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82화 (982/1,000)
  • 외전 108화 공무원 시험 합격은 (1)

    [네 이놈!]

    [누추한 것들이!]

    [어딜 이런 귀한 곳에!]

    세 개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곳에는 문지기 하나가 서 있었다.

    세 개의 머리를 가진 개.

    그것을 보는 순간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동시에 외쳤다.

    “왜 안 나오나 했다.”

    눈앞에 있는 삼두견(三頭犬)은 대중 문화 속에 흔하게 등장하는 마물.

    <케르베로스(Κέρβερος)> -등급: A+ / 특성: 야수, 하수인, 어둠, 맹독, 출혈, 하극상, 반전, 변온, 유극, 연쇄, 뺑소니, 1:1, 질긴가죽, 내성발톱

    -서식지: 거인국 ‘파이몬 성’, 적과 흑 산맥 7부 능선

    -크기: 7m

    -일명 ‘지옥의 번견(番犬)’

    지옥을 벗어나려는 망령은 그 즉시 갈기갈기 찢어 걸레조각으로 만들어 놓는다.

    모든 망령들이 최종적으로 향하게 되는 기름세계 깊은 곳에 서식하며 번견종 몬스터의 궁극(窮極)으로 통한다.

    케르베로스. 악마성의 문지기.

    세 개의 머리를 가진 거대한 지옥견.

    이 강력한 몬스터가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인가? 인간이 이곳 ‘파이몬 성’에 오는 일은 드문데.]

    [하지만 들어갈 수 없다. 하다못해 오크라면 몰라도.]

    [악마 진영의 계보에 정식으로 이름을 올린 자가 아니라면 출입불가야!]

    케르베로스는 유창한 어조로 네 사람의 출입을 통제했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죽일까요 마스터?”

    “아니야. 문 앞에서 소란을 피우면 뭐가 나타날지 모르잖아.”

    “위험등급 A+. 별로 안 쎄 보인다. 우리는 잡았다. 히드라. S급 최상위.”

    “아니야. 방금 전에 히드라 레이드가 끝나서 그렇게 보일 뿐이야. 원래라면 A+급도 엄청 쎈 거라고. 그리고 케르베로스는 지능 스탯이 엄청나게 높아 보이는데…… 어찌 보면 히드라보다도 까다로울 수 있어. 잡고 가는 건 무리.”

    죠르디의 의견에 이우주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말을 하는 A+급의 몬스터라. 이 정도로 지능이 높다는 것은 어지간한 꼼수들은 안 통한다는 뜻이겠지. 거기다가 이 몬스터는 한눈에 보기에도 문지기. 성 앞에서 대놓고 문지기와 전투를 벌였다가는 차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

    문지기의 역할을 수행하는 몬스터들은 많다.

    가령 던전 1층의 보스 몬스터라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것들은 그 층의 주인이고 해당 공간의 지배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것들을 사냥한다고 해서 윗층이나 아래층에서 증원을 온다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마음 놓고 해당 던전의 층을 공략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노골적이게 대놓고 성 앞을 지키고 있는 스타일의 문지기 몬스터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성문 안쪽에서 뭐가 나올지 몰라. 그리고 최악의 경우에는 케르베로스가 문을 열고 안쪽으로 달아나 버릴 수도 있지. 지능도 높은데다가 가지고 있는 특성들 중에도 ‘뺑소니’가 있잖아?”

    이우주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산하가 신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어쩌지? 안으로 들어가긴 해야 하는데. 확 히드라의 독침을 써 버려?”

    “그걸 케르베로스에게 쓰기는 좀 아깝지. 그런 것 말고, 평화적인 방법을 한번 써 보자.”

    “어떻게?”

    이산하가 묻자 이우주는 인벤토리를 뒤져 구석에 처박혀 있었던 재료 아이템들을 꺼냈다.

    “이것들을 조합해서 줘 보는 거야.”

    이우주의 손에 들린 것은 꿀과 겨자가루, 바곳이었다.

    꿀과 겨자가루는 떡을 제조할 수 있는 재료 아이템이었고 바곳은 수면제의 원료다.

    이우주는 그것들을 한곳으로 뭉치며 말을 이었다.

    “개밥바라기 별이 떴을 때 배고픈 들개들을 만났었지. 어쩌면 이 케르베로스도 배가 고픈 상태일지도 몰라.”

    “오호? 그래서?”

    “이 재료들로 떡을 만들어서 줘 보자고. 안에 수면제를 넣어서.”

    이우주의 의견에 세 여자 모두 꽤나 그럴싸하다는 눈치다.

    내친김에 이우주는 관련된 신화를 하나 소개했다.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판단이 아니야. 원래 케르베로스가 등장하는 그리스 신화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있어. 영웅들은 케르베로스의 앞을 지나갈 때 겨자가루와 바곳을 섞어 만든 꿀떡에 수면제를 넣어 먹여서 재우고 지나갔다고 하더라고.”

    “오호. 그렇다면 가능성이 있겠군. 신화를 잘 오마주했다면 말이야.”

    이산하 역시도 이우주의 계획에 동참하기로 했다.

    이윽고, 이우주는 돌돌 빚어 만든 꿀떡을 들고 케르베로스에게 다가갔다.

    “자, 먹어라.”

    이우주는 케르베로스에게 떡을 던졌다.

    그러나.

    …툭!

    허공에 던진 떡은 케르베로스의 머리에 맞고 그냥 바닥에 떨어질 뿐이다.

    [?]

    “?”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만이 흐른다.

    케르베로스가 물었다.

    [방금.]

    [뭘.]

    [한 거냐?]

    “어? 아니, 떡 준 건데?”

    [누가 그렇게 성의 없게 떡을 던지래?]

    [내가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그런 너저분한 떡을 먹을 것 같나?]

    [아니, 애초에 초면에 갑자기 떡을 던지는 건 또 뭐야? 싸우자는 거냐?]

    “…….”

    예상 밖이었다.

    케르베로스는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이 던져 주는 떡은 먹지 않는 것 같았다.

    이우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패배를 시인했다.

    “하기야. 나도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불쑥 나타나서 떡을 손수 만들었다면서 내밀면 당연히 안 받아먹을 것 같아. 심지어 포장도 하지 않은 채 맨손으로 가져와서 바닥에 던지기까지 했으니…….”

    “으음. 나는 좀 생각해 볼 것 같은데. 꿀떡이 아니라 팥떡이라면.”

    “그건 누나의 지능 스탯이 케르베로스보다 떨어지기 때문…… 아니다. 그만하자. 여기까지만 말할래.”

    “이 자식이 다 말해 놓고 무슨!”

    “오. 두개골이 모래알처럼 부서질 것 같은데. 확실히 현실의 지능 스텟은 몰라도 힘 스텟만큼은…….”

    이산하가 이우주에게 헤드락을 걸고 있는 동안 솔레이크와 죠르디 역시도 토의 중이었다.

    “케르베로스. 똑똑하고 상식적. 일반적인 공략. 안 통할 듯?”

    “나도 그렇게 생각해. 전투를 벌일 수 없다면 머리로 헤쳐 나가야 하는데…… 공교롭게도 케르베로스는 참 똑똑하고 상식적인 몬스터란 말이지.”

    아무래도 신화에서 오마주된 몬스터이다 보니 수면제가 든 꿀떡을 먹이는 것은 좋은 방법처럼 보인다.

    실제로 케르베로스 자체도 떡을 상당히 경계하고 있는 듯하고.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떡을 먹이는 것이 좋을지. 그것이 문제로군.”

    이우주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고민은 플레이 제한 시간에 도달해 로그아웃을 할 때까지 쭉 이어졌다.

    -띠링!

    <게임도 좋지만 가끔은 현생을 살아주세요!>

    로그아웃 권고를 하는 알림음에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이만 접속을 종료할 준비를 했다.

    “어우, 게임을 너무 오래 했나보다.”

    “쉬려고 게임을 해야 하는데, 게임을 하다가 쉬러 가고 있네.”

    “오프라인에서 찾는다. 공략. 케르베로스에게 먹일. 떡.”

    “나도 로그아웃한 뒤에 계속 검색해 볼게. 뭐 생각나는 아이디어 있으면 화상통화로 공유하자.”

    바로 그때.

    “……아앗!”

    로그아웃을 위해 대기하던 이우주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것은 케르베로스가 지키고 있는 왕성의 문 옆에 자그맣게 붙어 있는 벽보였다.

    “그래! 저거다! 저거라면 케르베로스도 납득할 만한 방법으로 떡을 먹일 수……!”

    이우주가 외치는 소리와 함께.

    -띠링!

    [로그아웃 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와 주세요]

    .

    .

    네 사람의 몸이 게임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       *       *

    그날 저녁.

    “……자. 그럼 시작할까.”

    “……으음!”

    이우주와 이산하는 앉은뱅이책상 하나를 두고 마주앉았다.

    쓱쓱쓱슥-

    흰 것은 종이, 검은 것은 글자.

    둘은 산더미처럼 쌓인 책들을 보며 이것저것을 필기하고 있었다.

    “얘들아~ 과일 먹어라~ 근데 뭣들 하고 있니?”

    문을 열고 들어온 유다희 여사는 방 안으로 보이는 뜻밖의 풍경에 깜짝 놀라 외쳤다.

    놀랍게도 둘은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럴 수가! 운석! 운석이 떨어지려나 봐! 여보! 오빠! 달링! 애들이 공부를 해!”

    세상의 멸망을 알리는 징조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령 물이 피로 변한다거나, 개구리 떼, 파리 떼, 메뚜기 떼, 이 떼가 끓는다거나, 가축들이 떼죽음 당한다거나, 역병이 퍼진다거나, 우박이 내린다거나, 암흑이 드리운다거나, 그 해 처음 태어난 것들의 생명이 스러진다거나, 자식들이 갑자기 공부를 열심히 할 때이다.

    유다희 여사는 황급히 방문을 나서 남편이 있는 옆방으로 달려간다.

    생전 공부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는 두 남매가 어찌된 영문인지 게임에서 로그아웃한 뒤부터 공부를 하고 있다.

    “……아, 이 응용문제는 조금 어렵네. 풀이를 보니 전 단원에서 익혔던 개념을 적용해야 하는가 본데.”

    “……암기할 것이 엄청 많군. 아무래도 오늘은 3챕터까지 암기한 뒤 내일 복습해야겠어.”

    참고서를 읽고 문제집을 파고 기출문제들을 푼다.

    단어들을 외우고 개념들을 이해하며 사례들을 응용하고 있었다.

    부부는 자신들의 아들딸이 보여 주고 있는 이 전대미문의 기괴한 현상에 그저 식은땀을 흘릴 뿐이다.

    “육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어. 안과에 가 봐야 하나.”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이 또한 가상현실인가? 어쩌면 윌슨의 농간?”

    이쯤 되면 자식들이 어디 아픈지를 먼저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결국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아빠가 앞으로 나섰다.

    “근데 뭘 공부하는 거니, 너희들?”

    마치 자살 소동을 벌이는 사람을 구출하려 하는 경찰처럼, 아빠는 조심조심 접근해 가면서 자식들의 목적을 묻는다.

    그리고 이내.

    딸과 아들이 공부하고 있는 문제집의 제목이 아빠의 눈에 들어온다.

    <공단기-9급 공무원 최단기 합격!>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