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99화 (999/1,000)
  • 외전 125화 즐겁고 명랑하게!

    “……! ……! ……!”

    이우주는 등 뒤에 있는 아빠의 그림자를 보며 전율했다.

    저 멀리서 이산하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울아빠 포스 실화냐? 진짜 세계관 최강자의 카리스마다. 늘 소파에 누워서 배만 긁던 아빠가 맞나? 가슴이 웅장해진다. 아무튼 울아빠는 진짜 랭커들중최거랭커임.”

    그 말대로였다.

    이우주는 고개를 뒤로 돌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 등 뒤에 서 있는 아빠는 뭔가가 다르다.

    늘 집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종종 엄마에게 등짝을 맞으며, 맥주를 산처럼 쌓아 놓은 채 고전 애니메이션을 정주행하거나 짜장면 곱빼기를 후룩거리며 드라마 본방을 사수하겠다는 의지로 눈을 빛내는, 그런 느낌의 아빠가 아니다.

    “……. ……. …….”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서 있는 아빠의 존재.

    그 존재감과 그것이 전장 전역에 미치는 영향력은 전성기 때와 비교해서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이우주는 앞으로 한 발을 내딛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등 뒤에 있는 아빠에게 기대고 싶었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여기까지 혼자 힘으로 죽을 둥 살 둥 헤쳐 온 보람이 없는 것이다.

    저벅- 저벅- 저벅-

    이우주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묵묵히 앞으로 걸었다.

    그리고 어느새 등 뒤에 버티고 서 있는 아빠의 그림자 바깥까지 걸어 나갔다.

    아빠의 그림자를 벗어나는 순간.

    파아앗-

    이우주의 눈앞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태양룡 바이어스의 시체였다.

    이우주는 바이어스의 심장부에 삐죽 튀어나와있는 것에 주목했다.

    그것은 바로 태양살의 화살이었다.

    “보통의 화살들은 한 번 쏘면 그대로 소모되지만…… 예외가 하나 있지.”

    이우주는 바이어스의 심장 깊숙이 꽂혀 있는 화살을 붙잡았다.

    -<태양살(太陽殺)의 화살> / 한손무기 / S / 강화: +1

    불을 찢는 힘이 담겨있는 파사(破邪)의 화살.

    원래는 열 발이 있었으나 지금은 한 발 밖에는 남지 않았다.

    -공격력 +5,000 (+500)

    -특성 ‘관통(貫通)’ 사용 가능 (특수)

    -특성 ‘반정(反正)’ 사용 가능 (특수)

    -특성 ‘곤장형(棍杖刑)’ 사용 가능 (특수)

    -특성 ‘십시일반(十矢一反)’ 사용 가능 (특수)

    -특성 ‘후예사일(后羿射日)’ 사용 가능 (특수)

    파-앗!

    작살처럼 거대한 화살이 쑤욱 뽑혀 나오며 환한 빛을 뿌린다.

    “바로 ‘관통’ 특성이 붙어 있는 화살이야.”

    이우주는 지금까지 거의 쓴 적이 없었던 화살의 첫 번째 특성을 바라보았다.

    특성: <관통(貫通)>

    ↳ 무조건 하나 이상의 적을 꿰뚫고 전진합니다.

    관통 특성은 간단하다.

    ‘무조건’ ‘하나 이상’의 적을 ‘꿰뚫고’ ‘전진’한다는 내용.

    하지만 이 화살은 아직 바이어스의 몸을 꿰뚫지도 못했고 앞으로 전진하지도 못했다.

    그래서일까?

    화살은 아직 한 번은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듯 웅웅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이우주는 화살의 상태창이 미묘하게 달라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용옥(龍鈺).

    강화석보다 훨씬 더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다는 용의 심장.

    바이어스의 심장에 꽂힌 화살은 펄펄 끓는 쇳물보다도 뜨거운 용의 피에 흠뻑 적셔져 강화를 이루어 낸 것이다.

    그리고 이우주에게는 마침 바이어스의 심장과 같은 것들이 아홉 개나 있었다.

    -<생생한 황금룡의 용옥(龍鈺)> / 재료 / S

    금빛 비늘을 지닌 용의 심장.

    막대한 마나가 응집되어 커다란 구체의 형상을 이루고 있다.

    전성기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찬란하고 생동감 있는 빛을 내뿜는다.

    -특성 ‘고생물’ 사용 가능 (특수)

    ※이 아이템은 강화석 대신 사용이 가능합니다

    ※일반적인 강화석과는 혼용이 불가능합니다

    파이몬이 그토록 탐내던 용옥은 이우주의 손에 의해 화살에 덧발라졌다.

    그리고.

    파아아아아아아아앗!

    강화를 알리는 아홉 번의 빛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이윽고, 이우주의 손에 들린 화살이 한층 더 거대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태양살(太陽殺)의 화살> / 한손무기 / S(S+) / 강화: +10

    불을 찢는 힘이 담겨있는 파사(破邪)의 화살.

    원래는 열 발이 있었으나 지금은 한 발 밖에는 남지 않았다.

    ※아이템 속에서 태양룡 일족의 숨길 수 없는 찬란한 광휘가 뿜어져 나오고 있습니다

    -공격력 +5,000 (+5,000)

    -특성 ‘관통(貫通)’ 사용 가능 (특수)

    -특성 ‘반정(反正)’ 사용 가능 (특수)

    -특성 ‘곤장형(棍杖刑)’ 사용 가능 (특수)

    -특성 ‘십시일반(十矢一反)’ 사용 가능 (특수)

    -특성 ‘후예사일(后羿射日)’ 사용 가능 (특수)

    최후의 변신.

    그 화려한 진화의 순간을 눈앞에 둔 이우주는 떨리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바로 그때.

    [하하하하하- 내가 그 꼴을 그냥 두고 볼 것 같으냐!?]

    루시퍼가 비틀거리는 몸으로 일어났다.

    하늘에는 아직 검은 태양이 떠 있다.

    루시퍼는 그것을 지면으로 떨어트릴 생각인 것처럼 보였다.

    [태양의 힘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그것도 한낱 미물인 인간 따위에게 돌아가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지! 내 것이 될 수 없다면 죄다 부서져 버리는 편이…… 어!?]

    순간, 루시퍼의 대사가 중간에 끊겼다.

    “어이.”

    고인물.

    그가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오싹-

    루시퍼는 전신의 근육들이 일제히 반응하는 것을 느겼다.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하고 평이한 목소리.

    하지만 그 안쪽에는 무언가 무시무시한 것이 숨어있다.

    먹이사슬 피라미드 최정상에 군림하는 정점.

    세계관 최정상에 우뚝 서 있는 존재.

    불가해(不可解)의 초생물(超生物).

    현존하는 최강 최악의 살인병기.

    뭇 플레이어들의 천적(天敵).

    최강의 고정 S+급 몬스터.

    오만의 악마성좌.

    루시퍼.

    하지만 그 루시퍼는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착각이었다.’

    그렇다. 착각이었다.

    자신이 최강 최악의 생물이라고 생각하던 것은 틀렸다.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착각에 불과했다.

    지금 옆에 있는 존재야말로 세계의 정점에 서 있는 존재.

    그 증거로 지금 전신에 빼곡하게 돋아난 소름과 식은땀, 머릿속에서 미친 듯이 빗발치는 본능의 경고가 있지 아니한가!

    ……

    지금 당장 이 자리를 피해 도망치라는 본능의 경고와 딱딱하게 얼어붙은 채 달달 떨리기만 하는 육체는 분명 본질적으로는 같은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리라.

    덜덜덜덜덜덜……

    루시퍼는 직감했다.

    눈앞에 있는 남자의 심기를 거슬렀다가는 어떻게 될지를.

    ‘죽는다.’

    눈앞의 이 남자는 분명 오늘 처음 보는 것이건만, 루시퍼는 어째서인지 아주 오래 전에 이미 그를 한번 봤던 적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그냥 본 것도 아니다.

    ‘나는 이미 이 남자에게 한 번 죽어 본 적이 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그랬다.

    루시퍼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식은땀 범벅이 되어 가고 있을 때.

    고인물이 입을 열었다.

    “미안. 조금만 기다려 줄 수 있어?”

    [……?]

    “아무래도 아빠 입장에서는 말이야, 살짝 걱정이 돼서. 조금이라도 더 아들의 뒷배가 되어 주고 싶달까. 언제든 기댈 수 있도록.”

    그는 멋쩍은 웃음으로 말을 이었다.

    “녀석들이 워낙에 씩씩해서 좀체 도움 요청은 안 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언젠가 지치고 힘들 때 기대 줬으면 좋겠거든. 그때까지는 든든하게 버티고 있어 줘야 하지 않겠어? 아빠라면 말이야.”

    물론 자식이 없는 루시퍼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이윽고, 루시퍼는 뾰족한 이빨들을 내보이며 으르렁거렸다.

    [에에잇! 나는 모른다! 열등감은 곧 나의 힘! 나는 나의 길을 간다!]

    과연 고정 S+급 몬스터의 정신력답다.

    …콰쾅!

    루시퍼는 결국 땅을 박차고 하늘을 향해 뛰어올랐다.

    고인물은 저 멀리 올라가는 루시퍼를 보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루시퍼쯤 되면 말로는 안 되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하늘에 떠 있는 검은 태양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자식들은 아직 저 정도 되는 공격을 막아낼 힘이 없어 보이니 말이다.

    “자, 무명의 겜덕후 나가신다. 마지막으로 한번 살짝만 더 도와줘 볼까?”

    고인물의 손에서 끈적한 점액이 흘러내린다.

    날아가는 루시퍼를 붙잡아 지면으로 끌어내리기에 딱 좋은 점액탄이 완성되었다.

    바로 그때.

    “……오?”

    고인물은 손 위의 점액탄을 던지려다 말고 멈칫했다.

    그것은 루시퍼가 알아서 땅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커헉!?]

    하늘에 떠 있는 검은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던 루시퍼는 별안간 목을 부여잡더니 그대로 지면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땅 위에 쓰러진 채 벌레처럼 몸을 떨기 시작했다.

    [컥! 커헉! 케헥!? 뭐, 뭐냐 이건!?]

    루시퍼는 어째서 자신이 지면에 떨어졌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찌하여 하늘에서 떨어트렸느냐? 빛나는 별, 여명의 아들인 나를!]

    루시퍼의 시선은 미친 듯이 흔들리면서도 한 지점을 향해 정확히 꽂히고 있었다.

    그곳은 바로 이우주가 서 있는 곳이었다.

    “어떻게 땅에 떨어트렸냐고?”

    이우주는 씩 웃으며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이쑤시개 정도 사이즈밖에는 되지 않는 작은 바늘이었다.

    -<히드라 빅헤드의 독침> / 한손무기 / S

    히드라의 독낭에서 뽑아낸 바늘,

    빅헤드가 품고 있던 맹독의 정수(精髓)이다.

    히드라 성체가 가지고 있는 독기를 그대로 재현해낼 수 있다.

    -독 공격력 +?

    -특성 ‘맹독’ 사용 가능 (특수)

    ※이 아이템은 1회용입니다

    독이 떨어져 텅 비어 버린 바늘.

    그렇다면 이 바늘 속에 담겨져 있었던 무시무시한 맹독은 어디로 갔을까?

    [어, 어느새…… 믿을 수 없어…… 제 아비에게 기대고만 있었던 게 아니란 말인가?]

    루시퍼는 목덜미를 부여잡은 채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고인물이 어깨를 으쓱하고 있었다.

    “못 말리는 녀석이야. 아빠 도움이 그렇게도 받기 싫은가?”

    그 말에 루시퍼의 표정이 참담하게 일그러진다.

    이윽고.

    온몸을 덜덜 떨고 있는 루시퍼의 앞으로 네 개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

    네 명은 각자 위치로 향했다.

    …콱! …콰악!

    죠르디와 솔레이크는 옆에서 이산하의 활을 단단히 붙잡는다.

    꾸구구구구구국-

    그리고 이산하는 강력한 힘으로 활시위를 당긴다.

    마지막으로 이우주는 온몸의 특성들을 전부 개방한 뒤 활시위에 걸려 있는 화살을 잡고 겨냥했다.

    과녁은 눈앞에 있는 최후의 고정 S+급 몬스터, 루시퍼.

    “자! 간다! 준비된 사수로부터 격발!”

    “나는 준비 끝!”

    “Me도 마찬가지!”

    “나도야!”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가 힘차게 외쳤다.

    솔레이크와 죠르디가 단단히 붙잡고 있는 활, 그리고 이산하와 이우주가 장전하고 있는 화살.

    그리고.

    …번쩍!

    네 사람의 힘이 담긴 화살은 환한 폭풍을 만들어 내며 앞으로 쏘아져 나간다.

    후예사일이 아니라 후대사일(後代射日).

    말 그대로 후대를 향해, 태양을 향해 쏘는 것처럼, 새로운 도약으로.

    즐겁고 명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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