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81화 (981/1,000)
  • 외전 107화 거인국(巨人國) (7)

    <세계 최초로 ‘히드라 성체’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업적 기록장에 적혀 있는 최신 기록.

    그것을 이우주는 몇 번씩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잡았다. 진짜 잡았어.”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히드라 성체. 빅헤드.

    20여 년 전, 전성기를 구가하던 아빠조차도 끝끝내 정공법으로는 쓰러트리지 못했던 S랭크 최악의 몬스터.

    그것을 잡아내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믿기지가 않아. 설마 진짜로 성공할 줄이야.”

    이우주는 얼떨떨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뒤에 서 있던 세 여자는 지금 이 상황이 꿈이 아니라 현실임을 일깨워 주었다.

    “이야, 이걸 잡네 진짜. 내 인생 최고의 업적.”

    “동감한다. 올해 최대의 성과. 멋진 아웃풋. 파파한테 자랑 쌉가능.”

    “레벨이 얼마나 올랐는지 궁금한데.”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 역시도 얼떨떨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뀐 상태창을 점검한다.

    <이우주>

    LV: 74

    3번의 연속 레벨업.

    마의 70구간에 진입하자마자 거둔 쾌거였다.

    <이산하>

    LV: 77

    <솔레이크>

    LV: 77

    <죠르디>

    LV: 78

    이산하와 솔레이크 역시도 각각 두 번의 연속 레벨업을 경험했고 죠르디 역시도 레벨이 1올랐다.

    당연하게도 이 역시 마의 70구간대에서는 거의 겪기 힘든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츠츠츠츠츠……

    이우주는 자신의 인벤토리에도 변화가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살인자의 백과사전> / 마도서 / S

    죽은 자를 위한 죽인 자의 기록.

    사냥했던 대상의 살아생전 모습, 특징, 습관 등이 자세하고도 생생하게 저장되어 있다.

    <현재 기록: ‘엘리뇨/홍해(紅海)’, ‘라니냐/용권(龍卷)’, ‘흑해의 무영왕/그림자 분신’, ‘황금룡 아르파닉/돈먹임’, ‘히드라 성체/구두룡(九頭龍)’>

    -특성 ‘살인자의 기억법’ 사용 가능 (특수)

    살인자의 백과사전에 또 하나의 기록이 추가되었다.

    히드라 성체에게서 빼앗은 새로운 특성 ‘구두룡’.

    특성: <구두룡(九頭龍)>

    ↳절단된 신체를 고속으로 재생합니다. 재생된 신체는 두 배로 늘어납니다.

    ※변형된 신체는 ‘상태이상’으로 취급되며 24시간이 지난 뒤 자연적으로 사라집니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히드라 성체를 난공불락의 보스 몬스터로 군림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던 최강의 핵심 특성이었다.

    “어디 잠깐 시험해 볼까?”

    이우주는 슬쩍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죠르디를 바라보았다.

    “에? 뭐야. 왜 나를 봐?”

    “칼을 쓰는 메타는 너밖에 없잖아. 자.”

    이우주는 자신의 왼팔을 죠르디에게 내밀며 말했다.

    “칼로 내 팔을 좀 베어 줘.”

    “……미쳤어?”

    “왜? 처음 만났을 때는 잘만 하더니.”

    “그,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치…… 친…… 친구 잖…….”

    “괜찮아. 칼이랑 총도 살살 맞으면 안 아프댔어.”

    “무슨 논리야 그게!”

    죠르디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거부했지만 이우주의 학구열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HP가 0이 되지 않게 조심해. 포션 잘 먹고.”

    죠르디는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한 끝에 칼을 휘둘렀다.

    …퍽!

    이우주는 자신의 팔이 떨어져 나갈 것을 상상하며 두 눈을 꽉 감았다.

    그러나.

    “어엇!?”

    “OH!?”

    “으음!?”

    주변에서 들려오는 환호성에 이우주는 눈을 떠서 자신의 팔을 내려다본다.

    “오오!”

    그리고 이우주 역시도 옆에 있는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와 똑같이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이우주의 왼팔은 어느새인가 두 개로 늘어나 있었던 것이다.

    “좋아. 계속 늘려 보자.”

    “동생아! 이거 짱 신기한데! 머리도 한번 해 볼래!?”

    “……머리는 무서우니까 팔로만 할게.”

    이산하의 제안을 거절한 이우주는 계속해서 팔의 수를 늘려 보았다.

    이윽고. 이우주는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5개씩, 총 10개의 팔을 가지게 되었다.

    “으음. 이 정도 되니까 팔을 컨트롤하기 조금 어려운데.”

    “무슨 느낌이야? 팔이 10개 있으면?”

    “뭐랄까…… 마우스를 10개씩 늘어놓고 쓰는 느낌이랄까? 익숙해지면 편한데, 이 이상 늘어나면 오히려 어지러울 것 같아.”

    그 이후로도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살인자의 백과사전에 기록된 새로운 특성을 여러 가지로 시험해 봤다.

    “자! 그럼 이제 대망의…… 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 아이템 확인 시간!”

    이산하가 주먹을 들어 올리며 환호하자 모두가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히드라 빅헤드를 잡고 얻은 아이템.

    그것은 상당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히드라 빅헤드의 독침> / 한손무기 / S

    히드라의 독낭에서 뽑아낸 바늘,

    빅헤드가 품고 있던 맹독의 정수(精髓)이다.

    히드라 성체가 가지고 있는 독기를 그대로 재현해낼 수 있다.

    -독 공격력 +?

    -특성 ‘맹독’ 사용 가능 (특수)

    ※이 아이템은 1회용입니다

    사요한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는 바늘 하나가 나왔다.

    이빨 같기도 하고 송곳 같기도 한 이 작은 한손무기는 보는 것만으로도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땅에 떨어져 있는 이 바늘을 만지려던 이산하는 순간 손을 타고 밀려오는 독기에 깜짝 놀라 물러났다.

    “으악! 뭐야!? 독기가 엄청난데? 소, 손가락이 얼얼할 정도야…….”

    이산하의 말대로, 히드라가 떨군 이 아이템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난 독기를 품고 있었다.

    이우주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바늘을 살펴보았다.

    “히드라의 독을 그대로 재현해 낼 수 있다고? 그게 사실이라면 거의 사기 아이템인데.”

    일반적으로 몬스터에게서 특성을 빼앗을 경우 그것은 플레이어의 레벨이나 아이템 수준에 맞게 너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원래대로라면 히드라를 잡고 히드라의 맹독 특성을 빼앗는다고 해도 그 독기를 그대로 재현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독침은 그것을 가능케 만들어 준다.

    “……독 공격력 옵션이 ‘?’로 설정되어 있다 이거지.”

    비록 1회용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더 믿음이 가는 수치였다.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도 고개를 끄덕인다.

    “히드라의 독…… 엄청났었지. 지각변동이 일어났을 정도니까.”

    “땅이 바뀌었었다. 용암지대와 흡사. 미친 수준의 독.”

    “1회용이라서 더 믿음이 간다. 이런 게 사용 제한이 없다면 그야말로 밸런스가 붕괴될 테니까. 이건 우주, 네가 보관하는 게 어떻겠어?”

    모두의 토의 끝에 이 독침은 이우주가 보관하기로 했다.

    이우주의 피지컬이 가장 좋으니 방심한 상대의 빈틈을 노려 독침을 꽂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아마 이 독침은 루시퍼에게 쓰게 될 것 같은 느낌이군.”

    이우주는 히드라의 독침을 인벤토리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서 히드라 레이드가 모두 종료되었다.

    “휴, 이제야 비로소 끝인가. 거인국에 온 환영인사 한번 거했네.”

    “아니! 아직 끝난 게 아니지!”

    이우주가 땀을 닦으며 하는 말에 이산하가 쾌활한 어조로 말했다.

    와르르르르-

    그녀가 모두의 앞으로 꺼내 든 것은 수많은 아이템들이었다.

    ‘가름의 이빨 대검(A)’, ‘쿤 안눈의 갈비뼈 방패(A)’, ‘쿠시의 두개골 투구(B+)’, ‘베르게스트의 불가죽 망토(B+)’, ‘셔크의 꼬리 채찍(B)’……

    수없이 많은 필드 몬스터들을 처치하고 얻은 부산물들.

    이산하는 눈앞으로 수북하게 쌓인 이 칼, 방패, 갑옷, 투구, 망토, 신발, 반지, 목걸이 등등을 보며 말했다.

    “좋은 아이템들이긴 한데 등급이나 옵션이나 어딘가 좀 직접 착용하기에는 미묘해서 말이야. 각자 필요한 거 빼고는 죄다 경매장에 올려 버리면 어떨까 싶어.”

    “나는 찬성. 안 그래도 소모품을 벌충할 돈이 필요했어.”

    “동감. 돈 벌자!”

    “나도 동의해. 이걸로 군자금이 한층 더 풍족해지겠네.”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의 동의를 받은 이산하는 각각 아이템을 나누었다.

    “이건 궁수에게 필요한 반지, 요건 검사에게 필요한 아대, 저건 골렘한테 장비시켜도 좋을 만한 장갑 같은데? 아, 이 귀걸이도 옵션 나쁘지 않으니까 빼고~”

    결국 36개의 A급 아이템, 78개의 B+급 아이템, 156개의 B급 아이템이 경매장으로 올라갔다.

    오랜 시간 동안 플레이어들의 접근이 금지되어 있었던 거인국이기에 하나같이들 양질의 아이템들뿐이었다.

    -띠링!

    <‘경매장’에 접속했습니다!>

    <중고월드 구역 연동 중……>

    <당근프리마켓 구역 연동 중……>

    <계정정보가 등록되어 있지 않은 이들의 검색 결과를 제외합니다>

    <신뢰도가 낮은 거래자들의 검색 결과를 제외합니다>

    <모든 구역과의 연동이 완료되었습니다>

    <이제 데우스 엑스 마키나2의 각 구역 모든 경매장들의 매물을 실시간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파실 물건을 등록해 주세요>

    <최저가와 즉시낙찰가를 입력해 주세요>

    <※경매가가 너무 급격하게 치솟으면 VI가 발동될 수 있습니다>

    .

    .

    이산하가 경매장에 접속해서 물건들을 올리자 곧장 경매가 시작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올라가는 경매가들.

    하나같이들 등급 대비 좋은 옵션을 가지고 있었고 개중에는 거인국에서만 구할 수 있는 아이템들도 몇몇 섞여 있었기에 수집가들의 이목까지도 끌 수 있었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아이템들을 전부 판 뒤 남은 돈을 공평하게 4조각으로 나누어 분배했다.

    이로서 거인국의 필드 사냥이 최종적으로 완료되었다.

    이제는 또다시 앞으로 전진할 차례였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앞으로 가야 하는 거지?”

    “하늘에 그려진 궤적을 따라가야지.”

    “그것이 끝나는 곳. 아마도 목적지.”

    “유령 군마는 빠르니까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거야.”

    네 사람은 죠르디가 모는 말에 탄 채 계속해서 앞으로 달렸다.

    종종 앞을 가로막는 몬스터들이 나왔지만 이산하의 화살에 의해 격퇴되었다.

    그렇게 계속 앞으로 앞으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반복되는 황량한 풍경에 슬슬 질려갈 무렵.

    “오! 저기 또 보인다!”

    눈 좋은 이산하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쿠르르르르르르르륵……!

    그것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불의 궤적이었다.

    네 마리의 불타는 개가 끌고 있는 마차가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이우주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옛날에 아빠가 상대했던 ‘아몬 후작’이라는 몬스터가 떠오르네. 그 몬스터가 타고 다니던 마차보다 더 크고 화려한 것 같아.”

    이윽고, 마차는 불의 궤적을 그리며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주 크고 으리으리한 성 하나가 솟구쳐 있었다.

    “딱 봐도 나쁜 놈이 살 것 같은 건물이구만.”

    “저곳에 고위 악마가 살고 있겠지. 루시퍼의 직속으로 통하는.”

    “아르파닉. 오메가닉. 이들과 같은 포지션?”

    “그렇다면 아마도 파이몬, 아니면 단탈리안이겠군.”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나눴다.

    3차 대격변 당시 태양룡 바이어스의 왼팔과 오른팔의 역할을 수행했던 존재가 아르파닉과 오메가닉이었다면 루시퍼에게는 파이몬과 단탈리안이라는 쌍두마차가 있다.

    “둘 중 하나가 이번 교역상대가 될 거야. 가 보자고.”

    이우주가 앞장섰다.

    네 사람은 씩씩한 걸음걸이로 걸어 눈앞에 있는 거대한 악마성의 정문으로 향했다.

    바로 그때.

    [게 섰거라! 미천한 것들아!]

    모두의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그림자가 있었다.

    다소 클리셰적인 존재.

    [이 문은 아무나 통과할 수 없다!]

    악마성의 문지기가 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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