비밀 계좌 한두 개 차고 다니는 건 일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위험성만은 아버지에게 계속 강조해줘야 했다.

    “임마, 회사 살리는 데 꼭 필요한 돈이야.”

    “네, 비상금으로는 좋죠. 하지만 쌓아두기만 화가 됩니다. 그거 운용이 힘드시면, 차라리 저에게 일부 맡겨주시죠? 화끈하게 써서 혜성을 더욱 성장시킬테니.”

    “!?”

    희경은 순간 뭐라고 말하려다가 이 일에 대해서는 화제를 돌려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건 다음에 말하고, 재환이 너 말이다. 이제 어찌할 거냐? 삼우일보 사장이 나한테 전화했는데, 너 기자회견 한다며?”

    재환은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여 회사의 아이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다.

    “그래서 말인데 한 번 봐 주세요.”

    재환은 자신이 출력한 서류를 희경에게 보였다.

    아들이 준비한 서류를 천천히 읽던 희경의 눈이 점점 커졌다.

    “이게 뭐야? [BQ] 시스템?”

    “베스트 퀄리티(Best Quality). 앞으로 하청 업체를 두고서 한 달에 한 번씩 조사하면서 가장 불량품이 적고, 공장 내부가 깔끔하면서, 근로기준법을 가장 잘 지킨 업체들에 주는 혜성의 인증 마크입니다.”

    이것은 훗날 00년대 중반이 되어서 1.2.3차 협력사를 두고 완제품을 만드는 종합 기업들의 방식이었는데, 품질경영을 생각하면서 재환이 먼저 꺼내 든 것이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 가장 꼴찌 업체는 경고를 하고 누적 3회면 곧바로 협력사 계약 파기랑 다른 업체랑 계약 들어갑니다.”

    “아래에서 아주 단단히 잡겠다는 말이구만.”

    “말로만 품질, 혁신 이런 건 식상하죠. 사람이 행동으로 보여야 하니까.”

    “좋다! 한 번 해봐 기조실장.”

    “네?”

    “하라고. 너 이제부터 기획조정실장이다.”

    갑작스러운 승진제안이었다.

    “임창훈 이사는요?”

    “그 친구가 성윤규 자리로 올라가는 거지.”

    “···알겠습니다. 하지요.”

    일단은 한 직급 더 올라가고 이제부터는 임원으로서 자리를 걸고 마음껏 움직일 수 있게 된 재환이었다.

    ***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재환은 혜성에서 시작할 BQ인증 제도에 대해 발표했다.

    “이제부터는 품질의 극대화를 해야 됩니다. 물론 저희 역시도 그것에 동참할 것입니다.”

    그로 인해 혜성그룹 내에 있는 전 계열사의 시찰 역시도 기획실의 이름으로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렸다.

    “이제부터는 퀄리티 경영을 하려고 합니다. 잘하는 쪽은 계열사나 협력업체와 상관없이 포상금을 풀고, 동반성장이 가능하도록 동행할 겁니다. 다만 그렇지 못한 쪽은 다른 회사 알아봐야 할 겁니다.”

    그렇게 하면서 재환은 상호만 가린 채 그동안 돌아다니면서 찍은 하청 공장들의 최악의 상태인 사진들을 공유했다.

    “제가 이런 걸 왜 기자분들에게 보이는지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재환은 작정하고 자신의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런 짓은 그동안 소비재 기업이면서, 식품까지 손대는 혜성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자충수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재환은 과거 오랜 경영자 경험으로 인해 지금 여기서 승부를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자, 그럼 오늘의 기자회견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 혜성은 계속해서 성장할 겁니다! 모두 기대해주세요!”

    재환은 마지막 인사까지 마치고 돌아갔다.

    그리고 각 언론사의 기자들은 새로운 재벌 2세 경영자의 탄생에 깊은 흥미를 보였다.

    ***

    “자! 일 시작합시다.”

    기획조정실 실장이면서 단숨에 임원으로 올라간 재환의 지휘 아래 밑의 직원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기획조정실은 감사팀과 홍보팀을 산하에 두고 있어서 그 위상이 막강했다.

    해서 대리~ 과장급만 되더라도 다른 부서의 동렬인 직책보다 더 높은 자리로 평가됐다.

    그런 곳에서 재환은 며칠간 회의를 통해 거치면서 아이디어를 받고 혜성그룹 전체에 대한 문제점을 찾아 나갔다.

    자연스럽게 부하직원들의 야근이 늘어나고 주말 출근도 늘어났지만, 재환은 사비로 식사를 제공하고 윗선에 말해 보너스를 챙겨주는 쪽으로 직원들을 달랬다.

    그렇게 아이디어를 받을 때, 한 명이 말했다.

    “실장님. 그 BQ프로젝트 말입니다.”

    “아, 말하세요.”

    손을 들면서 말한 이는 입사 2년 차의 김준호 사원이었다.

    평사원이지만, 처음 재환이 왔을 때도 친근하게 다가왔고 계열사 자료를 만드는데 도와준 친구 중 하나였다.

    “그 계열사와 협력사에 달마다 조사한다는 것 말입니다. 필름 카메라를 써서 사진을 보내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음?”

    재환이 계속 말해보라고 손짓하자 준호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말했다.

    “필름카메라 중에서 사진을 찍으면 날짜하고 시간이 찍히는 거 있지 않습니까? 그걸 이용해서 계속해서 같은 기계와 같은 라인을 매일 찍게 하고 한 달에 한 번 검사 받을 때마다 하게 하는 겁니다.”

    재환은 그 말을 듣고서 좋은 생각이라고 채택했다.

    “아, 그거 좋네요. 불시검사를 생각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겠네.”

    스마트폰이 없는 아날로그 시대이니 인력으로 수시로 점검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

    “김준호 사원 아이디어 채택하겠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기획서 하나 써주세요. 제가 회장님에게 올리겠습니다.”

    “네? 제 아이디어가 직접요?”

    “하세요.”

    “!”

    윗선을 거치지 않고 자신의 아이디어가 다이렉트로 회장한테 간다는 말에 김준호는 등줄기가 서늘했지만, 이미 결정됐다.

    “다음 아이디어 혹시 있습니까?”

    “저, 실장님! 이건 어떨까요?”

    “저도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 뒤로 다른 직원들이 손을 들면서 아이디어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재환은 수첩을 꺼내고 그들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어보기로 했다.

    ***

    기획실 분위기 이야기가 점점 다른 이사회에서도 들려올 때, 재환은 한 가지 폭탄을 터트렸다.

    “계열사 정리가 필요할 것 같네요. 혜성해운하고 혜성건설에 대한 매각을 논의하고 싶습니다.”

    “!”

    재환이 입사한 지 한 달.

    개혁을 추구한다면서 성윤규를 날려버렸을 때도 어찌어찌 넘어갔지만, 거기에 이어 주요 계열사 매각을 한다는 것에는 다른 임원들도 들썩였다.

    “신 이사! 질문 있소!”

    손을 들면서 말한 것은 김범준 사장이었다.

    “네, 말씀하세요.”

    범준은 방금 이야기를 두고 다시 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건설하고 해운을 포기해야 하는 이유를 좀 말해보시죠?”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회장의 아들이 아닌 임원 대 임원으로서 한 말이었다.

    “네, 좋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왜 저희가 두 회사를 처분해야 하는지 말하겠습니다.”

    재환은 이미 준비했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야기를 했다.

    “첫째, 지금 시국이 매우 안 좋습니다. 기업들이 줄도산하고 있고, 정부에서도 개선책을 내놓는다고 하고 있어요. 이 상황에서 최대한 현금 소유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왜 해운이랑 건설이요? 둘 다 그룹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계열사인데!”

    “어~ 보수적으로 기업집단을 운용하면 중요하죠."

    재환은 일단 그 말을 받아준 다음에 자기 생각을 말했다.

    "사실 대개 그렇지 않습니까? 재계서열 10대 그룹이니, 20대 그룹이니 하는 대규모 기업집단이면 아파트랑 빌딩 올리는 건설사는 하나 가져야겠고, 산업의 역군인 중공업도 하나 가지고, 휴가용 리조트 하나 가지고, 보험사도 비상금용으로 하나 운용하다가, 그러면서 수출 노린다고 해외에서 똥배 취급받는 컨테이너선 몇개 운용하며 해운 굴리고···.”

    “신 이사!”

    범준의 외침에도 재환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은 이걸 좀 개선할 땝니다. 일단 가장 제값을 받을 수 있는 게 해운과 건설 두 개입니다. 어차피 우리가 8000톤 이상의 벌크선으로 과자를 전 세계에 수출할 상황도 아니고, 수만 톤 되는 원유운반선 운용할 석유화학 회사를 가진 것도 아니에요.”

    이미 재환은 모든 계열사에 대한 평가를 끝낸 상황이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무리하게 인수해서 만든 문어발식 경영에 대해 끊어버릴 셈이었다.

    “제가 호황기였다면 매각이 아닌 계열사의 정상화를 말하고 라면에서 로켓까지 모두 운용하겠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어떻게든 살고 봐야 해요.”

    아직 이들은 곧 벌어질 IMF 경제위기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사실 아버지인 희경 역시도 지나치게 낙관론을 가지고 ‘기업들 몇 개 줄도산하는데 싼값에 인수하자.’ 하는 식으로 역으로 인수합병으로 세를 불렸다가 결국 그룹이 공중분해 당하게 된다.

    재환은 자신이 혜성에 온 이상 그런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한 상황이었다.

    “저기, 저도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손을 들고 물어본 사람은 현재 혜성 리조트 부문을 맡은 한유철 부사장이었다.

    “네, 말씀해주세요.”

    “지금 이야기를 들어보면 해운과 건설 두 계열사를 매각하시겠다고 했는데, 이것은 이사회의 결정을 통해서 진행하실 겁니까?”

    재환은 ‘이사회의 결정을 통해서’라는 그 뜻을 알아듣고 말했다.

    “네, 다른 임원분들께서도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왜 지금 해운과 건설업을 매각해야 하는지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올 수도 있습니다.”

    어린 도련님이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임원들 앞에서 그들의 투표로 싸우겠다는 이사회 투표를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재환의 대답.

    오너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경영자로서 무조건 진행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범준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니, 그래요. 뭐 투표를 통해 매각 찬성이니 반대니 일단 된다고 칩시다. 누구한테 매각할 겁니까? 막말로 눈뜨고 나면 위기설이니 부도설이니 나는 시국에 넙죽 살 사람이 있어요?”

    그 말을 들은 재환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대답했다.

    “네, 이사회 투표에서 ‘해운, 건설업 매각 건’이 가결된다면 제가 직접 매각대상자를 찾겠습니다. 그리고 그 책임 역시 제가 질 겁니다.”

    재환은 거리낄 것 없이 곧바로 임원들에게 자기 뜻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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