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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993화 (993/1,000)
  • 외전 119화 멸망 재림(滅亡 再臨) (5)

    용과 악마들이 중앙 격전지에 모여 팽팽하게 싸우고 있었다.

    오크가 된 플레이어들과 리자드맨이 된 플레이어들은 각기 악마 진영, 용 진영에 배속되어 서로를 향해 스킬을 난사한다.

    바야흐로 대규모의 PVP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오-오오오오오오!]

    용 진영에서 거대 아룡 바실리스크가 울부짖으며 기어 나왔다.

    […….]

    악마 진영에서는 어둠 대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A+급 몬스터는 서로 맹렬하게 부딪쳐 싸웠다.

    바실리스크는 특유의 강력한 독과 튼튼한 몸을 앞세워, 어둠 대왕은 특유의 강력한 공격력과 스피드를 이용해서 서로의 목숨을 깎아 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싸움에는 유저들이 가세했다.

    …번쩍!

    한 유저가 마법으로 날개를 만들어 바실리스크를 서포트한다.

    날개가 없는 것이 한이었던 바실리스크는 플레이어의 버프를 받아서 허공을 날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우지지지직!

    어둠 대왕에게는 강력한 방패가 생겨났다.

    방어력이 취약한 어둠 대왕을 감싸는 몇 겹의 대지 방패가 바실리스크의 접근을 제한하고 있었다.

    “어둠 대왕을 회복시켜!”

    “바실리스크에게 버프를 걸어라!”

    “우리 편 몬스터들을 지켜 가면서 싸워야 한다!”

    유저들은 적 진영 플레이어를 공격함과 동시에 아군 진영의 몬스터를 치료하고 또 보호한다.

    이런 종족대전에서는 같은 플레이어라도 종족이 다르면 적, 평소에는 적인 몬스터라고 해도 종족이 같으면 아군이다.

    이처럼 플레이어들은 용 계열 몬스터와 악마 계열 몬스터를 각각 적, 아군으로 삼아 대규모의 전투를 진행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플레이어들은 이 메인 스토리의 게스트(guest), 진짜 스토리를 주도해 나가는 이들은 아무래도 NPC나 몬스터 쪽이었다.

    콰콰콰쾅!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뒤집히는 듯한 충격파가 전장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다.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으악! S급들이다!”

    “피해! 도망쳐!”

    “말려들었다가는 순식간에 리타이어된다!”

    플레이어들이 좌우로 썰물마냥 빠져나가는 공간 사이로 등장하는 거대한 괴물이 있었다.

    …쿠르르륵!

    암흑의 한 자락을 잘라 낸 듯한 날개, 뿔이 난 머리를 두 개나 가진 근육질의 몸 전체에 천 개도 넘는 시뻘건 눈알들이 돋아나 빛난다.

    두 팔과 꼬리에는 시뻘건 불기둥을 휘감고 있었다.

    <데모고르곤> -등급: S / 특성: 어둠, 야수, 하수인, 싸움광, 1:1, 맹독, 마나 번, 침묵

    -서식지: 만마전(萬魔殿).

    -크기: 9m.

    -빛과 어둠이 갈라질 때 발생한 어둠의 부스러기에서 파생된 존재. 원시시대 때부터 명계와 관계가 있었던 위대한 악마이다.

    시선을 마주치거나 그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금기시될 정도로 무시무시한 악마이며 7대 악마성좌인 마몬조차 ‘그 무서운 데모고르곤!’이라 평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졌다.

    ‘고르곤(Gorgon)’의 상위종.

    물소의 것과 비슷한 두 개의 머리, 그리고 불길하게 번뜩이는 눈을 보면 누구나 쉽게 유추할 수 있다.

    [크-아아아아악!]

    악마군 소속의 이 거대한 마물은 손에 든 불의 채찍으로 용 진영의 플레이어들을 난도질했다.

    그때.

    …콰긱!

    그런 데모고르곤의 채찍을 잡아채는 거대한 손아귀가 있었다.

    <용옥(龍獄)의 고문기술자> -등급: S / 특성: 어둠, 지진, 능지처참(陵遲處斬), 하수인, 1:1, 싸움광, 야수, 뺑소니, 만근추, 전율, 고속이동, 고속재생

    -서식지: 불타는 땅, 제 1 용옥.

    -크기: 15m

    -드래곤은 레어를 짓고 주변을 미궁처럼 만들어 놓았다.

    보물을 탐내다가 이 미궁에 갇힌 자들은 용의 하수인, 이 고문귀들에 의해 벌을 받는다.

    전선의 최선두를 찢어발기며 나타난 ‘용옥의 고문기술자’.

    거대한 덩치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날렵한 스피드.

    플레이어 진영의 탱커 라인을 깨부수고 여기까지 제일 먼저 진격해 온 괴물이다.

    꾸드득! 키리리리릭!

    채찍이 용옥 고문기술자의 통나무 같은 팔을 휘감아 타오른다.

    [크-아아아아악!]

    [그-오오오오오!]

    각 진영에서 휘몰아치는 S급 몬스터들의 포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S급 몬스터들의 난전 사이에서도 빛을 발하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천상계의 랭커들이었다.

    퍼펑! 쾅! 우지지지직!

    S급 몬스터들에게도 밀리지 않을 정도의 화력을 뿜어내고 있는 랭커들을 모든 플레이어들은 선망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모두가 그들을 우러러보았고 모두가 그들처럼 되고 싶어 했다.

    전장의 최고 선두에서 칼을 휘두르던 은발머리 소녀 튜앙카 역시도 그중 하나였다.

    로얄 블러드 길드의 1급 정보원.

    그녀는 오늘 이 3차 대격변 테마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위해 긴 시간을 준비해 왔다.

    “오늘이야말로 나의 데뷔전!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잠자는 시간뿐만이 아니라 씻는 시간, 먹는 시간까지 아껴 가면서 레벨 업을 하고 장비를 맞춰 왔다. 반드시 성과를 내서 부모님께 인정받고 팬들에게 인정받는 게이머가 되겠어.”

    열심히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거기에 ‘잘해야 하는 것’까지 추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래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

    콰악!

    튜앙카는 두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그 사건’ 이후로 정말 죽을 듯이 노력해 왔다. 그날 커피콩 밭에서 입었던 패널티를 만회하느라…….”

    그녀의 이마에는 한 줄기 선명한 핏줄이 돋아나 있었다.

    금 따는 콩밭에서 있었던 그날의 패배와 사망.

    그 이후로 접속 불가 패널티를 받아서 스케줄에 죄다 구멍이 났던 것을 떠올리면 아직도 피가 부글부글 끓는다.

    “하지만 결국 나는 이 자리에 섰다! 반드시 여기서 성과를 내서 부모님께 인정받을 거야!”

    인간 종족인 튜앙카는 달려드는 용과 악마를 각각 한 마리씩 베어 넘긴 뒤 고개를 들었다.

    “……근데 그 녀석들은 어디에 있지?”

    고개를 두리번거려도 아는 얼굴은 딱히 없다.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튜앙카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주변을 살폈다.

    “그 녀석들이라면 분명 이곳에 나타나겠지. 그리고 어떻게든 두각을 드러낼 거야.”

    튜앙카는 칼을 굳게 움켜쥐었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

    그 밉살맞은 얼굴들을 만나게 되면 그날 커피콩밭에서의 빚을 이자까지 쳐서 톡톡히 갚아 줄 생각이었다.

    바로 그때.

    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튜앙카의 바로 옆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모든 사고회로를 정지시켜 버릴 정도로 커다란 폭발이었다.

    빠지지지직!

    용옥의 고문기술자가 갈가리 찢겨져 날아간다.

    수없이 많은 육편 조각들이 전장 곳곳으로 흩어져 버렸다.

    “……!?”

    튜앙카는 겨우겨우 고개를 들었다.

    자욱하게 휘날리는 포연과 흙먼지 너머, 까마득한 상공에 무언가가 떠 있는 것이 보였다.

    S급 몬스터인 용옥의 고문기술자를 단숨에 한낱 고기조각으로 만들어 버린 장본인.

    <루시퍼>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3m

    -이 세상의 모든 악마를 지배하는 일곱 성좌 중 하나.

    오만과 편견을 지배하는 위대한 마왕.

    “어찌하여 하늘에서 떨어트렸느냐? 빛나는 별, 여명의 아들인 나를!”

    -루시퍼- <구약, 이사야서(ספר ישעיהו書) 23:66>

    검은 망토를 두르고 있는 냉혹한 인상의 미남자.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지고한 경지에 닿아 있는 악마성좌.

    오만의 성좌 루시퍼가 이 세상에 강림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서는…….

    콰쾅!

    거대한 발이 나타나 데모고르곤을 피떡처럼 으깨 버린다.

    <바이어스>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108m

    -이 세상의 모든 용을 다스리는 일곱 군주 중 하나.

    태양과 달을 지배하는 위대한 황금 용.

    “비록 태양이 사라져도 한 줄기 빛이 있으리라.”

    -바이어스- <구약, 명왕기(明王記) 하권,

    명왕 108절>

    마치 태양 그 자체를 보는 듯한 위용.

    하늘 아래 모든 용들 중 가장 존귀한 용군주가 지상에 두 발을 디뎠다.

    모든 플레이어들의 공포, 세계관 최후의 대적자.

    천재들의 재능도 노력가들의 노력도 모두 헛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존재들.

    고정 S+몬스터 두 마리가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이날을 기다렸도다.]

    [드디어 결착의 날이 도래했다.]

    루시퍼와 바이어스는 서로를 향해 눈을 빛냈다.

    [동맹을 파기한 죄를 물으리라.]

    [동맹을 먼저 파기해 놓고 뻔뻔하기 그지없구나.]

    용과 악마가 사납게 맞붙는다.

    루시퍼가 불러들인 먹구름들이 창과도 같은 번개 줄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바이어스가 뿜어내는 불길은 마치 태양폭풍처럼 휘몰아치며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린다.

    [태양은 내 차지다!]

    [내 형제들이 모두 살아 있었다면 너 같은 놈은 감히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다.]

    루시퍼와 바이어스가 맞붙기 시작하자 전장의 중앙이 텅 비게 되었다.

    사방팔방으로 터져 나가는 충격파와 폭발 때문에 그 누구도 그들의 영역 안으로 발을 디뎌 놓을 수 없었다.

    …콰르릉!

    어머니의 마을 유토러스가 통째로 요동친다.

    오래된 성벽들이 무너져 내리고 그 위로 거대한 몬스터들이 날뛰고 있었다.

    수많은 유저들이 사활을 걸고 싸우는 이 증명의 전장에서.

    [이번 기회에 보여 주마! 진정한 최고 존엄! 태양의 주인이 누구인지!]

    루시퍼가 오랜 시간 벼리고 또 벼려 왔던 칼을 뽑아 들었다.

    파-지지지지지지직!

    거대한 구체 하나가 창공에 떠올랐다.

    그것은 겉보기엔 태양과 완전히 똑같아 보였다.

    온통 흑색 일색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검은 태양.

    루시퍼가 보유한 최강 최악의 필살기.

    태양을 향한 질투와 집착, 열등감, 피해의식 등 온갖 사념의 집합체.

    그것이 전장의 향방을 결정할 결정적인 한방이었다.

    “저런 게 떨어지면 모두가 죽겠는데.”

    “으음. 우리 회사에서 만든 핵폭탄급이네.”

    “하하하하- 역시 고정 S+급인가! 어처구니없는 힘이로세.”

    “……저런 걸 ‘그 녀석’은 어떻게 잡았던 거지?”

    튜더, 비앙카. 트로츠키, 페이사.

    전 세계랭킹 1위부터 4위까지, 천상계 중의 천상계로 통하는 하이랭커들조차도 루시퍼가 만들어 내고 있는 검은 태양을 보며 감히 대적할 생각을 하지 못한 채 그저 아연실색할 뿐이다.

    [흥- 꽤나 준비를 많이 한 모양이군.]

    천하의 바이어스조차도 루시퍼가 쏘아 보내려 하는 이번 공격만큼은 감히 경시하지 못한 채 뒤로 물러난다.

    바로 그때.

    …쿠르륵!

    어디선가 요란한 소음이 들려왔다.

    마치 불길이 이글거리는 듯한 소리.

    …쿠르르륵!

    문제는 그것이 하늘에서부터 들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

    전장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들이 그 소리를 들었다.

    …쿠르르르륵!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커다란 전차 하나가 보인다.

    …쿠르르르르륵!

    저 먼 하늘에서부터 이쪽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전차가 말이다.

    네 마리의 불개가 끌고 있는 전차가 엄청난 기세로 불길을 뿜어내며 이쪽을 향해 가까워지고 있었다.

    전장의 하늘이 불의 궤적으로 인해 길게 갈라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마치 별똥별이 떨어지는 듯한 광경.

    [……저게 뭐냐?]

    태양룡 바이어스가 황당하다는 듯 묻는다.

    하지만 루시퍼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큰 소리로 웃어 젖힐 따름이었다.

    [하하하하! 파이몬! 딱 좋은 순간에 와 주었구나! 오늘이야말로 태양을 들이받을 때다! 오너라!]

    루시퍼는 검은 태양에서 한 손을 뗐다.

    그리고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마차를 향해 그것을 뻗었다.

    [오너라! 이리로 오너라! 와서 나를 태우고 저 증오스러운 찬탈자를 향해 달려 보자꾸나! 오늘에야말로 나는 내 옥좌를 돌려받을 것이다! 내가 본디 앉아야 했던 위대한 태양의 옥좌를…… 어?]

    하지만, 루시퍼는 말을 끝까지 이을 수 없었다.

    …쿠르르르르르륵!

    엄청난 속도로 가까워지는 마차.

    그것은 루시퍼에게 바짝 가까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속도를 전혀 줄이고 있지 않았다.

    [어…… 좀 너무 오는 것 같지 않느냐……?]

    루시퍼는 그제야 일이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황급히 검은 태양에게서 두 손을 떼고 마차를 세우려 했지만.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마차 위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네 사람은 루시퍼의 그 간곡한 사인을 미처 보지 못했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

    아주 먼 곳에서부터 샛별 마차를 몰아온 장본인들.

    결국 루시퍼 역시도 이들과 같은 표정으로 같은 소리를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것은 전장에 모인 모든 이들, 그러니까 몬스터, NPC, 플레이어들 전체가 다 마찬가지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조금 이상한 멸망(?)이 전장에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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