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75화 (975/1,000)
  • 외전 101화 거인국(巨人國) (1)

    뉴스가 떴다.

    [속보] 뎀2, 처치할 수 없도록 설계된 보스 몬스터가 사냥당하다!? / 조회수: 16,029,872

    -데우스 엑스 마키나 2에서 스토리상 아직 잡혀선 안 되는 보스인 ‘황금의 용 아르파닉’이 4인의 모험가에게 사냥당하고 말았다.

    지난 21일, 유튜뷰 스트리머 ‘눈누난나내가니누나네’의 주도하에 레벨 70대의 유저 네 명이 모여 ‘미다스의 탑 5층’의 보스 몬스터인 ‘황금의 용 아르파닉’을 잡으러 떠났다.

    이 보스는 스토리상 지금 처치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앞으로 패치될 3차 대격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비중 있는 보스 몬스터이다.

    때문에 제작진은 ‘황금의 용 아르파닉’에게 무려 억대의 HP에 여러 가지 공략 방지 패턴을 걸어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4인의 모험가들은 수 시간이 넘는 장기전 끝에 ‘황금의 용 아르파닉’ 사냥에 성공했다.

    하필 ‘황금의 용 아르파닉’은 또 다른 곳에 숨겨져 있는 보스 몬스터인 ‘황금의 용 오메가닉’과 쌍둥이 형제라는 설정이었고 둘 중 하나가 죽으면 남은 하나도 따라 죽도록 설계되어 있었기에 결국 ‘황금의 용 아르파닉’이 사냥당함에 따라 ‘황금의 용 오메가닉’은 게임 세계에 등장하지 않은 채, 아무도 목격하지 못한 채 그대로 소멸해 버리는 참극이 일어났다.

    이에 뎀사는 현재 발칵 뒤집힌 상태이며 운영진 측에서는 아직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은 상태로……

    <댓글: 746,091>

    ㅇㅇ(182.31): 아니 뭔 일이야 이게???

    ㅇㅇ(37.4): 또 한국이냐...??

    ㅇㅇ(126.7): 잡지 말라고 만든 몹을 어케 잡았누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ㅇㅇ(32.6): 역시 근성의 한국인이다!

    ㅇㅇ(136.17): 오 저 스트리머 내가 구독하는 사람이네! ㅋㅋㅋㅋ언젠가 한번 일 낼 줄 알았음ㅇㅇ

    .

    .

    어찌나 파급력이 엄청난 사건이었는지 그날 저녁 공중파의 9시 뉴스에도 짧게 소개될 정도였다.

    *       *       *

    [흑흑흑흑흑-]

    농장의 한 오두막에서는 연신 흐느낌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커피콩 농장 탄두리-

    항상 이곳에 상주하고 있는 NPC는 농장주 레글리와 그의 아내인 마리이다.

    늘 탐욕스럽고 또 표독스러운 레글리는 항상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껏 그 어떤 플레이어들도 레글리가 다른 표정을 짓는 것을 보지 못했다.

    가령 지금처럼 펑펑 울고 있는 모습이라거나…….

    [흑흑흑흑흑흑흑흑- 그러셨군요, 번 아저씨. 그런 일이 있었던 거군요.]

    레글리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번의 일지를 가져온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가 묘한 표정을 지은 채 서 있었다.

    “별일이네. 아르파닉을 잡은 뒤에 집에 가려고 커피콩 농장으로 나왔을 뿐인데.”

    “갑자기 히든 퀘스트가 완료되다니 말이야.”

    “……레글리. 하디르와 무슨 상관?”

    “일단 조금 더 지켜보자고.”

    네 사람은 퀘스트 창에 적혀있는 기록을 살펴보았다.

    <히든 퀘스트를 ‘오래된 벗’을 완료하셨습니다!>

    <히든 퀘스트 발생 조건: ‘미다스의 탑 4층-인성의 시련’에 입장>

    <히든 퀘스트 수행 제한: ‘광부 번의 일지’를 소지한 자>

    <히든 퀘스트 완료 조건: ‘번의 일지’를 ‘NPC 하디르’에게 전합니다.>

    <※이 퀘스트는 별다른 보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아르파닉 레이드가 종료된 시점에서 미다스의 탑을 나와 기나긴 굴을 되돌아왔다.

    그리고 그들이 맨 처음으로 파고 내려온 ‘금 따는 콩밭’에 도착했을 때, 저절로 히든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뜬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농장주 레글리와 마리가 서 있는 상태였다.

    레글리는 번의 일지를 보면서 눈물을 펑펑 흘렸고 네 사람을 오두막으로 안내했다.

    그리고는 배경 히스토리를 풀기 시작했다.

    [이 일지에 등장하는 하디르가 바로 제 아버지입니다.]

    레글리의 말은 다소 놀라운 것이었다.

    [아버지는 한평생 번 삼촌을 미워하셨습니다. 하지만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번 삼촌을 용서한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지금 이 일지를 보니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애초에 번 삼촌은 아버지를 배신한 것이 아니었어요.]

    마리 역시도 눈물 젖은 시선으로 레글리를 위로했다.

    [저희가 지금껏 악독하고 표독스럽게 살았던 것은 유년 시절의 이 경험에서 비롯되었답니다. 시아버님이 그토록 믿었던 번 씨에게 배신당하신 것을 보면 세상에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었지요.]

    [소꿉친구였던 저희 부부는 그 뒤로 아무도 믿지 않은 채 살아왔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는 더더욱이요.]

    레글리는 번의 일지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삼켰다.

    [너무 뒤늦지 않았다면…… 제게 그럴 자격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온정을 베풀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을 모조리 할애해서요.]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이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든 우리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난 이 부부한테 착취당한 거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려.”

    “그래도 ‘악’ 성향의 NPC들이 ‘선’ 성향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좋은 일이야.”

    “레글리. 마리. ‘악’ 성향이라고는 해도. 결국에는 맨날. 당하는 역할.”

    “좋은 일 하나 했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냥.”

    마침 생각난 김에 이우주는 레글리에게 부탁 하나를 했다.

    “혹시 우리가 임대받은 땅 말이야. 거기에 마법진 하나 그려도 돼?”

    [선대의 은인이신데 그 정도야 당연하지요. 얼마든지 쓰십시오.]

    레글리는 이우주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했다.

    이산하가 물었다.

    “땅은 뭐 하려고?”

    “말했잖아. 마법진을 그린다고.”

    이우주는 말과 동시에 인벤토리에서 주문서 하나를 꺼내 흔들어 보였다.

    -<서큐버스 퀸의 알현> / 주문서 / S

    초고위 악마가 있는 ‘어떤 장소’로 통하는 순간이동 주문서이다.

    강력하고도 오만한 샛별의 힘이 담겨있기에 ‘격’이 떨어지는 이는 감히 사용할 수 없다.

    그것은 바로 델라에게서 받은 주문서였다.

    지금껏 이우주의 레벨 부족으로 인해 쓰지 못했던 아이템.

    하지만 아르파닉 레이드를 마치고 70레벨대로 올라온 이우주라면 이제 이 아이템을 쓰는 데에 아무런 지장도 없다.

    “어디로 통하게 될지 몹시 궁금한걸? 아마 악마성좌 루시퍼, 혹은 그의 핵심 권속이 있는 곳으로 이동할 것 같은데.”

    “루시퍼의 핵심 권속이라. 그렇다면 파이몬, 아니면 단탈리안인가?”

    “맞아. 태양룡 바이어스의 산하에 아르파닉과 오메가닉이 각각 왼팔과 오른팔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면 오만의 성좌 루시퍼의 산하에는 파이몬과 단탈리안이 있지. 이미 예전에 공개된 바와 같이.”

    이산하의 질문에 이우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장을 켰다.

    -띠링!

    그곳에는 전직 서큐버스 퀸이었던 델라가 루시퍼에 대해 알려 준 각종 정보들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루시퍼 역시도 나를 배신했으니 내가 그를 배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모두가 알고 있듯, 그는 ‘샛별(Lucifer)’을 관장하는 악마야.]

    [하지만 샛별은 아무리 밝고 뜨겁다고 해도 태양에 미치지 못하지.]

    [루시퍼는 그 때문에 어마어마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어. 자신이 태양의 위치를 차지하기를 바라지.]

    [그가 태양룡 바이어스를 비롯한 황금비늘 일족을 적대시하는 이유가 바로 그거야.]

    [그런데 루시퍼와 바이어스, 이 둘이 손을 잡고 용마동맹을 개최하려 한다고? 나는 절대로 그 말 못 믿어. 아마 둘 다 서로의 뒤통수를 칠 생각으로 가득할걸?]

    .

    .

    태양을 시기하는 샛별.

    오만의 악마성좌가 가지고 있는 뿌리 깊은 열등감에 대해서 델라는 많은 정보들을 넘겨주었었다.

    그 덕에 이우주는 오만의 악마군단과 황금비늘 용족이 대립하는 이유는 결과적으로 루시퍼의 뿌리 깊은 시기와 열등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델라의 증언에 의하면…… 루시퍼는 아주 값비싸고 귀한 공물을 바쳐야만 알현을 허락해 준다지?”

    이우주의 말에 죠르디가 눈을 빛냈다.

    “그렇군! 그래서 그때 네가 그런 말을 했었던 거구나!”

    이산하와 솔레이크가 의아한 표정으로 죠르디를 돌아본다.

    죠르디는 과거 ‘흑해의 무영왕’ 레이드가 막 끝났을 당시를 회상하고 있었다.

    그때 이우주가 했던 대사를 말이다.

    ‘이 구슬을 가장 비싸게 쳐줄 녀석을 하나 알고 있기는 하지.’

    당시 이우주는 ‘황금룡의 용옥’ 아홉 개를 처분할 생각이라고 말했었다.

    ‘시간이 지나면 휘발되는 아이템 같으니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팔아치울 생각이야.’

    ‘에엥? 그거 팔게? 조금 아까운데. 일단 인벤토리나 창고에 키핑해 두는 건 어떨까? 나중에 어딘가 쓸데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나름 용을 잡아야 얻을 수 있는 재료 아이템인데.’

    ‘이건 제한시간이 다 지나면 소멸하는 아이템이야. 우리가 상자를 연 시점에서 바로 카운트다운이 시작됐어. 우리에게는 이 아이템을 연구할 만한 시간이 없어. 그리고 이건 오히려 팔았을 때 더더욱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아이템일 거야. 내게 생각이 있으니 믿어 줘.’

    ‘우주. 그것 어쩌려고 그러나? 판다고 한다면 shop에 팔 건가? NPC마다 희망소비자가격 천차만별. 소비자가 한 번도 희망한 적 없는 가격. 조심해야 한다.’

    ‘아니. 상점에는 안 팔 거야. 이런류의 재료 아이템들은 거래되는 가격이 천차만별이니까. 어떤 상인 NPC가 가격을 제일 많이 쳐줄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는 조금 무리지.’

    ‘그래. NPC에게 파는 것은 바보짓이야. 차라리 경매장에 올려서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경합을 시키는 편이 나아. 내가 잘 아는 블랙마켓이 있는데 원한다면 소개해 줄 수도 있지. 그쪽은 조금 구린 루트이기는 하지만 세금이 아예 0%라서 상당히 메리트가 있거든.’

    ‘아니. 플레이어들에게도 안 팔 거야.’

    플레이어도, NPC도 아닌 ‘몬스터’에게 말이다.

    이우주는 아무래도 용옥을 공물로 써서 루시퍼를 알현할 생각인 것 같았다.

    “자, 아무튼. 이제 가 보자고. 용마동맹의 마지막 무대로!”

    “호우!”

    이우주는 손에 주문서를 든 채 외친다.

    세 여자도 힘차게 주먹을 들어 올려 이에 호응했다.

    출항(出航).

    바야흐로 마지막 무대를 향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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