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86화 (986/1,000)
  • 외전 112화 부당거래 (3)

    완벽(完璧).

    완전할 완(完)에 구슬 벽(璧).

    본디는 완벽귀조(完璧歸趙)라는 사자성어의 일부이다.

    완전할 완(完), 구슬 벽(璧), 돌아갈 귀(趙) 나라 조(趙).

    흔히 완전무결하다는 뜻으로 이용되지만 원래는 ‘완전한 옥을 조나라로 돌려보낸다’는 뜻이다.

    옛날 조나라의 혜문왕은 엄청나게 크고 귀한 옥을 지니고 있었는데 강대국인 진나라의 소양왕이 그 옥을 탐내어 15개의 성과 바꾸자고 제안했다.

    조나라는 진나라가 침공해 올 것을 두려워해 거래에 응했으나 당연하게도 진나라는 옥을 받고도 성을 내주지 않으려 했다.

    이때 조나라에 인상여(藺相如)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옥을 보며 감탄하는 소양왕에게 다가가 ‘그 옥에 한 군데 조그만 흠집이 있는데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드리겠습니다(瑕疵)’라고 속여 말하니 왕은 무심코 옥을 도로 내주었다.

    이후 인상여는 ‘옥구슬을 드려도 성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니 이 구슬은 조나라로 반환하겠습니다. 만약 가로막으신다면 이 구슬을 깨부수고 저도 죽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기백에 놀란 소양왕은 인상여와 구슬을 조나라로 돌려보내 주었다고 한다.

    *       *       *

    [으아아아아아! 뭐 하는 거야아아아!]

    파이몬은 비로소 제 얼굴에 맞는 표정을 짓게 되었다.

    갓난아이처럼 울먹거리는 이 미소년을 보고 누가 지옥의 40개 군단을 다스리는 패왕이라고 생각할까.

    하지만 이우주는 가차 없었다.

    “어차피 성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은데. 확 그냥 깨부숴 버려야겠다. 그리고 나도 죽지 뭐. 어차피 난 플레이어니까 신전에서 부활하면 되고.”

    [그것! 그것을 내려 놔! 진짜 흠집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흐아아-]

    “그러게 왜 어깃장을 놓으려고 해? 잘되어 가던 거래를 걷어찬 건 너잖아.”

    [미, 미안해! 미안하다고! 그러니 용옥에 하자 생길 만한 짓은 하지 마!]

    “하자가 문제가 아니야. 또 한 번 장난질 쳤다가는 진짜로 깨부숴 버릴 줄 알아.”

    이우주는 살기마저 묻어나는 목소리로 한 번 더 경고했다.

    “이런 보물이 코앞까지 들어왔는데도 작은 욕심 때문에 그걸 놓친다면…… 그리고 그 사실이 주군에게 들어간다면…… 네 인사고과는 어떻게 될 것 같아?”

    [으윽!]

    “앞으로 루시퍼는 온 세상을 지배할 거야. 그리고 너는 공로를 인정받아 거대한 영토를 지배하게 되겠지. 고작 이런 작은 거인국 따위가 아니라. 그때가 되면 고작 거인국 안에 있는 성채 15개쯤이 대수야?”

    [으음……]

    “이런 작은 푼돈 따위에 큰 것을 잃지 마. 너도 알지? 성공한 사람에게는 선물을 주기 어렵다는 것. 이미 다 가진 존재에게 뭘 선물해 봤자 크게 감동을 주기 어렵지. 루시퍼 정도 되면 온갖 값나가는 보물들을 죄다 갖고 있을 것 아냐. 뭘 줘도 시큰둥할 뿐이겠지.”

    [과연. 맞는 말이야.]

    “하지만 이 용옥들은 어떨까? 루시퍼가 그토록 동경하고 염원하며 질투하던 태양룡의 용옥들이야. 보물 중의 보물이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용족의 지존인 태양룡 바이어스의 눈을 돌아 버리게 만들 수 있어. 그놈을 살리느라 죽은 아홉 형, 누나들의 심장이잖아. 이걸 가져다 바친다면? 그 깐깐한 루시퍼조차 크게 기뻐할 거야. 너는 네 주군이 그토록 기뻐하는 모습을 본 적 있어?”

    [없지! 없고말고! 천사족을 멸망시켰을 때도 그분께서는 그저 희미하게 미소 지을 뿐이셨다! 그분을 옅게 미소 짓게 만드는 것조차 그렇게 힘들었는데!]

    “내 장담하지. 이걸 받으면 아마 그 자리에서 환호성을 지르면서 팔짝팔짝 뛸 거다.”

    이우주의 말에 파이몬은 잠시 행복한 망상에 잠기는 듯했다.

    이윽고, 파이몬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용옥을 내게 다오. 나도 약속을 지키겠다. 스틱스 강과 황천에 걸고 말이다.]

    스틱스 강과 황천은 뎀2의 세계관 전체를 양단하는 두 줄기의 커다란 강이다.

    악마족에게 있어 이것에 대고 한 맹세는 반드시 꼭 지켜야 하는 것으로 통한다.

    “헬리오스의 태양 마차를 오마쥬한 것인가. 그렇다면 믿을 만하겠군.”

    이우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방금의 계약 위반으로 인해 너의 신뢰도는 낮아졌어. 인정하지?”

    [인정한다. 사과하지. 내가 뭘 하면 되겠나?]

    “한번 떨어진 신뢰도를 회복하는 것은 처음 신뢰도를 쌓을 때보다 훨씬 더 힘들어.”

    [같은 말을 패턴만 바꾸어 반복하는 버릇이 있군. 그래서, 내가 뭘 하면 되겠냐고 물었다. 이번에도 선제시인가?]

    “선제시는 됐어. 거인국의 성채 15개를 먼저 선입금해 줘. 그 다음은 샛별 마차 시승이야. 그것은 용옥의 지불과 동시에 이루어질 거야.”

    이우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띠링!

    <‘파이몬 왕’이 성채의 소유권을 양도했습니다.>

    <거인국 소속의 성채 16개가 ‘이우주, 눈누난나내가니누나네, 0개국어능력자, (계정정보없음)’님께 귀속됩니다.>

    <거인국 지하 ‘아귀매장 성채’의 소유권이 ‘이우주’님으로 변경되었……>

    <거인국 중부 ‘하늘뻗음척추 성채’의 소유권이 ‘눈누난나내가니누나네’님으로 변경되었……>

    <거인국 최전선 ‘천사멸족붕락 성채’의 소유권이 ‘0개국어능력자’님으로 변경되었……>

    <거인국 해안선 ‘혈액대해 성채’의 소유권이 ‘(계정정보없음)’님으로 변경되었……>

    .

    .

    열여섯 개의 성채가 이쪽으로 넘어왔다는 알림음이 떴다.

    [아까의 사과로 성채 한 개를 더 얹어 주었다. 나는 한 번 한다면 하거든.]

    파이몬이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과연 거인국을 지배하는 악마왕다운 배포였다.

    이우주는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성채가 총 16개이니 4명이서 각각 4개씩 나누면 될 일이다.

    “확인했어.”

    [제길. 수수료 한번 비싸게 물었군.]

    “루시퍼 님을 기쁘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싼 편이지.”

    [그것도 그렇지만…… 그것은 내가 용옥을 넘겨받은 뒤의 일이겠지?]

    “성격도 급하군. 성채를 받았으니 이제 샛별 마차를 시승해 볼 차례야.”

    이우주는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이것은 상호간의 신뢰를 위해 ‘공탁 거래’로 하지.”

    공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2의 세계관 안에 존재하는 안심거래 비슷한 것이다.

    가상의 공간에 서로의 약속을 묶어 두는 시스템.

    서로의 약속물을 해당 공간에 보관해 두고 계약 내용이 성사되면 자동으로 분배되게끔 만드는 구조로 시스템의 힘을 빌리기에 정확하고 공정한 집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샛별마차에 시승해 보고 시승이 끝나는 즉시 용옥을 양도하지”

    [좋다. 샛별마차에 타서 거인국의 상공을 한 바퀴 돌아본 뒤 곧장 여기로 복귀해라.]

    “알겠어. 내가 이 성으로 돌아오는 즉시 용옥은 지불될 거야.”

    이우주와 파이몬은 계약을 맺었다.

    계약 내용에 충실한다면 반드시 지켜질 수밖에 없는 맹약이었다.

    *       *       *

    이윽고.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거대한 마차의 앞에 서게 되었다.

    마차만큼이나 거대한 바퀴 한가운데로 이글거리는 불기둥이 타오르고 그 속에서는 끊임없이 비명과 저주,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오- 엄청 크네?”

    “살벌하게 생겼군. 탄도 미사일의 모습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영화에서 봤다. 벤-허.”

    “아, 그거 고전 명작이지. 우리 아빠가 엄청 좋아해.”

    네 사람은 어지간한 상가 건물만큼이나 거대한 마차를 올려다보며 탄성을 질렀다.

    4마리의 거대한 불개가 끄는 전차.

    샛별 마차이기는 하지만 태양 마차와 작동 원리는 완전히 동일하다.

    새벽녘에 동쪽에서 솟아올라 저녁에는 서쪽으로 가라앉고 그 사이의 시간 동안 다시 동쪽으로 가는 여행을 반복하는 것이다.

    파이몬은 자부심 넘치는 듯한 태도로 마차를 소개했다.

    [루시퍼 님은 전장에서 노획하신 망령을 장작으로 태워 이 마차를 달리게 만드셨지. 이 마차가 출전했다는 것은 용과 악마의 동맹이 깨지고 전면전이 벌어졌다는 뜻이 된다. 그러니 절대 거인국의 상공 바깥으로 나가면 안 돼. ……뭐, 너희들은 마차에 타기만 할 뿐. 운전 자체는 숙련된 마부가 알아서 잘 하겠지만 말이야.]

    이우주는 알겠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마차에 올랐다.

    “…….”

    저 앞에 있는 마부가 네 마리의 불개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직 젊어 보이는 중급 악마.

    묘하게 기합이 팍 들어가 있는 것이 중급으로 승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그때, 마차에 오른 이산하가 이우주를 향해 물었다.

    “근데 동생, 성채를 넘겨받은 것까지는 좋은데. 이 샛별 마차는 왜 타겠다고 한 거야? 너무 낭비 아니야? 고작 한 번 몰아 보는 것에 용옥을 다 넘겨줘야 한다니. 성채들이랑도 안 바꾸던 건데.”

    “맞다. 마차 One time 시승. 대가가 너무 비싸다.”

    “나도 약간은 그렇게 생각해. 이 마차를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고작 하늘을 한 바퀴 돌고 와서 다시 돌려줘야 하는데. 너무 비싼 산책 아니야?”

    솔레이크와 죠르디 역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우주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했다.

    “무슨 소리들이야? 안 줄 건데?”

    “뭐? 하지만 공탁 걸었잖아? 분명 한 번만 타고 돌려줄 거라고…….”

    이우주의 대답을 들은 이산하가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자 이우주는 공탁의 내용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조건을 잘 봐. ‘이 성으로 돌아오는 즉시 마차를 반환하고 용옥을 지급한다’라고 되어 있잖아.”

    “응. 그게 왜?”

    이산하 외에도 솔레이크와 죠르디 역시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들을 향해, 이우주는 짧고 간결하게 물었다.

    “……누가 돌아간대?”

    인생은 역시 노빠꾸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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