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6화 (6/244)
  • 06- 증거 모였어요. 가세요.

    용산의 혜성그룹 본사에서는 계속해서 전화가 오갔다.

    “그러니까 천안찍고 다음은 안성이라고? 언제 또 거기까지 간 거야?”

    성윤규 라인의 오승진 이사는 계속해서 재환의 행동을 보고 받고는 통화를 마쳤다.

    “전무님, 신 팀장 이 사람 계속해서 하청 공장 위주로 들쑤신다는데요?”

    “후우, 하청업체 상대로 군기좀 잡아보겠다는 건가?”

    신문기사 사건 이후로 가뜩이나 감정이 좋을 리가 없는데 앞장서서 혜성과 연계된 중소기업 공장들을 들쑤셔대서 그 연락이 모두 성윤규를 통해 들어온다.

    “어린 친구가 아주 열심히네?”

    “전무님. 이거 정말 어떻게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회장님에게 건의해서라도 성 팀장이 저렇게 못 날뛰게요.”

    오 이사의 말에 성윤규는 담배를 꺼내물고 불을 붙이며 말했다.

    “후우- 그렇지 않아도 나랑 김 사장 하고 이야기를 해야겠어. 이거는 뭐 내부에서 단합해도 모자랄 상황에 있는 대로 헤집어놓고 있으니 원. 아무리 회장님 아들이라도 너무하잖아.”

    성윤규는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문득 떠오른 게 있어서 오 이사에게 말했다.

    “오 이사! 지금 신 팀장이 들쑤시는 회사들 리스트 작성해봐.”

    “네?”

    “어디를 얼마나 뒤지는지 한번 알아오라고.”

    “아, 네! 알겠습니다.”

    승진이 황급히 뛰어나가고, 승규는 담배를 태우다가 뭔가 떠오른 게 있는지 그 이름들을 되뇌였다.

    “서정기업··· 천안가공식품··· 영광식품··· 서진푸드빌.”

    그들에겐 익숙한 이름이었다.

    10년이 넘도록 같이 손발을 맞춰서 자신이 차장이나 부장 시절에도 거래 결제를 했던 곳이니 말이다.

    “물론 그것만 있는 게 아니··· 잠깐!”

    윤규는 뭔가 떠오른 게 있는지 벌떡 일어나서 중얼거렸다.

    “신재환 이 새끼가 설마···?”

    설마가 사람 잡을 것 같아 즉시 전화기를 돌리는 윤규였다.

    ***

    열흘의 시간 동안 재환은 전국에 있는 혜성그룹의 계열사들을 두루두루 둘러보고 왔다.

    아직도 많은 수의 하도급 업체가 있지만, 재환이 핀포인트로 고른 곳들은 전부 문제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것들을 모두 모으자 아주 두툼한 서류 뭉치가 만들어졌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재환은 아버지에게 약속했던 ‘딱 열흘만 달라.’라는 시간에 맞춰 이제 서울로 돌아갔다.

    그리고 하늘이 어둑어둑했을 때, 재환은 강남에 있는 자택에 도착했다.

    “신재환, 너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온 거냐?”

    희경은 오자마자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아들을 갈궜지만, 재환은 태연하게 서류 뭉치를 보이면서 말했다.

    “아버지. 방에 가서 이야기하시죠? 재밌는 자료 아주 많이 가져왔습니다.”

    “···뭐?”

    돌아오자마자 서류뭉치를 들고서 안채로 들어간 희경과 재환.

    명숙은 혹시라도 남편과 아들이 또 싸울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문에 귀를 들이댔다.

    그리고 곧바로 희경의 고성이 울렸다.

    “이런 죽일 놈들이!”

    “에헤이! 컴다운! 테킷이지!”

    “내 이 개자식들 가만 안 둔다!”

    싸우는 소리 같은데 고성을 지르는 희경과 계속 말리는 재환.

    명숙은 당장 문을 열고 들어가 말리려고 했지만, 얼마 안 있어 문이 열렸다.

    철컥-

    “아앗!?”

    “응? 엄마 왜 여기 계세요?”

    “으, 으응? 아니 음료수를 좀 가지고 들어가려다가. 하하하, 내 정신 좀 봐! 음료수도 안 챙겼네? 생과일주스를 좀 만들었거든?”

    후다닥 거실로 들어간 명숙을 보면서 재환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컴퓨터를 켰다.

    이제는 이 굵은 CRT모니터에서 전원까지 걸리는 시간이 익숙해질 정도였다.

    그리고 PC통신을 들어가 현재 혜성그룹에 대한 주가를 살펴봤다.

    위기설 이후로 계속 떨어지던 지주회사 혜성의 주가, 그다음 다른 계열사들도 계속해서 요동을 쳤다.

    그런 추락이 겨우 붙잡힌 것은 ‘신재환 체제’라는 기사로 나온 삼우일보의 기사였다.

    그로 인해 약간의 기대는 있는지 현상유지가 되는 주가였다.

    “자~ 그럼 내일부터 CEO 리스크 한 번 봐볼까?”

    재환은 천릿길도 한걸음부터라고 준비했다.

    ***

    다음날 이사회가 열렸을 때, 임원들은 긴장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희경은 임원들을 쭉 둘러보고서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말했다.

    “내가 말이야. 그동안 회사 사정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자각했어. 그래서 공부를 마친 내 아들을 불러와 기획실에 있게 했다.”

    “···.”

    “그런데 말이야. 아들 녀석이 아주 바쁘게 움직였더구만, 뭐 하는 짓이냐고 내가 따끔하게 타이르기도 하고 지방으로 보내봤어. 그래서 그놈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 한다.”

    그러면서 신 회장이 손가락을 튕기자 문이 열리면서 재환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정한 정장 차림에 굳은 의지가 담긴 눈.

    승부사 적인 마인드로 앞에 선 재환은 임원들을 쭉 둘러보고는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기획실 팀장 신재환입니다.”

    “신 팀장! 신문에 그런 기사는 왜 쓴 겁니까?”

    사장 김범준이 먼저 포문을 연 순간 성윤규도 거들었다.

    “맞습니다. 지금은 똘똘 뭉쳐서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때 아닙니까?”

    신 회장은 무섭지만, 그 아들에 대해서는 임원으로서 한마디씩 해야 됐다.

    그렇지 않으면 ‘어어어?’ 하다가 한 방에 날아갈 수 있는데 자신들이니 밥그릇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재환은 임원들의 말을 하나하나 들은 다음 이제 시작하기로 했다.

    “좋습니다. 혜성의 단합을 위해서 모두가 뭉쳐야 한다고들 하셨는데 말이죠.”

    그러면서 책상 위에 거대한 서류를 올려놨다.

    “임원도 직원도 회장님도 저도 모두 혜성의 사람입니다. 그렇게 뭉쳐야 한다 그 말이죠?”

    “맞습니다. 그러니···.”

    “근데 말이에요. 백혈구와 암이 같은 세포라고 뭉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모두 썩어서 죽어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무슨 소리인지는 지금 보여드릴게요.”

    재환은 서류를 꺼내서 임원들 앞에서 보였다.

    “그동안 출장을 가면서 저희 혜성에 얼마나 많은 암세포가 있는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하나 도려내겠습니다.”

    먼저 꺼낸 서류는 하도급 공장에 대한 일이었다.

    “박서정. 올해 나이 52세로 중졸의 학력으로 일궈낸 서정기업으로 저희 혜성전자와 협력을 맺었고 상당한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보여준 사진들은 모든 임원이 돌려보게 했다.

    “이 업체하고 10년 동안 거래를 하신 게, 당시 기획실에 있던 성윤규 전무님의 입김이 들어갔었네요?”

    “무, 무슨! 분명 부하직원들을 통해 결제하긴 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성윤규는 뜨끔해서 황급히 손사래를 쳤지만, 재환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서 부하직원들 이야기만 듣고서 10년 동안 현장 한 번 안 돌아보셨군요? 적어도 사진 받아서 확인도 안 하시고요?”

    물론 임원씩이나 올라가서 일일이 하청 업체들 둘러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무리지만, 그걸 내버려 둔 책임은 그 자리에서 물을 수 있다.

    “자, 서정은 여기까지 합시다. 그거 하나 가지고 붙잡기에는 우리 성 전무님의 죄가 너무 큽니다.”

    얼굴이 붉어진 윤규를 보고서 재환은 다음 서류를 꺼냈다.

    “이건 경기도 안성에 있는 공장입니다. 저희 혜성 건설의 자재를 납품하는 기업이네요. 이름은 현아건설이라는 곳이네요.”

    현아라는 이름이 나오자 다시 한번 윤규의 눈썹이 들썩였다.

    “철근하고 골재 납품하는 건데 잘 보세요. 이게 골재에요? 등산 갔다가 애들이 골라온 자갈이에요?”

    재환은 성윤규가 맡아서 계약한 협력사들이 전부 폐급이라는 것을 하나하나 까발렸다.

    그로 인해 임원들의 눈은 점점 성윤규 전무 쪽으로 향했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때 그가 반박했다.

    “머, 먼저··· 혜성과 같이하는 협력사들이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었다는 것에 대해 모두에게 유감을 표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가와 기술력 문제로 선별한 공장의 문제였습니다.”

    “단가랑 기술력이요?”

    “현재 혜성의 수익 하락으로 인해 수시로 협력업체를 바꾸고 원가 절감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밑에 있는 부하직원들의 계약을 상세히 알아보지 못하고 수치상으로만 금액을 줄이는 데만 신경을 썼습니다.”

    결국, 회사가 어려워서 원가 절감을 하다 보니 협력사들의 저질 납품에 대해 검수를 못 했다는 책임이었다.

    “네, 변명 잘 들었어요. 그래서 이 자리에서 회장님과 모든 임원 여러분께 건의하고 싶습니다.”

    재환은 이 자리에서 자신이 담아둔 말을 했다.

    “성윤규 전무에 대한 해임안을 제출합니다.”

    “!”

    해임.

    회장까지 있는 자리에 임원 회의에서 3인자인 성윤규의 해임 건이 나오자 모두가 들썩였다.

    그동안 신희경 회장의 왼팔로 김범준과 같이 쌍두마차로 혜성을 이끌어온 그였다.

    “회장님!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제가 이 자리에서···.”

    “아, 됐어.”

    희경은 바로 말을 끊어버린 다음 임원들에게 말했다.

    “성윤규 해임안에 들어가기 전에 10분 동안 휴식 시간을 주겠소. 나도 담배나 한 대 태우고 올 테니까 다들 나가서 화장실들 다녀와요.”

    신 회장의 명에 임원들은 눈치를 보다가 하나둘씩 일어났다.

    “저기 오 이사! 김 이사!”

    성윤규가 황급히 자신의 라인 임원들을 불렀지만, 그들은 혹시라도 불똥이 튈까 휴대폰을 들면서 바쁜 척을 하며 나갔다.

    그렇게 모두가 우루루 나갔을 때, 임원실에 남은 것은 재환과 성윤규였다.

    어째 이런 자리를 만들어준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성윤규는 웃고 있었다.

    “큭큭큭, 도련님. 아니, 팀장님이라고 불러드릴까요?”

    “···?”

    웃고 있다.

    이런 상황에 몰렸는데도 성윤규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공장 문제하고, 저질 납품··· 네, 반드시 개선하겠습니다. 그거 지적해주신 거는 차기 회장으로서 아주 잘 하신 겁니다.”

    “칭찬받을 게 아니라 당연한 일을 한 거고요, 개선은 성 전무님 후임이 하셔야죠? 아, 해임되실거지?”

    “하아~ 우리 팀장님. 뭘 모르시네요. 제가 그런 회사만 있는 게 아니라 몇 군데와 같이 계약한 곳들을요.”

    재환은 윤규의 말을 듣고 담배를 꺼냈다.

    “몇 군데 계약을 하셨어도 제 반응은 똑같아요.”

    “다 보시면 다를겁니다.”

    “그 계약한 곳들의 비자금 때문에 자기 목이 안 잘릴 거로 생각했다면, 엄청 큰 착각입니다.”

    “?!”

    아직 살길이 있다고 여유를 보인 윤규는 복부를 한 방 얻어맞은 것 얼굴을 했다.

    “어떻게 3차 공장에 사장들 계좌로 비자금을 쪼갤 생각을 하셨어요? 그래서 그렇게 똥배짱으로 공장들을 옹호하셨나?”

    재환은 이미 철저하게 준비하고 털 준비로 온 것이었다.

    하청 공장들을 쥐잡듯이 잡은 것은 혜성의 첫 데뷔 이후 기강을 잡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런 하청업체 사장들을 불러서 털어버린 것은 ‘비자금’이었다.

    “우리 성윤규 전무가 아버지의 왼팔로 비자금 관리 하신 거 잘 알고 있어요. 그 돈을 해외 부동산으로 돌리거나, 지인들을 통해 계좌를 만든 줄 알았거든요? 근데 생각이나 했을까요? 하청업체 사장들에게 비자금 쪼개서 관리시킨 것인지.”

    “어, 어떻게!”

    “그 리스트 보여 드릴까요?”

    “신 팀장님!”

    뭐라고 협상을 하려 했지만, 재환은 단호했다.

    “전무님, 혹시라도 비자금 문제로 딜을 볼 생각을 하셨으면 지금 당장 접으세요. 이미 거기에 금고 열쇠들 제가 다 확보했습니다.”

    ‘이, 이런!’

    열흘 동안 지방 공장을 돌면서 재환이 벌인 행동의 진짜 의도는 비자금 추적이었다.

    그리고 그 패턴은 이미 지난날의 삶에서도 잘 알기에 그것부터 잡아버린 것이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비자금 맡긴 분들이 왜 열흘 동안 전화 한 통도 없었냐고 생각하신 거죠? 그러 수 밖에요. 제가 그 사람들 계약은 챙겨줄 테니 비자금 열쇠만 달라고 했거든요.”

    물론 그 뒤로 공장에 대한 품질개선 문제는 각서를 받아내서

    “아, 혹시나 정의로운 내부고발자 식으로 외부에 터트릴 거면 접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미 거기에 맞춰서 총대 메는 분들도 넘치거든요.”

    허튼짓해서 빠져나갈 길은 전부 막아버린 재환의 선언에 성윤규가 빠져나갈 방법은 없었다.

    “도, 도련님.”

    “팀장님.”

    재환이 정정해주자 윤규는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을 기세로 매달렸다.

    “신 팀장님! 이번 일은 어떻게 한 번만···.”

    “안 돼요.”

    ***

    10분이 지나고 임원들이 모였을 때, 신 회장은 자리에 앉아 성윤규를 바라봤다.

    울그락불그락 했던 얼굴이 이제는 귀신을 본 것처럼 하얗게 질려있었고, 그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자, 그럼 성윤규 전무에 대한 해임안은···.”

    그 순간 성윤규가 일어났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보게.”

    “저 성윤규는··· 모든 책임을 지고··· 혜성그룹 전무 자리에서 사임하겠습니다.”

    해임안이 일어나기 전 자진사임.

    그것을 본 신 회장은 눈길 한번 안 주고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해.”

    그걸로 회장의 옛 왼팔은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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