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68화 (968/1,000)
  • 외전 94화 머니 게임(Money Game) (2)

    금. 金. Gold.

    원자 번호 79.

    원소 기호 Au.

    원자량 196,967.

    황색의 광택이 도는 금속 원소.

    퍼지는 성질과 늘어나는 성질이 크며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되어 있고 공기 중에서도 산화되지 않는다.

    왕수나 플루오린계 산을 제외하면 부식되지 않고 전도성, 연성, 전성이 매우 좋아 공업에서도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

    인류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금속들 중 하나로 대부분의 시대, 대부분의 국가에서 환금성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금속의 왕이다.

    고대로부터 ‘태양’을 상징해 왔으며 그 때문에 ‘높은 것’, ‘신’, ‘빛’, ‘권력’, ‘영광’, ‘믿음’, ‘거룩하고 신성한 것’의 상징으로도 통한다.

    *       *       *

    [인간이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여!]

    아르파닉은 말했다.

    [나는 네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들어줄 수 있다. 부? 명예? 권력? 인간이여. 네가 그 모든 것들을 얻는 대가로 바쳐야 할 것은 오로지 하나, 충성뿐이로다. 인간이라는 하등한 종족으로 태어난 것은 네 죄가 아니다. 들어라 인간아! 생각하라 인간아! 네 삶에는 얼마나 얼룩 같은 오욕이 많았던가! 비루함을 원죄삼아 살아가는 것은 슬픈 일. 이것은 네가 고귀한 상위종족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기회로다! 붙잡아라! 종족을 바꿀 수 있는, 이 말도 안 되게 파격적인 기회를!]

    리자드맨이 되라는 제안.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리자드맨…… 될 거야?”

    “당연히 아니지. 제안이 오면 거절하기로 했잖아.”

    “근데. 쫌 끌린다. 호기심. 상위종족. ???. 이게 뭔지.”

    “거절하겠다고 마음먹고 왔는데도 좀 혹하네. 이게 황금의 마수인가.”

    황금은 사람의 눈을 돌게 만든다. 나아가 멀게 만들기도 한다.

    아르파닉의 제안은 이곳에 산더미처럼 쌓인 황금향보다도 더 매력적인 것이었다.

    이우주는 중얼거렸다.

    “황금 비늘 일족의 리자드맨이 되어 황금룡 아르파닉의 산하로 들어간다면 분명 레벨도 폭등하고 기본 스탯 자체도 높아질 거야. 하지만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은 태양룡 바이어스잖아. 황금 비늘 일족의 최고 존엄을 사냥해야 하는데 그 밑의 밑으로 들어가 버리면 안 되는 일이지.”

    그 말에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역시 인간이 최고야! 사람이 먼저다!”

    “Neutral. 중립국.”

    “인간은 기본 스탯이 제일 낮은 종족이지만 용 계열 몬스터와 악마 계열 몬스터 양쪽을 다 사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 그래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게 좋다.”

    결국 이우주는 아르파닉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우주, 눈누난나내가니누나네, 0개국어능력자, (계정정보없음) 님이 ‘황금룡의 가호’를 받아들이게 될 경우 일반적인 리자드맨의 상위종인 ‘???’로 진화하게 됩니다.>

    그러자.

    꾸구국-

    아르파닉의 미간 사이가 구겨졌다.

    [그러고 보니 네놈들에게서는 불쾌한 냄새가 나는구나. 그 작살 같은 것은 무엇이냐?]

    아르파닉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이우주가 들고 있는 ‘태양살의 화살’이었다.

    한때 악마성좌였던 마몬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화살대에 태양살의 힘이 담겨져 있는 화살촉이 붙어 있는 것이니 황금 비늘 일족의 용에게는 상당히 불쾌한 물건이리라.

    [너절한 것들아. 내 제안을 거절한 이상 살아서 돌아가지 못하리라.]

    아르파닉은 바로 공격을 개시했다.

    “온다!”

    이우주가 외치는 즉시, 이변이 터졌다.

    쿠-드드드드드득!

    주변에 있던 금화들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그것들은 하나하나가 기관총이 쏘아내는 총알처럼 빗발쳐 들어왔다.

    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

    주변의 지형이 변한다.

    총알처럼 날아드는 금화들과 대포알처럼 금괴들이 금고 안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이산하는 날아드는 황금의 폭풍을 요리조리 피해 바닥을 굴렀다.

    “오? 어째 탄막(彈幕)의 패턴이 익숙한데?”

    “보니까 ‘황천의 뱃사공 고르딕사’가 가진 공격 패턴의 상위호환 같아. 속도는 빨라도 탄막의 패턴 자체는 동일해!”

    이우주는 날아드는 금화와 금괴들을 피하며 외쳤다.

    원 모양을 그리며 날아드는 금화의 소나기, 채찍의 형상으로 휘둘러지듯 날아오는 금괴 포탄, 그것들은 서로 복잡한 모양과 무늬를 그리며 얽히고설킨다.

    콰쾅! 펑! 콰르릉!

    곳곳에서 금화의 언덕들이 무너져 내렸고 황금 부스러기들이 만들어 내는 분진이 금고의 천장까지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마치 대규모의 포격전이라도 벌어진 듯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이우주는 이 모든 난관과 장애물, 함정들을 뚫고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1.e4 e5, 2.f4 exf4, 3.Bc4 Qh4+, 4.Kf1 b5.’

    ‘5.Bxb5 Nf6, 6.Nf3 Qh6, 7.d3 Nh5, 8.Nh4 Qg5.’

    ‘1.e4 e5, 2.f4 exf4, 3.Bc4 Qh4+, 4.Kf1 b5, 5.Bxb5 Nf6, 6.Nf3 Qh,6 7.d3 Nh,5 8.Nh4 Qg5, 9.Nf5 c6, 10.g4 Nf6, 11.Rg1 cxb5, 12.h4 Qg6, 13.h5 Qg5, 14.Qf3 Ng8, 15.Bxf4 Qf6, 16.Nc3 Bc5, 17.Nd5 Qxb2, 18.Bd6 Bxg1, 19. e5 Qxa1+, 20. Ke2 Na6, 21.Nxg7+ Kd8, 22.Qf6+ Nxf6……’

    머릿속에서는 아빠가 보였던 기계와도 같은 움직임이 떠오르고 있었다.

    “고르딕사는 분명 첫 클리어 당시의 탄막 패턴 사출값이 1851년 6월 21일 아돌프 안데르센(Adolf Anderssen)과 라이오넬 키세리츠키(Lionel Kieseritzky)가 펼쳤던 명승부, 일명 ‘임모탈 게임’에 맞추어서 설정되어 있었어. 그렇다면……!”

    황천의 뱃사공 고르딕사가 그랬듯, 황금룡 아르파닉의 패턴 역시도 첫 레이드 때는 같은 기준값을 가진 모양이다.

    이우주는 힘차게 외쳤다.

    “아르파닉이 쏘아 보내는 황금 탄알들은 어그로를 제일 많이 끈 유저를 중심으로 반경 17미터를 체스 판으로 인식해! 내가 체스의 폰이 된 것 같으니 체스말의 패턴으로 거리를 좁혀올 거야!”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이우주의 오더가 이어졌다.

    “백의 왼쪽 아래를 기준점으로 잡고 세로 열은 좌측에서 우측으로 알파벳 a에서 h까지! 가로 열은 아래에서 위로 아라비아 숫자 1에서 8까지를 조합하여 표기할게! 체스의 말들은 알파벳 이니셜로! 그러니까 킹은 K, 퀸은 Q, 비숍은 B, 나이트는 N, 룩은 R, 폰은 P로 하겠다는 소리야! 알겠지!?”

    “아, 완벽히 이해했어.”

    세 여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우주 역시도 고개를 마주 끄덕였다.

    “좋아! 다음 기보 패턴은 Be7#겠지. #는 체크메이트를 뜻하니 여기서 큰 것을 한 방 날려 올 거야. 이크! 위험할 뻔했군. 내 말이 맞지? 체스 기보를 좌표화해서 외운 뒤 그대로 움직이기만 한다면 피하는 것은 쉽다고! 예전에 아빠가 했던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해도 되니까!”

    눈 깜짝할 사이에 탄알들을 뒤로 제껴 버린 이우주는 이내 아르파닉의 코앞까지 접근했다.

    ……그리고.

    ‘이제 체크메이트(#)다.’

    “이제 체크메이트(#)다!”

    먼 옛날, 아빠가 외쳤던 대사를 그대로 따라 외치며 작살을 내질렀다.

    퍼-엉!

    태양살의 힘을 담은 작살 끝이 황금 비늘의 겉면을 두드린다.

    …퍼퍼퍼퍼퍼퍼퍼퍽!

    운까지 따라 주었음일까? 추가 타격 역시도 9번이나 들어갔다.

    [……!]

    아르파닉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하게 몸을 옆으로 틀었다.

    하지만 분명 유효타는 들어갔다.

    아르파닉의 양 미간 사이에 깊게 패인 골이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착!

    이우주는 뒤로 공중제비를 돌며 바닥에 착지했고 다시금 자세를 고쳐 잡았다.

    “먼 옛날, 아빠는 황금 속성을 가진 A+급 몬스터를 상대로 싸웠지. 그리고 나는 그런 아빠의 공략과 의지를 이어받아 황금 속성을 가진 S급 몬스터를 상대하는 거야. 이 정도면 세대가 지남에 따라 제법 발전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자뻑은 좀 이따 해라! 또 쏘잖아!”

    뒤에서 불쑥 튀어나온 이산하가 이우주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이우주가 앞으로 납작 쓰러진 직후 그 위로 묵직한 금괴 덩어리가 포탄처럼 날아가 터진다.

    콰콰콰콰쾅!

    이윽고, 아르파닉이 공격 패턴을 바꾸기 시작했다.

    [감히 하찮은 미물 따위가 나의 몸에 상처를 남기다니…… 용서가 가능한 범주를 넘어선 중죄로다!]

    방금 전까지 탄막슈팅 게임의 탄알들처럼 날아들던 것이 이제는 아예 채찍의 형상처럼 변했다.

    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

    아르파닉이 분노함에 따라 체온이 급상승했다.

    가뜩이나 높은 용족의 체온은 주변의 금을 녹아내리게 만들 정도로 뜨거운 것이었다.

    금이 녹아서 끓기 시작했다.

    고체와 액체의 사이에서 꿀처럼 걸쭉하게 늘어지는 금을 아르파닉은 채찍처럼 휘둘렀다.

    키리릭- 짜악! 철퍽!

    휘둘러진 황금 채찍은 바닥에 닿아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경악했다.

    “으윽! 이게 뭐야! 고체도 아니고 액체도 아니고, 되게 애매한 채찍이네! 심지어 엄청나게 길고 굵어서 피격 범위가 장난이 아니야! 어떻게 평타가 광역기일 수 있냐고!”

    “무작위. 복잡한 패턴. 한 줄기. 한 줄기. 강력한 damage! 피할 수 없다. 즐길 수도 없다!”

    “심지어 채찍의 끝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면서 파편을 튀기고 있어. 스플레쉬로 들어가는 금속 데미지랑 열 데미지도 장난 아니야.”

    눈앞으로 어지럽게 휘둘러지고 있는 아르파닉의 황금 채찍은 도무지 패턴을 예측할 수가 없는 복잡하고 기기묘묘한 것이었다.

    그저 무작위로 휘둘러지고 있다고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 그러한 극한 난이도의 필살기.

    채찍 솜씨가 대단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어둠 대왕이나 아몬 후작, 여덟 다리 대왕, 아스모데우스에 필적할 정도로 대단한 기술이었다.

    ……하지만.

    “제법 복잡한 줄넘기로군.”

    이우주는 눈앞으로 날아들고 있는 아르파닉의 황금 채찍을 보면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이윽고, 이우주의 시선이 채찍이 만들어 내고 있는 파동을 분석한다.

    →↗↘↓→↗↑→↴↳↱⤴↝⤼⤻↗⤳→↘↯↺……

    황금의 궤적은 복잡한 종파와 횡파를 그리며 몰아친다.

    그리고 그것이 좌우로, 상하로 움직일 때마다 이우주는 그 모양을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었다.

    몇 초 뒤.

    “……그렇군.”

    식(式)을 세우는 것에 성공한 이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예상대로의 패턴이었어.”

    해(解)를 찾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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