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72화 (972/1,000)
  • 외전 98화 머니 게임(Money Game) (6)

    “마, 말도 안 돼. 이 코인이 왜 이렇게?”

    이우주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눈앞에 있는 가상화폐 계좌를 바라보았다.

    “그럴 리가 없어! 분명 철저히 분석했다고! 모든 변수들을 다 종합해서 고려한 결과 이건 앞으로 떡상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는데! 당대의 석학들도 다 그렇게 말했다고! 세상일에 시니컬하기 그지없는 딥웹의 현자들 역시도 이 코인만큼은 믿었는데……!”

    이우주는 드물게도 말까지 더듬는 모습을 보이며 패닉에 빠진다.

    “뭐, 뭐가 문제였지? 분명 아무런 문제도 없었는데? 그래프 초반부에 엄청난 기세로 성장해서 그 해에 런칭했던 모든 코인들을 통틀어 최고의 성적을 거뒀었지. 그리고 그 기세는 쭉쭉 이어졌어. 그래프 중간에 눌림목이 조금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물량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해소될 문제였고…… 뭐가, 뭐가 문제야! 왜 이렇게 미친 듯이 떨어진 거냐고! 그간의 이평선들하고도 완전히 따로 놀고 있잖아! 파동이 문제였나? 아니면 코인의 내부가치에 변동이 일어난 건가? 무슨 일이야 이게!”

    이우주는 전 재산을 몰빵한 코인이 미친 듯이 바닥을 뚫고 지하실을 파고들어 무저갱까지 꼬라박히는 것을 보며 절규했다.

    이윽고, 이산하의 방송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이 해당 가상화폐가 떡락한 이유를 알려 주기 시작했다.

    -보니까 주포가 개미들 말 무시하고 제멋대로 핸들링하다가 꼬라박힌거 같은데?

    -↳이래서 코인도 소통이 중요하다 이말이야~

    -↳그냥~ 핸들이 고장난 8톤트럭~

    -↳원래부터 개노답 코인이었음 이거ㅋㅋㅋㅋ

    -↳ㅠㅠㅠㅠ난 손절도 못하고 있음...

    -이거는 장기투자용 우량 코인이다 이거야~~~ 존버는 승리한다! 존나버텨!

    -↳마지막에 회복할거라 믿고있음ㅋㅋㅋㅋ

    -↳네 상상 속에서만 말이야;;;

    -↳ㄴㄴ아님! 공시 보면 3주 안에 밀리언코인 등극할 예정이라구~~~

    -근데 농담 아니고 이거 진짜 왜 떨어지는거임?

    -↳이거 해외시장의 한 큰손이 이름이 마음에 든다고 풀매수해서 올라갔는데 그 큰손이 나중에 이름이 마음에 안 들어졌다고 다시 풀매도해서 떨어지는거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친...한 사람의 변덕으로 이렇게 올라갔다가 이렇게 떨어진다고???

    -이래서 코인은 도박판이다 이겁니다~~~~

    -위에서 주포니 핸들링이니 소통이니 하는 애들은 다 코알못이고..이번에 과대낙폭 이유는 해외 큰손 하나가 이름 잘못알고 샀다가 에라 싶어서 다시 팔아서 그럼ㅋㅋㅋㅋ

    -↳이거 진짜임?

    -↳진짜네;;;뉴스 기사도 떴네;;;;

    -↳이게 왜 진짜임?

    -↳이왜진?

    .

    .

    이우주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한 사람이 실수로 샀다가 아차 싶어서 판 것으로 이렇게나 엄청난 낙폭이 생길 줄이야.

    이렇게나 어이없고 하잘것없는 이유로 떡상하고 떡락하는 것이 코인의 성질이라던가.

    허탈한 표정으로 멍하니 선 이우주의 앞으로 아르파닉이 쏘아 보낸 브레스가 날아든다.

    [하-하하하하하! 꼴 좋게 됐구나, 버러지야! 뒈져라!]

    아르파닉은 브레스를 마구 쏟아 내며 광소를 터트렸다.

    [채굴꾼? 코인 투자? 멀쩡한 콩밭을 갈아엎고 황금을 따겠다는 멍청이들보다 훨씬 더 어리석고 한심한 것들이로다!]

    펄펄 끓는 황금이 뜨거운 돌개바람에 섞여 터져 나온다.

    그것은 수익률 –99.99%를 기록한 계좌를 통과하며 데미지가 +99.99% 폭증했다.

    “이우주! 너 죽을라고 환장했냐!”

    이산하가 황급히 동생의 목덜미를 낚아채고 뒤로 빠졌다.

    이우주는 무기력한 태도로 흐늘흐늘 딸려 왔다.

    땡볕에 내팽개쳐진 해파리 같은 모양새였다.

    “누나…… 난 끝이야…… 유딩 때부터 모았던 세뱃돈이랑 용돈 다 날렸어…….”

    “야이 씨! 그거 얼만데!?”

    “56만 원.”

    “중딩한테는 큰돈이긴 하다! 그래도 인마! 그거 때문에 목숨을 포기할 거야!? 아빠를 뛰어넘겠다며! 아빠가 고작 56만 원 때문에 그렇게 축 처져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아빠는 56만 원이 아니라 5만 6천 원에도 축 처지는걸…….”

    “……음. 맞아. 엄마 몰래 책갈피 속에 비자금 숨겨 놨다가 딱 걸린 적 있었지. 그때 아빠 엄청 시무룩해졌었어. 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저 보스 몬스터에게 쓰러지면 안 되지!”

    이산하가 버럭 소리 지르자 이우주는 비로소 조금 기운을 차렸다.

    “그, 그건 그래.”

    “기운 내라고! 고작 계좌 하나가 마이너스일 뿐이잖아! 다른 계좌들도 까 보자고!”

    이산하의 격려에 이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다른 가상화폐 계좌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19.87%

    -23.66%

    -38.25%

    (……거래소가 응답하지 않습니다……)

    -44.44%

    -58.98%

    -69.96%

    (……거래소가 응답하지 않습니다……)

    -76.58%

    -89.12%

    -98.16%

    (……거래소가 응답하지 않습니다……)

    .

    .

    거짓말처럼.

    진짜 거짓말이어야만 할 것처럼.

    이어지는 계좌들은 모조리 다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심지어 중간중간에 있는 계좌들은 아예 거래소가 문을 닫고 잠수를 타 버리는 바람에 접속도 안 되고 있는 형국이다.

    “으으으…… 남자는 개잡주라고 종토방 아저씨들이 그랬는데…….”

    “종목토론방은 앞으로 거르는 게 좋겠다. 우주.”

    “너무 심려치 마. 원래 코인이라는 게 그렇다잖아.”

    시무룩해진 이우주를 솔레이크와 죠르디가 위로해 준다.

    레이드 도중에 닷지해 버린 것도 충분히 이해해 줄 만한 상황이었다.

    한편, 황금룡 아르파닉은 한껏 기세가 오른 상태였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것 봐라! 가상화폐라는 것은 결국 도박판의 칩! 도박판이 사라지면 가치를 상실하는 플라스틱 쪼가리에 불과하다! 아니, 플라스틱은 실체라도 있겠지!]

    아르파닉은 숨을 한껏 크게 들이마신 뒤 짧게 끊어서 내뱉었고.

    콰-콰콰콰콰콰쾅!

    그렇게 주변에 크고 작은 수많은 폭발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일으켰다.

    [투자라는 것은 모름지기 가치투자! 장기투자! 비전투자! 충분한 가치가 있는 종목을 연구하고 조사하고 발굴한 뒤에 조금씩 조금씩 분산과 분할을 통해 입성하는 것이 정석이다! 안전자산 40%, 미래지향적 자산 30%, 모험 자산 30%로 비중을 나누어 리스크를 적절하게 분담하는 것이 바로 자산관리의 원칙! 항시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하고 노력해서 그것을 관리하여 가꾸어 나가는 것이 바로 재테크인 것이다! 하지만 네놈은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그저 한 방을 노리려는 글러먹은 마음가짐으로 투기를! 아니 도박을 했지! 족보는커녕 하다못해 포트폴리오도 없는 놈이 감히 어디서 투자를 운운해!]

    한껏 의기양양해진 골드 드래곤의 자신감은 곧 아우라로, 그 아우라는 곧 파괴적인 브레스로 발산된다.

    이우주는 특유의 민첩한 움직임으로 폭발을 피했으나 결국 온몸에 화상을 입은 채 바닥을 나뒹굴 수밖에 없었다.

    “……크윽.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저 말이 맞는 것 같아. 내가 잘못 생각했던 거야.”

    푸른빛으로 가득한 코인 계좌를 본 이우주는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솔레이크와 죠르디도 고개를 끄덕였다.

    “Oh…… 우주. 처음 본다. 기세 꺾인 모습. 그만큼 위험하다. 코인.”

    “나는 절대 코인 같은 거 안 해야지. 건전한 투자 습관을 들여서 정석적인 재테크를 해야겠어.”

    “…….”

    하지만. 유독 이산하만큼은 아까부터 말이 없다.

    “…….”

    이산하는 아까부터 혼자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때론 고개를 갸웃하거나 의미 없어 보이는 숫자들의 나열을 중얼중얼거리면서.

    “뭐였지? 아, 진짜. 알았는데? 나 안 무식한데? 아…… 기억이 날 듯 말 듯?”

    그때. 아르파닉이 또다시 브레스를 뿜어 왔다.

    이우주는 이를 악물었다.

    “분하지만 일단은 피하자! 내 분석력으로도 이 상황은 어떻게 헤쳐 나갈 수가 없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이 보이지 않는다.

    나름 십수 가지의 선택지들이 있었으나 그 중 아르파닉을 이기는 경우의 수는 단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최대한 경험치 손실이 적게 나게끔 사망하는 쪽을 찾는 편이 빠르리라.

    [투자의 세계를 감히 예측하려 한 것이 네놈의 패인이다! 자격 없는 오만의 대가는 곧 죽음 뿐!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거라, 미물아!]

    아르파닉은 거대한 입을 쩍 벌린 채 숨을 들이켰다.

    대량의 공기가 황금룡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용광로처럼 불타오르는 가슴팍 속에 벌겋게 고인다.

    [일시적이긴 했지만 제법 성가셨다! 인정하마! 그에 대한 예우로 최고 출력으로 죽여 주마아아아아아!]

    황금 비늘 일족의 초엘리트가 온 힘을 다해 내지르는 풀파워 차지 브레스(Full Power Charge Breath).

    저런 것에 맞는다면 아마 전신이 흔적도 없이 녹아내릴 것이다.

    ‘아마 최고 레벨의 사망 패널티를 받게 되겠지.’

    이우주는 이를 악물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래도 상정할 수 있는 패들 중 최악의 패가 나온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3027? 아니다 0327이었나? 그게 1차였고, 2차가 789……? 아 뭐였지. 기억이 날 듯 말 듯?”

    아까부터 계속해서 뭔가를 중얼거리던 이산하.

    그녀는 이렇게 급박한 위기의 순간에서도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하며 무언가를 생각 중이다.

    “……?”

    이우주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물었다.

    “뭐 해, 누나?”

    “아, 생각 좀 하고 있었어.”

    “뭘?”

    “내가 아까부터 그랬잖아. 가상화폐 말이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았다고.”

    이산하의 대답을 들은 이우주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가상화폐…… 가 뭐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아, 모르는 거는 아니고. 그냥 좀 잠깐 생각이 날 듯 말 듯…… 아니야! 나 안 무식해! 으앙!’

    ‘알긴 아는데…… 잘은 몰라. 그냥 오래 전에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그런 느낌.’

    ‘뭐였지? 아, 진짜. 알았는데? 나 안 무식한데? 아…… 기억이 날 듯 말 듯?’

    확실히 이산하는 아까 전부터 계속해서 가상화폐에 대해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본인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무언가를

    그저 무력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이우주는 별다른 기대 없이 이산하에게 물었다.

    “대체 뭐가 기억이 안 난다는 거야?”

    “그게…….”

    이산하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가상화폐 말이야. 내가 엄청 오래 전에 피자 시켜 먹으려고 사 놨던 게 조금 있는 것 같아서.”

    “……뭐?”

    이우주가 되묻자 이산하는 재차 대답했다.

    “아니. 내가 초딩 때였나? 어쩌면 더 어렸을 때일 수도 있는데. 그때 누가 코인인지 뭔지로 인터넷에서 피자 시켜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심심해서 문상 긁고 남은 짜투리 캐쉬랑 마일리지들 모아서 코인 몇 개 샀었거든. 그 코인 이름이 좀 가물가물해서 말이야. 아이디랑 비밀번호도 기억 안 나고. 비밀번호가 뭐 대충 3027이었나? ……아휴, 모르겠다. 포기할란다. 괜히 희망고문만 될라.”

    이산하는 손사래를 치며 멋쩍게 웃었다.

    하지만 이우주의 표정은 아니었다.

    …터억!

    일순간 급변한 표정을 지어 보인 이우주는 더없이 진지하고 다급한, 절박하면서도 처절한 기세로 이산하의 양 어깨를 붙잡았다.

    “내가 알아!”

    “……엥?”

    “내가 안다고! 누나 아이디랑 비밀번호!”

    “니,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누나는 쵸- 단순한 인간이라서 맨날 쓰는 아이디에 쓰는 비밀번호만 쓰잖아! 누나는 맨날 헷갈려 해도 나는 다 기억해! 분명 아이디는 dltksgk3027에 비밀번호는 78963214겠지! 아이디의 영어는 이산하를 영타로 옮긴 거고 뒤에 3027은 누나 생일! 삼월 이십칠일! 원래는 0327로 해야 맞는데 누나는 어렸을 적에 바보라서 3월을 30월로 표기해야 하는 줄 알고 그렇게 아이디를 생성했고 그 뒤로 중딩 때까지 쭉 그 번호를 썼었어! 비밀번호는 외우기 귀찮다고 키보드 우측의 숫자 키를 그냥 ㅁ모양으로 쭉 이어서 누른 거였고!”

    “어? 어어? 어어어?”

    정신없이 빠른 이우주의 속사포 랩에 이산하는 멍한 표정을 짓는다.

    “에잇! 저리 비켜! 내가 찾는다!”

    이우주는 이산하를 밀치고 그녀의 명의로 된 가상화폐 계좌를 켰다.

    이윽고 각 거래소별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창이 뜬다.

    타다다다다다닥!

    이우주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쳤다.

    그러자 요란한 알림음들이 연달아 뜨기 시작했다.

    -띠링!

    <존재하지 않는 계정입니다.>

    -띠링!

    <존재하지 않는 계정입니다.>

    -띠링!

    <존재하지 않는 계정입니다.>

    -띠링!

    <존재하지 않는 계정입니다.>

    .

    .

    -띠링!

    <접속 완료!>

    수많은 거래소 창들 중 로그인이 되는 거래소 창이 하나 있었다.

    <이산하 님의 접속을 환영합니다.>

    <오랜 시간 휴면 상태로 있었던 계정입니다.>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알림 메시지를 본 이산하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 맞아! ‘캡틴땃쥐&소라게 코인거래소’! 여기였다 참. 거래소 이름이 귀여워서 골랐었는데. 추억이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냐!”

    이우주는 재빨리 보유 코인 현황 및 수익률을 알려 주는 창을 눌렀다.

    그리고 그 창이 뜨기 직전의 짧은 순간, 이산하에게 물었다.

    “근데 무슨 코인을 얼마나 샀던 거야?”

    그러자 이산하는 약간의 생각 끝에 대답했다.

    “‘레밟코인(LBC)’이었나? 그리 많이는 안 샀어. 100원짜리 코인 100개. 만 원 어치 좀 안 되게 샀던 것 같은…….”

    그때.

    -띠링!

    계좌가 떴다.

    그 안에 기록되어 있는 숫자들이 이산하와 이우주의 대화를 잠시 끊었다.

    이윽고.

    약간의 침묵 끝에, 이우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맨 처음에 얼마 어치 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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