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3화 (3/244)

03- 혜성그룹 입사.

재환이 아버지 희경과 혜성을 위해 움직이겠다고 약속한 지 얼마 후.

드디어 첫 출근날이 되어 재환은 아침 일찍 스타일링을 맞췄다.

미국에서도 몇 번 안입었던 명품 정장, 거기에 포마드젤을 발라서 시원시원한 인상을 줬다.

“우리 아들 멋지네.”

명숙은 재환을 보면서 대견하다는 듯이 뒤에서 안아줬다.

그 마음을 느낀 재환은 명숙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엄마, 앞으로 아버지하고 같이 그룹 잘 이끌어 나갈게요.”

“그래, 둘이 힘을 합치면 어려운 일도 해결해나갈 수 있을거야.”

“뭐해? 출근 준비해야지!”

“네, 갑니다!”

재환은 희경과 같이 세단에 올라탔다.

혜성그룹 본사로 가는 동안 차 안에서 희경은 현재 혜성의 인사진에 대해 말했다.

“뭐, 대략적으로 알지? 명절때 맨날 오던 친구들."

"이사님들이요?"

"그래, 일단 지금 실무를 맡은 것은 김범준 사장이야. 그 친구하고 같이 뛰는게 성윤규 전무고.”

둘 다 혜성그룹 내에서 아버지의 오른팔, 왼팔이라 불린 자들이었다.

“근데 성윤규 그놈은 내가 얼마나 키워줬는데 그딴짓을 했고···.”

혜성그룹 부도설을 퍼트린 기자와 성윤규 전무가 친분이 있다는 것 부터가 이미 희경의 눈밖에 날 짓이었다.

“후우, 그래도 대부분 좋은 친구들이야. 내 말에 잘 따라줬고.”

‘예스맨만 많은 거였어요.’

이 말은 함부로 했다간 또 폭발할테니 속으로만 생각했다.

“네가 일하게 될 기획조정실··· 그러니까 옛날 비서실인데 거긴 임창훈 이사가 맡고 있다. 내가 어젯밤 말해 뒀으니까 잘 맞춰봐.”

“임창훈 이사···.”

재환과는 아주 인연이 많은 사람이었다.

혜성그룹이 부도나기 전까지 그는 그룹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충신이었다.

조금 전 희경이 말한 그 오른팔이니 왼팔이니 하는 임원들이 자기만 살자고 떠날 때도 끝까지 혜성을 지키려 했고, 그 뒤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재환을 한국의 기업으로 돌아오게 삼신그룹 임원 자리를 추천한 것도 그였다.

‘어쩌다 보니 그 아저씨랑 직접 일을 다 하게 됐네?’

그래도 완전히 맨땅의 헤딩으로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지지해줄 임원이 있다는 것에 대해 점점 희망이 생기는 재환이었다.

“회장님, 도착했습니다.”

남영동의 혜성그룹 사옥에 도착했을 때, 재환은 다시 한번 위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주먹을 꽉 쥐면서 두 번째 삶은 다를 거라고 다짐하며 움직이기로 했다.

혜성제과를 모기업으로 15개 계열사에 1만 4천명의 임직원을 보유한 재계서열 23위의 대기업, 혜성그룹.

이들을 위해 재환이 일어났다.

“모두들 잘 기억해둬. 내 아들이자 신임 기획조정실 팀장으로 온 신재환이다.”

신회장의 아들이 기획조정실로 들어왔다.

눈치 빠른 임원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뭘 뜻하는 건지 알수 있었다.

‘저 친구가, 회장님. 외아들이···.’

'저 녀석이 벌써 저렇게 컸어?'

‘잘 생겼군, 얼굴만큼 능력도 있으려나?’

‘유학 다녀온 그 친구로구만, 아버지보다는 좀 부드러운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재환은 희경의 소개를 받은 뒤로 짧게 자신의 취임사를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신재환이라고 합니다.”

재환은 임원들에게 인사하며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지금은 모두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혜성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제가 왔습니다. 부디 모두가 힘을 합쳐서 이 위기를 벗어나길 바랍니다.”

***

인사를 올린 뒤 재환은 기획조정실로 향해 자기 일을 준비했다.

그룹 내에서 가장 엘리트들만 모인 기획조정실에서는 처음 입사한 팀장 재환을 향해 인사를 나누고 일에 들어갔다.

“저기, 뭘 도와드릴까요?”

대리쯤으로 보이는 남직원의 말에 재환은 자신이 생각한 것을 말했다.

“음, 일단은 재무제표가 필요하네요. 어떻게 들어가죠?”

“네, 제 컴퓨터에서 자료 가져오겠습니다.”

재환이 요청한 것은 그룹 전체에 대한 재무제표, 그리고 앞으로 구조조정을 할 때 있을 리스크였다.

‘어디를 줄여서, 어디를 살릴지. 이걸 재무제표를 보면서 상세히 알아야겠어.’

오자마자 컴퓨터 앞에서 일에 몰두하고 있는 재환을 보면서 직원들은 숨이 막힐 정도였다.

인사 이후 일을 시작한 9시부터 점심때까지 한 마디도 안 하고 컴퓨터 앞에서만 매달린 것 때문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기획조정실장인 임창훈이 일어났다.

“자~ 다들 점심 먹고 해야지? 오늘은 신입이 한 턱 쏘나?”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창훈의 말에 재환은 일어나서 대충 정리를 했다.

“그러죠. 다들 중국요리 좋아하십니까?”

“예, 좋아요!”

“신입 팀장님이 사시는 거예요? 잘 먹겠습니다!”

재환과 그다지 나이 차이도 안 나는 직원들의 반응에 재환은 지난번 갔던 중화 코스요리 집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눈치 안 보이게 짜장면, 짬뽕에 깐풍기 탕수육까지 마음껏 대접했다.

“와~ 세상에.”

“잘 먹겠습니다. 팀장님!”

다들 한 젓가락씩 할 때 창훈은 재환 옆에 서며 한마디 했다.

“아이고, 가볍게 쏘지, 저렇게 내서 괜찮겠어?”

“있는 사람이 내야죠.”

재환은 식사하면서도 짧게만 대답했다.

사실 눈앞에 있는 혜성그룹 전부를 조사하려는데 나머지 일은 그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휴식시간 때, 다들 쉬고 있을 때 재환은 홀로 기획실로 들어갔다.

“휘유, 5분 있다 하자.”

사옥 내에 있는 흡연실 베란다에서 담배 한 대를 물고 불을 붙였을 때, 그를 따라온 임창훈 이사가 있었다.

“신 팀장!”

“아, 실장님.”

“담배 태웠나? 그럼 같이 피지.”

나이 차이 같은 것은 상관없이 조카뻘인 재환과 함께 담배를 나눠 피던 창훈은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말을 꺼냈다.

“첫날부터 아주 열심히구만, 그래도 사람들하고 적당히 소통도 중요해.”

“네, 그런 것도 신경 쓰도록 노력할게요.”

언제나 일 중독이었고, 주변 사람들과는 그닥 접점을 가지지 않았던 재환이었다.

“근데 오자마자 뭘 그렇게 찾는 건가? 내가 다 궁금하네.”

“혜성 계열사 내에 있는 재무제표요.”

“!”

그룹 회장의 아들이 기획실에 와서 계열사 재무상태부터 체크하고 있다는 말에 창훈은 흠칫했다.

‘지난번 회장님이 하신 말이 이거였나? 부도설 나온 뒤로 아들에게 이 일을 맡기겠단 게 말이야.’

“아, 그리고 실장님에게 여쭤볼 게 하나 있습니다.”

“어? 어··· 어! 그래! 뭐든 물어보게.”

“현재 그룹 내에서 언론 창구는 홍보팀이던가요?”

“아, 그렇지. 기획실 산하에 있는 곳이야.”

“그래요? 그럼 이쪽이 먼저 해도 되겠군요.”

오늘 일이 끝난 뒤로는 언론사 친구들 좀 만날 셈이었다.

거기에 과거 재환의 학창시절 친구 중에서는 언론계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이 좀 있었다.

‘언론은 언론으로 쳐야겠지. 게다가 이미 정해진 일이야.’

퇴근 시간이 되었을 때, 눈치를 보고 있던 직원들은 임창훈 이사의 말에 일어났다.

“자, 다들 퇴근해야지. 오늘 환영식으로 회식을 하고 싶긴 한데 말이야.”

“죄송합니다. 그건 다음에 하지요.”

재환의 말에 하나둘씩 일어났다.

재환 역시도 지금 계속 앉아있으면 눈치가 보여 퇴근 못 한다는 것을 아니 서서히 정리했다.

물론 나가면서 디스켓으로 자료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당시 보안은 영 아니군. 그냥 사적으로 디스켓을 넣어서 맘껏 복사가 가능하니.’

훗날 회사 전체에 대해 전용 보안프로그램이 깔리는 것은 앞으로 4-5년 뒤에나 있을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런 것에 굉장히 무덤덤한 시대였고, 우스갯소리로 경쟁회사 기밀은 그 일대의 술집에서 들을수 있다는 말이 통하는 때이기도 했다.

“다들 내일 봬요. 고생들 하셨습니다.”

재환이 정리하고 돌아가려 나왔을 때, 복도에서 걸어가는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신 팀장!”

“?”

고개를 돌려 봤을 때 그곳에는 한 무리의 임원들이 있었다.

“···.”

그들 중 선두에 선 이는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다.

작은 키에 머리가 약간 벗겨지고, 능글능글한 인상을 풍기는 남성.

그가 바로 이번 혜성에 부도설을 퍼트린 원흉 성윤규 전무였다.

사적으로는 아버지의 술친구이면서도, 그룹 내의 비자금을 관리하기도 했던 최측근 중 한 명.

하지만 지금은 필히 쳐내야 할 회사 내의 암 덩어리였다.

“신 팀장, 어째 일은 할 만해?”

어려서부터 봐온 사이여서 그런지 친근하게 말을 놓는 윤규를 보고서 일단 인사는 했다.

“네, 기획실 분위기는 좋네요.”

“하하, 혜성이 지금은 어려워도 반드시 올라가게 되어있어. 파도 알잖나~ 빠지면 다시 치솟는 거야!”

‘댁이 빠트렸잖수.’

웃음 속에 감춰진 칼의 존재를 잘 알기에 재환은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죄송합니다만 할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음? 이 친구 재미없이 왜 그래? 그렇지 않아도 오늘 임원들끼리 회식이 있는데 같이 참여할수 있겠나? 회장님에게는 내가 연락드리겠네.”

신 회장을 이용해서 재환 역시도 자신의 편에 끼려는 뱀심.

하지만 재환은 다시 한번 정중하게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다음번에 꼭 인사드리죠.”

아마 그때는 작별인사가 될 것이다.

임원들을 뒤로 한 채 떠난 재환을 보고 성윤규 전무의 표정은 살짝 일그러졌다.

‘자식이 튕기네? 어린놈이 뭘 할 줄 안다고···.’

***

강남에 있는 고급 일식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재환은 시계를 살펴봤다.

시간을 귀신같이 지키는 친구이니 아마 오늘도 10분 일찍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말하겠지. ‘아, 먼저 와있었어? 내가 좀 늦었네?’ 라고···”

그 순간 마담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일행분이 오셨습니다.”

“네, 들어와 주세요.”

정확히 약속 시각 10분 전에 열린 문, 그리고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유럽의 명품 정장, 언제나 번쩍이는 금테안경.

잘 빗어넘긴 머리에 시종일관 푸근한 미소가 가득하신 그분.

그리고 이제는 재벌가의 대등한 자제이자, 오랜 기간 말을 튼 친구였다.

“현규, 어서 오셔!”

“아, 미안 내가 좀 늦었지?”

어떻게 예상한 대로 딱 들어맞는 삼신그룹의 황태자 이현규를 보고 재환은 배를 잡고 웃었다.

“하하하, 그 말 할 줄 알았어.”

지금은 삼신그룹을 두루 다니며 언론 쪽을 맡은 훗날의 한국 제1의 기업을 운영하는 현규를 만난 재환이었다.

그리고 그가 말했던 ‘언론사 친구’이기도 했다.

“신문사는 좀 어때?”

“아, 그저 그래. 지금은 다들 힘들 때니까.”

“그래?”

일단 만났으니 식사부터 하면서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는 둘이었다.

과거 중,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둘은 각자의 집안에서도 잘 아는 사이였고, 간간이 부모님들끼리 모이기도 했다.

그래서 오늘도 반가운 친구가 불러온 현규다.

“이야기 들었어. 그룹 내에 입사했다며.”

“이제 1일 차지. 할 게 많더라고.”

“너는 잘 할 거야.”

“고마워.”

딱 중립적인 이야기만 하고 다시 식사한다.

재환도 현규도 이 시간에 만나자고 한 다음에 이런 고급 식당에서 저녁을 한다는 건 뭔가 할 말이 있다지만 내색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 이야기만 하고 있다가 어느새 그들은 옛날이야기에 들어갔다.

“그때 말이야. 갑자기 미국으로 간다니까 솔직히 당황했다. 대학까지 인연이 이어질 줄 알았거든.”

“아이비리그를 딱! 붙어버렸지 뭐야?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어. 1년은 장학금으로 준다니까.”

“하하하, 그래도 그때 좋은 경험이 되었겠네.”

학교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현규는 자신이 처음 입사했을 때 이야기.

처음으로 소맥을 말아 마셔봤다는 이야기, 이후 회식 썰 등의 이야기를 풀었다.

어느새 식사는 끝이 났고, 슬슬 일어날 시간이 되었을 때 현규가 일어났다.

“오늘은 일어나야겠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결국, 경영에 관한 이야기는 하나도 나누지 않고 일어난 친구 사이.

그리고는 먼저 카드를 꺼내는 현규였다.

“내가 계산할게.”

“아, 됐어! 내가 불렀는데, 내가 내야지.”

재빨리 지갑을 열어 결제하자 현규는 멋쩍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것 참, 괜히 얻어먹은 것 같네.”

그때 재환은 승부수를 던졌다.

“시간 괜찮으면 2차를 쏴, 흑맥주 집 괜찮은 곳 알고 있다.”

“맥주라고? 흐으음~”

잠시 생각하고 있는 그 찰나의 시간은 재환에게 있어 꽤나 길었다.

그리고 현규는 결정한 듯 말했다.

“그러자. 어차피 시간도 많은데. 집에 전화할게.”

‘됐어!’

재환은 쾌재를 부르며 과거에서 만난 친구와 큰 그림을 그릴 이야기를 구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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