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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989화 (989/1,000)
  • 외전 115화 멸망 재림(滅亡 再臨) (1)

    까마득한 창공.

    그리고 하늘에 닿을 듯 솟구친 산봉우리.

    그곳에서는 하늘의 패자를 가리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우-오오오오오오!]

    거대한 몸집을 지닌 지저룡(地低龍)이 울부짖는다.

    해골만 남은 얼굴, 강력한 두 팔과 꼬리, 앙상한 뼈대만 남아 제 기능을 상실한 날개.

    <바실리스크> -등급: A+ / 특성: 맹독, 땅, 어둠, 지진, 패륜아, 폐소공포증, 혈족전생

    -서식지: 패륜아의 둥지 8층, 죽음길 나락 ‘생사경(生死境)’, 거인국

    -크기: 44m

    -검은 용이 낳은 사생아. ‘모든 기어 다니는 것들의 왕’으로 통한다.

    용에 버금가는 덩치와 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날개가 없어 용이 되지 못했는데 그 때문에 언제나 속이 썩어 문드러져 있는 상태이다.

    지상에 서식하는 아룡들의 왕 바실리스크가 하늘 위의 구름을 몰아내 버릴 정도로 크게 포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바실리스크의 것과도 맞먹는 포효 소리가 들려온다.

    [캬-오오오오오오!]

    중장갑과도 같은 두꺼운 비늘, 강력하고 질긴 날개,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화산재 와이번> -등급: A+ / 특성: 어둠, 비행, 1:1, 뺑소니, 살금살금, 백전노장, 잔불, 매운바람, 화산쇄설류

    -서식지: 화산쇄설류 길, 제 1 용옥, 거인국

    -크기: 12m

    -드래곤은 레어를 짓고 주변을 미궁처럼 만들어 놓았다.

    드래곤의 보물을 탐내어 근처에 접근하는 자들은 하늘을 선회하는 이 습격자들의 방문을 피할 수 없다.

    용족의 일원으로 치기에는 덩치와 힘이 다소 부족하지만 그것을 만회할 정도로 훌륭한 날개와 비행 실력을 가지고 있어 용 군단 내에서는 인정받는 편.

    그리고 그 이유 때문에 같은 용 군단 내의 ‘바실리스크’와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고 한다.

    회색 산맥의 패왕룡(霸王龍)이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바실리스크 대 화산재 와이번.

    같은 용 군단 내에서도 사이가 최악이기로 소문난 둘이 결국에는 대차게 한판 붙었다.

    콰콰콰쾅!

    바실리스크의 맹독 브레스가 하늘 끝까지 닿을 정도로 긴 녹색의 기둥을 만든다.

    하지만 화산재 와이번은 날개를 틀어 독 기둥을 피했다.

    그리고 매캐한 잿가루가 섞인 돌풍을 만들어 바실리스크를 휩쓸어 버렸다.

    퍼퍼퍼퍼퍼펑!

    그러나 바실리스크의 크고 강력한 육체는 돌풍에도 불구하고 끄떡도 하지 않았다.

    쉬이이익-

    바실리스크가 호흡을 내뱉을 때마다 산 정상을 뒤덮는 독안개가 대기중으로 번져 나간다.

    제아무리 창공의 패자인 화산재 와이번이라고 해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맹독이었다.

    퍼펑! 쾅! 콰르르르릉!

    날개와 주먹, 꼬리와 발톱이 맞붙을 때마다 지축이 뒤흔들리며 폭풍이 일어난다.

    하늘과 땅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오오오오오오!]

    [캬-아아아아아악!]

    두 마리의 아룡이 서로 주고받고 있는 용언(龍言)을 해석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이번 기회에 누가 최강의 아룡인지를 가려보자!]

    [가릴 게 뭐 있겠냐! 당연히 이 몸이지!]

    [닥쳐라! 날개 빼고는 볼 것도 없는 주제에!]

    [용이 날개만 멋지면 된 거 아니냐? 너는 날개도 없잖아!]

    [쬐깐한 놈이 자꾸만 성질을 건드리는구나! 이리 내려와라! 찢어 죽여 주마!]

    [네가 날아서 여기로 올라와라, 이 악취 나는 놈아! 게임 스토리 초반부에 알몸 변태한테 농락당한 주제에! 그것도 자기 던전에서 낙사라니!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그것은 나와는 다른 개체다!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다 늙은 할매에게 목이 잘린 네 쪽이 더 굴욕 아니냐?]

    [닥쳐라! 그 할매는 여전히 산맥의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다고! 엄청 정정해! 아직도 그 강아지를 키운단 말이다!]

    [너나 닥쳐라! 그때 나를 던전에서 떨어트려 죽였던 놈은 지금 이 세계의 전설이야!]

    두 몬스터는 한동안 자기들만 아는 내용을 가지고 옥신각신 다투었다.

    [이 자리에서 결판을 내자! 이긴 쪽이 S급으로 올라가는 거다!]

    [마음대로! 엇……!?]

    그때, 두 마리의 아룡은 서로를 노려보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쿠르르르르르르륵!

    저쪽 하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바실리스크도, 화산재 와이번도 모두 고개를 갸웃한다.

    [뭐야? 파이몬 놈이 모는 샛별 마차잖아? 저게 왜 이리로 다가오지? 평소의 궤도와 다른데?]

    [흥. 알 게 뭐냐. 어차피 저놈은 거인국의 상공 밖으로는 나오지도 못 해. 넘어오는 순간 용마동맹이 깨질 테니까.]

    [하긴. 그렇겠군. 그럼 신경 쓰지 말고 계속……]

    그러나.

    콰-르르르르르르르륵!

    두 아룡왕은 결국 승자를 결정하지 못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질주해 온 샛별마차가 순식간에 그들을 잿가루로 태워 버렸기 때문이다.

    파스스스스스……

    두 아룡이 시커먼 가루가 되어 바람에 실려 감과 동시에.

    -띠링!

    <‘바실리스크’가 불에 타 사망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띠링!

    <‘화산재 와이번’이 불에 타 사망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두 개의 알림음만이 쓸쓸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계속해서 빗발치는 알림음들 사이로.

    “끼얏호우! 이거 기분 끝내 준다! 엄청 빨라! 눈나 달려!”

    “위험하니까 마차 밖으로 손 내밀지 마.”

    이산하와 이우주가 샛별 마차를 몰고 있었다.

    쿠르르르르르륵!

    마차가 그리는 불의 궤적은 파이몬 성의 영토를 벗어나 거인국의 상공 바깥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이제 용족의 영토였다.

    그리고 샛별 마차는 악마족의 영토인 거인국에서 일으킨 참변을 그대로 용족의 영토에서 재현하고 있었다.

    -띠링!

    <‘아룡 A’가 불에 타 사망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아룡 B’가 불에 타 사망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아룡 C’가 불에 타 사망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아룡 D’가 불에 타 사망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아룡 E’가 불에 타 사망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아룡 F’가 불에 타 사망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

    .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조금 척박할 뿐 대체로 평화롭던 거인국 외곽지대가 발칵 뒤집혔다.

    이곳에 서식하던 모든 용 계열 몬스터들이 당황하고 있었다.

    [새, 샛별 마차다!]

    [루시퍼의 마차가 영토를 침공했다!]

    [일반적인 마차와 달라! 뭐야 저거!? 엄청 커!]

    [악마 놈들이 동맹을 파기했다!]

    [전쟁! 전쟁이다!]

    [당장 아르파닉 님께 보고를 올려!]

    [그분은 돌아가셨잖아!]

    [그럼 오메가닉 님을 불러와!]

    [그분도 돌아가셨어!]

    [제기랄! 그럼 바이어스 님께 바로 직통으로 보고를……!]

    용들 사이에서 바야흐로 엄청난 혼란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       *       *

    데우스 엑스 마키나2를 운영하고 있는 초국적기업 뎀(DEM) 유니버스.

    국적불명의 개발자이자 회장인 ‘윌리엄 링크 윌슨’의 창사 이래 수십여 년간 매년 폭발적인 성장률을 기록하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이 되었다.

    지금은 세계 전역에 60개 지부, 130여 개의 국가에서 40만 명 이상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시가총액은 약 5조 달러.

    전 세계 가상현실게임 시장의 98%를 장악하고 있으며 5억 명이 넘는 동시접속자 수를 가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현재 미국에 있는 뎀 본사의 개발팀에서는 한창 긴급회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김한선. 한국 기업 ‘레드문’ 출신의 임원.

    여러 번의 이직을 거쳐 작년에 본사 개발팀의 총책임자가 된 김한선 이사는 지금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다.

    그 옆에는 올해 경력직 신분으로 이직해 온 남세나 부장이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김한선 이사는 한동안 모니터를 바라보던 끝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 서기까지 수도 없이 많은 수라장을 거쳐 왔지만 이런 기분을 느껴보는 것은 정말로 오랜만이다.

    “……일 났군.”

    “그러게요.”

    김한선 이사의 탄식에 남세나 부장 역시도 한숨을 내쉬었다.

    둘은 심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역시나 ‘그 사람’의 아들과 딸인가. 데뷔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이런 대형사고를…….”

    “과연, 핏줄이 어디 가진 않는군요.”

    “맞아. ‘그분’께서도 늘 가는 곳마다 이슈고 파란이셨지. 최소 공연음란죄였고 크게 보면 중견기업 하나가 하루아침에 망할 뻔한 적도 있었으니까.”

    “저도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몰라요. 20대, 처리반 시절부터 이어져 온 질긴 악연이네요.”

    “이직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이런 상황이 터질 줄이야. 진짜 제발 좀 봐 달라고…… 후우.”

    “그래서. 어떻게 하죠,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지. 뎀2의 운영은 메인스트림 AI가 전적으로 알아서 하니까. 우리는 그저 운영을 약간 보조하는 정도지, 개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

    “그럼 그 약간의 보조를 어떤 식으로 해야 할까요? 이런 경우에는? 저는 이제 처리반도 아니고.”

    “글쎄. 나도 잘 모르겠군. 그저 이 사실을 다른 유저들에게 공지하는 것 정도인가…….”

    김한선과 남세나의 시선이 모니터를 향한다.

    그곳에는 커다란 문구 하나가 떠 있었다.

    ■족 □

    (Ge●◎r◆□to■n K○l■)

    인    ■          *∬≒%$^궭

    리■드맨   ʘ§■%걁℃!

    □    크          £듉$%Å#¥

    엉망이 된 종족 킬 수치.

    그리고.

    < 3차 대격변이 곧 시작됩니다 >

    멸망의 재림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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