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4화 (4/244)
  • 04- 인터뷰 속 선전포고.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수제 흑맥주 집.

    그곳은 맥주의 맛만큼이나 엄청난 가격으로 압구정동 내에서도 좀 사는 집이나 이용하는 곳이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여기 있는 손님들의 전 재산을 합쳐도 재환과 현규한테는 안 될 거다.

    “자, 한잔하자.”

    “그래. 난 조금만 마시고 일찍 들어가야 할 것 같아.”

    현규는 내일 출근을 생각하고서, 미리 이야기했고, 재환 역시 그걸 알고서 오래 붙잡을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와서 할 말이 뭐야?”

    “할 말은 무슨, 말했잖아? 미국에서 온 뒤로 오랜만에 친구랑 한잔하고 싶다고.”

    재환은 계속해서 현규를 향해 친근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현규가 아직 그룹 내에서 보여준 것은 없어도 국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재벌 삼신가의 사람이었다.

    “재환아. 나도 눈치가 있지, 계속 잡담만 하겠어?”

    애가 먼저 탄 것은 현규였다.

    그는 친구 재환이 뭔가를 부탁한다면 판단해본 다음에 결정하고 일찍 일어날 생각이었다.

    그리고 먼저 부탁할 게 있으면 하라는 현규의 말을 들은 재환은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럼 말할게. 나 이번에 기획실 일하면서 임원진들을 갈아치우려고.”

    “으흠?”

    “아버지를 따르던 책사건, 선봉장이건 다 정리할 거야. 따라올 수 있는 사람만 쓸 거니까.”

    “···.”

    “그래서 이걸 말하려고 부른 거야. 지금부터는 좀 바쁠 거니까 자주 못 볼 것 같아서.”

    물론 그것만 말하는 건 아니었다.

    “흐음, 그건 혜성그룹 이야기인데 왜 나한테···.”

    “근데 내가 그러려면 이름이 좀 알려져야 한단 말이지. 단순히 혜성그룹의 장남 신재환. 이런 거 말고 좀 더 큰 거.”

    이현규는 이렇게까지 말을 듣고 재환이 뭘 원하는지 짐작한 눈치였다.

    “한잔하자.”

    잔을 부딪친 두 친구는 시원한 흑맥주를 쭉 들이켰다.

    재환은 안주로 온 튀김을 하나 집어 먹으면서 현규를 유심히 바라봤다.

    그리고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이현규는 입을 열었다.

    “돌아가서 연락할게. 삼우일보에 네 단독 인터뷰를 한 번 건의해 볼게. 전면에 나올 거니 스타일링 신경 쓰고.”

    재환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말했다.

    “하하! 유어 마이 베스트 프렌드! 도와줄 줄 알았어.”

    “대가는 이 술값으로 하자고.”

    “아, 물론이지. 그리고 이왕 도와준 김에 하나만 더 해줄 수 있거든?”

    “말해봐.”

    그때 재환은 품 안에서 카메라를 하나 꺼냈다.

    “너희 제품 진짜 좋더라. 어둑어둑한 곳 안에서도 화질이 어우···.”

    “왠 카메라야?”

    현규가 어리둥절할 때, 재환은 지나가는 직원을 불러서 말했다.

    “저희 사진 좀 찍어주시겠어요?”

    “네? 아, 네.”

    서빙을 하던 직원은 카메라를 들었고, 재환은 한 손에 흑맥주 잔을 들고 다른 한쪽에는 엄지를 올려서 둘 다 보이게 했다.

    “찍습니다.”

    찰칵-!

    “?”

    “한 방 더요.”

    찰칵-

    플래시가 터졌을 때, 현규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재환아, 지금 뭐한 거야?”

    “같이 사진 찍어달라는 게 두 번째 부탁이었어.”

    “아니··· 내가 연예인도 아닌데 왜?”

    현규는 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고, 재환은 카메라를 받으면서 피식 웃었다.

    ‘이게 나중에는 백만 달러보다 가치 있는 명함이 될 거란 말이지. 본인은 알지 모르겠지만.’

    재환과 현규는 한 잔씩 더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우~ 오늘 만나서 즐거웠어. 다음에 또 보자.”

    “그래, 열심히 하고.”

    현규는 집에서 온 차를 타고 한남동 자택으로 향했다.

    그리고 재환 역시 양재동으로 갈 택시를 잡고서 돌아갔다.

    ***

    얼마후 재환은 삼우일보에서 연락을 받았다.

    “실장님.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재환은 오늘만큼은 집에 있는 정장 중 가장 고급으로 골랐고, 미용실에서도 가장 힘을 주어 꾸몄다.

    “아, 그래. 인터뷰 잘 하고 오라고.”

    재환은 오전 근무 이후 반차 허락을 해준 임창훈 실장과 다른 기획실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조용히 떠났다.

    “오자마자 언론사 인터뷰라, 안 좋게 보는 인간들이 있을 텐데···.”

    홍보팀을 통한 게 아니라 신재환 개인에 대한 인터뷰니 문득 걱정되는 창훈이었다.

    ***

    서울 플렉스 호텔.

    삼우일보 차장 김낙진 기자는 삼신의 황태자인 이현규의 요청을 받고서 재환의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사님, 친구라고 했는데 어떤 사람일지 궁금한데?”

    그동안 한국 재벌가에서 수많은 2세와 3세들을 봐 왔던 그였다.

    그리고 멀리서 화려한 정장 차림에 한껏 꾸민 재환의 모습이 보였다.

    “아, 먼저 와계셨군요.”

    재환은 김낙진을 확인하고는 쾌재를 불렀다.

    ‘그렇지 않아도 이 사람이 올 줄 알았지!’

    김낙진.

    훗날 삼우일보 경제국 팀장에 오르고, 삼우의 경제지인 [SW이코노미]의 대표가 되어 언론계 거물이 되는 사람이다.

    그리고 재환은 오늘을 위해 맞춘 스타일링을 한껏 뽐냈다.

    “하하, 정장이 아주 멋지시군요.”

    “옷차림은 상대를 만날 때 기본적인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오호?’

    그 순간 낙진은 이 도련님이 단순 애송이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재환은 과거 자신이 경영자를 하면서 언제나 드레스 코드의 중요성을 부하직원들에게도 설파했던 몸이었다.

    “하하하, 멋진 마음가짐입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했고, 재환은 질문에 조리 있게 답했다.

    “최근 혜성그룹은 부도설로 인해서 주가가 요동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헛소문입니다. 지금 그룹 차원에서 유포자의 신변을 거의 다 잡았습니다.”

    “그래요?”

    ‘우리 회사는 문제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건 기업인들의 18번 대사였으니, 김낙진 기자는 좀 더 캐보기로 했다.

    “유포자가 있다니 의외군요.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걸까요?”

    “헛소문으로 주가를 떨어트리고, 법정 관리가 들어가면 다른 기업에 매각되어서도 기생충같이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죠. 언론에서 ‘기업 간 빅딜의 설계자.’라는 식으로 미화도 될 테고요.”

    ‘...잘 아네?’

    실제로 그런 상황으로 수많은 중견/대기업의 계열사들이 신문기사 하나, 방송국의 보도 하나로 제값을 못 받고 떠넘기듯 팔려나가 자금 확보를 하는 회사들이 많았다.

    재환은 그걸 정확히 캐치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거기에 대한 혜성의 미래 비전에 대해도 말했다.

    “물론 혜성이 바뀌어야 하는 건 사실입니다. 30년 동안 국민의 먹거리와 마실 것을 책임지고, 지갑을 윤택하게 싸고 좋은 제품을 팔았습니다.”

    “하하하, 혜성의 식품과 음료는 국민의 입에 즐거움을 줬죠.”

    “네, 하지만 이제는 기업의 미래를 조금 바꿔야 할 겁니다. 사업을 다각화시키고 개편할 것도 많죠.”

    “그렇게 하면··· 이런 불황 속에서 힘들지 않겠습니까? 확실한 비전이 있어도 실행하는 것은 또 다를 텐데요?”

    낙진은 현 상황을 말하면서 재환의 답변을 계속 기다렸다.

    이 젊은 친구가 어디까지 답을 할지 기대가 돼서였다.

    “어떤 사업을 하냐에 따라 다르겠죠.”

    “하하하, 혹시 알 수 있을까요? 이건 기사에 안 나오게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기자가 하는 말을 믿어도 되나요?”

    “저는 다른 기자들을 통솔하는 차장입니다.”

    재환은 그 말에 조용히 만년필을 꺼내 명함 뒤에 무언가를 능숙하게 써 내려갔다.

    그리고는 낙진에게 그것을 보였다.

    “이거요.”

    그 순간 낙진은 그것을 읽고서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속으로 외쳤다.

    ‘미쳤구만, 혜성이 자동차 사업을 해?’

    유통과 식품 사업 위주로 대기업 내에서도 말석인데 수십, 수백조가 들 수 있는 자동차 사업을 한다는 말에 누구라도 비웃을 이야기였다.

    그리고 지금의 재계에서도 자동차에 관심을 가지다가 넘쳐나는 빚을 감당못하고 몰락한 그룹이 10대 기업 중에서도 넘쳤다.

    “노코멘트입니다. 사실 보도한다 해도 시들할 텐데 말이죠.”

    “좋습니다. 그럼 다른 이야기를 하죠. 혜성의 위기설을 퍼트린 내부자가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쫓아내야죠.”

    재환은 쿨하게 대답했다.

    “아, 이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쓰셔도 됩니다. 앞으로 혜성 그룹 내에서 임직원 몇이 사퇴를 할 겁니다. 그중에서는 창업 공신들도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신경 안 씁니다.”

    “!”

    신 회장의 아들이 직접 선언한 전쟁.

    아버지의 가신들을 쳐내겠다는 이 당돌한 20대 청년을 보고서 김낙진은 정말 보도할 게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하, 알겠습니다. 오늘 녹음기를 가져오길 잘 했군요.”

    “그러니까 이건 명함으로 적은 거죠.”

    자동차라는 단어를 쓴 명함을 품 안에 집어넣은 재환은 웃으면서 그 뒤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리고는 호텔 카페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서 악수를 하고 긴 인터뷰를 끝냈다.

    ***

    그날 밤.

    혜성그룹의 고위 임직원들은 고급 요정에서 좋은 자리를 가졌다.

    “하하하, 전무님. 이제 부사장님 하셔야죠.”

    다른 이사들의 말에 성윤규는 멋쩍은 얼굴을 하면서도 싫지만은 않은 기색이었다.

    “하하하, 다들 잘 해줘야지.”

    그러면서 고급 위스키를 이사들에게 따라주고는 말했다.

    “다들 내 얘기 잘 들어봐. 지금 우리 혜성그룹이 위기에 빠진 건 사실이야. 하지만 우리가 힘을 내야 해. 다들 알겠나?”

    “예, 전무님!”

    혜성그룹 내의 실세이자, 신 회장과 은퇴 앞둔 김범준 다음에는 성윤규가 가장 많은 사업을 이끌어나가고 있었다.

    윤규는 다른 이사들을 규합시키면서 앞으로 있을 위기에 같이 대처하자고 이사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줬다.

    그렇게 고급 위스키와 값비싼 코스요리들이 들어와 모두가 즐거운 자리를 가질 때였다.

    똑똑-

    “어, 그래!”

    윤규가 부르자 혜성그룹의 홍보실 직원 한 명이 다가와 임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조용히 움직였다.

    그는 주변을 살피면서 윤규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전무님, 내일 삼우일보의 조간신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뭐라고 썼는데?”

    이미 삼우일보 경제지와 재환이 인터뷰를 했다는 것을 알고있던 윤규였다.

    “신재환이 기존 임원분들과 결별을··· 선언하며, 대규모 개편을 할 거라고···.”

    쾅!

    그 순간 윤규는 마시던 술잔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그 모습에 움찔한 임원들 속에서 윤규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시건방진 어린놈의 새끼가··· 똥오줌도 못 가리고 그딴 소리를 신문사에 해?”

    “저, 전무님! 무슨 말입니까?”

    다른 이사들의 말에 윤규는 미간을 신경질적인 얼굴을 했다.

    ***

    다음 날 아침 신문 이야기는 고성이 오가기에 충분했다.

    “재환이 너 임마! 이딴 식으로 인터뷰를 하면 어떡하냐!”

    희경은 아들 녀석이 저지른 사고로 인해 밥도 먹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재환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선전포고 한 겁니다. 이제부터 하나하나 쳐내야 하니까요.”

    “누가 그런 일을 이렇게 떠벌리라고 했냐? 세상 사람들이 혜성을 콩가루 분위기라 할 거 아니야? 이 망할 녀석아!”

    화가 나서 있는 욕, 없는 욕을 퍼부어대는 희경이었고, 황급히 명숙이 말렸지만, 재환은 태연했다.

    “이제부터 재밌어질걸요?”

    “재미? 지금 이 신문기사를 보고 재미라는 말이 나와?!”

    재환은 분노한 아버지를 보고 열 손가락을 펼쳤다.

    “딱 열흘, 그 안에 혜성그룹에 장난질 친 임원들 전부 날려버릴 겁니다.”

    “뭐, 뭐야?”

    “믿어주세요. 아버지.”

    재환은 결의에 찬 눈으로 아버지 앞에서 선언했다.

    그리고는 표정을 바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자~ 이제 아침 식사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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