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92화 (992/1,000)
  • 외전 118화 멸망 재림(滅亡 再臨) (4)

    대부분의 유저들은 오늘 커다란 충격을 받아야 했다.

    -띠링!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당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이제는 현실만큼이나 익숙한 또 다른 현실.

    하지만 그 현실은 하루아침에 백팔십도 뒤바뀌었다.

    질서의 붕괴.

    게임에 접속한 유저들의 눈앞에 제일 먼저 뜬 것은 군데군데 깨져 있는 종족 킬 수치였다.

    ■족 □

    (Ge●◎r◆□to■n 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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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드맨   ʘ§■%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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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살 나 있는 상태창 아래로 자욱한 포연 줄기들이 피어오른다.

    < 3차 대격변이 곧 시작됩니다 >

    무시무시한 알림창과 함께 말이다.

    -띠링!

    <깜짝 이벤트가 진행됩니다!>

    <깜짝 이벤트 ‘3차 대격변’>

    <용과 악마의 동맹이 파기(破棄)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용과 악마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인간, 오크, 리자드맨 유저들은 각 진영의 논리에 따라 전쟁에 참여하세요!>

    <※본 이벤트는 전 서버, 전 종족의 플레이어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3차 대격변의 ‘리마스터(Remaster)’ 버전.

    20년 전에 벌어졌었던 최대 규모의 전쟁이 다시 한번 시작되었다.

    그동안 메인 퀘스트 곳곳에 자잘자잘하게 뿌려져 왔던 용과 악마, 그리고 거대한 멸망의 떡밥들.

    하지만 그 멸망의 성질은 예전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과거에는 용과 악마들이 손을 잡고 플레이어들을 공격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용과 악마들이 서로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더 이상 몬스터vs플레이어의 단순한 구조가 아니었다.

    리자드맨 유저들은 용 진영에 가담해서, 오크 유저들은 악마 진영에 가담해서 각자 이 전쟁에서 맡은 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인간 유저들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진영에 붙으면 그만이었다.

    “이야, 오랜만인데 이 광경.”

    “얼마 만에 다시 보는 거냐. 벌써 20년 만인가.”

    “추억이구만 그래.”

    게임에 접속한 올드비들은 이 낯익은 광경 속에서 짙은 향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데우스 엑스 마키나2의 현 상황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1의 마지막 상황과 거의 완전히 똑같았기 때문이다.

    ‘파이널X타지 14.’

    벌써 수십 년 전의 고전게임.

    출시 전부터 팬들의 엄청난 기대와 사랑을 한 몸에 받았었지만 결국 부족한 콘텐츠와 각종 버그, 비효율적인 그래픽 자원 투자, 불친절하고 엉성한 유저 인터페이스, 퀘스트나 레벨링의 동선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 후진적인 전투 시스템, 스토리 완성도 부진으로 인해 쇠락의 길을 걸어야만 했던 비운의 명작이다.

    ‘MMORPG는 한번 운영을 개시하면 그리 간단히 운영을 중지할 수 없다. 왜냐하면 플레이어들의 캐릭터 데이터나 게임 안의 재산은 단순히 0과 1로 결성된 데이터가 아니라 추억과 시간과 동료와의 우정이 담겨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게임을 어떻게든 살려 보려 했던 개발사는 모든 비상인력을 풀가동해 게임 전체를 리부트(Reboot)했다.

    플레이어들에게 이 세계관의 종말을 납득시키기 위해 진행된 전 서버 차원의 대규모 퀘스트.

    서비스 종료 일정에 맞추어 수많은 몬스터들, 그리고 세계관의 월드보스가 플레이어들의 마을을 침공한다.

    거대한 전쟁이 벌어졌고 수많은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의 세상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이 과정에서 게임을 접었던 이들도 복귀하여 다시금 우정과 결속을 다지기도 했다.

    점점 혼돈의 도가니로 변해 가는 세계.

    하늘에서는 거대한 위성이 떨어지고 거대한 몬스터들이 주요 도시를 파괴해 나간다.

    그리고 세상이 멸망하기 직전, 게임 서비스 종료를 코앞에 두고 있을 때.

    모든 유저들에게 엔딩 무비가 떴다.

    절망하는 사람들. 멸망하는 고향.

    그리고 마지막에 나타난 대현자는 찬란한 빛무리와 함께 모든 플레이어들을 안전한 어딘가로 순간이동 시킨다.

    그리고 게임 서비스 종료.

    이후 게임은 다음 시리즈로 이어지며 순탄한 행보를 이어 갔다.

    현재 데우스 엑스 마키나2의 3차 대격변 이벤트 역시도 그때의 감성을 물씬 되살리고 있었다.

    깜짝 이벤트로 추가된 진짜배기 3차 대격변, 물론 예정보다 훨씬 이르게 진행된 감이 있지만 유저들의 열띤 호응을 이끌어 내기에는 충분했다.

    <‘태양룡 군주’ & ‘오만의 악마성좌’의 부활! 그들이 귀환한다!>

    ‘이번 뉴스는 저도 아나운서를 떠나 한 사람의 게이머로서 참 기대를 하고 있는 내용인데요. 뎀2의 메인 대격번, 그러니까 3차 대격변의 리마스터 버전이 곧 오픈된다는 소식…….’

    ‘뎀사는 앞으로 약 3개월 뒤, 최후의 확장팩을 출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벌써부터 게임 속 세계에서는 용과 악마 진영의 구성원들이 거대한 전쟁을 위해 각자의 집결지로 응집하고 있다는 보고들이…….’

    ‘뎀사의 전 총수였던 윌슨의 부정 개입과 실종으로 인한 여파로 휘발해버린 3차 대격변이 이렇게 다시 유저들의 곁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에 기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때문인지 과거 뎀1에서 전성기를 구가했던 예전의 랭커들에 대한 관심 역시도 증가하고 있는…….’

    얼마 전의 뉴스에서 밝혔던 대로, 새로운 떡밥에 이끌려 온 수많은 랭커들이 최전선으로 집결했다.

    구(舊), 그리고 현(現) 통합랭킹 1위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

    2위 비앙카 트럼프, 3위 페이사 릴레사, 4위 레프 다비도비치 트로츠키.

    전부 다 뎀1의 전성기를 화려하게 이끌었던 하이랭커들이다.

    그 밑의 5위 이하의 랭킹에서부터는 수많은 변동사항이 있었지만 대체로 큰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타파라, 구르무, 밸라이, 마루 마모, 존 호킨스, 올리버 마르코, 라치만 구룽, 토니토니 블레어, 오일러 심슨, 죠 올드만, 모노마흐, 알리타이슨, 아키사다 아야카, 장마오 쉰, 핫세 다닐로바, 우에바라 아츠카네, 야마카미 시가쿠, 히데사토, 유키에, 스즈키 히카리, 빅토르 안, 올가, 표트르, 라스푸틴, 피반창, 주라이기, 구이룬메이, 리덩후이, 리우이하오, 탕쯔이, 팅위안, 커제, 구리, 카렐린 강, 오승훈, 최번개, 안티 니에미, 구라이 부랄 등등…….

    한때 왕좌의 패권을 놓고 자웅을 겨루었던 수많은 랭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그들 중에는 한국의 랭커들 역시도 속해 있었다.

    마태강, 이연호, 임요셉, 홍지노, 이준호, 류요원, 송병건, 최연석, 신창원, 유한방, 오달진, 장보람, 이근형, 오태식, 최무홍, 조현아, 금은동 자매…… 박보연, 윤두나, 배수지, 박소담, 니아 멤버들까지.

    프로리그나 랭킹에서 은퇴한 이들도 있었고 아직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오늘 한 마음 한 뜻으로 이 자리에 섰다.

    20년 전 멸망의 재림(再臨). 그것을 막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래! 이런 게 진짜 3차 대격변이지!”

    “그때는 인간이었지만 지금은 오크다! 리자드맨들을 죄다 때려잡아 주겠어!”

    “더러운 오크 녀석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마!”

    “마이 라이프 포 오크!”

    “리자드맨을 위하여!”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달라진 진영 논리.

    한때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거대한 부조리에 저항하던 이들은 이제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각자의 진영을 향해 갈라졌다.

    “누가 먼저 어머니의 마을을 점령하느냐가 관건이다!”

    “유토러스를 향해 진격!”

    오크 진영도, 리자드맨 진영도 모두 중앙대륙의 구심점 ‘유토러스’를 향해 집결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쪽을 향해 몰려드는 몬스터들의 숫자 역시도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플레이어, NPC, 몬스터들이 뒤섞여 벌어지는 난장판.

    하지만 이 역시도 예전과는 조금 다른 흐름이었다.

    -띠링!

    <동대륙의 ‘어비스 터미널’이 태양룡 일족의 ‘아르파닉’에 의해 붕괴했습니다>

    <서대륙의 ‘세계수해’가 ‘오만의 군단’ 소속 고위악마 ‘파이몬 왕’에 의해 불타버렸습니다>

    <남대륙의 ‘그레이 시티’가 태양룡 일족의 ‘오메가닉’에 의해 완파되었습니다>

    <북대륙의 ‘화이트워싱’ 마을이 ‘오만의 군단’ 소속 고위악마 ‘대공작 단탈리안’에 의해 소멸했습니다>

    20년 전의 3차 대격변의 전황이 다음과 같았다면.

    -띠링!

    <동대륙의 ‘어비스 터미널’이 태양룡 일족의 ‘아르파닉’에 의해 붕괴했습니다>

    <서대륙의 ‘세계수해’가 ‘오만의 군단’ 소속 고위악마 ‘파이몬 왕’에 의해 불타버렸습니다>

    <남대륙의 ‘그레이 시티’가 태양룡 일족의 ‘오메가닉’에 의해 완파되었습니다>

    <북대륙의 ‘화이트워싱’ 마을이 ‘오만의 군단’ 소속 고위악마 ‘대공작 단탈리안’에 의해 소멸했습니다>

    지금 몇몇 메시지에는 용 진영에 대한 내용들이 사라져 있는 것이 보였다.

    거대한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황금색 비늘의 용들이 동대륙의 사막지대를 초토화시킨다.

    유난히 덩치가 큰 태양룡 한 마리가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싱크홀을 토사로 꽉 메워버리는 동영상이 실시간으로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서대륙에서는 낙타 위에 타고 있는 고위악마 하나가 200개가 넘는 군단을 이끌고 그린헬 밀림지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커다란 세계수 역시도 악마들이 토해 내는 불길과 저주 앞에서는 결국 기둥뿌리가 뽑히고 말았다.

    남대륙의 그레이 시티 역시 멸망하고 말았다.

    과거 잿빛용 일족에 의해 멸망한 뒤 길고 쓰라린 재건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었던 그레이 시티는 이번에는 태양룡 일족에 의해 두 번째 멸망을 맞이한다.

    레벨 높은 엘리트 경비병들이 필사적으로 항전했지만 결국 무너진 성벽과 밀려들어오는 용군단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플레이어 측 최후의 보루, 2차 대격변 때에도 끝끝내 파괴되지 않았던 북대륙의 가혹한 설산 역시도 악마들의 총공세를 이겨 낼 수는 없었다.

    36개나 되는 얼굴을 가진, 귀족 특유의 연미복을 빼 입은 신사는 수없이 많은 악마병들을 이끌고 가혹한 설산을 이루는 72개 얼음산을 피로 붉게 물들였다.

    황금 비늘 일족을 견인하던 두 쌍두마차가 사라진 지금, 오만의 군단 양익을 지휘하는 두 악마들만이 최전선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그리고.

    “오오! 온다! 그놈들이 온다!”

    “20년 전 그때의 모습과 똑같아!”

    “오너라! 네놈들을 다시 만나기만을 기다렸다!”

    “하하하! 지금의 내 레벨이 몇인 줄이나 아느냐! 그때처럼 쉽게 죽지는 않아!”

    “그날의 빚을 갚아 주려고 20년 동안을 벼르고 있었지!”

    유저들은 하늘 끝까지 치솟아 오르는 불길과 포연 너머로 그리운 존재들을 마주했다.

    그때의 그 힘!

    그 전율!

    그리고 그 압도적인 위압감!

    …콰콰콰쾅!

    하이랭커들이 구축해 놓은 마지노선을 두부 으깨듯 짓밟고 들어오는 존재들이 있었다.

    최강의 고정 S+급 몬스터.

    각각 용중용(龍中龍), 악중악(惡中惡)으로 통하는 존재들.

    ‘태양룡 바이어스’와 ‘오만의 악마성좌 루시퍼’가 20년의 세월을 건너, 하나도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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