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20화 멸망 재림(滅亡 再臨) (6)
-띠링!
<‘샛별 마차’가 과열되고 있습니다!>
<‘샛별 마차’의 냉각기가 파괴됩니다!>
<‘샛별 마차’의 궤도를 올바르게 수정하십시오!>
<‘샛별 마차’의 탑승자는 사망 시 최대 1만 배의 패널티를 적용받습니다!>
시야가 자꾸만 빙글빙글 돌아간다.
이우주는 계기판들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S+급 아이템이라는 것은 단지 손에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나가 버릴 것만 같은 존재.
수없이 많은 수치들과 그래프들이 머릿속을 미친 듯이 널뛴다.
세 살 난 아이에게 최고급 제트기를 주어도 그것을 몰지 못하는 것처럼, 이우주 역시도 이 샛별 마차를 컨트롤하기 위해 진땀을 빼고 있었다.
“제기랄, 이쯤 되면 여기까지 몰고 온 것 자체가 기적이야! 고마워요 무명의 겜덕 씨!”
이우주는 이 샛별 마차를 인정하기로 했다.
그것은 과연 대 황금룡전용 핵병기, 악마족 최후의 보루가 될 만한 것이었다.
왜 파이몬이 그토록 아끼고 또 아꼈는지도 이해가 될 만큼.
쿠르르르르르륵!
샛별 마차가 마지막 화염을 뿜어낸다.
차바퀴 중앙에서 루시퍼가 태양을 향해 가졌던 집념과 집착이 장작처럼 활활 타올랐다.
네 마리의 불개들은 전차를 몰고 그대로 마른하늘을 내달려 전장의 한복판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가 전차 아래를 바라보며 탄성을 질렀다.
“우와! 유토러스가 보인다! 모든 플레이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어!”
“아임 어 슈퍼 히어로! 일생일대의 사건! 우리가! 이 무대의! 주인공! 워후!”
“야야야야! 정신 똑바로 차려! 영웅이 아니라 공적(公敵)이 될 수도 있다고!”
그리고 전장의 모든 시선들이 집중되어 있는 가운데.
“크윽!”
이우주는 전차의 레버를 놓아 버렸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더 이상 조종도 불가능했다.
전차는 마치 주인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처럼, 그렇게 루시퍼를 향했다.
다만 루시퍼가 상정하지 못했던 것이 하나 있다면…….
“거인국의 상공부터 이곳까지 전속력으로 달려오느라 붙은 가속도겠지?”
이우주의 말대로였다.
쿠-오오오오오오오!
태양이 떨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찬란하고 화려한 플레어 드라이브(Flare drive)!
-<루시퍼의 ‘샛별 마차’> / 탈것 / S+
‘오만의 악마성좌 루시퍼’가 직접 제작한 대륙간탄도전차(大戮艮彈道戰車).
황금 비늘 일족의 수장 ‘태양룡 바이어스’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특성 ‘대폭발’ 사용 가능 (특수)
본디 태양룡을 죽이기 위해 설계되었던 이 대륙간탄도전차는 원래의 목표인 태양룡 바이어스가 아닌 루시퍼를 향해 엉뚱한 궤도로 날아들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 멈춰이새끼들아아아아아!]
루시퍼가 체통도 잊고 비명을 질러 댔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자신이 쌓고 자신이 불붙인 것이 아닌가?
“……복수를 하려거든 무덤을 두 개 파라는 말이 있지.”
이우주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루시퍼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질투와 열등감은 결국 자신을 갉아먹는 법.
루시퍼의 경우에는 이것이 아주 극단적으로 현실화된 예라고 할 수 있으리라.
바로 그때.
[이놈들! 감히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불청객들을 그냥 보낼 수야 있나!]
샛별 마차의 양옆으로 두 개의 목소리가 솟구쳐 올랐다.
제 머리에 맞지 않는 왕관을 삐딱하게 걸쳐 쓴 미소년.
<파이몬 왕> -등급: S / 특성: 악마, 어둠, 하수인, 고생물, 매혹, 싸움광, 예술가, 절대음감, 솔리스트, 프리마돈나, 소매치기, 자연재해, 1:1, 백전노장, 뽐내기, 하극상, 이상성욕, 레이디 퍼스트, 젠틀맨 퍼스트, 무사고 운전
-서식지: 거인국 ‘파이몬 성’, 세계수해
-크기: 1.5m
-가장 위대한 악마가 지상으로 추락할 때 쪼개져 나온 파편들 중 하나.
태초의 시절부터 샛별을 보좌해 왔던 고귀한 악마이다.
여자의 모습을 한 남자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어리고 나약한 미소년의 몸을 빌려 전생하는 습성이 있다.
오만의 악마성좌 루시퍼가 오른팔로 인정할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오만의 군단 내에서 약 40여 개의 몽마 군단을 지휘하고 있으며 단탈리안이라는 이름의 악마와는 라이벌 관계이다.
오만의 군단 내의 서열은 공동 2위로 사실상 가장 악마성좌에 근접했다고 알려진 존재.
파이몬 왕이 낙타 가죽으로 된 망토를 휘날리며 창공을 향해 손을 뻗어 왔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자그마치 36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신사가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단탈리안 대공작> -등급: S / 특성: 악마, 어둠, 하수인, 고생물, 매혹, 반전, 천면, 예술가, 음성변조, 스파이, 공작, 정보열람, 자연재해, 1:1, 백전노장, 뽐내기, 하극상, 변신, 소환, 칼춤, 교활한 협상가, 노인공경
-서식지: 북부 황야 ‘악령 서커스단’, 북대륙 ‘화이트워싱’ 마을
-크기: 2.7m
-가장 위대한 악마가 지상으로 추락할 때 쪼개져 나온 파편들 중 하나.
태초의 시절부터 샛별을 보좌해 왔던 고귀한 악마이다.
36개의 얼굴, 목소리, 몸짓, 신분으로 전 세계 어디든 출입할 수 있고 누구든 속일 수 있다.
오만의 악마성좌 루시퍼가 왼팔로 인정할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오만의 군단 내에서 크고 작은 200여개의 군벌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파이몬이라는 이름의 악마와는 라이벌 관계이다.
오만의 군단 내의 서열은 공동 2위로 사실상 가장 악마성좌에 근접했다고 알려진 존재.
대공작 단탈리안.
노인, 젊은이, 어린아이, 여자, 남자, 미남, 미녀, 추남, 추녀, 뚱보, 홀쭉이, 흑인, 백인, 황인, 귀족, 노예, 부자, 거지, 영웅, 악당…… 이처럼 여러 개의 얼굴과 신분을 가지고 있는 그는 파이몬과 같이 위험등급 S랭크 최상위권의 악마형 몬스터이며 고정 S+급 몬스터인 루시퍼의 직속 부하이다.
[너는 빠져라 단탈리안! 루시퍼 님을 향한 자객들은 내가 막는다!]
[홋-호호호! 정작 그 자객들에게 샛별 마차를 도둑맞은 주제에 말은 잘하시는군요.]
파이몬은 이를 갈며 긴 창 한 자루를 꼬나 쥐었다.
단탈리안 역시도 지팡이 속에 숨겨져 있던 시퍼런 칼날을 드러낸다.
랭커들로만 이루어져 있는 전장을 무인지경으로 휘젓고 다니던 두 마리의 네임드 S급 몬스터가 동시에 힘을 합쳐 샛별 마차를 노리고 있었다.
“으윽! 저 자식들, 힘을 합쳤어!”
“하나 하나가 아르파닉급. 상대하는 것은 무리!”
“…….”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눈앞으로 닥쳐오는 두 악마의 공격에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이우주 역시도 레버를 손에서 놓아 버린 이상 뾰족한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
-띠링!
모두의 귓가에 알림음 하나가 들려왔다.
<(계정정보없음)님이 파티를 탈퇴하셨습니다>
뜻밖의 말에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가 고개를 돌린다.
그곳에는 죠르디가 가만히 서 있었다.
“멍청한 자식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죠르디는 고개를 돌리고는 눈앞에 있는 두 마리의 S급 몬스터를 흘끗 바라보았다.
“그동안 네놈들 바보짓 구경하느라 곤욕이었다. 나는 이제 떠날란다. 혹시 뭐 떨어지는 게 있을까 싶어서 친구인 척 해 왔는데 그것도 이제 이용 가치가 없…….”
“야, 죠르디.”
하지만 죠르디의 말은 중간이 이산하에 의해 막혔다.
이산하는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괜히 무게 잡으면서 정 떼려 하지 말고.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라.”
“…….”
“우린 한 몸이야. 파티 하기로 했잖아?”
그러자.
왈칵-
죠르디의 표정이 변했다.
그녀는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다.
“……이래서 눈치 빠른 애들은 싫다니까.”
“어엇!?”
이산하와 솔레이크가 미처 붙잡을 틈도 없었다.
…펄쩍!
죠르디는 모든 마나를 쥐어짜내 크고 강력한 유령 군마 세 마리를 소환했고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를 태워 버렸다.
“네 마리까지는 못 만들겠네.”
죠르디는 유령 군마들을 재빨리 전차 바깥으로 내보냈다.
세 마리의 유령 군마들은 죠르디의 마나로 한계까지 강화된 개체들이었기에 간신히 샛별 마차의 불길을 뚫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어차피 난 카르마 수치도 ‘구제불능’ 단계야. 그러니 너네끼리라도 가라.”
죠르디는 혼자서 샛별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이우주가 외쳤다.
“안 돼! 마차의 피로도는 이제 한계야! 조종법도 제대로 모르는 네가 몰았다간 무조건 폭발한다고!”
“알아.”
“……뭐?”
멍한 표정을 짓는 이우주를 향해 죠르디가 입을 열었다.
“넷이 죽는 것보단 하나가 죽는 게 낫잖아.”
이 전차에서의 죽음은 실제 죽음과도 맞먹는다.
계정이 삭제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
더군다나 죠르디의 경우에는 계정 정보가 메인 서버에 등록되지 않은 부정 계정이기에 한 번의 죽음은 곧 캐릭터 삭제로 이어진다.
현재 상황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죠르디의 뒷모습에 대고 빽빽 소리치고 있었다.
“야! 야 이 자식아! 유령 군마 소환 해제해 빨리!”
“죠르디! 우린 친구! 갈 때도 다 함께! 혼자 보내지 않아!”
하지만 죠르디는 그저 묵묵히 고개를 저을 뿐이다.
이윽고,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너라면 이해할 수도 있겠지?”
그 대상은 바로 이우주였다.
“…….”
이우주는 죠르디의 말을 듣고 그녀와 나누었던 예전의 대화를 떠올렸다.
‘……너라면 이해할 수도 있겠군. 아빠가 서 있던 경지. 그 경지를 밟아보고 싶은 마음을 말이야.’
그때 그녀가 했던 말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가 하는 말 역시도 진심일 것이다.
“…….”
이우주가 입을 열어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콰쾅!
파이몬과 단탈리안의 창칼이 샛별 마차를 덮쳤다.
그리고.
…쿠르르르륵! 와지끈! 뚝! 콰-르르르르르륵!
불길의 화력을 억제하던 바퀴들이 떨어져 나가며 한층 더 맹렬하게 피어오르는 겁화가 샛별 마차를 달군다.
콰-쾅!
전차는 포위벽을 뚫고 계속해서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어엇!?]
[이, 이럴 수가!]
파이몬과 단탈리안을 뿌리친 샛별 마차는 그대로 앞을 향해 맹진한다.
그 앞에는 온몸이 불길에 타오르면서도 꿋꿋하게 레버를 잡고 있는 죠르디가 있었다.
전장의 모든 이들이 고개 들어 올려다보는 마지막 순간.
죠르디와 이우주의 시선이 한데 마주쳤다.
“……꼭 닿아라. 너희 아빠가 있는 곳.”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전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