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88화 (988/1,000)
  • 외전 114화 승차감보다는 하차감 (2)

    옛날 옛적에 파에톤(Phaethon), ‘빛나는 자’라는 뜻을 가진 이름의 아이가 있었다.

    파에톤의 친구들은 항상 아버지 없는 파에톤을 놀렸다.

    ‘아버지도 없는 주제에 이름이 왜 그렇게 대단하냐. 네 아버지가 태양신 헬리오스라도 되는 것이냐.’

    이름에 담긴 뜻을 가지고 조롱하는 것이었다.

    이에 서러움을 느낀 파에톤은 어머니에게 가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물어보았고 결국 어머니는 파에톤의 친아버지가 태양신 헬리오스가 맞음을 밝혔다.

    파에톤은 이 사실을 아는 즉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한 먼 여행을 떠났다.

    천신만고 끝에 파에톤은 아버지인 헬리오스를 만나는 것에 성공한다.

    헬리오스는 그동안 파에톤을 살펴 주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과 안쓰러움에 ‘스틱스 강에 맹세컨대 무슨 소원이든지 들어 주겠다’라는 실언을 하게 된다.

    이에 파에톤은 아버지가 모는 ‘태양 마차’를 몰게 해 달라는 발칙한 소원을 빌었고 헬리오스는 몇 번이나 다른 소원을 권유하였으나 결국 어쩔 수 없이 마차를 파에톤에게 내주었다.

    태양 마차를 몰게 된 파에톤은 처음에는 마차를 잘 몰았다.

    그러나 하늘을 달리던 중, 파에톤은 지상에 있는 동네 친구들을 발견했다.

    ‘아버지도 없는 주제에 이름이 왜 그렇게 대단하냐. 네 아버지가 태양신 헬리오스라도 되는 것이냐.’

    자신을 놀리며 무시하던 친구들을 떠올린 파에톤은 현재 자신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자랑하기 위해 마차를 지상으로 몰았다.

    ……그리고 참변이 일어났다.

    태양 마차가 지상에 가까워지자 땅은 불타고 물은 말라 버렸으며 친구들은 까맣게 타 버렸다.

    당황한 파에톤은 마차를 지나치게 위로 몰았고 이변에는 하늘의 별자리들이 고통에 날뛰기 시작했다.

    결국 이를 보다 못한 제우스가 벼락을 날려 태양 마차를 부숴 버렸고 파에톤은 산산조각이 나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스 로마 신화 中-

    *       *       *

    [똑똑히 봐라! 내가 얼마나 성공했는지! 하하하하하-]

    파에톤은 껄껄 웃으며 마차를 지상으로 몰았다.

    그리고 이내.

    …쿠르륵!

    예정된 참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지면 위로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하늘을 향해 환호하던 악마들은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어? 근데 뭔가 좀 너무 가까워지는 것 같지 않아?]

    [……갑자기 왜 이렇게 더워?]

    [왠지 땀이 너무 많이 나는데? 현기증도 나고.]

    [이상하다? 사우나에서 2천 도까지는 버티는데, 왜 이렇게 뜨겁지?]

    환호하던 친구들은 하나둘씩 땀을 흘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끄아아아아악! 뜨거워!]

    [헉!? 샛별이다! 샛별이 떨어진다!]

    [이, 이러다가 다 타죽겠어!]

    [빌어먹을! 나는 화재보험도 안 들어 놨다고!]

    [으악! 내 신혼집! 아직 할부도 666년이나 남았는데!]

    [파에톤! 이 미친놈아! 당장 꺼져!]

    불타오르는 지상 위로 수없이 많은 아우성들이 터져 나왔다.

    불지옥 속에서 사는 악마조차도 뜨거워서 펄펄 뛸 정도로 샛별마차는 어마어마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애초에 태양룡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핵병기이니만큼 당연한 화력이었다.

    쿠르르르르륵!

    강은 사막이 되었다.

    숲은 재의 벌판이 되었다.

    땅은 부글부글 끓는 용암뻘이 되어 모든 것을 삼켜 버린다.

    [헉!?]

    파에톤은 깜짝 놀라 황급히 마차를 위로 몰았지만 이미 늦었다.

    샛별마차의 화력은 단순히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지상 전부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띠링!

    <‘악마 A’가 불에 타 사망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악마 B’가 불에 타 사망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악마 C’가 불에 타 사망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악마 D’가 불에 타 사망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악마 E’가 불에 타 사망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악마 F’가 불에 타 사망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

    .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마차에 가만히 앉은 채로 엄청난 양의 경험치들을 획득하고 있었다.

    “이야~ 파에톤 씨 엄청나게 킬수 올리시네.”

    “우리는 마차에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인지라 기여도가 낮구만.”

    “그래도. 경험치. 로맨틱. 성공적. 폭발적.”

    “물량 때문인가? 경험치가 엄청난 속도로 오르네. 이러다가 곧 레벨 업 하겠는데?”

    네 사람은 요동치고 있는 상태창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한편.

    [으아아아아! 내, 내가 무슨 짓을! 이건 말도 안 돼! 어, 어서 올라가야……!]

    파에톤은 극도의 패닉 상태에 빠져 이성적 판단을 내릴 정신력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재빨리 고삐를 쥔 파에톤은 네 마리의 불개들을 조종해 위로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너무 높았다.

    샛별 마차는 지상에서 거의 수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눈 깜짝할 사이에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가고 말았다.

    쿠르르르르르르륵!

    당연하게도 지상에서와 똑같은 대참사가 하늘에서도 일어났다.

    [짹짹!?]

    [끼루루루룩!]

    [캬아아아아아악!]

    [까악! 까아아아아악!]

    지상과 마찬가지로 하늘에도 수많은 주민들이 살아간다.

    허공을 날아다니는 각종 새, 벌레, 영혼 타입의 몬스터들.

    그리고 구름 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타입의 몬스터들.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몬스터들이 난데없이 끓어오르는 대기에 타 죽는다.

    구름은 순식간에 증발해 사라졌고 대기는 열풍의 영향으로 인해 불안정하게 뒤틀렸다.

    날개 가진 모든 것들이 불타거나 난기류에 휘말려 즉사, 혹은 지면으로 추락해 낙사하고 말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띠링!

    <‘악마 대머리독수리’가 불에 타 사망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악마 장수잠자리’가 불에 타 사망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악마 공허날치’가 불에 타 사망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악마 구름아귀’가 불에 타 사망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악마 까마귀 군주’가 불에 타 사망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악마 조류인간’이 불에 타 사망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악마 케찰코아틀’이 불에 타 사망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

    .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계속해서 폭발적인 경험치를 얻고 있었다.

    <이우주>

    LV: 75

    호칭: 초보 모험가

    <이산하>

    LV: 78

    <솔레이크>

    LV: 78

    <죠르디>

    LV: 79

    결국 네 사람 모두는 레벨업을 했다.

    비록 일반몹이기는 하나 어마어마한 수를 간접 사냥한 결과였다.

    “이야~ 70레벨 구간대 뭐 별거 없네~ 마의 구간대니 뭐니 하더니만~”

    “오히려 이 구간대에서 레벨업을 제일 빨리 하는 것 같은데.”

    “마차. 속도. 빠르다. 내 레벨 업 속도. 더 빠르다.”

    “……그만큼 지금 이 상황이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은 안 하니?”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가 뜻하지 않은 이 폭렙에 슬슬 적응해 가고 있을 무렵.

    [흑흑흑- 끝이다. 나는 끝이야……]

    파에톤이 울음을 터트렸다.

    [이제 나는 끝났어. 이런 역대급 사고를 쳐 버렸으니. 성으로 돌아가자마자 파이몬 대왕님께 잔인하게 살해당할 거야. 어쩌면 죽지도 못할지 몰라. 영원토록 죽음에 필적하는 고통을 받게 될지도…… 으흑흑흑!]

    심신미약.

    극도의 공포와 혼란으로 인해 파에톤은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울면서 덜덜 떠는 것이 한눈에 보기에도 정상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태 같았다.

    그리고 바로 그 틈을 노려.

    “아뇨. 파에톤 씨.”

    이우주가 파에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직 방법이 있습니다. 살아날.”

    [뭐, 뭐라고? 그게 정말이야!?]

    파에톤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지상과 창공을 불바다로 만드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러 놓고도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뭔데! 뭘 하면 내가 목숨을 건질 수 있지? 어떻게 해야……! 술이라도 마셨다고 해야 하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파에톤에게, 이우주는 단호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떠나세요.”

    [……뭐?]

    “떠나세요. 그리고 돌아오지 마세요.”

    이우주는 파에톤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당신은 우리들에게 샛별 마차를 빼앗긴 겁니다. 힘으로 밀려서 어쩔 수 없이요.”

    [……!]

    그것은 악마의 속삭임보다도 훨씬 더 음흉하고 사악한 꼬임이었다.

    파에톤의 뒤로 고개를 내민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 역시도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차라리 튀어. 탈영해. 가족 있어? 아, 없다고? 그러면 어디 한적한 곳에서 숨어 살아.”

    “곧. 우리가. 루시퍼. 잡는다. 얼마 안 남음.”

    “만약 잡혀서 추궁당하면 우리한테 마차를 빼앗긴 뒤 어디 먼 곳에 갇혀 있었다고 해. 여차하면 우리가 증언해 줄게. 너는 최후까지 항전했었다고.”

    파에톤의 동공이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하, 하지만 이것은 악마족의 최종병기인데…… 이게 거인국의 상공을 넘어가면 바로 용족과의 전쟁이 시작되는 건데……]

    “지금 그딴 게 문제인가요? 어차피 벌어진 사고라면 스케일을 엄청나게 키워서 수습이 안 되게끔 만드는 게 나아요. 파에톤 씨 하나가 문책받고 끝날 수준이 아니게요. 용족과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그깟 탈영병 한 명이 문제겠어요?”

    이우주는 계속해서 파에톤을 설득했다.

    그리고 그 결과.

    [……알겠어. 그러면 혹시 만약 일이 잘못됐을 때 꼭 파이몬 대왕님께 말해 줘. 나는 너희들에게 죽었다고. 그러니까 찾지 말라고.]

    파에톤이 울먹임과 동시에.

    -띠링!

    <‘루시퍼의 샛별 마차’의 통제권이 ‘중급악마 파에톤’ 님에게서 ‘이우주, 눈누난나내가니누나네, 0개국어능력자, (계정정보없음)’ 님에게로 이동합니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를 미소 짓게끔 하는 알림음이 울려 퍼졌다.

    제일 먼저 이산하가 두 주먹을 높이 들어 올리며 외쳤다.

    “겟츄!”

    가장 위험한 무기의 통제권을 가장 위험한 사람이 갖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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