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90화 (990/1,000)
  • 외전 116화 멸망 재림(滅亡 再臨) (2)

    -<루시퍼의 ‘샛별 마차’> / 탈것 / S+

    ‘오만의 악마성좌 루시퍼’가 직접 제작한 대륙간탄도전차(大戮艮彈道戰車).

    황금 비늘 일족의 수장 ‘태양룡 바이어스’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특성 ‘대폭발’ 사용 가능 (특수)

    네 마리의 거대한 불개가 바싹 마른하늘을 달린다.

    그것들은 불길로 이루어진 전신의 털을 휘날리며 쉼 없이 전차를 끌었다.

    샛별 마차. 아니, 전차(戰車).

    그것은 태양만큼이나 밝고 뜨거운 궤적을 그리며 동쪽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파에톤이 없어진 지금 불개들은 엄청난 속도로 폭주한다.

    이우주는 눈 깜짝할 사이에 홱홱 지나가는 주변의 풍경들을 돌아보며 혀를 내둘렀다.

    지평선 저 너머로 좁쌀만 하게 보이던 것이 눈 한 번 깜짝할 사이에 뒤로 지나가 반대쪽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 간다.

    “……루시퍼가 만들었다고 했나? 엄청난 것을 만들어 냈군.”

    이우주는 전차를 내려다보며 새삼스럽게 감탄했다.

    이 정도의 힘과 속도로 달리고 있는 것을 보면 이 궤적의 끝에서 전차가 만들어 낼 위력이 얼마나 대단할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이런 것이 태양룡 바이어스의 몸에 꽂힌다면…… 제아무리 고정 S+급 몬스터라고 해도…….”

    이 전차를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재료들과 노동력이 소모되었을까.

    그것은 태양을 향한 루시퍼의 애증이 그만큼 깊다는 뜻도 된다.

    문득 델라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쳐 지나간다.

    [루시퍼는 한때 천사들 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존재였대. 제일 아름답고 제일 위대하며 제일 고귀했어. 신에게 사랑받는 것들 중 단연코 으뜸이었지.]

    하지만 지금은 그저 태양을 갈구하는 힘과 명예, 권력의 화신일 뿐이다.

    그래서 태양룡을 죽이기 위해 이런 괴물 같은 핵병기를 만들어 냈지 않은가.

    “바이어스의 몸을 휘감고 있는 빛과 열을 뚫어 버릴 수 있겠어. 이거라면 가능하다.”

    이우주는 전차의 앞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쯤 아마 대륙 본토는 난리가 났을 것이다.

    거인국을 불바다로 만든 것도 모자라 바다까지 홍해의 기적처럼 둘로 갈라 버린 지금, 샛별 마차는 저 수평선 너머의 대륙을 향해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동안 죽은 수많은 용 계열, 악마 계열 몬스터들의 부재는 이미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알려졌을 것이다.

    [루시퍼 님은 전장에서 노획하신 망령을 장작으로 태워 이 전차를 달리게 만드셨지. 이 전차가 출전했다는 것은 용과 악마의 동맹이 깨지고 전면전이 벌어졌다는 뜻이 된다. 그러니 절대 거인국의 상공 바깥으로 나가면 안 돼.]

    파이몬의 신신당부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우주는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마차가 거인국의 상공을 벗어났다는 것은 곧 용마동맹의 파기, 거대한 전란의 신호탄이 되겠지. 그리고 우리는 그 최전선에서 모든 변화의 시작점이자 끝점이 될 거야.”

    그 말에 옆에 있던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끝내주는데! 전 세계가 우리에 의해 변한다는 거잖아! 이기든 지든 간에 말이야!”

    “지면. 대부분. 분노할 것 같다.”

    “……전 세계인들의 영웅이 될 수도, 공적이 될 수도 있겠군. 이대로 간다면 후자 쪽에 한없이 가까워지겠지만.”

    마지막 죠르디의 말에 이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걸 잃거나, 혹은 모든 걸 갖거나.

    살아가다 보면 세상은 종종 그런 양자택일의 선택지를 던져 준다.

    “그럴 때는 전력을 다해서 골라야지. 좋은 쪽을!”

    이우주는 힘차게 손을 뻗었다.

    전차를 모는 네 마리의 불개와 연결되어 있는 고삐를 향해서.

    ……바로 그 순간.

    -띠링!

    이우주의 눈앞으로 여러 개의 스크린 창이 떴다.

    복잡한 도표와 그래프, 각종 수치들이 빼곡하게 나열되어 있는 상태창.

    그것을 본 네 사람의 표정이 순간 멍하게 변했다.

    “뭐, 뭐야 이 계기판들은?”

    “무슨 콕핏(Cockpit) 같은데?”

    “맞다. 레이싱 카. 운전석. 느낌.”

    “레이싱 카라기 보다는 경비행기 느낌인데…….”

    제일 앞자리에 있던 이우주가 이를 악문 채 고삐와 연결되어 있는 레버를 잡았다.

    끼긱-

    레버를 앞으로 당기자.

    쿠-구구구구구구!

    샛별 마차의 고도가 갑자기 아래로 확 내리 꺾였다.

    펄펄펄펄펄펄펄펄……

    전차가 해수면에 가까워지자 바닷물이 엄청난 속도로 증발하기 시작했다.

    마치 화산이라도 폭발한 것처럼 막대한 양의 수증기가 치솟아 오른다.

    “으악! 뜨거워! 바다가 열탕이 됐어!”

    “Water! 다 튀긴다! 수증기! 뜨겁다! I will be 보쌈수육!”

    “으윽! 전차의 궤도를 빨리 위로……!”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의 비명을 들은 이우주는 레버를 다시 앞으로 밀었다.

    그러자.

    부아아아아아아아앙!

    불개들은 거의 수직 궤도로 치솟아 오르며 전차를 하늘 끝까지 끌고 가기 시작했다.

    “커헉! 기, 기압이 너무 급격하게! 고막이 터지겠어!”

    “수, 숨! 숨이 막힘! 공기가 희박!”

    “고산병이 온다! 으윽! 주, 죽겠어 이러다!”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의 HP가 엄청난 속도로 깎여 나간다.

    “으윽! 이거 컨트롤이 엄청나게 어려워! 보통 힘으로는 당길 수 없는 레버야!”

    이우주는 다시 레버를 조정했다.

    끼리릭-

    하지만 미쳐 날뛰고 있는 전차는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파에톤에게 조종법을 제대로 배워 놨어야 했어! 설마 조종법이 따로 있을 줄이야!”

    “하지만 파에톤. 이미 없다. 탈영병!”

    “으윽! 이 계기판들은 대체 뭐야! 마차, 아니 견차 주제에 뭐 이렇게 복잡해!”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점차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전차로 태양룡을 들이받기는커녕 대륙 본토에 도착할 수조차 없다.

    그 전에 바다나 하늘의 별자리 어딘가로 처박혀 개죽음만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동생아! 뭐 방법 없냐!?”

    이산하가 강풍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누르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이우주가 계기판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렇군. 계기판의 구조가 상당히 낯익어. 이것들을 어디서 봤나 했네.”

    이우주의 말에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의 귀가 쫑긋 섰다.

    “뭐, 뭐야? 아는 계기판이야?”

    “우주! 아이디어 있어 보인다! 구세주!”

    “뭔데? 이런 거 전에 몰아본 적 있어?”

    세 여자의 말에 이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기판의 모양과 배치를 보아하니 아마도 오래 전의 고전게임 ‘X-Plane’, ‘Microsoft Flight Simulator’, ‘IL-2 Sturmovik’, 그리고 마지막으로 ‘워썬더’에서 어느 정도 오마쥬해 온 것 같군.”

    “뭐, 뭐야 그 들어 본 적도 없는 게임들은?”

    “약 20, 아니 30여 년 전에 유행했던 게임들이야. 비행 시뮬레이션이라고 해야 하나? 덕후들 사이에서는 기본 중의 기본, 거의 교과서로 통하지.”

    “오오! 플레이 해 본 적 있어?”

    “있지. 조금 정도는. ……하지만 시간이 모자랐어.”

    이산하의 질문에 이우주는 입술을 깨물며 대답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공부하면서 준비했던 게 바로 이 게임들이었어.”

    “마지막으로?”

    “맨 처음에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10년 공부한다고 했었잖아. 그런데 누나가 보채서 7년밖에 하지 못했고. 그 7년의 준비 기간 중에 마지막으로 공부했던 게 바로 이 게임들이었어.”

    “헉!?”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이우주는 눈을 질끈 감았다.

    “10년을 채웠더라면 이 전차를 능숙하게 조종할 수 있었을 텐데. 하필…….”

    하지만 이미 어쩔 수 없게 된 상황이다.

    이우주는 기본적인 조작을 하면서 새로운 스크린 창을 켰다.

    “누나! 개인 방송 켜!”

    “……어?”

    “혼자서 조종하는 것은 무리야! 시청자들 중에 이 전차의 조작법을 아는 고인물이 한 명쯤은 있을 거야!”

    “아아, 그렇군!”

    이산하는 재빨리 개인방송에 접속했다.

    솔레이크와 죠르디 역시도 인터넷 검색엔진을 켜서 조작법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으아아! 뭐라고! 뭐라고 질문해야 하지!?”

    이산하가 묻자 이우주가 식은땀을 흘리며 질문 사항을 작성해 준다.

    “rkpc! rkpc에서 rkpk구간으로 737~800을 계속 왕복 중이야! 이때 하강 구간에서 app를 언제 누르는지! ILS랜딩 기준으로! 굳이 안 눌러도 상관없는지도 물어봐!”

    “으으…… 어려워…… 무슨 용어인지 못 알아듣겠어…… 그러니까 알케이피씨…….”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인터넷에 질문 글을 올렸다.

    <비행시뮬레이션 게임 관련 질문글입니다!>

    -rkpc에서 rkpk구간으로 737~800을 계속 왕복 중인데 하강 구간에서 app를 언제 누르는지 알려주실 분? 아, ILS랜딩 기준입니다. 굳이 안 눌러도 상관없나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답변 댓글을 달리지 않았다.

    그러자 이우주가 다급하게 외쳤다.

    “질문하는 방식을 바꾸자!”

    “뭐? 어떻게?”

    “이렇게!”

    이우주는 한 손으로 레버를 조종하면서도 반대쪽 손을 뻗어 질문 글을 수정했다.

    <비행시뮬레이션 게임 고인물인데 요즘 뉴비들 보면 한숨만 나온다...>

    -rkpc에서 rkpk구간으로 737~800을 계속 왕복 중인데 늬들은 대체 하강 구간에서 app를 왜 누르는 거냐???? 안 눌러도 아무 상관없는데???? 알못들 진짜....ㅋㅋㅋㅋ 참고로 ILS랜딩 기준으로 말하는 거임ㅇㅇ

    그러자.

    -띠링!

    바로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뭔 소리야ㅋㅋㅋㅋ 그걸 왜 안 눌러ㅋㅋㅋㅋㅋ

    ⤷그거 몇 마일인가? 안쪽에서 각도 맞춰서 눌러줘야 함;;;

    ⤷알못은 너 같은데?

    ⤷알못이 뭐임?

    ⤷알지도 못하는 놈

    ⤷좆문가 납셨네ㅋㅋㅋㅋ그거 안누르면 망한다ㅗㅗㅗ

    ⤷제목보고 들어왔는데 니 주제에 고인물은 무슨...글 수준 꼬라지 보니까 아직 청정수네

    ⤷엄마젖이나더먹고와임마~

    .

    .

    “역시, 고운 말로 물어보면 절대 대답 안 해 주는 K-네티즌들!”

    비로소 답을 얻은 이우주는 조심스럽게 레버를 조작해 나가기 시작했다.

    “오오! 아까보다는 고도가 안정되기 시작했어!”

    “우주! 역시 나의 전차 탄 왕자님!”

    “대단해, 정말로 이 전차를 컨트롤하고 있어!”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이우주를 향해 환호했다.

    하지만 이우주는 여전히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돼. 이 조작은 임시방편이야. 정확하게 몰고 가려면 좀 더 확실한 정보가 필요한데…… 하지만 이렇게 오래된 고전 게임들에서 오마쥬 된 최고난이도 공략을 아는 고인물이 있을 리가…….”

    그러나 검색창의 정보들이나 시청자들이 하는 훈수 정도로는 샛별 마차를 모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틀렸어. 이건 혼자서 못 해.’

    이우주는 처음으로 무력감이라는 것을 느꼈다.

    아무도 없는, 완전한 초행길을 홀로 돌파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막중한 부담감.

    그것은 최전선을 걸어가는 개척자에게는 필수적으로 동반될 수밖에 없는 감정이었다.

    이우주는 자신의 운명을 가름할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서 고뇌하고 번민했다.

    ‘누구라도 좋으니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기댈 만한 기둥, 비빌 수 있는 언덕, 붙잡아 줄 손을 간절히 바라면서.

    ……그리고 바로 그때.

    -띠링!

    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울려 퍼지고 있는 알림음들 사이에 유독 이우주의 귀를 뜨이게 만드는 알림음이 하나 있었다.

    자주 방문하던 딥웹에 올린 질문.

    그리고 그 게시글에 달린 최신 댓글 하나.

    -무명의 겜덕후 3021(124.91): 20마일 안쪽. 90도 이내. 지금 눌러!

    어딘가 낯익은 닉네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