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79화 (979/1,000)
  • 외전 105화 거인국(巨人國) (5)

    민주주의(民主主義, Democracy)

    국가의 주권이 국민 전체에게 있고 정치는 국민을 위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제도, 또는 그런 제도를 지향하는 사상.

    *       *       *

    [크아아아아!]

    머리들중에서도 최강의 빅헤드가 울부짓었다.

    빅헤드는 졸라짱쎄서 머리들중에서 최강이엇다.

    신이나 마족도 이겼다 다덤벼도 이겼다 빅헤드는 세상에서 하나였다.

    어쨌든 걔가 울부짓었다.

    “으악 제기랄 도망가자!”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도망갔다 빅헤드가 짱이었따.

    그래서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도망간 것이다.

    꼐속.

    “우와! 진짜 밸런스고 뭐고 신경 안 쓰고 만든 티가 나는구나!”

    “말도 안 되게 강하군. 투명드래곤급이야!”

    “히드라. 성체. 빅헤드. 로맨틱. 성공적.”

    “잡담 나눌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또 온다!”

    죠르디가 소리치자 모두들 고개를 숙였다.

    콰-콰콰콰콰콰쾅!

    모두의 머리 위로 빅헤드가 뿜어내는 독 브레스가 발사된다.

    그 뒤를 이어 수많은 머리들이 일사분란하게 브레스를 뿜어냈다.

    퍼퍼퍼퍼퍼퍼펑!

    사각지대가 없다.

    모든 범위가 죽음의 지대.

    이산하가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벌써 머리가 몇 개야!”

    히드라 빅헤드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수많은 머리들.

    그것들은 매듭을 끊고 자라나면서 엄청나게 많아졌다.

    심지어 몇몇 개는 지금도 새로 돋아나는 중이었다.

    이우주는 침음을 삼켰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며 넷은 여덟이 되는 것이 히드라의 머리지.”

    때문에 무턱대고 히드라의 머리를 파괴했다가는 오히려 더욱 많은 머리들에 둘러싸이기 마련이다.

    애초에 머리 하나를 파괴하는 것도 어마어마하게 힘든 일인데 기껏 파괴했더니만 머리가 둘로 늘어나게 되니 너무나도 막막한 일이다.

    솔레이크와 죠르디 역시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머리 하나 자르면 둘 돋아난다. 구두룡 특성.”

    “……아주 골치 아픈 특성이로군.”

    하지만.

    이우주는 이토록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도 오히려 눈을 빛내고 있었다.

    “저 구두룡 특성이 아주 골치 아프기는 하지만…… 어쩌면 저 특성이 오히려 돌파구가 될 수도 있을 거야.”

    “……?”

    “……?”

    “……?”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의아한 표정이다.

    히드라를 상징하는 최강, 최악의 특성이 오히려 이쪽에 도움이 될 수 있다니?

    하지만 이우주에게는 그 이유를 설명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일단 머리 수를 최대한 늘려 보자!”

    이우주의 오더에 의해 다시 한번 총공세가 시작되었다.

    이산하의 저격, 이우주의 작살, 솔레이크의 골렘, 죠르디의 칼날이 히드라의 머리 하나하나를 공격한다.

    …퍼퍼퍼펑!

    몇 개의 머리가 겨우겨우 끊어져 나갔지만 역시나 두 개의 새로운 머리가 돋아나 머릿수를 늘린다.

    그럴수록 히드라는 더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죠르디가 무릎을 쳤다.

    “그렇군! 알겠어! 히드라의 머리 수를 지나치게 많이 늘려서 무게중심을 어지럽게 만드려는 거지?”

    “아닌데?”

    하지만 이우주는 고개를 젓는다.

    “지금의 우리 힘으로는 애초에 히드라의 머리 수를 그렇게까지 많이 늘려 놓을 수가 없어. 작은 머리 하나도 엄청 강해서 이대로 가다간 모든 소모품을 소진한 채 전멸당할 거야.”

    “그, 그럼 어떻게 하지?”

    “……모험을 해 봐야지.”

    이우주는 마른침을 삼키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히드라의 수많은 머리들 너머에서 군림하고 있는 빅헤드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원 포 올(One For All)’이 아니라 ‘올 포 원(All For One)’ 그 자체이지?”

    이윽고, 이우주의 입에서 단호하면서도 결연한 대사가 흘러나왔다.

    “그런 너희들에게 참된 민주주의(民主主義)가 뭔지 알려 주마.”

    그 말을 듣는 순간.

    “?”

    “?”

    “?”

    세 여자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우주는 별다른 설명 없이 바로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빅브라더, 아니 빅헤드 하나의 통제하에 모든 개성과 자유를 박탈당한 다른 수많은 머리들에게 고한다.”

    비분강개(悲憤慷慨)한 웅변.

    이우주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너희 다른 머리들은 ‘민주주의’라는 것을 아느냐? 그것은 국가의 주권이 국민 전체에게 있고 정치는 국민을 위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제도, 또는 그런 제도를 지향하는 사상을 뜻한다!”

    뒤를 이어 민주주의의 역사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이어졌다.

    “민주주의는 약 기원전 500년경 그리스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며 이는 넓은 의미에서 민주 정부가 5세기 이전 세계의 여러 지역에 존재했다는 증거로…… 초기 인류에게 있어 민주주의라는 제도이자 사상은 자연적이며 또한 실용적으로 통용되었고…… 수렵 시대가 끝나고 농업과 무역을 위한 공동체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불합리와 불평등, 이로 인한 다툼을 통해 발전해 왔으며…….”

    제국주의의 몰락, 시장 경제의 발전, 그 외 각종 정치와 문화에 대한 내용이 이우주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다.

    …움찔!

    기분 탓일까?

    히드라 빅헤드의 통제하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던 작은 머리들의 움직임이 아주 약간, 정말로 미세하게 느려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우주는 계속해서 웅변했다.

    “한국의 민주주의 역시도 피를 마시며 자라 왔다! 올 포 원(All For One)! 하나를 위해 희생하는 전체가 과연 옳은 것인가! 수많은 운동권 열사, 민주투사들이 최루탄을 마시고 돌멩이를 씹으며 일궈 낸 기적이 바로 민주주의다! 비교적 최근에는 격렬한 민주화 투쟁의 끝에 완전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이룩한 미얀마를 그 예로 들 수 있지!”

    그리고 이우주의 웅변이 계속될수록.

    …움찔! …꿈틀!

    곳곳에서 작고 미약하지만 빅헤드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머리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크악!]

    그러자 빅헤드가 벼락같은 포효를 내질렀다.

    압도적인 흉폭함과 포악함으로 다시 한번 작은 머리들을 지배하는 것에 성공한 빅헤드는 흉물스러운 혓바닥 끝에서 독액을 질질 흘리며 시선을 돌린다.

    하지만, 이우주의 웅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선배 플레이어들은 자유가 실현됨과 동시에 모든 플레이어, NPC 몬스터는 천부적으로 평등하다는 원리가 충실하게 지켜지는 새로운 룰을 이 게임에서 탄생시켰습니다!”

    “우리는 지금 용과 악마가 일으킨 거대한 전쟁에 휘말려 있고 우리 선배들이 만든 게임이, 그렇게 잉태되고 그렇게 봉헌된 한 게임이, 과연 이 지상에 오랫동안 존재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 받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모인 이 자리는 거인과 악마, 용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졌던 곳입니다. 우리는 이 맵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친 존재들에게 마지막 안식처가 될 수 있도록 그 싸움터의 땅 한 뙈기를 헌납하고자 여기 왔습니다. 우리의 이 행위는 너무도 마땅하고 적절한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의미에서, 이 땅을 봉헌하고 축성(祝聖)하며 신성하게 하는 자는 우리가 아닙니다. 여기 목숨 바쳐 싸웠던 그 용감한 존재들, 플레이어, NPC, 몬스터, 전사자 혹은 생존자들이 이미 이곳을 신성한 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거기 더 보태고 뺄 것이 없습니다! 세상은 오늘 우리가 여기 모여 무슨 말을 했는가를 별로 주목하지도, 오래 기억하지도 않겠지만 그 용감한 존재들이 여기서 수행한 일이 어떤 것이었던가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싸워서 그토록 고결하게 전진시킨, 그러나 미완(未完)으로 남긴 일을 수행하는 데 헌납되어야 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들, 살아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 앞에 남겨진 그 미완(未完)의 큰 과업을 다 하기 위해 지금 여기 이곳에 바쳐져야 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입니다. 우리는 그 명예롭게 죽어 간 이들로부터 더 큰 헌신의 힘을 얻어 그들이 마지막 신명을 다 바쳐 지키고자 한 대의 대의(大義)에 우리 자신을 봉헌하고, 그들이 헛되이 죽어 가지 않았다는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신의 가호 아래 이 나라는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보게 될 것이며…….”

    마지막으로, 이우주는 히드라의 모든 머리들을 향해 강하게 외쳤다.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정부는 이 지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

    그러자.

    …우뚝!

    비로소 눈에 띄는 변화들이 일었다.

    그동안 이우주가 웅변을 하며 띄운 각종 시청각 자료들을 본 히드라의 머리들이 빅헤드의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크-아아아악!]

    그동안 억눌려 있었던 머리들이 반기를 들었다.

    그저 머릿수를 늘리기 위해 희생되어야만 했던 작은 머리들의 반란에 빅헤드는 약간 당황한 듯했다.

    콰직!

    빅헤드는 말을 듣지 않는 머리를 단숨에 물어 죽였다.

    츠츠츠츠……

    이윽고, 죽은 머리를 밀어내고 새로운 머리 둘이 돋아난다.

    하지만. 새롭게 돋아난 두 개의 머리 중 하나는 또다시 빅헤드의 명령을 거부하고 있었다.

    빅헤드는 그 머리를 또다시 물어 죽였지만 그 머리를 밀어내고 새롭게 돋아난 두 개의 머리 중에서 또 하나는 빅헤드의 명령을 거부했다.

    “민주주의는 아무리 탄압하고 짓밟아도 계속해서 후대로 이어져 간다! 마치 질기디질긴 풀뿌리(grass-roots democracy)처럼!”

    이우주의 말을 들은 이산하와 솔레이크도 신이 나서 외친다.

    “그래!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아직도 일두(一頭) 독재냐! 이 미개한 자식들아!”

    “독재 반대! 다두(多頭)에 의한 정치!”

    “……너네 괜찮겠어? 이 유튜뷰 방송은 아마 여러 국가에서 검열삭제될 텐데?”

    죠르디는 약간 걱정스러운 기색이었지만.

    [크-오오오오오오오!]

    일단 눈앞에 있는 히드라의 움직임을 억제시키는 것에는 성공한 듯했다.

    빅헤드는 수많은 작은 머리들을 물어 죽이며 울부짖었다.

    바로 그때.

    우지지지지직!

    히드라의 몸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이산하와 이우주가 경악에 차 소리친다.

    “헉!? 저, 저런 게 가능해?”

    “……나도 처음 봐.”

    히드라는 지금 수많은 히드라들로 분열하고 있었다.

    우지지지지지지직!

    빅헤드의 통제를 벗어난 작은 머리들은 자신의 몸을 몸에서 떼어 냈고 한 마리의 독자적인 뱀이 되어 뿔뿔이 흩어졌다.

    새롭게 돋아난 두 개의 머리들 중 하나는 빅헤드의 곁을 떠난다.

    수많은 머리들이 떠나고 난 뒤, 결국 빅헤드는 자신을 따르는 절반의 머리들만을 남긴 채 피를 흘리며 서 있게끔 되었다.

    [그르르르르르르……]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빛내는 히드라 빅헤드, 놈은 분명 이 처참한 상황에 대한 모든 책임을 눈앞에 있는 이우주에게 전가하고 있으리라.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가 식은땀을 흘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 그래도 남은 머리들이 엄청 많은데?”

    “여전히 강하다. 압도적.”

    “……으음, 최후의 독재자인 셈이로군. 이길 수 있을까?”

    그런 세 사람의 질문에.

    “물론.”

    이우주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이우주가 이토록 확신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곧 밝혀졌다.

    …기우뚱!

    ‘그’ 히드라 빅헤드가 몸을 휘청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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