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90화 세 가지 관문 (5)
돼지고기 연육법.
1. 고기 망치로 두드린다.
2. 파인애플, 키위, 사과, 양배추즙 등과 함께 재워 둔다.
* * *
몇 분 전.
이우주는 미다스의 탑 3층 안에 있는 숲을 탐험하고 있었다.
“찾았다. 역시 먹을거리들이 풍부하군.”
수풀 곳곳에는 먹을 수 있는 과일과 채소들이 널려 있었다.
-<달콤한 파인애플> / 재료 / D
과즙이 풍부한 파인애플이다.
-<달콤한 사과> / 재료 / D
과즙이 풍부한 사과다.
-<달콤한 키위> / 재료 / D
과즙이 풍부한 키위다.
-<소화에 도움이 되는 양배추> / 재료 / D
소화에 도움이 되는 양배추다.
곳곳에 과일과 야채들이 가득하다.
이우주는 그것들을 따 모으며 중얼거렸다.
“봉희의 무지막지한 식성을 감안하면 이런 것들이 많을 수밖에. 게다가 하나같이 소화를 촉진시키는 것들뿐이니 더 좋은 일이다.”
봉희의 배가 금방 꺼지는 이유가 있다.
파인애플, 사과, 키위, 양배추 등은 고기를 연하게 만들어 소화를 돕기 때문.
여러모로 주식으로 삼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식재료들이다.
“자, 그럼 고기를 연하게 만드는 두 번째 비법. 그것은 바로……!”
이우주는 손에 든 파인애플, 키위, 사과, 양배추를 냅다 집어던졌다.
…철퍽!
농익은 과일들이 봉희의 몸에 닿아 터진다.
질기디질긴 돼지가죽 곳곳에 과일즙이 끼얹어졌다.
“두드리는 것이다!”
이우주는 바로 태양살의 작살을 들어 봉희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퍽!
아까보다 조금 더 데미지가 잘 박혀 드는 것이 육안으로도 보인다.
“오오! 역시 고기는 두들겨야 연해지지!”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과일즙을 바르니까 확실히 육질이 연해지긴 하네!”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도 계속해서 봉희에게 과일과 야채를 던지고 있었다.
[꾸이이이이이이익!]
봉희는 네 개의 엄니를 휘저으며 저항했으나 네 엄니를 포함하여 입 안쪽의 이빨 곳곳에 지저분하게 낀 강철 조각들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몸에 묻은 과일즙이 풍기는 냄새 때문에 배는 더더욱 고파져 온다.
꼬르르르르륵……
배가 고프니 몸이 절로 오그라든다.
털썩-
봉희는 배를 감싸듯 말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 위로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의 딜이 계속해서 퍼부어지고 있었다.
대량의 과일들과 함께 말이다.
“받아라! 후르츠 칵테일 막잔 샷!”
힘차게 외치는 이산하의 마지막 화살을 끝으로.
…쿵!
결국 봉희는 대지에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이윽고, 모두의 귓가로 알림음들이 빗발친다.
-띠링!
<세계 최초로 ‘봉희(封豨)’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최초 정복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YES: 이우주, 눈누난나내가니누나네, 0개국어능력자, (계정정보없음)>
<보상이 지급됩니다!>
그제서야 네 사람은 바닥에 흐물흐물 주저앉을 수 있었다.
“어휴. 이건 뭐, 우리가 잡았다기보다는 지가 배고프고 열 받아서 제풀에 죽은 것 같네.”
“누나의 미래 절망편을 보는 것 같기도 해.”
“이 자식이! 내가 언제 배고파서 죽은 적 있냐!”
“학교 야간수업 끝날 때마다 죽을 것 같다고 맨날 그랬잖아.”
“그건 성장기 때니까 그랬지!”
“저번 주 주말에도 성장기였어?”
“닥쳐!”
이산하와 이우주가 티격태격 싸우는 동안.
…땅그랑!
눈앞으로 아이템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봉시장사(封豕長蛇)’의 장갑> / 장갑 / A+
일순간 강력한 힘을 내게끔 만들어 주는 장갑.
한번 사용하고 나면 막대한 허기가 몰려올 것이다.
-공격력 +1,500
-어둠 속성 공격력 +500
-특성 ‘저돌맹진’ 사용 가능 (특수)
장갑의 옵션을 본 네 사람의 눈이 일제히 휘둥그레졌다.
“미친! 고작 장갑에 공격력 증가 옵션이 붙어 있어? 대박이다!”
“거, 거기에 공격력 증가 수치가 1500? 무기도 아닌데?”
“속성 공격력도 붙어 있다! 심지어 희귀 속성. 어둠!”
“와- 저돌맹진 특성까지 붙어 있네. 봉희가 가지고 있던 핵심 특성이었잖아 이거?”
이산하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이, 이거 팔자.”
그녀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파, 파, 팔자! 팔아서 노나갖자! 이 등급에 이 옵션이면 부르는 게 값이야!”
“정신 차려! 나중에 메인 퀘스트 때 핵심 역할을 할지도 모르잖아! 팔면 안 돼!”
“그, 그럼 이걸 누가 써! 아끼다 똥 돼! 얼른 당장 갓 따끈따끈 신선할 때 잡은 아이템일 때 팔아야……!”
“정신 차려! 이건 돼지고기가 아니야!”
“아, 아니다! 그럼 며칠간 숙성시켜서 팔아야……!”
“돼지고기 아니라고! 이건 아이템이야! 누나가 낄!”
“……!?”
이우주의 말에 이산하가 입을 열려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러자 이우주의 뒤에 있던 솔레이크와 죠르디 역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파는 건 No. 차라리 산하가 착용해라.”
“전 스테이지에서 나한테 말했잖아. 이게 파티 사냥의 묘미라고.”
이산하가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동안 이우주가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궁수는 시위를 당길 때 힘이 많이 필요하지. 나중에 불완전한 용골궁을 완전하게 만들었을 때 근력 스탯이 모자라서 활시위를 못 당기면 어떻게 해. 그러니 육체의 깡 공격력을 한계까지 높여 놔야 하지 않겠어?”
“…….”
이산하의 두 눈이 눈물이 차오른다.
“으앙! 이 멋진 자식들아!”
그녀는 눈앞의 세 사람을 껴안으며 울음을 터트렸다.
레어 아이템을 먹은 것에 대한 감동 99%, 끈끈한 전우애 1%의 눈물이었다.
“자, 그럼! 이제 3층으로 가 볼까!”
눈물을 훔친 이산하는 씩씩한 기세로 외쳤다.
그때.
“잠깐.”
이우주가 일행의 앞길에 제동을 걸었다.
“3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지.”
“뭔데?”
“우리도 허기짐 게이지를 채워야 할 것 아냐.”
이우주의 말을 들은 모두는 그제야 아차 싶어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봉희와의 치열했던(?) 전투로 인해 다들 허기짐 게이지가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래. 3층으로 가기 전에 뭐 좀 먹고 가야겠다.”
“과일. 먹으면 되나?”
“여기엔 야채도 많으니까.”
봉희가 살던 ‘상림(桑林)’에는 먹을 것들이 많은지라 허기도를 채우는 것은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고작 과일이나 야채로 되겠어?”
이우주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눈앞에 쓰러져 있는 봉희의 커다란 몸, 수많은 과일즙과 난타로 인해 연해진 육질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 * *
지글지글지글지글지글지글지글지글……
그 뒤로 약간의 시간이 지났다.
“푸하! 이제 더는 못 먹겠다!”
이산하가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외쳤다.
뼈만 남은 봉희의 시체가 이곳저곳에 굴러다닌다.
솔레이크 역시도 나뭇가지를 입에 문 채 드러누웠다.
“제육볶음, 족발, 보쌈, 삼겹살 구이, 탕수육, 갈비찜, 그 외 항정살, 가브리살, 목살, 앞다리살, 뒷다리살, 그리고 돼지고기 김치찌개까지. 돼지고기로. 다 했다. 할 수 있는 것 다.”
평소 입이 짧은 죠르디도 드물게 만족한 기색이었다.
“위험등급은 A+급인데 맛은 A++급이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커다란 캠프파이어 주위로 널브러진 식기도구들과 뼈다귀들을 보며 3층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는 4층에 도전할 차례였다.
“이 탑은 5층까지 있지. 즉, 다음 층이 진(眞) 보스 바로 직전이라는 거야. 아마 중간 보스나 페이크 보스 정도의 난이도겠지.”
죠르디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이산하가 제일 먼저 4층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끼-기기기기기긱!
나선계단 가장 끝부분의 철문이 둔중한 소리를 내며 벌어진다.
모두의 귓가에 요란한 알림음이 떴다.
-띠링!
<‘미다스의 탑 4층-인성의 시련’에 입장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 이우주, 눈누난나내가니누나네, 0개국어능력자, (계정정보없음)>
네 사람은 곧바로 4층에 도달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보인 풍경은…….
“어! 나 여기 알아!”
“나도 봤던 풍경인데?”
“기시감. 데자뷰.”
“뭐지? 어디서 봤더라…….”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가 일제히 낯익음을 표현하는 풍경.
그것은 푸른 언덕 위에 흰 벽과 빨간 지붕을 가진 집 한 채가 덩그러니 자리한 초원이었다.
이윽고, 이산하가 이 풍경을 전에 어디서 봤었는지 기억해 냈다.
“맞다! 시력검사! 이거 시력검사 하기 전에 보는 그 풍경이잖아!”
“오, 그러네. 안경점에서 늘 보던 그 자연풍경이네. 어쩐지 익숙하더라니.”
이우주 역시 이산하의 말에 맞장구쳤다.
휘이잉-
산들바람이 불어와 초원의 목초들을 흔들어 놓는다.
주변에는 위협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평화롭게 펼쳐져 있는 넓은 목초지와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
저 앞에 있는 작은 집은 딱히 위협적인 무언가가 숨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뭐지? 여기 시련 맞나?”
이산하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휘이이잉-
시원한 바람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길 뿐이다.
“딱히 뭐 수상해 보이는 것은 없는 것 같은데? 해골들도 없고 늪지대도 없고 숲도 없어. 보스 몬스터가 있기는 한 거야?”
이산하의 의문은 타당했다.
휘이이이잉-
눈이 따가울 정도로 부는 바람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휘이이이이잉-
얼굴 가죽이 움직일 정도로 세게 부는 바람을 제외하면 이상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바람이 이상하잖아 바람이! 뭐야 이건!?”
이산하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휘이이이이이잉-
점점 거세지고 있는 바람, 그것은 어디에서부터 불어오고 있는가?
“……헉!?”
이윽고, 이산하의 표정이 급변했다.
“위! 위다!”
모두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그곳에는 지면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괴조(怪鳥) 하나가 점차 이쪽을 향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어찌나 큰 새인지 알림음조차 들려오지 않을 정도로 먼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확 뜨게 거대해 보였다.
그것이 놀라운 속도로 날아와 접근하자.
쿠-오오오오오오오!
바람이 본격적으로 강해지기 시작했다.
알림음이 뜨지도 않을 정도로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바람을 만들어 내는 거대한 하늘괴수.
펄럭-
바람에 떠밀린 일지가 다음 페이지를 넘긴다.
<광부 번의 일지>
-날짜 모름--
나는 괴물 멧돼지를 피해 4층으로 간신히 기어올라 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맞닥뜨려야 했다.
나의 삶을 끝내 버릴 공포를,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창공의 재앙을.
“뭐, 뭐야? 무슨 보스 몬스터길래!”
“역광 때문에 안 보여! 아니, 자체 발광 중인가?”
“크, 크다! 강하다! 거기에 비행 타입 몹!”
“일지가 거의 안 남았어!”
이윽고.
펄럭-
일지의 마지막 챕터가 넘어간다.
-띠링!
<‘미다스의 탑 4층-인성의 시련’의 보스 몬스터가 눈을 떴습니다.>
<탑이 도전자들을 시험에 들게 합니다.>
<시련의 테마 ‘인성’이 가동됩니다!>
‘미다스의 탑’ 최강의 중간보스가 등장함에 동시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