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63화 (963/1,000)
  • 외전 89화 세 가지 관문 (4)

    [쒸익! 쒸이익- 뿌오오오오오!]

    봉희는 길게 늘어진 털 사이에 숨겨져 있는 여섯 개의 다리를 부지런히 놀리며 뛰어다녔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잔뜩 쌓여 언덕을 이루고 있는 흙무더기, 수령이 족히 수백 년은 됨직한 거목, 태고 시절부터 그 자리에 못 박혀 있었을 것 같은 바위 등등…….

    뭐가 되었든 간에 네 개의 거대한 뻐드렁 엄니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봉희는 가차 없이 부수고 찢어발긴다.

    그때.

    [……우오?]

    일직선으로 돌진하던 봉희는 입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흙을 씹다 말고 뱉었다.

    눈앞에 못 보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커다란 깡통이나 드럼통과 같이 생긴 철 덩어리였는데 일반적인 통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입구 부분에 삐죽삐죽한 가시들이 통의 안쪽을 향해 돋아나 있다는 점이었다.

    데굴데굴데굴데굴데굴……

    다섯 개나 되는 눈알이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굴러간다.

    그때.

    “Hey.”

    거대한 철 덩어리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벅- 저벅- 저벅-

    마치 산보라도 하듯 느릿한 걸음걸이로 걸어 나오는 여자가 한 명.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의 솔레이크가 그곳에 서 있었다.

    “삼겹살.”

    솔레이크는 봉희를 도발하기 시작했다.

    “항정살.”

    봉희의 다섯 눈이 부르르 떨리며 위로 찢어져 올라갔다.

    “목살.”

    솔레이크는 계속해서 돼지의 인격, 아니 돈격을 모욕했다.

    “가브리살. 앞다리살. 뒷다리살. 목살. 꼬들살. 족보 세트 대짜 막국수 추가 삼만팔천구백…… Huk?”

    솔레이크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뿌-오오오오오오!]

    가뜩이나 흉폭한 봉희가 도발까지 걸린 채로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트리오두두두두두두-

    땅이 울리며 묵직한 지진이 일어난다.

    봉희의 엄니가 코앞까지 닥쳐왔을 때, 솔레이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우, 우주! Help! 도움! 나를 Save! 저장!”

    그러자 바로 반응이 왔다.

    …콱!

    솔레이크의 허리에 연결되어 있던 검은 실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이산하의 머리카락 한 올이 솔레이크의 허리에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당겨!”

    옆쪽의 풀숲에 숨어 있던 이산하, 이우주, 죠르디가 힘차게 머리카락을 잡아당긴다.

    활시위로 써도 될 정도로 강력해진 이산하의 머리카락은 솔레이크의 몸 전체를 옆으로 확 잡아끌었다.

    그리고.

    콰-앙!

    솔레이크를 노리고 돌진하던 봉희는 그대로 직진한 끝에 커다란 양철통 안에 머리를 처박고 말았다.

    “Ing. Ing. Ing. Ing. 무서웠다. 우주. 안아 줘라. 달래 줘라.”

    “그러게 누가 가위바위보에서 지래.”

    “차갑다! Cold-blooded! 냉혈한! 인격살인마!”

    “알겠어, 알겠어. 고생 많았어.”

    솔레이크는 이우주에게 안긴 자세 그대로 한참을 더 칭얼거리며 토닥임을 받았다.

    “이봐, 적당히 하라고.”

    죠르디가 그런 솔레이크의 소매를 잡고 끌어당긴다.

    한편.

    “오오! 저기 봐 친구들!”

    이산하는 손가락을 뻗어 풀숲 너머를 가리켰다.

    [꾸오오?]

    봉희는 일순간 캄캄해진 시야에 놀라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하지만 돼지머리에 꽉 낀 양철통은 벗겨지지 않았다.

    꾸구국-

    통의 입구 부분에 역방향으로 돋아난 가시는 마치 낚시바늘의 미늘처럼, 혹은 단단하게 걸린 갈고리처럼 봉희의 목을 파고들었고 통을 더욱 더 머리에 꽉 끼도록 만들었다.

    [꽤애애애액!]

    봉희는 목으로 밀려 들어오는 고통과 시야가 완전히 가려진 것에 대한 답답함으로 고함쳤다.

    하지만 비명을 질러 봐야 통 안에서 웅웅 증폭되는 소리 탓에 자신의 고막만 터질 뿐이었다.

    그것을 본 이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갓챠.”

    드디어 노림수가 먹혔다.

    옆에서 솔레이크가 입을 열었다.

    “강철 골렘. 통으로 변형시킨 이유. 이것?”

    “맞아.”

    이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 솔레이크는 하해로 입수할 당시 강철 골렘 몇 구를 먼저 떨어트렸던 적이 있었다.

    이우주는 그 당시 수많은 해파리들이 내뿜는 전격 때문에 녹아내려 고철덩어리가 된 골렘들을 이용해 멧돼지 사냥용 덫을 만든 것이다.

    “멧돼지 사냥하는 유튜뷰에서 봤어. 커다란 깡통을 구해서 이렇게 끝부분을 날카롭게 잘라서 안쪽으로 구부려 놓으면 직진밖에 못하는 멧돼지는 무조건 걸리게 된다고. 먹이를 먹으려고 목을 들이밀었다가 끼인 멧돼지는 머리가 깡통으로 덮여서 앞도 못 보게 되고 먹이도 먹지 못하게 되어서 쇠약해지다가 잡힌대.”

    “하지만. 봉희. 강하다. 저런 덫쯤은 순식간에 파괴.”

    솔레이크의 지적대로였다.

    [뿌오오오오오!]

    봉희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더니 머리를 덮고 있던 거대한 깡통을 순식간에 찢어 버렸다.

    하지만 이우주는 태연했다.

    “뭐 먹다가 이빨에 끼어 본 적 있어?”

    “있다. Very 성가심.”

    “그게 만약 딱딱한 이물질이라면? 가령 알루미늄 호일이라거나 이쑤시개의 부러진 끝이라거나. 아니면 생선 가시 같은 것.”

    “끔찍하다. 아프다. 밥 못 먹는다.”

    “그거야.”

    이우주와 솔레이크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봉희가 여전히 미쳐 날뛰고 있는 것이 보인다.

    [꿰에에에에엑!]

    봉희의 입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네 개의 거대한 뻐드렁 엄니.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가 있는 그것들은 양철통을 뚫고 나와 있었다.

    문제는 그 기괴한 구강구조와 치열 때문에 찢어진 쇳조각들이 쉽게 빠져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봉희는 계속해서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지만 네 개의 엄니들에 의해 관통된 덫은 어느 정도 파괴된 이후부터는 끈질기게 원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좋았어! 일단 입마개를 씌우는 것에는 성공했다!”

    “목줄까지 채울 수 있으면 더 좋을 텐데 말이지.”

    이제는 손발이 척척 맞게 된 이산하와 죠르디가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그때, 솔레이크가 이우주에게 물었다.

    “그런데 우주. 저렇게 입마개를 채운 것. 큰 의미 있나? 몬스터의 힘, 속도, 체력, 방어력은 여전. 약점 맞아?”

    “약점이 맞지. 저걸 보라고.”

    이우주는 다시 한번 봉희를 가리켰다.

    솔레이크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Oh!”

    비로소 솔레이크의 입에서 탄성이 새어 나온다.

    봉희의 움직임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뀌이이이익……]

    천지를 뒤집어엎어 버릴 듯 강맹하던 무빙에 점점 힘이 빠진다.

    근력은 떨어졌고 체력은 엄청난 속도로 고갈되고 있었으며 속도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허기(虛飢).

    뎀2에는 허기짐 게이지라는 것이 있다.

    스테미나 게이지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몬스터나 플레이어나 NPC에게나 똑같이 통용되는 것으로 음식을 먹지 않으면 꾸준히 떨어져 HP에도 영향을 준다.

    뎀2의 모든 존재들은 적절한 양의 물과 식량을 적절한 순간에 섭취해야 하며 이를 거르게 된다면 당연히 모든 스탯이 감소하는 불이익을 받고 종국에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

    심지어 한국인 플레이어는 ‘김치’ 아이템을 먹었을 때 허기짐 게이지를 채울 수 있는 효율이 좋다거나 일본인 플레이어는 ‘스시’, 중국인 플레이어는 ‘만두’, 이탈리아 플레이어는 ‘피자’ 등등 각 문화권 별로 대표 음식이 세분화 되어 있을 정도로 뎀2의 허기짐 게이지 시스템은 정교하다.

    꼬르륵……

    봉희의 배에서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꾸이이이익……]

    제 성질을 못 이겨 소리를 질러보지만 그럴수록 힘만 빠질 뿐이다.

    봉희는 눈앞에 있는 나무나 바위를 삼키려 했지만 입마개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했다.

    파라락-

    이우주는 일지를 펼쳤다.

    <광부 번의 일지>

    -날짜 모름--

    봉희는 힘이 센 것에 반해 지능이 아주 낮은 듯하다.

    눈앞에 보이는 바위나 통나무, 흙까지 무작정 씹어 먹는 것을 보면 지독한 식탐(食貪)이 이것의 머리를 나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고 추정하게 된다.

    “역시나 일지의 내용대로군. 봉희의 약점 세 가지. 첫 번째는 지능이 낮다는 것. 두 번째는 시력이 나쁘다는 것. 세 번째는 식탐이 많다는 것.”

    이우주는 옆쪽의 숲 ‘상림’에 있는 수많은 과일나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숲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도 이렇게 과일나무들이 많은데 굳이 흙이나 바위를 먹는 것을 보면 머리 나쁜 것은 둘째 치고 시력도 아주 안 좋은 모양이야. 그러면 간단한 함정에도 쉽게 걸려들 것이라 생각했지. 그리고 식탐이 많으니 당연히 허기에 극도로 취약할 것이고.”

    즉, 요약하자면.

    1. 지능 낮음=힘으로 잡는 게 아님

    2. 눈이 잘 안 보임=함정 설치 가능

    3. 식탐 많음=배고픔에 극도로 취약

    이 정도가 되겠다.

    그러니까 입을 막는 덫을 놓아 장시간 굶주리게 만들면 알아서 자멸하는 타입의 보스 몬스터인 셈.

    미다스의 탑 3층이 지혜를 시험하는 관문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엄청 센 파워의 이면에는 이런 약점들이 숨겨져 있었구나!”

    “연비. 극도로 나쁘다. 이래서 S급 판정. 못 받았다. A+급인 이유. 있었다.”

    “이대로 시간만 좀 끌어 주기만 하면 잡을 수 있겠군. 알아서 자멸하겠어. 과연…….”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늘 그렇게 예측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뿌우우……]

    “저 녀석, 비실비실 해진 것 좀 봐! 하하, 곧 죽겠어!”

    [뿌우우우우……]

    “진짜 금방이겠군. 초시계로 재도 되겠다!”

    [뿌우우우우우……]

    “흠. 이젠 진짜 곧이겠군. 카운트다운 들어간다!”

    [뿌우우우우우우우……]

    “으음. 은근히 꽤 버티네.”

    [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

    “아니. 좀 오래 걸리지 않아?”

    [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

    [뿌우우우우우우우우애오아우뿌야호……]

    “아 언제 죽어! 쫌!”

    봉희는 은근히 쓰러질 듯 말 듯 하면서도 버티고 있었다.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이를 악물었다.

    “안 되겠다! 우리가 먼저 치자!”

    “약해진 때가 기회!”

    “지금 때리면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세 여자가 결단의 칼을 빼들었다.

    이산하의 화살, 솔레이크의 골렘, 죠르디의 칼이 봉희를 향해 떨어져 내린다.

    퍼퍼퍼퍼펑!

    봉희의 거대한 몸에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꼬르르륵……

    세 여자의 버스트 딜에도 불구하고 봉희는 그다지 큰 데미지를 입은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크윽! 여전히 엄청 단단! 진짜 방어력이랑 체력만 놓고 보면 S급이야!”

    “질기다. 가죽. 이래서. 멧돼지보다는. 집돼지.”

    “가죽이 말도 안 되게 단단하고 질기군.”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봉희의 방어력, 그 중에서도 질기디질긴 피부에 전율했다.

    그때.

    “뭐, 시간은 우리 편이지만. 그렇게 막 전폭적으로 편들어 주지는 않는 것 같네.”

    이우주가 앞으로 나섰다.

    어느새 숲속을 한 바퀴 돌고 온 것인지 몸에는 흙과 잔가지, 나뭇잎들을 잔뜩 묻힌 채다.

    “……!”

    “……!”

    “……!”

    이우주의 품에 가득 차 있는 아이템들을 본 세 여자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그 시선들을 향해, 이우주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지금부터 레이드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해 보이지.”

    최후의 공략이 시작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