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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966화 (966/1,000)
  • 외전 92화 세 가지 관문 (7)

    …탁!

    광부 번의 일지가 다시 이우주의 손에 들어왔다.

    <광부 번의 일지>

    -날짜 모름--

    부디 나의 기록을 벗 하디르에게 전해 주었으면 좋겠다.

    내게 친구를 버리고 도망쳤다는 오욕과 불명예를 씻어 낼 기회를 주기를.

    죽은 뒤에라도 친구가 나의 진심을 알아주기를 그저 바랄 뿐이다.

    “꼭 그렇게 할게요.”

    이우주는 일지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한편.

    “우와!”

    “Can not believe it!”

    “……이래서 ‘인성의 시련’이었군.”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깜짝 놀라고 있었다.

    집 안에 들어오는 순간 모든 바람들이 마치 일시정지라도 된 것처럼 뚝 멎었기 때문이다.

    [캬-오오오오오오오!]

    집 밖으로는 대풍이 질러 대는 괴성이 연신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태풍에 초토화되고 있는 집 밖의 풍경과는 달리 집 안쪽으로는 한 가닥의 바람조차도 들어오지 않는다.

    완벽한 무풍지대.

    주변의 모든 지형을 통틀어 가장 안전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이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번 씨와의 의리를 저버린 채 일지를 버리고 도망쳤다면 분명 대풍에게 살해당했을 거야. 그리고 그 이후 몇 번을 재도전하더라도 대풍을 사냥하지 못했겠지.”

    “하지만 좋은 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번 씨와의 의리를 목숨 걸고 지킬 거고 날아가 버린 일지를 찾으러 오는 과정에서 이 집이 안전지대인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거지?”

    이산하의 질문에 이우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맞아. 하지만 이 집은 단순히 바람이 통하지 않는 안전지대의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야.”

    이우주의 말에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오른다.

    이윽고, 이우주는 집의 가장 구석진 곳으로 걸어갔다.

    번의 일지가 떨어져 있던 굴뚝의 벽난로.

    이우주는 일지가 있던 자리에 서서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지붕 위로 통하고 있는 긴 굴뚝이 있었고 그 끝에는…….

    “보인다. 대풍의 목!”

    이우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가 달려왔다.

    “어디! 어디! 나도 좀 봐!”

    “지, 진짜다! 리얼! 보인다! 빅 윈드! 넥슬라이스!”

    “딱 모가지가 보이는 각도네. 급소임이 틀림없어!”

    이 집은 대풍의 공격에서 안전한 쉘터임과 동시에 대풍의 급소를 요격해 반격을 꾀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던 셈이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좁은 굴뚝에 끼인 채로 볼을 부비며 대풍을 노려보았다.

    “어우! 좀 비켜! 이 중에 원딜 나밖에 없잖아!”

    이산하는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를 벽난로 밖으로 내쫒았다.

    그리고 혼자 굳건히 선 채로 활과 화살을 챙겼다.

    “좀 좁긴 해도 나쁘지 않네. 활을 고정시켜 놓을 수 있으니 에임도 좋고.”

    “Miss 뜨지 않게 잘 겨눠 봐 좀.”

    “짜식아 그럼 내가 미스지 미세스냐?”

    “방송 안 켰다고 되도 않는 개소리좀 하지 말고 진짜…….”

    “개소리라니, 누나한테 못하는 말이 없네 요놈새끼? 그리고 방송 아니어도 내 개그센스는 늘 빛나거든? 이 화살 끝처럼 말이야!”

    이산하와 이우주는 티격태격 하면서도 손발이 잘 맞는다.

    탁-

    이우주는 이산하의 활이 흔들리지 않게끔 굴뚝의 벽과 벽 사이에 대각선으로 걸쳐 놓았다.

    그리고 이내.

    까라라라락-

    이산하가 특유의 팔힘으로 활시위를 당긴다.

    “아까 얻은 ‘봉시장사의 장갑’이 진짜 엄청 도움 되는데? 활시위를 당길 수 있는 폭이 훨씬 늘어났다고! 이러면 공격력이 확 올라가지!”

    이산하는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화살을 만들며 말을 이었다.

    “자, 간다! 발사 5초전!”

    머리카락에 연결되어 있는 화살이 대풍의 목을 겨누었다.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가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다.

    “……5!”

    “……4!”

    “……3!”

    그리고 이산하는 바로 화살을 발사해 버렸다.

    “나는 셋에 쏜다! 얍!”

    카운트를 왜 세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화살이 시위를 떠나 날아간다.

    차라라라라락!

    이산하의 머리카락에 연결된 화살은 그대로 수직궤도를 그리며 솟구쳤고.

    퍼-억!

    허공에 체류하고 있던 대풍의 목젖에 그대로 박혀 버렸다.

    [캬-악!?]

    대풍의 날갯짓이 꼬이기 시작했다.

    여섯 개의 날개를 바둥거리며 날뛰는 괴조.

    하지만 대풍의 수난은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꾸드드드득!

    대풍은 목에서 느껴지는 고통 외에도 다른 이질적인 감각 하나를 더 느껴야 했다.

    꾸드드드드드득!

    몸이 점차 아래로 끌려 내려가고 있었다.

    대풍의 목에 박힌 화살의 끝은 이산하의 머리카락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으쌰!”

    “당겨!”

    “More Powerfully!”

    “끌어내리자!”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마치 줄다리기를 하는 것처럼 이산하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있는 중이었다.

    “으쌰아아아아아아파! 머리카락 다 빠지겠다!”

    “화살로 만들어서 쏘면 변환될 때 굵어지잖아!”

    “마치 그것과 같다. 줄다리기용. 밧줄.”

    “오오! 효과가 있어! 대풍이 끌려 내려온다!”

    힘 캐릭터인 이산하와 솔레이크의 골렘이 캐리한 결과, 대풍은 점차 지상으로 끌려 내려오기 시작했다.

    [캬-오오오오오오!]

    대풍은 여섯 장의 날개를 퍼덕이며 저항했지만 지면에 가까워질수록 바람의 힘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애초에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집 안에 있는지라 바람의 데미지를 아예 받지 않는 상태였고 말이다.

    결국.

    …쿵!

    대풍은 집의 굴뚝에 머리를 세게 부딪친 뒤 지면에 나뒹구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쾅!

    집의 문이 박살나듯 열리며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가 튀어나왔다.

    “죽어라 이 괴물새!”

    “버스트 딜 타이밍! 한타각!”

    “골렘 퍼어어어언치!”

    “유령 군마 소환!”

    이산하의 화살과 이우주의 작살, 솔레이크의 골렘이 주먹을 날렸고 죠르디 역시도 착치를 잡고 얻은 참마도를 휘두른다.

    애초에 비행타입 몬스터가 제공권을 잃고 땅에 떨어진 시점에서부터 승부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

    대풍은 변변찮은 저항 한번 해 보지 못하고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의 추가타를 허용했고 이 과정에서 대량의 HP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 골렘. 들썩이게 했다. 너도 들썩여 봐라.”

    태풍 피해를 제일 많이 입은 솔레이크의 골렘이 온 몸을 던져 찍어 누르는 바디 프레스는 대풍의 숨통을 완벽하게 끊어 놓았다.

    …쿵!

    대풍은 목이 부러진 채 지면에 쓰러졌고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띠링!

    <세계 최초로 ‘대풍(大風)’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최초 정복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YES: 이우주, 눈누난나내가니누나네, 0개국어능력자, (계정정보없음)>

    <보상이 지급됩니다!>

    알림음을 듣자마자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쾌재를 불렀다.

    “좋았어! 이걸로 4층 클리어!”

    “이제는 남았다. Last 층. 5번째. 관문.”

    “진짜 여기까지 오게 될 줄이야…….”

    한편.

    “…….”

    이우주는 자신의 퀘스트 목록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히든 퀘스트를 발견하셨습니다!>

    <히든 퀘스트 ‘오래된 벗’>

    <히든 퀘스트 발생 조건: ‘미다스의 탑 4층-인성의 시련’에 입장>

    <히든 퀘스트 수행 제한: ‘광부 번의 일지’를 소지한 자>

    <히든 퀘스트 완료 조건: ‘번의 일지’를 ‘NPC 하디르’에게 전합니다.>

    <※이 퀘스트는 별다른 보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직 완료되지 않은 퀘스트.

    이우주는 그것을 보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인성이 괜찮은 사람에게는 제일 쉬운 관문이었군. 인성이 별로인 사람에게는 제일 어려운,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관문이었겠지만.”

    대풍은 위험등급이 A+랭크로 분류되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목 바로 아래가 무풍지대가 된다는 치명적인 약점 때문일 뿐, 실제 전투력은 S급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아마도 번의 일지를 회수하기 위해 목숨을 걸지 않았더라면 영영 그 약점을 알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약점을 모르고 레이드를 강행했다면 분명 엄청난 희생이 뒤따랐을 테지. 번 씨에게 다시 한번 감사해야겠네.”

    이우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퀘스트 창을 닫았다.

    언젠가 번의 일지를 꼭 하디르에게 전해 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바로 그때.

    …땅그랑!

    아이템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파란색이라는 독특한 빛기둥을 내뿜고 있었다.

    플레이어가 장비하는 것이 아닌, 소환수나 펫이 사용하는 전용 아이템이라는 뜻이다.

    “어엇?”

    아이템을 받아든 솔레이크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것은 바로 여섯 장이나 되는 날개였다.

    -<괴물새의 날개옷> / 업그레이드 파츠(골렘용) / A+

    골렘을 드높은 창공으로 쏘아보낼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날개옷.

    옷이 날개라는 말은 이럴 때에 딱 어울리는 표현이리라.

    -방어력 +5,000

    -화염 속성 방어력 +5,000

    -특성 ‘방화복’ 사용 가능 (특수)

    “우와! 이건 누가 임자인지 딱 봐도 알겠네! 솔레이크! 네 거다!”

    “Wow! 상점에서는 절대 못 구할 최상급의 파츠야! 이런 희귀 아이템을 내 눈으로 직접 구경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놀랍고 감동인데 심지어 이 아이템의 소유권을 내게 넘기겠다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어 친구들아! 정말 대박이고 너무 고맙다! 우리 우정 평생 가자! 사랑해!”

    “……너 원래 말을 그렇게 잘했던가?”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벌써 아이템 배분까지 끝내 놓았다.

    뭐 아무튼. 솔레이크의 골렘은 그동안 고생한 대가로 멋진 날개 파츠를 갖게 되었다.

    깡 방어력 5천인 것도 대단한 일인데 화염 속성 방어력 5천까지 추가로 붙어 있다.

    만약 화염 속성 공격에 노출되었을 경우 방어력이 최대 1만까지 적용된다는 뜻이다.

    게다가 일단 간지부터가 남다르다.

    상점에서 구입한 양산형 파츠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

    “뭐든지 최고다. 날개 아이템! 어떤 게임에서든. 간지 보장!”

    골렘에 진심인 편인 솔레이크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보상인 셈이다.

    그렇게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가 기쁨을 공유하고 있을 때.

    -띠링!

    알림음 하나가 모두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미다스의 탑 1층, 2층, 3층, 4층을 모두 클리어하셨습니다.>

    <미다스의 탑 5층, ‘최후의 관문’이 해금됩니다.>

    <탑 상층의 존재가 아래층을 주목합니다.>

    웅웅 울리는 목소리가 알림음의 뒤를 이어 퍼지기 시작했다.

    [……나의 둥지에 온 것을 환영한다, 욕심 많은 이들이여.]

    아마도 이 탑의 진(眞) 보스인 ‘황금룡 아르파닉’이 분명한 이 존재는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 네 사람 모두에게 동시에 말을 걸고 있었다.

    [황금에 눈먼 광부들아, 부와 명예를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기꺼이 저울추에 던질 수 있는 용자들아, 나는 그런 욕심 많은 이들을 싫어하지 않는다.]

    마치 자기에게로 오라는 듯, 황금빛을 발하는 나선계단 위로 육중한 문이 활짝 열렸다.

    끼-기기기기기긱……

    저절로 열린 그 문 안쪽에서 눈이 멀 듯한 광채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죠르디가 이우주를 돌아보며 말했다.

    “용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인정한 존재들만 만나 주지. 포섭이 목적이든 전투가 목적이든 간에 말이야.”

    “그 말은 우리를 인정했다는 뜻이로군. 오만하기로 소문난 황금 비늘 일족의 높은 분께서 말이야.”

    “이제 선택해야 할 때야. 아르파닉의 가호를 받아 리자드맨의 상위종이 되든지, 아니면…….”

    “말해서 뭐해. 당연히 싸워야지. 처음부터 그러려고 온 건데.”

    이우주의 대답에 죠르디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랑은 말이 통해서 좋아.”

    “목적이 비슷하니까.”

    “……그게 전부야?”

    “……?”

    이우주가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돌리자 죠르디는 화들짝 시선을 피한다.

    어쩐지 귀끝이 새빨갛게 물든 채로.

    그때.

    “자! 드가자~!”

    “선수입장!”

    이산하와 솔레이크가 산통을 깼다.

    솔레이크는 냉큼 이우주의 팔짱을 끼고 앞장서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산하 역시도 5층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빛의 광채에 홀린 듯 뛰어간다.

    “안에 있는 금 다 내꺼! 먼저 줍는 놈이 임자!”

    “……윽!”

    죠르디 역시도 황급히 이산하의 뒤를 따라 뛰었다.

    바야흐로 탑의 최종장(最終章), 5층을 지배하고 있는 끝판왕과 싸울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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