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2화 (2/244)
  • 02- 뭔진 몰라도 과거로 돌아온거같다.

    재환은 23년 만에 다시 아버지인 신희경 회장과 마주했다.

    언제나 다혈질에 혜성그룹의 폭군이자 외골수.

    지금도 한쪽 눈썹이 계속 꿈틀거리면서, 당장에라도 스위트룸에서 술판을 벌인 아들놈을 처리해버릴 생각이었다.

    “이놈의 자식! 네가 지금 제정신이냐!”

    집무실에서 서류에 사인할 때 쓰는 값비싼 황금 만년필이 빠르게 날아갔다.

    재환은 반사적으로 피하면서 벽에 꽂힌 만년필을 보며 말했다.

    “하, 하아~”

    성질나면 눈에 보이는 것 없이 손에 집히는 걸 던지던 그 시절의 아버지,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다.

    차이가 있다면 재환의 머릿속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아버지 나잇대라는 것이다.

    “후우~ 아버지 힘 아직 살아있네요?”

    “이놈 새끼가 아주 죽을라고!”

    재환은 완전히 뚜껑 열린 아버지를 향해 승부수를 던졌다.

    “아버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지만 희경은 그 상황에서도 다른 것을 집으려 했다.

    “사실 회사 재건 때문에 계획을 짜고 있다고요.”

    “!”

    일단 멈추게 한 다음 머릿속으로 그때 있었던 기억을 모두 끄집어낸다.

    그런 재환의 외침에 희경은 어제 술판 벌인 녀석이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가 싶어 외쳤다.

    “밤새 호텔에서 술 퍼마시고 온 놈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버지, 그룹에 부도설 퍼트린 사람 누군지 제가 알고 있습니다!”

    “···!”

    폭군인 아버지는 그 순간 갑작스럽게 한 방 맞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계속 눈동자가 흔들리는 희경을 본 순간 재환은 빠르게 계산을 마치고 다가왔다.

    “....진짜냐?”

    조심스레 묻는 아버지 희경에게 재환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 상황에서 제가 왜 아버지한테 거짓말을 하겠어요?”

    희경은 목석처럼 굳었다가 이내 자리에 앉아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꺼내물고 불을 붙였다.

    틱- 틱-

    “아오!”

    불이 안 붙는 라이터를 벽에 집어 던질 때 재환은 재빨리 달려가 자신의 것으로 불을 붙여드렸다.

    물론 아직도 분노가 차 보였지만, 조금은 누그러든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어떤 놈이냐? 어서 빨리 말해!”

    “지금 자료 정리하고 있어요. 퇴근하시면 알려드리지요.”

    “너 이 자식, 이게 거짓말이라면 정말 집안에서 쫓겨날 줄 알아!”

    "네, 네~ 그럴 땐 저를 정말 두들겨 패셔도 됩니다."

    그룹 부도 음모론을 알려서 주가를 폭락시킨 다음에 경영권을 노렸던 세력.

    그것을 알고 있는 재환의 제안에 희경은 일단 한번 들어보기로 했다.

    재환은 말을 마친 뒤에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이따 저녁에 연락드릴게요. 지금은 해장 좀 하고 싶네요. 집에서 기다릴게요.”

    “으으음.”

    아버지에게 인사를 한 재환은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덜컹-

    “휘유-”

    일단 물러난 뒤로 데스크의 비서실 직원들은 비싼 물건 하나 깨진 것 없이 끝난 회장실의 상황을 바라봤다.

    재환은 그런 모습을 보고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별일 아니에요. 다들 일들 하세요.”

    혜성그룹의 6개월 남은 위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여야 할 재환이었다.

    ***

    서울 양재동에 있는 자택에 도착한 재환은 순간적으로 울컥했다.

    “아, 기어이 여기를 또 왔네.”

    영원히 발을 끊어버리고, 양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있기도 싫다면서 물려받은 집을 그냥 팔아버렸던 게 재환이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을 때 기다리고 있던 건 재환의 어머니 명숙이었다.

    “재환아! 대체 어딜 다녀온··· 우웁.”

    성장한 아들이 어머니를 끌어안고 계속 등을 토닥이고 있었다.

    “···그때는 미안했어요.”

    “무슨 일이니? 아이고 술 냄새.”

    갑작스런 아들의 애정행각이 싫지만은 않지만 뭔가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후우, 속이 좀 쓰리네요. 잠시만요.”

    “술 많이 먹은거야? 엄마가 해장 준비할게.”

    “아, 아니. 그냥 시켜도···.”

    “그런 말 하지 마.”

    재환은 어머니가 준비하는 식사를 보고서 속으로 생각했다.

    저런 분을 매달 거액의 돈 보내달라고 시달려서 큰 소리 쳤던 자신이 정말로 철부지같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거 본인이 쓴게 아니라 주변 도우려고 한 거겠지?’

    재환은 그것을 생각하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앞으로 효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올해 안에 종합건강검진 준비하세요. 이왕 돌아온 거 제 힘으로 건강하게 모실게요.’

    잠시 후 재환은 어머니가 차려준 콩나물국에 집밥 세트를 보자 남김없이 먹은 뒤로 차를 준비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휘유, 뭐부터 말해야 하나?”

    돌아가신 어머니를 다시 보니 재환은 생각이 많이 복잡했다.

    아버지와의 불화도 불화였지만, 어머니 명숙은 계속해서 남편과 아들 사이를 중재하고 부도 이후 어려워진 일가친척들을 도우면서 자신의 몸에 병을 키우고 있었다.

    검사 결과 암이었고, 안 그래도 몸이 약했던 어머니는 아들이 보내주는 치료비도 거절하고 조용히 시골 기도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돌아가셨다.

    생전 그렇게 주변 도우려고 돈을 요구하면서 당사자인 재환에게는 한마디도 안 했고 말이다.

    몇 번이고 그때의 생각을 하니 참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재환이었다.

    “재환이 너, 아버지 만나고 왔다면서?”

    “네, 이따가 같이 얘기하기로 했어요.”

    “무조건 잘못했다고 그래. 아버지가 정말 너 싫어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거 알잖니? 지금 회사 문제에 몸이 안 좋아서 부쩍 신경이 느셔서 그래.”

    ‘그것 때문에 싸운 것도 있지만··· 검찰 조사가 직격탄이었어요.’

    물론 그때쯤이면 재환은 다시 미국으로 떠난 지 오래였고, 한국에서의 소식은 관심 끊은 뒤였지만 말이다.

    “알았지? 꼭 화해해야 한다.”

    화사함이 묻어나는 명숙의 미소를 보고서 재환은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할 일이 있어서요.”

    "그래, 알았다."

    "아, 엄마 최근 건강검진이 언제셨죠?"

    "응? 2년됐나?"

    "역시 빨리 준비해야겠네요."

    재환이 대화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갔을 때, 안에는 90년대의 감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자신의 공간을 다시 맞이했다.

    “후우~ 오랜만이네.”

    두꺼운 CRT 모니터, 서랍장보다 큰 본체, 무려 200만 원을 주고 산 컴퓨터의 램은 16메가, 하드는 1.5기가라는 아주 죽여주는 스펙이었다.

    컴퓨터를 켠 순간 부팅에만 1분이 걸리는 속도에 재환은 사뭇 옛날이 진짜 정보처리가 힘들긴 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들어간 것은 인터넷이었다.

    지금은 PC통신의 시절, 익숙한 비프음이 들린 다음 파란 화면이 드러났다.

    “자, 시작해볼까?”

    재환은 다시 살게 된 삶에서 가족들을 위해 한 번 움직이기로 했다.

    이미 자신에게는 미래에 대한 모든 정보가 있었다.

    당장 무슨 사업부터 해야될지 아주 눈감고도 다 정할 수 있었지만, 그 전에 해야될건 내부에 있는 적들의 격퇴였다.

    “이번달 통신비 좀 많이 나올거에요. 하지만, 집안을 살리기 위한 값 치고는 싸다고 생각하세요.”

    500kb도 안되는 이미지와, 파일들을 긁어 다운을 받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러면서 그것들을 모두 프린터로 츨력한다.

    재환은 1시간동안 자신이 알고 있는 당시의 정보와 혜성그룹을 두고 벌어질 추악한 싸움을 막을 자료들을 모았다.

    “후우-”

    재환은 묵직하게 뽑힌 프린트들을 보고서 미소를 지었다.

    이미 아버지에게 약속을 했고, 그 당시 혜성그룹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뭐든지 할 생각이었다.

    “이제부터는 가족적으로 움직여 드리죠. 제 의사만 받아주신다면.”

    재환이 크게 웃었을 때, 컴퓨터 모니터에 글귀가 떴다.

    [이제 컴퓨터 전원을 끄셔도 됩니다.]

    ***

    그날 저녁 재환은 집에서 전화를 받았다.

    “재환아, 아버지인데 너 바꾸라고 하신다.”

    명숙의 말에 재환은 곧바로 달려와 전화를 받았다.

    “네~ 전화 바꿨습니다.”

    [나와.]

    “밑도 끝도 없이··· 어디로요?”

    [지금 차 보낼거다. 내가 자주가는 식당이 있는데 거기서 너랑 단둘이 보는거다.]

    “아, 그렇게··· 할··· 잠깐만요. 먼저 가게 이름부터 말해주세요.”

    [그걸 왜 물어? 여기가 음··· 회현동에 있는 곳인데, 이름이 남경반점이다.]

    “알겠습니다. 곧 가죠.”

    재환은 그곳의 이름을 적은 다음에 어머니 명숙에게 잠시 다녀오겠다고 인사했다.

    그리고 대기한다는 자동차 대신 택시를 불러 그곳으로 향했다.

    ***

    끼이익-

    문이 열리자 텅 빈 남경반점 중국집에는 코스 요리를 시키고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 희경이 있었다.

    추억 넘치는 옛날 중국집 분위기에 요리도 꽤나 괜찮아 보였다.

    “왔냐?”

    “이런 데 좋아하시는지는 몰랐네요. 맨날 회식은 참치 아니면 꽃등심만 드시더니.”

    “훗, 그러고 보니 너랑 이곳에 온 적은 없구나.”

    낮의 모습과는 달리 차분해진 희경은 피식 웃으면서 백주 한 잔을 아들에게 따라줬다.

    “한잔 마셔라.”

    아버지가 주는 술을 쭉 들이켠 재환은 젓가락을 받고서 팔보채와 오향장육 등의 요리의 맛을 봤다.

    “괜찮네요.”

    “먹으면서 들어라. 내가 널 왜 따로 불렀다고 생각하냐?”

    “저에게 맡기시고, 혜성그룹을 살리기 위해서겠죠.”

    쿨하게 대답하자 희경의 눈매가 살짝 흔들렸다.

    “어린놈의 자식이··· 미국에서 공부했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냐?”

    “사실이잖아요?”

    “마! 나는 말이야. 회사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내 손으로 살릴 거다. 혜성을 살리는 건 네가 아니라 나야!”

    “그럼 역으로 묻죠. 왜 저 부르셨는데요? 아버지 일하시는 거 뒤에서 보면서 도장 찍는 법 가르쳐 주시게요?”

    “이 자식이···.”

    역시나 그때와 똑같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도 맞지 않는 아버지와의 관계.

    한 번쯤 숙이고 들어가려고 해도 저 ‘나 아니면 안 된다!’라는 외골수적인 고집에 ‘우리 집안 사람들은 모두 내 아래!’라는 마인드는 도저히 꺾을 수가 없었다.

    ‘그 고집 때문에 혜성이 공중분해 된 거예요. 아버지···.’

    재환은 이런 입씨름은 그만하기로 하고 가져온 서류부터 꺼냈다.

    “이게 뭐야?”

    “오늘 제가 온 이유요. ‘혜성그룹 부도설’을 흩뿌린 것들입니다.”

    어차피 말로서 설득하지 못한다면 자료로써 움직여 보게 할 셈이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혜성그룹 부도설을 최초로 퍼트린 신문사 [대한일보]와 기자 ‘김대철’에 대한 이야기였다.

    “대체 이 녀석이 뭐라··· 어억?”

    김대철이라는 기자는 혜성뿐만이 아니라 지금 숱하게 부도 위기의 회사들에 대한 악의적인 보도를 서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혜성에 대한 부도설 찌라시를 낸 기사와 더불어 그의 동창회에 대한 이름들이 있었다.

    “익숙한 이름이 많이 있죠? 거기 아버지 왼팔이라 부르는 아저씨도 있네요?”

    외환위기 당시 거대 언론사 기자들의 기사 한 방에 주식이 요동치고, 그로 인해 건실한 기업들도 무너진 케이스가 있었다.

    혜성 역시도 그 정도로 위기는 아니었지만, 언론들의 섣부른 판단과 있지도 않은 매각설로 흔들려서 생각보다 구조조정이 늦어졌었다. 거기에 알짜 계열사를 매각하는 금액도 시세보다 훨씬 낮아졌고 말이다.

    그런 기자들의 배경에 ‘혜성그룹의 임원 이름’이 적혀 있다는 것은 희경의 뚜껑을 열리게 하기 충분했다.

    “내 이놈들을 내 당장!”

    확인이고 뭐고 당장 찾아가서 뒤엎어버리려는 희경을 향해 재환이 말렸다.

    “에헤이~ 또 흥분하신다.”

    재환은 그렇게 희경의 흥분을 가라앉힌 다음에 수첩을 꺼냈다.

    얼마 만에 쓰는 아날로그 감성인지 모르겠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모두 적었다.

    “우리 집, 수행비서 그 양반이 그 이사분하고, 김대철이란 기자하고 또 동문이더라고요. 그래서 택시 타고 왔고요.”

    “너··· 이런걸 어디서 알아온 거냐?”

    재환은 만년필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치며 말했다.

    “혜성그룹 살리려고 독자적으로 연구한 거예요. 말씀드렸잖아요? 어제 엄청 노력했다고.”

    스위트룸의 술값 사건은 그렇게 넘어갔다.

    그리고 몇 번이나 분노를 억누른 희경은 점점 아들 재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네가 생각하는··· 지금 그룹의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냐?”

    희경이 처음으로 그룹 위기에 대해서 남에게 물은 것이었다.

    재환은 그 상황에서 느긋하게 말했다.

    이미 혜성이 몰락하게 된 것은 수많은 경제학 논문에서도 사례를 들기 충분했다.

    “사업 다각화를 잘못했어요. 백화점식 경영. 전부 성공한다면 나쁘지 않죠. 근데 그게 몰락의 시발점인 겁니다.”

    “으으음···.”

    재환은 조목조목 상황에 대해 말했다.

    “혜성건설과 인수한 ‘그 건설사’는 그 돈 주고 살 건설사가 아니었어요. 아파트 몇 개 올리자고 거기에 수천억을 쏟아부었습니다.”

    “야, 그건 해외건설수주를 위해서···.”

    “동남아도 지금 연쇄적으로 도산하고 있는데, 어디에요? 이미 인프라 다 깔린 중동? 아니면 경영위기로 인수된 회사에 고맙게도 수주를 요청할 미국과 유럽?”

    “···.”

    “건설은 그렇다 치죠. 근데 거기에 중공업하고 해운은 진짜 아닙니다. 중공업으로 생산한 장비 해운으로 수출이요? 잘못하면 고철배 처분 못 해서 땡처리에요. 땡!”

    혜성은 본래 식품과 유통사업을 중심으로 성장한 기업이었다.

    그런 기업이 90년대 고성장으로 인해 문어발식으로 다각화 사업을 진행했고, 해운, 건설, 중공업은 그룹을 무너트린 독이었다.

    “물론 호황기 때는 전부 운영해도 가능하죠. 호황기 때는···.”

    “···공부 열심히 했구나? 미국서 배운 게 많나 보다?”

    “한 잔 따라드려요?”

    희경이 빈 잔을 내밀자 재환은 술을 따라주면서 말했다.

    “아버지, 한 번 아들 한 번 믿고서 전권을 맡겨주시지 않겠어요? 앞으로 혜성 그룹을 10대 그룹 이상으로 올릴 수 있어요.”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냐?”

    “아주 멀쩡하거든요?”

    유학 7년, 방위 1년, 실무경험이라고는 미국에서 6개월 정도 인턴 생활한 것이 전부.

    재환의 나이 스물아홉에 던진 패기 있는 도전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아들을 향해 윽박지르고, 성질만 잔뜩 내던 다혈질의 아버지 희경은 처음으로 눈매가 변하고 있었다.

    “후우, 그래?”

    아들이 따라준 잔을 쭉 비운 희경은 그대로 승낙했다.

    “좋아, 그럼 한 번 믿어보마.”

    인생사 최고의 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신희경 회장의 결단이었다.

    그리고 재환은 그 말에 드디어 아버지 앞에서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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