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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재벌의 삶!-5화 (5/244)
  • 05- 바로 끝낼게요.

    임원들은 신 회장의 차가 도착했다는 말에 굳은 얼굴로 정문에서 기다렸다.

    신 회장과 같이 내릴 이번 사태의 주역, 재환을 찾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그룹 오너의 아들이라고는 해도 대놓고 ‘혜성의 임원들 쳐낼 겁니다.’라는 말을 신문기사에 대놓고 떠벌린 것은 대사건이었다.

    그것을 앞두고 가장 열이 받은 것은 대표이사 김범준, 그리고 전무 성윤규였다.

    평소 양대 파벌로 사이가 좋지 않던 둘이 합심할 정도로 재환에 대한 그들의 분노는 컸다.

    차가 멈추고, 신희경 회장이 내렸을 때, 임원들은 인사를 하면서 같이 내릴 아들을 찾았다.

    하지만 차에는 수행비서와 회장만 있었다.

    재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희경만 임원들을 보며 인사했다.

    “다들 좋은 아침이야.”

    “회, 회장님! 신 팀장은 어디에···?”

    “뭐야? 나 말고 그 녀석 찾으려고 다들 내려온 거였어?”

    “아, 아닙니다. 회장님!”

    윤규가 나서서 손사래를 쳤을 때, 희경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거 다들 신문 보고서 이렇게 왔나보구만? 그래서 내가 그놈 지방으로 출장 보냈어. 당분간은 거기 있을 거야.”

    “!”

    이 상황을 만들어놓고 지방 출장을 떠났다는 재환을 두고 희경은 임원들에게 말했다.

    “뭐해? 들어가서 회의 시작해야지?”

    ***

    재환은 아버지가 빌려준 자동차를 타고 충남 천안에 도착했다.

    “세상에, 여기까지 오는데 이렇게 시간이 걸렸어?”

    재환은 훗날 수도권 전철이 뚫려서 1시간 반이면 올 수 있는 곳을 돌고 돌아 국도로만 와서 녹초가 된 상황이었다.

    서울에서 고속도로 타고 천안 오는데 1시간인데, 같은 지역에서 공장까지 가는 시간이 1시간 반이 걸렸다.

    “아이고, 다음부터 장거리는 운전기사 대동해야 하나?”

    재환이 그렇게 힘들게 도착한 곳은 혜성전자의 라디오 조립을 하는 공장이었다.

    그것도 직영 협력업체가 아닌 하청에 하청을 주는 시골의 중소공장.

    그리고 도착해서 본 공장은 인상이 찌푸러들 정도였다.

    논밭과 퀴퀴한 냄새가 나는 소 축사들이 가득한 곳.

    거기에서 도로포장도 제대로 안 된 길에 컨테이너로 된 공장을 보고 ‘이런 데서 제품을 만드냐?’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였다.

    어쨌건 도착은 했으니 이제부터 시작이라 생각하고 안주머니에서 선글라스를 쓴 재환이 움직였다.

    경비 하나 없는 공장 안에 들어오자 그곳에서는 언제 청소했는지 모를 기름때가 낀 옛날 기계에서 부품 조립을 하는 노동자들이 보였다.

    나이든 한국인 노동자들이 있었지만, 대다수는 동남아 사람들이었다.

    93년 산업 연수생 이후로 시골 공장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보인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진짜 내가 감사팀 운용했으면 이런 곳들은 죄다 아웃이었다.”

    재환은 혀를 차면서 공장을 계속 지켜봤다.

    그때 공장 사무실에서 나온 중년의 남성이 재환을 보고 물었다.

    “어이!”

    “?”

    “당신 누구야? 왜 여기서 얼쩡거려?”

    초면부터 반말하면서 재환을 몰아붙이는 이는 50대 중후반에 회사복을 입은 남자였다.

    재환은 선글라스를 벗으면서 자신의 명함을 보였다.

    “혜성그룹 기획조정실 팀장 신재환입니다.”

    “예, 옛!?”

    권위가 사람을 비춘다고 자신을 소개하고 명함을 주자 화들짝 놀라면서 고개를 숙인 남자였다.

    “죄, 죄송합니다. 팀장님! 제가 여기 서정기업 사장인 박서정입니다.”

    박서정 사장은 재환 앞에서 연신 사과를 하며 쩔쩔매고 있었다.

    재환은 피식 웃으면서 그 인사를 받고 사무실로 향했다.

    ***

    “자, 여기 드시죠.”

    냉장고에서 꺼낸 유리병에 오렌지 주스를 따르면서 대접하는 박 사장을 보고 재환은 입을 열었다.

    “박서정 사장님, 국졸의 승부사라는 별명과 신기술과 성실함을 인정받아 저희 혜성하고 협력사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아, 과찬이십니다. 허허허허.”

    멋쩍게 웃는 서정을 보면서 재환 역시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이런 공장에 얼마나 대단한 신기술이 있어서 그런 기사가 났는지 모르겠네요?”

    “예? 아, 그··· 그건.”

    “게다가 신기술인데 조립하는 것은 동남아 노동자네요? 기술 유출 같은 일은 없겠지만, 베테랑 기술자는 손에 꼽을 정도인 거 같고요.”

    초반부터 밀어붙이는 아들뻘의 재환을 보고서 서정은 식은땀을 흘렸다.

    “공장 한 번 제대로 돌아볼까요?”

    “아, 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재환은 서정의 안내를 받으면서 공장 내부로 향했다.

    공장 전체를 둘러보자 상황은 더 심각했다.

    부품의 불량률도 상당했고, 재환을 정말 경악하게 한 것은 부품에 도색할 때, 측정자를 버니어가 아니라 15cm 막대 자로 재는 걸 본 거였다.

    사장인 서정이 그 동남아 노동자를 제지했지만, 재환은 그 자리에서 다 집어 던지고 정말 화낼뻔했다.

    그 상황에서 오차 1~2mm가 나오면 긁어내서 사이즈를 맞춘 칼자국이 부품에 그대로 드러났다.

    “가끔 저희 혜성 라디오에서 불쾌한 노이즈가 들리는 불량품이 나온다더니, 원인이 여기 있었네요?”

    “죄, 죄송합니다. 팀장님!”

    “아니, 버니어 그거 하나가 얼마나 한다고 하나 가지고 돌려써요? 그것도 모자라서 막대 자도 씁니까?”

    이제껏 형식적으로 와서 대충 둘러보던 직원들과 다르게 재환은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살피면서 문제점을 하나하나 지적했다.

    담당 공무원들도 이 정도로 몰아붙이지는 않았는데, 재환은 한술 더 뜨고 있었다.

    모든 걸 둘러본 재환은 한숨을 쉬면서 서정에게 말했다.

    “사장님. 이거 대처 잘 하셔야 할 거예요.”

    “유, 유의하겠습니다.”

    이런 공장 돌아가는 꼴은 눈감고도 아는 재환이었다.

    “그다음에 공장 근처에 보니까 말이죠. 조명 밑에 날벌레들 죽어서 쌓인 거 많은데, 저런 거 기계 부품 안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죠?”

    하나부터 열까지 공장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지적한 재환을 보고 서정은 식은땀을 연신 흘리면서 정말 뭐 씹은 얼굴이었다.

    재환은 공장에 대해 있는 대로 털어버린 다음에 떠날 준비를 했다.

    “지금 지적사항 있는 거 전부 바로잡아 주세요. 저는 천안에 있는 다른 공장들 돌 겁니다.”

    “아, 아! 네. 알겠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쩔쩔매는 서정을 보고 재환은 넌지시 말했다.

    “며칠간 천안에 묵을 거니까 불시에 다시 찾아올 겁니다.”

    “!?”

    서정은 그 말을 듣고서 가슴이 철렁했고, 재환은 차를 타고 조용히 떠났다.

    “후우, 그 자식 겁나게 까탈스럽구만.”

    “형님, 이거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서정의 동생이자 공장 이사인 박서윤 이사의 말에 서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후우, 이거 저 팀장 명함이거든? 네가 챙기고 이따 밤에 연락해 봐라. 천안에 룸 하나 잡고 어떻게 좀 찔러 줘.”

    “네?”

    “방법이 있냐? 저거 지갑을 채워줘야 지랄을 안 할 거 아니야?”

    서정기업은 매우 잘못된 판단으로 재환을 구워삶으려 했다.

    ***

    한편 재환은 천안 외곽에 있는 또 다른 공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이곳저곳을 찍었다.

    이곳은 혜성그룹의 핵심인 혜성식품에서 버터크림과 식용색소를 납품하는 하도급 회사 영광식품이었다.

    그리고 재환의 분노 게이지는 더욱 올라있었다.

    “사람 먹으라고 한 곳에서 이렇게 먼지가 많습니까? 벌레 하나라도 나왔으면 저 정말 뒤집어엎고 식약청에 신고해야겠는데요?”

    “죄송합니다.”

    재환은 어떻게 제대로 된 공장이 없냐면서 카메라로 찍은 것들을 담고서 말했다.

    “이제부터 사업소에서 매일 같이 공장 내부 사진 찍겠습니다. 요새 카메라는 사진 인화하면 날짜 적히는 거 아시죠? 속일 생각 마시고 잘 해주세요.”

    “예,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식품 공장에 대해서도 영혼까지 털어버린 재환은 차에 올라탔다.

    “후우.”

    적어도 21세기에서는 단가가 낮아서 어쩔 수 없이 구형 기계를 쓰고,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정상 참작할 만했다.

    하지만 지금은 기본적인 것도 갖추지 않고서 폐급을 납품하는 것이 비일비재했다.

    이렇게 하나하나 털다 보면 전국에 있는 중소기업이 전부 철퇴를 맞을 것이다.

    “뭐, 이러면 분명히 저녁에 연락하겠지만.”

    재환이 생각한 것은 바로 그거였다.

    ***

    그날 저녁, 호텔을 체크인하고 쉬고 있을 때 재환의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팀장님? 저 서정기업의 공장장 박서윤이라고 합니다.]

    “무슨 일이시죠? 공장 개선 사항입니까?”

    [저, 그게 말입니다. 그것 때문에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혹시 지금 천안에 계십니까?]

    “여기 지금 A호텔인데요?”

    [아, 저희가 바로 차 보내겠습니다. 연락드릴 때 몸만 나오시면 됩니다. 하하하.]

    전화통화를 끝낸 재환은 그것을 보고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애쓴다, 멍청이들.”

    재환이 내려와 고급 세단에 탔을 때, 그들이 안내한 곳은 아니나 다를까 룸살롱이었다.

    서정이 잔뜩 준비한 것인지 고급 위스키하고, 과일 안주에 호스티스들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자, 저기 상석에 앉으시지요. 다들 뭐해? 팀장님 모시지 않고.”

    그때 재환은 손을 뻗었다.

    “아 됐어요. 아가씨들 내 보내세요.”

    “네?”

    “내보내세요.”

    “···알겠습니다.”

    서정은 호스티스들을 내보내고, 자리에 앉은 재환을 향해 위스키를 따라줬다.

    그것을 본 재환은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했다.

    “여기 접대할 돈이면 청소부 불러서 공장 한 번 싹 갈아엎는 게 되지 않나요?”

    “그, 그렇습니다. 공장 문제는 무조건 해결하겠습니다. 그리고···.”

    서정과 서윤 형제는 아들이자 조카뻘인 재환을 향해 일어나 90도로 인사를 했다.

    “팀장님, 몰라 봬서 정말 죄송합니다.”

    “혜성그룹의 후계자라는 것을 알고 저희가 이렇게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뒤늦게 재환의 정체를 알아낸 박 사장 형제는 혜성의 차기 세자를 알아보지 못한 죄를 청했고, 어떻게든 비위를 맞추기 위해 납작 엎드렸다.

    재환은 그것을 보고서 조용히 말했다.

    “편히 앉으세요. 보기 불편하니까.”

    “아, 네!”

    황급히 소파에 앉은 둘을 보고서 그들은 품 안에 담아둔 봉투를 꺼내려 했다.

    “스톱!”

    “!?”

    재환은 즉시 그 행동을 제지하고 말했다.

    “내가 지금 그런 푼돈 구경하려고 여기 나온 줄 아십니까?”

    “아, 아닙니다! 실장님!”

    다시 한번 두 형제가 고개를 숙이고, 재환은 이렇게까지 했으니 이제는 속내를 좀 꺼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런 거 받고서 내가 넘어가 주면 계속 공장 그런 식으로 가동하려고요? 장인 정신이나 직업적 윤리의식··· 뭐 이런 거 마음속에 없나요?”

    “조, 조치하겠습니다! 공장은 무조건 바꾸겠습니다.”

    “원하시는 오더대로 모두 개선하겠습니다. 제발···.”

    요즘 같은 불경기에 거래가 끊기면 그들에게 남은 것은 죽음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은행 빚을 갚기도 빠듯한 상황에서 이런 상황까지 왔으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공장 계속 가동하고 싶으시죠?”

    “네! 그거야 당연하지요!”

    “은행의 융자도 갚으셔야 하고요?”

    “맞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계약에 관해서는···.”

    재환은 그것을 보고서 술잔을 비우며 말했다.

    “그럼 더 많은 돈이 필요하죠.”

    그 순간 서정과 서윤은 눈빛을 주고받으며 아까 꺼내려 했던 봉투와 다른 봉투까지 꺼내려 했다.

    “저, 이게 선금이고 나머지는···.”

    그 순간 재환이 빈 잔을 탁자에 내리쳤다.

    쾅!

    “아이씨! 그러니까 그 돈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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