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85화 (985/1,000)
  • 외전 111화 부당거래 (2)

    이우주는 손에 아홉 개의 용옥을 들고 있었다.

    -<오래된 황금룡의 용옥(龍鈺)> / 재료 / S

    금빛 비늘을 지닌 용의 심장.

    한때는 막대한 마나가 응집되어 커다란 구체의 형상을 이루고 있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대기 중에 희석되어 결국에는 이렇게 작은 구슬의 모양이 되었다.

    원래는 작고 보잘것없는 구슬에 불과했던 용옥.

    하지만.

    -<살인자의 백과사전> / 마도서 / S

    죽은 자를 위한 죽인 자의 기록.

    사냥했던 대상의 살아생전 모습, 특징, 습관 등이 자세하고도 생생하게 저장되어 있다.

    <현재 기록: ‘엘리뇨/홍해(紅海)’, ‘라니냐/용권(龍卷)’, ‘흑해의 무영왕/그림자 분신’, ‘황금룡 아르파닉/돈먹임’, ‘히드라 성체/구두룡(九頭龍)’>

    -특성 ‘살인자의 기억법’ 사용 가능 (특수)

    특성: <돈먹임>

    ↳돈을 생명력으로 치환합니다.

    ※치환된 생명력은 오로지 용족의 힘에만 반응합니다.

    황금룡 아르파닉을 잡고 얻은 ‘돈먹임’ 특성에 이산하의 코인 머니가 결합된 결과.

    -<생생한 황금룡의 용옥(龍鈺)> / 재료 / S

    금빛 비늘을 지닌 용의 심장.

    막대한 마나가 응집되어 커다란 구체의 형상을 이루고 있다.

    전성기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찬란하고 생동감 있는 빛을 내뿜는다.

    -특성 ‘고생물’ 사용 가능 (특수)

    ※이 아이템은 강화석 대신 사용이 가능합니다

    ※일반적인 강화석과는 혼용이 불가능합니다

    이우주가 가지고 있던 아홉 개의 용옥은 큼지막한 사이즈로 자라났다.

    …번쩍!

    이 아홉 구슬이 뿜어내는 찬란한 광채는 왕성 전체를 황금색으로 물들일 정도였다.

    마치 아홉 개의 태양이 지상에 강림한 듯한 위용.

    이산하는 용옥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피하기 위해 선글라스를 낀 채 이우주에게 물었다.

    “오. 이거 루시퍼에게 팔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

    “루시퍼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까. 아빠조차도 루시퍼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는 눈치던데? 예전에는 윌슨 전 총수의 부정한 개입으로 이루어진 급완결 엔딩 때문에 겨우겨우 잡았다고 했고.”

    그러니까 이곳에서 용옥을 미끼로 루시퍼의 오른팔인 파이몬을 충동질하려는 것이다.

    이우주의 계획에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한편.

    [어, 어디서 났느냐고 묻지 않느냐!?]

    파이몬은 자리를 박차며 벌떡 일어났다.

    어찌나 놀랐는지 쓰고 있던 왕관이 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갈 정도였다.

    파이몬은 허둥지둥 왕관을 주워 머리에 썼고 이내 옥좌 아래로 달려 내려와 이우주의 앞에 섰다.

    [진짜, 진짜다! 지, 진짜 황금룡의 용옥이야! 어째서 이것이 여기에……!]

    파이몬은 눈이 돌아가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오만의 악마성좌, 샛별의 관장자 루시퍼는 태양에 대해 엄청난 시기와 질투, 열등감을 품고 있다.

    그러니 루시퍼는 태양룡의 상징인 용옥을 가지고 싶어 할 것이 당연하다.

    태양을 관장하는 용의 심장 아홉 개가 루시퍼의 손에 들어간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태양룡 바이어스의 우위에 섰다는 증표가 될 것이다.

    형제의 유해가 적에게 넘어가는 것만큼 끔찍한 일이 또 있으랴?

    [만약…… 만약 내가 태양룡 바이어스의 형제들이 남긴 용옥을 가져다가 루시퍼 님께 바친다면! 그렇다면 나는 단숨에 단탈리안 놈을 따돌리고 차기 악마성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오오! 이런 감개무량한 일이! 루시퍼 님! 기뻐하소서! 그 증오스러운 바이어스 놈의 아홉 형제들이 제 눈앞에 있습니다! 그놈들의 심장이! 아직도 이렇게 영롱하게 빛나는 채로!]

    태양룡 바이어스를 농락하며 압박할 최고의 무기, 그의 아홉 형들이 남긴 심장.

    파이몬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것들을 손에 넣어 자신의 주군인 루시퍼에게 바칠 생각이었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 어서! 어서 그것을 내게 가져오너라! 어서! 당장!]

    그래서 눈앞에 있는 이우주를 향해 극도로 성급하게 굴고 있었다.

    하지만.

    샥-

    이우주는 당장이라도 가져다 바칠 것 같았던 아홉 용옥을 뒤로 물렀다.

    그리고 안달복달 애를 태우고 있는 파이몬을 향해 마법과도 같은 한마디를 내뱉었다.

    “선제요.”

    이우주의 말을 들은 파이몬의 몸이 일순간 뻣뻣하게 굳었다.

    선제란 무엇인가? 그것은 ‘선(先) 제시’의 줄임말이다.

    사고 싶은 사람이 먼저 가격을 제시하게끔 유도하는 행위.

    판매자가 최고의 가격을 받아 내고 싶을 때 주로 시도하는 상술이었다.

    판매자는 구매자가 먼저 제시하는 가격을 통해 상대가 시세에 밝은지 어두운지를 판단할 수 있고 여차하면 가격을 후려쳐 비싼 값에 물건을 넘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만약 구매자가 높은 가격을 부른다면 못 이기는 척 하고 팔면 되고 적당한 가격을 부른다면 더 높은 값에 살 사람이 나올 때까지 어물쩡 거래를 미룰 수 있다.

    아예 터무니없는 가격이 나온다면 그냥 거래를 취소해 버리면 그만이다.

    한마디로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뜯어내기 위한 술책.

    그리고 이런 상황에 놓은 구매자는 거의 대부분 화가 나기 마련이다.

    [크윽! 돈, 돈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주마! 얼마를 원하느냐!]

    “수고요.”

    [아니! 원하는 게 있으면 말을 해라! 그걸 들어준다고 하지 않느냐!]

    “선제요.”

    [돈을 준다고!]

    “수고요.”

    [으윽! 그럼 돈 말고 뭘 원하는지 말을 하란 말이야!]

    “선제요.”

    [아아아아아악!]

    “수고요.”

    [살 거야! 살 거라고! 제발 뭘 원하는지 말이라도 해 줘! 뭐든지 줄게!]

    “선제요.”

    [아아아아아아악!]

    이우주는 절대 갑(甲)의 위치에 선 채 단 두 마디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우와, 악랄하다. 진짜 재수 없는 타입이네. 플리마켓에서 퀘템 살 때 저런 진상 만나면 엄청 피곤해지는데.”

    “우주. 선제충.”

    “무조건 선제만 받으니 상대방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자기가 가진 최고의 패를 내보일 수밖에. 흥정이라는 것 자체를 커트해 버리니.”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의 말대로였다.

    이우주는 원하는 것, 즉 파이몬이 꺼낼 수 있는 최고의 패가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두 마디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었다.

    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

    파이몬의 등 뒤에서 아우라가 끓기 시작했다.

    여차하면 손에서 불을 뿜어내 네 사람을 죽여 버릴 생각인 듯했다.

    그러나.

    “어휴, 더워서 그런가 거래할 마음이 전혀 안 드네. 그냥 죽어야겠다.”

    [아이쿠! 더웠느냐? 내가 세심하지 못했구나! 그리고 죽다니! 내 어찌 태양룡의 용옥을 가져온 귀빈들을 그렇게 대접하겠느냐! 여, 여기 앉아라. 시원한 방석과 음료다.]

    이우주의 협박에 파이몬은 그저 쩔쩔매고 있었다.

    이윽고, 용옥이 가지고 싶었던 파이몬은 무려 세 번의 깊은 심호흡 끝에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좋다!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건 어떠냐!?]

    파이몬은 한 손을 쫙 펴서 손가락 수를 늘렸다.

    그리고 이우주의 앞으로 열 개의 손가락을 뻗어내 보였다.

    [열 채.]

    “……뭐가 열 채죠?”

    [뮈긴 뭐냐! 성 말이다!]

    파이몬의 말에 이우주를 비롯한 모두는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파이몬은 황급히 말을 이었다.

    [적어서 그러냐? 제기랄! 악마보다도 사악하고 탐욕스러운 놈들이로다! 그러면 열다섯 채! 열다섯 채는 어떠냐!]

    뿅! 소리와 함께 파이몬의 손가락이 열 개에서 열다섯 개로 늘어났다.

    [그 용옥들을 내게 준다면 거인국의 성채 열다섯을 넘겨주마!]

    이윽고, 파이몬의 입에서 파격적인 대사가 터져 나왔다.

    “……!”

    “……!”

    “……!”

    “……!”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입을 딱 벌릴 수밖에 없었다.

    성이란 무엇인가?

    RPG 게임 속에는 꼭 있는 마을들이 여러 개 모인, 거대한 규모의 군락지이다.

    그 성채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광활한 영지를 소유하게 됨과 동시에 그 안의 크고 작은 상거래들에서 발생하는 세금을 징수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성주(城主)라고? 그, 그것도 열다섯 채나 되는 성채들의?”

    “엄마도 그레이 시티의 시장이었었지. 그때 걷어 들인 세금들이 엄청난 액수였다는데.”

    “성주. 특권. 공성전. 세력 형성 가능. 길드. 기업. 뭐든 able.”

    “더군다나 거인족의 성채는 일반적인 성채들보다 훨씬 크잖아.”

    네 사람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한참을 떠들었다.

    당연한 일이다.

    거인국의 성채를 소유한다는 것은 최소 백작급의 고위 마족으로 인정받는다는 뜻이었으니까.

    파이몬의 제안은 과연 최고위 마왕의 것다운 통큰 딜이었다.

    하지만.

    “……부족해.”

    이우주는 그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크윽! 더 이상 뭘 달라는 것이냐! 이 욕심쟁이들아!]

    파이몬이 빽 소리치자 이우주는 신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까 뭐든지 내주겠다고 했었죠?”

    [그렇다! 그 용옥들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그렇다면 이건 어때요?”

    처음으로 이우주가 먼저 무언가를 제안할 모양이다.

    파이몬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진중한 기색으로 이우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이우주가 입을 열었다.

    “하늘을 가로지르던 불의 궤적, 샛별 마차를 한 번만 몰아 보고 싶은데.”

    [……!]

    이우주의 말에 파이몬의 동공이 잠시 흔들렸다.

    이우주는 말을 이었다.

    “델라에게 들었어. 루시퍼는 태양을 넘보기 위해 태양 마차보다 훨씬 더 크고 밝은 샛별 마차를 만들었다고. 그것은 태양룡의 불길을 뚫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빠르고 강력한 무기이지.”

    그리고 그것은 용마동맹에서 악마가 용의 뒤통수를 치기 위해 개발한 최종병기이기도 하다.

    태양룡 바이어스를 죽이기 위해 극비리에 개발 중인 신무기인 것이다.

    [……. ……. …….]

    파이몬은 입을 다문 채 한참 동안이나 침묵을 고수했다.

    이윽고, 파이몬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알겠다. 15채의 성을 넘겨주고 샛별 마차도 몰아 보게 해 주마. 딱 한 번, 딱 한 번이다.]

    “야호!”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쾌재를 불렀다.

    그때.

    [단. 내가 먼저 용옥을 살펴보게 해 다오.]

    파이몬이 이우주에게 손을 내민다.

    이우주는 아홉 개의 용옥을 파이몬에게 내밀었다.

    그 순간.

    …팟!

    파이몬의 기세가 변했다.

    사악하고 흉폭한 아우라가 갑자기 여과 없이 뿜어져 나온다.

    동시에.

    스핏-

    이우주의 손에 있던 용옥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어엇!?”

    네 사람이 미처 놀랄 틈도 없었다.

    파이몬은 이우주의 동의도 없이 용옥들을 빼앗아 간 것이다.

    그제야 이우주는 파이몬이 ‘소매치기’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너무 하찮은 특성이라 잊고 있었다. 파이몬 정도 되는 몬스터라면 그런 잡기술도 상당한 위력을 가졌을 텐데. 방심했어!’

    이우주는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공탁이나 공증도 없이 끝난 거래를 무를 수 있을 리가 없다.

    파이몬은 교활한 악마인지라 약속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오오…… 아름다워…… 이것이 주군께서 그토록 염원하셨던 태양의 힘……]

    파이몬은 이우주에게서 빼앗은 아홉 용옥들을 홀린 듯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저 용옥에 매료된 시간이 끝나고 나면 태도가 돌변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어, 어쩌지? 설마 뺏길 줄은 몰랐는데.”

    “망했다. 우릴. 죽일 것이다. 파이몬. 구라쟁이 Shake it!”

    “빌어먹을! 가까이 다가올 때 경계했어야 했는데!”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울상을 지을 뿐이다.

    그때.

    “잠깐.”

    이우주가 앞으로 나섰다.

    파이몬이 용옥에 홀려 있는 것을 제 발로 깨트려 버린 이우주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 거래는 무효입니다.”

    [……뭐라?]

    파이몬이 눈을 부라린다.

    이제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은 이 욕심쟁이 악마는 더 이상 친절의 가면을 쓰지 않았다.

    [크크크크크- 그래. 이 용옥을 내게 주기 싫다는 게냐?]

    “그렇습니다.”

    [네까짓 놈이 싫다면 뭘 어쩔……]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용옥이 욕심나서가 아닙니다.”

    [……?]

    파이몬은 이빨을 드러내려다가 말고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는 의아한 표정으로 이우주를 쳐다보았다.

    이우주는 짐짓 태연하게 미소 지어 보였다.

    “제가 거래하기 싫은 것은 그 용옥이 아직 완전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상품에 하자가 있는데 그걸 소비자에게 숨기고 팔 수야 있나요. 말하자면 판매자로서의 양심 문제인 것입니다.”

    [뭐, 뭐야? 하자가 있어? 이 용옥에? 어디에? 무슨?]

    “실은, 그 용옥의 겉표면에는 아주 미세한 상처가 있습니다. 이른바 ‘잔기스’라는 거죠. 그게 어디 있는지 말씀드려야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이우주는 은근한 목소리로 슬쩍 말을 덧붙였다.

    “분명 귀한 분께 진상될 텐데, 나중에 가서 그런 흠집이 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분명 여러모로 크게 ‘실망’하실 테니까요.”

    [……!]

    파이몬이 약간 움찔했다.

    이윽고, 이우주가 손을 내민다.

    “용옥을 잠시 주시겠습니까? 드리기 전에 어느 부분에 하자가 있는지를 먼저 짚어 드리겠습니다.”

    [그, 그래. 알겠다.]

    파이몬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용옥을 도로 이우주에게 넘겼다.

    그리고.

    …팍!

    이우주는 용옥 아홉 개를 돌려받자마자 그것들을 인벤토리에 처박았다.

    [어엇!? 뭘 하는……!]

    파이몬이 미처 말릴 틈도 없었다.

    이우주는 자리를 박차고 달려가 왕성을 떠받치고 있는 커다란 구리 기둥 앞에 섰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꺼낸 아홉 개의 용옥을 높이 들어올린다.

    “개수작 부리지 마라, 파이몬.”

    이우주는 이쪽으로 다가오려는 파이몬을 제지하며 용옥을 한번 흔들었다.

    “뻘짓 했다간 알지? 확 깨부숴 버릴 거야.”

    일생일대의 협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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