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87화 (987/1,000)
  • 외전 113화 승차감보다는 하차감 (1)

    샛별 마차가 출발했다.

    네 마리의 불개가 모는 거대한 전차가 불의 궤적을 그리며 하늘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

    “…….”

    “…….”

    “…….”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앞쪽의 마부석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중급악마 파에톤>

    아직 젊어 보이는 악마 하나가 개들을 조종하고 있었다.

    “저 자식 봐.”

    이산하가 앞에 있는 악마를 향해 턱을 까닥 움직였다.

    “아주 기합이 빠릿하게 들어가 있어. 임용됐거나 승진한 지 얼마 안 됐나 봐.”

    “……흐음.”

    이우주는 턱을 쓸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얼추 감이 오는군.”

    “뭐? 어떻게?”

    “어떻게긴. 공무원이 가장 약해지는 틈을 노려야지.”

    “가장 약해진 틈? 그게 뭔데?”

    “쉽지.”

    이우주는 이산하의 질문에 씩 미소 지었다.

    “공무원은 두 가지 경우에 가장 취약해지지. 임용되었을 때, 혹은 승진했을 때.”

    이른바 합격 뽕, 혹은 승진 뽕 같은 것이다.

    공무원에 임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승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들은 씀씀이가 후해지거나 관대해지는 경향이 있다.

    “어디 한번 이 빈틈을 찔러 볼까?”

    이우주는 입맛을 다시며 전차의 앞쪽으로 걸어갔다.

    일이 묘하게도 잘 풀릴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       *       *

    ……한편.

    중급악마 파에톤은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회상하고 있었다.

    ‘혹여라도 절대 전차의 통제권은 넘겨주지 마라.’

    파이몬이 신신당부했던 전언이었다.

    ‘적당히 대충 달리다가 얼른 돌아와라. 그리고 가능하면 돌아오기 전에 저것들을 모두 죽여 버려.’

    공탁이 성사된 이상 상대가 죽어도 계약은 집행된다.

    파에톤은 짐짓 무표정을 가장하며 속으로 슬며시 미소 짓고 있었다.

    ‘하늘 높이 올라갔을 때에 불개들을 놀라게 만들고 전차를 흔들리게 해서 떨어트리면 된다. 난기류가 몰아치는 곳으로 가도 좋고 벼락이 자주 떨어지는 곳으로 가도 좋겠지. 핑계 댈 것은 많다.’

    어떻게 해야 잘 죽였다고 소문이 날까?

    ‘한 큐에 몰살시켜 주지.’

    파에톤은 지금 그것을 고민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저기. 바빠?”

    뒤에서 파에톤의 어깨를 쿡쿡 찌르는 손길이 있었다.

    파에톤이 고개를 돌린 곳에는 이산하가 생글생글 웃고 있는 것이 보인다.

    “힘들면 교대해 줄까? 마차(馬車), 아니 견차(犬車) 모는 것 말야.”

    [무, 무슨 소릴! 필요 없다! 전혀 힘들지 않아!]

    파에톤은 정색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반대쪽 옆에서 이우주가 머리를 내밀었다.

    “힘들면 말해요. 언제든 교대해 줄 수 있으니까.”

    [됐다!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도 운전을 한 사람만 계속 하는 것은 너무하잖아요. 조수석 좋다는 게 뭡니까, 피곤할 때 교대도 해 주고 그래야죠.”

    뒤에서 솔레이크와 죠르디 역시도 한마디씩 한다.

    “달리는 차 안에. 우린 아무 말 없네. 너는 그렇게 운전만 해. 난 핸드폰 보네. 넌 창밖을 보네. 난 너무 답답해. 우리 사이는 막막해. Babe~♬”

    “시승의 뜻 보르나? 직접 몰아 봐야 알 것 아니야. 뒷좌석에만 앉아 있으면 모르지. 어서 고삐를 이리 넘기라고.”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번갈아 가며 계속해서 파에톤을 채근한다.

    그러자 견디다 못한 파에톤이 빽 소리를 질렀다.

    [그만들 해! 이 전차는 평범한 전차가 아니야! 훗날 용들을 멸망시킬 악마족의 핵심 병기란 말이다! 태양룡 바이어스의 불비늘을 뚫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무기를 네놈들 어중이떠중이들의 손에 맡길 수 있겠냐!]

    그 말을 들은 이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 파이몬이 했던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이니 아마 진실일 것이다.

    [루시퍼 님은 전장에서 노획하신 망령을 장작으로 태워 이 전차를 달리게 만드셨지. 이 전차가 출전했다는 것은 용과 악마의 동맹이 깨지고 전면전이 벌어졌다는 뜻이 된다. 그러니 절대 거인국의 상공 바깥으로 나가면 안 돼. ……뭐, 너희들은 전차에 타기만 할 뿐. 운전 자체는 숙련된 마부가 알아서 잘 하겠지만 말이야.]

    이우주는 파이몬의 대사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이제 교대해 주겠다는 말 안 할게요.”

    [흥! 정신을 차린 것 같아서 다행이군.]

    “그런데…….”

    이우주는 은근한 목소리로 운을 띄웠다.

    “아까부터 봤는데 운전을 엄청 잘하시는 것 같아요.”

    [……으응?]

    방금 전까지 짜증으로 얼룩져 있던 파에톤의 표정이 조금 풀린다.

    이우주는 한 번 더 칭찬을 했다.

    “코너링이 훌륭하시네요.”

    [어험, 흠. 뭐…… 핸들박스 30년 먹다 보니까, 저절로 이렇게 됐지. 저 별자리 밑으로는 별들 사이사이의 골목까지 훤해.]

    “아유, 이런 게 참 기본적이면서도 어려워요. 한 가지를 오래 하시는 분들 존경합니다.”

    파에톤은 쑥스럽다는 듯 헛기침을 한다.

    원래 운전 잘한다는 칭찬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먹히지 않는가.

    특히나 어느 정도 운전 경력이 있는 남자에게 잘 먹히는 멘트였다.

    [이 전차를 모는 게 쉬워 보여도 사실 보통 기술력으로 되는 게 아니거든. 고도를 조절해야 하고 속도를 억제해야 하고 또 불개들의 컨디션 관리까지 다 해야 하니까……]

    “대단해요. 이런 멋진 전차를 몰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에요.”

    [당연하지! 뭐니뭐니해도 악마족의 최종병기니까. 이것만 있으면 용 놈들은 불바람 앞에 놓인 낙엽이나 다름없지.]

    “진짜 그렇겠어요. 그 최종병기를 운전한다는 건 엄청나게 보람찬 일이겠네요.”

    [그걸 말이라고 하나? 이 전차 위에 올라타 있는 매초 매 순간이 내게 있어서는 가슴 벅차는 영광이지.]

    파에톤은 계속해서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쯤에서 이우주는 떡밥을 흘렸다.

    “파에톤 씨는 정말 대단하네요. 이런 차를 모는 걸 다른 악마들이 부러워하겠어요. 가령 동기 동창이라거나, 친구들이라거나.”

    [뭐? 으음…… 그야 그렇겠지, 아마도?]

    “네? 왠지 확신이 없으시네요?”

    [아니. 그도 그럴 게. 이렇게 하늘 높은 곳에서 전차를 모는데 남들 눈에 뜨일 일도 잘 없고. 애초에 구름 때문에 거의 잘 보이지도 않으니까.]

    “네에? 아니 그러면 파에톤 씨가 이런 멋지고 대단한 차를 몬다는 사실을 다른 악마들은 모른다는 건가요?”

    [아니 아니, 알기는 알겠지. 다만 직접 눈으로 보여 준 적은 없으니까……]

    “에이! 그건 너무 아까워요! 원래 이런 대단한 차는 승차감보다는 하차감이 중요한 건데!”

    이우주의 말에 파에톤이 움찔했다.

    승차감보다 하차감이 중요하다는 말은 고급차 오너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말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차를 탈 때는 승차감이 중요할 것 같지만 사실 차를 주차하고 내릴 때 쏟아지는 시선, 즉 ‘하차감’ 역시도 꽤나 중요한 요인이 된다.

    모는 차의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면 주변에서 부러움, 경외, 시기, 질투, 선망, 동경 등의 시선이 쏟아지기 마련인데 바로 이것을 즐기는 것이다.

    가격 대비 승차감이 굉장히 뒤떨어지는 고급 외제차의 판매량이 나날이 고공행진을 기록하는 현상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엄청난 차를 몰면서 주변 사람들한테 자랑하지 않다니, 그건 너무 아깝지 않나요? 금의야행(錦衣夜行)이라는 말도 있는데. 남들이 봐 줘야 의미가 있죠!”

    [으음…… 그야 그렇지. 하지만 뭐, 딱히 남들 시선을 의식하는 것도 아니고……]

    “에이! 솔직히 어떻게 의식을 안 해요? 좋은 차 타고 다니면 거리에 있는 사람들 다 돌아보고, 이성에게 매력을 어필하기도 쉽고, 어디 갔을 때 직원의 태도도 달라지고, 좋은 점이 얼마나 많은데요! 누군 속물적이라고 욕할지 모르지만 그게 당연한 자연현상인 걸요! 자존감 회복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그것도 그래.]

    “솔직히 남들은 없어서 못 타고 없어서 못 보여 주죠. 하지만 파에톤 씨는 아니잖아요. 수백억? 수천억? 아니, 수 조짜리 차를 몰고 다니면서 남들에게 안 보여 주다니! 이건 진짜 너무 말도 안 된다!”

    [……그, 그럴까 정말?]

    파에톤의 귀가 쫑긋쫑긋 움직인다.

    하지만 파에톤의 표정은 아내 시무룩하게 변했다.

    [하지만 하차감을 즐기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해. 이 전차는 한번 달리면 왕성으로 돌아가야만 멈출 수 있으니까.]

    “그렇겠네요. 하차를 할 수가 없으니 하차감을 느낄 수가 없겠군요.”

    무언가를 고민하는 척 하던 이우주는 이내 불현듯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양 손뼉을 쳤다.

    “꼭 전차를 세우고 하차를 하지 않아도 모두의 시선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뭐? 그런 방법이 있어? 뭔데?]

    “전차를 아주 낮게 모는 거예요. 지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상공에서, 천천히. 그러면 지상에 있는 악마들이 파에톤 씨의 멋진 모습을 충분히 볼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러자 옆에 있던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가 맞장구를 쳤다.

    “맞아! 솔직히 차 세우고 내리는 것보다는 천천히 몰고 가면서 운전하는 모습 보여 주는 게 더 간지 나!”

    “개비싼 오픈카. 선글라스 끼고. 씨티팝이나 힙합 빵빵하게 틀고. 옆에는 잘생기고 예쁜 애인 앉히고. 그것이 플렉스. 영앤리치 스웩~”

    “우와. 너무 노골적이라서 오히려 감성 있네. 버블경제 시절의 레트로야? 아니면 힙합으로 벼락스타가 된 미국 래퍼 느낌?”

    세 여자의 맞장구에 파에톤의 귀가 점점 더 요란하게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 기세를 몰아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계속해서 외쳤다.

    “고급차 모는 남자 완전 멋져!”

    “반해 버리겠어!”

    “그런가? 나는 잘 모르…… 허윽! 맞다! 너무 멋지지!”

    다소 눈치가 없던 죠르디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콕 찌르는 이우주였다.

    결국.

    [조, 좋았어! 그럼 전차의 운행고도를 조금 아래로 낮춰 볼까?]

    파에톤이 경로를 수정했다.

    쿠르르르르르르륵-

    하늘을 가로지르던 불의 궤적이 갑자기 밑으로 수직낙하하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몰아치는 바람,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난기류에 머리카락이 요란하게 흩날린다.

    이우주는 안구의 표면을 때리는 바람을 맞으며 파에톤에게 물었다.

    “파에톤 씨는 어느 마을 출신이시죠!?”

    [저쪽! 저기 ‘으깨짐대왕 슬개골 마을’이 나의 고향이야!]

    “그럼 그리로 한번 몰아 보죠!”

    [오케이! 그래! 간다! 너희들 덕분에 이번 동창회 난리 나겠다! 하하하하하!]

    자신감을 얻은 파에톤은 불개들을 이끌고 지면을 향해 비행을 시작했다.

    이윽고. 저 멀리 악마들의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수많은 악마들.

    그리고 그들의 머리 위로 파에톤이 모는 샛별 마차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어!? 소악마학교 동창들이다! 내 대학 동기들도 있어! 얘들아!]

    파에톤은 손을 높게 흔들었다.

    그러자 지상에서 반응이 있었다.

    [우와! 차 미쳤다! 뭐야 저 차는? 대박인데?]

    [세상에- 저런 차 몰려면 대체 뭘 해야 하는 거냐?]

    [우리 팔자에는 영원히 글렀지. 성주님도 저 정도 차는 못 타셔.]

    [그런데 우리 마을에 저런 엄청난 차가 왜 왔지? 누가 타고 있는 거야?]

    [잠깐, 저 차에 타고 있는 녀석…… 어딘가 낯익지 않아?]

    [어엇!? 저 녀석은!?]

    악마들은 샛별 마차를 몰고 있는 파에톤을 바로 알아보았다.

    [우와! 파에톤! 파에톤이다!]

    [뭐야!? 파에톤!? 설마 그 코찔찔이 파에톤!?]

    [이야! 너 공무원 시험 붙고 고향 떠나더니 완전 출세했구나!]

    [인마! 너 그 차 뭐냐!? 내 드림카보다 훨씬 더 멋지잖아!]

    그 선망어린 시선들에 파에톤은 으쓱했다.

    [보이냐? 짜식들아! 이거 비밀병기다! 대황금룡전용(對黃金龍專用) 신무기야! 악마족의 명운이 달려 있는 최종병기라고!]

    그 말에 지상의 악마들 사이에서는 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진짜진짜 대박이다!]

    [니가 우리 동기들 중에 제일 출세했다!]

    [우리 마을 최고의 아웃풋!]

    [나 일생일대의 소원이니까 그 차에 한 번만 타 보자! 딱 한 번만!]

    [저 녀석 제 친구에요! 저랑 친해요! 엄마끼리도 서로 연락하고 지낸다구요!]

    [파에톤! 나 기억 나!? 발렌타인데이 때 너가 나한테 초콜릿 줬었잖아!]

    [에톤이형! 여기 좀 봐 줘! 우리 엄청 친했잖아! 여름방학 때 같이 장수풍뎅이 잡아먹으러 다니고 막……!]

    파에톤은 그런 시선들에 취해 점점 으쓱해지고 있었다.

    뽕이 차오르자 어깨는 점점 높아져만 가고 그에 반해 손에 쥔 고삐는 점점 낮아져 간다.

    [자식들아! 조금 더 자세히 보여 주마! 나의 멋진 모습을!]

    그리고 파에톤이 모는 전차가 지상으로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화르륵!

    점차 이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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