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1화 (1/244)
  • 01- 인생 헛산 거 같다.

    국내 최대의 기업이자,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 삼신전자.

    재환은 그곳에서 퇴임사를 마치고 유유히 단상에서 내려왔다.

    무수히 많은 박수 세례, 그리고 그런 신재환 사장을 향해 꽃다발을 건네주는 임원들이 있었다.

    “대표님, 그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하, 내가 뭘 그렇게 했다고.”

    멋쩍은 듯이 웃은 재환은 꽃다발들을 들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사무실을 한 번 들렀다.

    이미 짐이 빠져서 휑한 분위기였지만, 한때는 이곳에서 회사를 위해 힘썼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른 것은 바로 삼신그룹의 오너.

    “어서 오세요. 사장님.”

    “아닙니다. 회장님.”

    삼신그룹의 회장 이현규는 재환과 동갑인 68년생의 나이였다.

    당시에도 굴지의 대기업이었던 삼신그룹의 재벌가 장남으로 태어나 명문대를 졸업하고, 곧바로 경영에 합류하여 지금까지 훌륭하게 회사를 키워냈다.

    “그동안 사장님하고 많은 인연이 생각나네요. 어렸을 때, 대한경제인협회 때부터···.”

    회장이 웃으면서 한 말이었고, 재환 역시도 이제는 잊었다는 듯이 같이 웃었다.

    한때는 재환도 재벌이라 불리는 기업 집단의 자제였다.

    “혜성그룹 말인가요? 이미 잊은 이름입니다.”

    과거 재계서열 20위권에 있었던 그룹이었으나 90년대 외환위기로 인해 회사는 공중 분해되었다.

    그리고 이전부터 집안과 선을 그었던 재환은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그곳에서 스스로 살아남았다.

    실리콘밸리에서 사업을 시작하고, 그곳에서 인정을 받아서 세계 유수의 기업들의 임원 저리를 가지면서 경제지에서도 이름이 알려졌다.

    그리고 재환은 21세기 세계 IT업계에서 그의 이름이 안 나오는 곳이 없다는 영향력까지 갖췄었다.

    ‘재벌 계승을 거절한 천재 경영자.’

    그것이 바로 재환의 이명이었다.

    “10년간 저희 삼신에서 활약해주신 공로,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하하하, 일선에서 물러났어도 회삿밥은 계속 먹을 수 있잖습니까?”

    재환은 이현규 회장에게 대표이사 사장 자리의 퇴직 이후에도 3년간 고문 직책으로 연봉의 70%를 보전받게 되었다.

    여러모로 삶을 누리는 데는 문제 없을 대우였고, 앞으로의 노후는 이미 끝난 상황이었다.

    회장과의 티 타임을 끝낸 재환은 이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마지막으로 악수를 하면서 재환은 이제 현역으로 뛰었던 회사를 떠났다.

    삼신그룹 사옥 1층에서 준비하고 있던 재환의 기사가 차 문을 열고 안내했다.

    “대표님, 곧바로 집으로 운전하겠습니다.”

    “그래.”

    재환의 말에 운전기사는 곧바로 출발했다.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시가 150억의 저택.

    재환은 자신이 가진 거대한 성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그야말로 화려했고, 명품 가구에 이름난 화가들의 그림이 가득하고, 그 외에도 없는 물건이 없었지만, 한 가지 빠진 것이 있었다.

    바로 가족.

    재환은 와인 냉장고에서 한 병 가져온 다음에 홀로 자신의 퇴임 파티를 다시 시작했다.

    소파 옆의 장식장에 올라온 가족사진은 재환과 아들 둘만 있었다.

    “···녀석.”

    휴대폰을 꺼내 들어 미국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세 번이나 시도했지만 받지 않았다.

    “···.”

    재환은 쓴웃음을 지으며 휴대폰을 대충 던졌다.

    “어쩌겠나? 업보인거지.”

    90년대 외환위기 이후 재환은 쓰러져 가는 회사인 데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최악이어서 절연을 선언하고 독립했다.

    그 뒤로 홀로 살아남으며 결혼을 했지만, 아들 하나 남기고 가정불화로 인해 이혼했다.

    그리고 유학을 보낸 아들은 관계가 서먹하여 뒷바라지만 해줄 뿐, 같이 시간을 보낸 것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내가 오늘따라 왜 이러나···”

    기계처럼 살아오면서 재력과 능력이라는 모든 것을 갖췄지만, 단 한 가지의 부족으로 인해 그는 언제나 공허했다.

    오늘은 매일같이 식사를 차려주는 가정부들도 오지 말라고 했으니 나가서 뭘 먹어야 했다.

    와인 한 병을 마신 재환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수행비서도 보냈으니 그냥 택시를 하나 부른 재환은 뒷자리에 앉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손님, 어디로 모실까요?”

    “호텔, 아무 데나 5성급으로.”

    “···네?”

    재환은 지갑을 꺼내 10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기사에게 던져주고 다시 말했다.

    “5성급 호텔로 아무 곳이나 가요.”

    “아, 예! 예!”

    수표를 받은 기사는 웃음을 참으면서 그대로 출발했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강남에 있는 5성급 호텔인 [그랜드 호텔]이었다.

    와인 한 병으로 취기가 슬쩍 오른 재환은 카운터로 다가가 곧바로 말했다.

    “스위트룸 하나 숙박으로.”

    “저, 손님? 혹시 예약하셨습니까?”

    “예약은 지금 하는 거고, 멤버십이···.”

    안주머니에서 플래티넘 카드를 꺼내 카운터 위에 올려놓자, 데스크 직원들은 직감적으로 ‘VIP’라는 것을 알고 곧바로 응대했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VIP 전용 호텔리어들이 다가와 재환을 안내했고, 최상층에 있는 스위트룸에 도착한 재환은 팁으로 수표 한 장을 건네주고는 넥타이를 풀고 소파에 걸터앉았다.

    “편안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호텔리어의 인사를 받고 냉장고에 있는 고급 위스키를 꺼내고 룸서비스로 식사를 시켰다.

    정말 한 맺힌 것처럼 호텔 레스토랑 내에 특급 코스는 전부 시켰다.

    중식, 양식, 일식 등등 원 없이 시킨 다음 한 입 먹고 다른 음식도 곁들이고 이러면서 배를 채웠다.

    만족스러운 식사이후 재환은 담배를 한 개비 물고 불을 붙였다.

    “휴우-”

    최고급 스위트룸에서 위스키에 호텔의 요리들, 정말 신선놀음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

    “인생··· 잘못 살았나 보다. 왜 남는 게 없냐?”

    많은 재산과 화려한 커리어를 가지고도 가슴 속 언제나 허전한 곳을 한 번도 메꾸지 못했던 그의 삶.

    이혼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갑자기 그 여자 얼굴은 왜 생각나는지, 아들 졸업식 중에서 고등학교 빼고는 왜 한 번도 못 가본 게 그렇게 가슴 아팠는지, 절연 선언을 했지만 그렇다고 아버지의 묘소까지 한 번도 안 가보고 어머니가 계속 돈을 요구했을 때 화를 낸 자신은 잘한 행동을 한 건지.

    재환은 계속해서 과거를 되짚어나가고 있었다.

    이제껏 주저앉아 슬퍼하기엔 할 일이 너무 많다고 버텨왔지만, 이제는 일이 사라지니 슬픔만 남은 것 같았다.

    “···지랄 같은.”

    재환은 담배 한 대를 또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담배 한 대의 몽롱한 기운 속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

    “저, 손님, 손님?”

    “···으음?”

    재환은 숙취 가득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눈을 떴다.

    눈앞에 보인 것은 정중하게 기다리는 호텔리어가 있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반응이 없으셔서 급하게 문을 열었습니다.”

    “아, 그런가, 얼마나 시간이 지났지?”

    재환이 옷을 뒤적이면서 결제를 하려 했을 때, 호텔리어의 표정이 미묘했다.

    아니, 그것보다도 하룻밤 사이에 뭔가 방이 바뀐 것 같았다.

    “뭐야? 어째 스위트룸이 바뀐 것 같은데?”

    “네?”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촌스러운 아날로그 TV, 디자인이 30년 전에나 쓸 법한 초라한 가구들이었다.

    재환은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잠깐만! 좀 씻고서 말할게요.”

    “저, 손님!”

    후다닥 달려간 재환은 정장 차림으로 욕실에 들어왔을 때, 거울에 본 자신을 보고서 입을 열었다.

    “내가 미쳤네··· 아직도 술이 덜 깼구나.”

    재환은 어려져 있었다.

    광대뼈가 보이던 깡마른 모습에 비해 살도 붙어 있었고, 주름도 전부 사라져서 20대의 모습이었다.

    “뭐 이런 지랄 같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품 안을 뒤적거렸을 때 나온 것은 최신형 휴대폰은 사라지고 어디 시대극에 나올법한 벽돌폰···그것도 폴더가 아니라 가로로 커버를 내리는 옛날 기종이었다.

    “아, 이거 진짜···.”

    재환은 욕실에서 찬물을 틀고 그대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몇 분 동안 찬물에 머리를 식힌 다음 수건으로 감싸면서 다시 한번 휴대폰을 꺼냈다.

    여전히 옛날 벽돌폰이다.

    재환은 허탈해서 웃은 다음 밖으로 나가 호텔리어에게 말했다.

    “이거 몰카지, 응? 그렇지···?”

    “···저기 손님? 죄송하지만, 오늘 호텔 스위트룸에 대한 결제도 아직 안 된 상태입니다.”

    “아, 진짜!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소리를 지르면서 난동을 피는 재환을 보고 호텔리어는 VIP 담당 경호 요원들을 불러야 할까 고민했다.

    그때 재환의 벽돌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뭐야?”

    재환이 전화를 받은 순간 댓 발 같은 소리가 울렸다.

    [야, 이놈아! 외박 나가서 어디에 있는 거야!]

    “야이씨! 뭐야?! 설마?”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의절한 지 10년이 지난 뒤에 돌아가신 분인데, 어디서 전화를 걸었단 말인가? 이건 진짜 몰래카메라가 아닌가 싶은 상황이었다.

    [뭐 이 새끼야? 지금 나한테 욕한 거냐?!]

    소리를 빽 지르는 수화기 너머를 보고서 재환은 머릿속이 찌릿했다.

    이건 진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장을 입은 두 명의 남성이 그랜드 호텔로 왔다.

    그들은 혜성그룹의 비서실 직원들이었고, 재환이 스위트룸에서 즐겼던 것을 모두 계산해줬고 차로 안내했다.

    “도련님, 어서 가시죠.”

    그들이 재환을 데리고 안내한 차는 94년 2세대 그랜다이저였다.

    이제는 허탈해서 웃는 재환이 뒷좌석에 앉으면서도 수행비서들에게 말했다.

    “아, 진짜 이게 실제라고? 시간이 바뀐 게?”

    “···.”

    "서울방송이냐? 동양방송 이런 데 몰카가 아니고?”

    “···.”

    수행비서들은 말이 없었다.

    재환은 지금 상황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내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스위트룸에서 한 잔 걸쳤는데, 눈떠보니···이게 대체 몇 년도야?’

    태산이 휴대폰을 다시 열자, 구형 녹색 화면에서 나오는 시간은 1997년 3월 15일이었다.

    “!”

    23년 정도 이전의 시대로 갑자기 돌아온 것도 이상했지만, 이날은 절대 잊을 수가 없는 날이었다.

    ‘미친··· 하필 이 날이냐.’

    그날은 바로 재환의 집안이었던 혜성그룹이 외환위기로 인해 부도 루머가 나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11월 혜성그룹은 최종부도 처리가 되어 기업이 분해되고, 2001년까지 야구팀 하나에 제과 사업, 그리고 리조트 사업으로 근근이 이어나가다가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미국에서 그렇게 재환이 경고했었고, 지금이라도 달러와 금 보유를 늘리고 버티라고 하는데 경영진인 아버지와 삼촌이 한 짓은 차마 말로 다 하 못할 삽질의 향연이었다.

    “아, 그래. 진짜 돌아왔단 말이지···.”

    재환은 홀로 중얼거리다가 수행비서들에게 말했다.

    “저기 아저씨들? 지금 용산으로 가는 거 맞아요?”

    일단 차분하게 존대로 묻자 드디어 도련님의 정신이 돌아왔다 생각한 것인지 수행비서들이 정중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용산은 바로 혜성그룹의 본사 사옥이 있는 곳이었다.

    분명 아버지가 부른 것일 것이다.

    그때는 망해가는 가업 따위 이을 생각도 없었고, 지원받았던 등록금도 스스로 벌어서 전부 돌려줬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때로 돌아왔는데, 다시 그걸 반복한다는 건 뭔가 가슴이 켕겼다.

    결국, 용산 남영동 혜성그룹 사옥에 도착한 재환은 그곳을 올려다봤다.

    딱 6개월 뒤에 이곳은 생지옥이 되어 아비규환을 이룰 것이다.

    머리를 민 파업 노조와 초토화가 된 사무실, 그리고 길바닥에 나앉은 수많은 노동자.

    “도련님, 도착했습니다.”

    “아, 그래요.”

    재환은 내려서 이 건물을 본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는 최상층까지 쭉 훑어내려가며 사옥을 보다가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하하하!”

    미친 듯이 웃은 뒤 양 뺨을 손으로 치고는 한 번 다시 시작해볼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재환의 모습을 발견한 수행비서 중 한 명이 재환을 안내해서 회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회장실에 도착했을 때, 비서실 데스크 직원들 역시도 내부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직감하고 조마조마하게 바라봤다.

    “회장님, 모셔왔습니다.”

    “후우, 좋아!”

    재환은 작정한 듯 옷매무새를 다듬고 부딪힐 준비를 했다.

    23년 전으로 돌아온 자신.

    현재 배경은 6개월 뒤 부도 위기의 재벌 그룹.

    그리고 자신은 아이비리그 유학 생활을 마치고 온 인재이자, 훗날 전문경영인으로만 미국과 한국에서 살아온 인물.

    어찌 된 건진 몰라도 새로운 90년대의 젊어진 삶을 정면으로 맞서기로 한 재환이었다.

    문이 열리자 의자에 앉은 채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물고 있는 회장이자 아버지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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