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60화 (960/1,000)
  • 외전 86화 세 가지 관문 (1)

    미다스(Μιδας).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왕으로 손으로 만지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하게 되는 축복이자 저주를 받은 존재이다.

    어느 날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개인 교사이자 반인반수인 실레노스가 미다스 왕에게 사로잡혔다.

    미다스 왕은 실레노스를 그냥 풀어 주었고 디오니소스는 그 보답으로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했다.

    미다스 왕은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부귀를 욕심내어 ‘손에 닿는 모든 것들을 황금으로 만드는 능력’을 소원으로 빌었다.

    하지만 그 능력은 처음에만 축복이었을 뿐, 곧 저주가 되었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이 황금이 되니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고 종국에는 자신의 딸마저 황금 조각상으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미다스 왕은 디오니소스에게 애걸하여 능력을 없애 달라고 빌었고 팍톨로스 강물에 목욕함으로써 원래의 몸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오늘날의 ‘미다스’는 '과욕'을, ‘미다스의 손(Midas touch)’은 '돈 버는 재주'라는 뜻을 지닌다.

    *       *       *

    <미다스의 탑> -던전 등급: S

    -무저갱 밑에 파묻혀 있는 황금의 탑.

    과도한 욕심을 부린 광부들의 종착지이다.

    눈앞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황금색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거대한 탑이었다.

    아무런 장식도 없이, 그저 삐죽 튀어나온 송곳과도 같은 외형의 탑이 바닥에서 천장까지 일직선으로 솟구쳐 있었다.

    마치 오래 전의 고대문명이 지각변동 등의 재해로 인해 지저로 파묻힌 듯한 모양새의 외형.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탑 앞에 섰다.

    이산하가 눈앞에 우뚝 솟아 있는 황금탑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오, 미다스의 탑? 그리스 신화에서 들어본 이름이다. 이번에는 혹시 미다스라는 NPC나 몬스터와 연관된 스토리로 흘러가려나? 그런 기믹이 숨겨져 있다거나?”

    “아니. 그냥 이름만 미다스의 탑이고 미다스에 관련된 신화랑은 아무 상관도 없는 것 같더라.”

    죠르디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이우주와 솔레이크가 의문을 표했다.

    “뭐야. 그럼 저 위에 미다스 왕에 대한 설명은 왜 늘어놨어? 맥거핀(MacGuffin) 같은 건가?”

    “내 생각에는. 작가가. 미다스 왕 신화와 관련된 스토리. 짜다가 포기했다. 너무 질질 끄는 것 같아서. 그것은 능력 부족.”

    ……뭐 아무튼.

    죠르디는 눈앞에 있는 ‘미다스의 탑’에 대해서 짧게 설명했다.

    “저 탑에는 별다른 스토리 같은 게 없어. 그냥 순수하고 심플한 던전이야. 총 5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제일 위층에 최종 보스인 황금룡 아르파닉이 서식하고 있지.”

    한마디로 그냥 쭉쭉 밀고 나가면 된다는 말이다.

    “좋았어! 간만에 실력행사다!”

    “심플 이즈 베스트지. 가 보자고.”

    “아무 떡밥. 아무 스토리. 없어서 좋다. 머리 비우고 레이드.”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는 거침없이 앞으로 걸어가 던전으로 입장했다.

    -띠링!

    <히든 던전 ‘미다스의 탑 1층-손님맞이용 로비’에 입장 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 (계정정보없음)>

    귓가로 들려오는 알림음이 본격적인 던전 레이드의 시작을 알린다.

    ……하지만 딱히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의 눈앞으로 드러난 것은 위로 이어진 끝없는 나선계단이었다.

    온통 황금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계단이 빙글빙글 돌며 위로 이어진다.

    “아오! 뭐야 이 구조는! 이제는 계단 오르기 노가다야?”

    “노가다를 좋아하는 몬스터인가 보군. 황금룡 아르파닉은 말이야.”

    “노가다. 노다지. 발음도 비슷하다.”

    “곧 몬스터들이 리젠될 거야. 마음의 준비를 해 둬.”

    죠르디의 경고를 들은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는 긴장한 기색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꽤나 피로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수천 개나 되는 계단을 올라왔기 때문이다.

    “63빌딩이랑 롯데타워를 다 합쳐도 그것보다 더 많이 올라왔겠다. 대체 언제 끝나…….”

    “목마르고 배고픈데. 간이 식량도 얼마 안 싸왔고.”

    “칼로리 소모는 곧 HP소모. 이러다 객사. 킹능성 높다.”

    “…….”

    끝없이 이어지는 층계에 다들 투덜거리고 있을 때.

    “어엇! 저것 봐!”

    이산하가 두 눈을 부릅떴다.

    층계 중간에 익숙한 물건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이 보인다.

    네모나게 각진 몸체, 뿜어져 나오고 있는 환한 불빛, 투명한 유리 안쪽으로 보이는 음료수 캔.

    음료수 자판기가 그곳에 서 있었다.

    “우와! 대박! 마침 목말라 디져 버릴 것 같았는데! 나는 포카리 뽑아 먹어야지!”

    재빨리 동전을 꺼내 든 이산하는 당장 자판기로 달려가 손을 대려 했다.

    그때.

    “안 돼!”

    이산하의 앞을 막아서는 손길이 나타났다.

    죠르디가 굳은 표정으로 자판기와 이산하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뭐야? 왜? 목말라 죽겠는데!”

    “바보야. 이런 곳에 왜 자판기가 있겠냐.”

    툴툴거리는 이산하를 향해 죠르디가 핀잔을 주었다.

    이윽고.

    스릉-

    허리춤에 있는 칼을 빼 든 죠르디는 그것으로 눈앞에 있는 자판기를 콱 찔러 버렸다.

    퍼-억!

    자판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진다.

    “아앗! 내 음료수! 내 포카리!”

    이산하가 울상을 지으며 소리쳤지만.

    “……어?”

    그녀의 표정은 이내 황당함으로 얼룩진다.

    죠르디의 칼에 맞아 부서진 자판기는 바닥에서 움찔움찔 움직이더니 이내 기괴한 모습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꾸드드득- 까드드드득!

    자판기의 음료 배출구에서 커다란 집게발과 딱딱한 갑각으로 둘러싸인 다리들이 나온다.

    커다란 눈알과 긴 더듬이 역시도.

    <미믹(Mimic)> -등급: A / 특성: 매복, 잠복, 살금살금, 위장, 천면, 뺑소니, 강탈, 백전노장

    -서식지: 전 대륙

    -크기: ?

    -보물상자나 간이상점. 자판기 등으로 위장한 채 도사리고 있는 위험하고 질 나쁜 마물.

    기대에 부풀어 가까이 다가온 모험가를 덮쳐 잡아먹는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식인상자’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어떤 던전에나 서식하고 있으며 종종 상점이나 창고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기후와 지형, 생태에 따라 뒤집어쓰고 있는 은신처의 모양이 달라진다는 소문이 있다.

    음료수 자판기를 소라껍데기처럼 뒤집어쓰고 있는 몬스터.

    겉보기에는 소라게를 닮았으나 기분 나쁘게 번들거리고 있는 눈알과 길게 늘어진 혀는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된다.

    이우주는 나직한 목소리로 침음을 삼켰다.

    “미믹은 뎀 세계관 안에서 극히 드문 ‘함정종(陷穽種) 몬스터’이지.”

    “갑자기 웬 설명?”

    “갑자기가 아니야. 미믹은 내게 있어 약간은 특별한 몬스터거든.”

    이우주는 옆에 있는 이산하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토막 상식. ‘아빠는 그 긴 모험 여정 도중 미믹을 한 번도 잡은 적이 없다’. 알고 있었어?”

    “에엥? 설마? RPG게임에서 미믹은 되게 흔하잖아. 온갖 던전에 다 있는데? 심지어 마을의 상점 구석이나 창고에도 가끔씩 리젠되는 게 미믹인데?”

    “하지만 놀랍게도 그게 사실이야. 아빠는 미믹을 잡은 적이 한 번도 없대. 그저 언급만 몇 번 했을 뿐.”

    이우주는 검지를 세운 채 설명을 늘어놓았다.

    “아빠는 악의 고성 첫 레이드 당시 ‘어둠 대왕’을 잡고 보상으로 받은 금고를 보며 ‘미믹은 아니겠지 이거?’라고 말한 적이 있어. 그리고 또 하해 레이드 당시 ‘부글부글 미더덕’이라는 함정종 몬스터를 보고 ‘미더덕이란 어뢰와도 같은 존재지. 던전 속에서 보물상자인 척하는 미믹보다도 더 악질이야.’라고 말한 적이 있지.”

    “우와…… 진짜 아빠 오타쿠네 너. 존경이 과하면 다 이렇게 변태가 되는 건가.”

    “아무튼. 아빠가 한 번도 잡아 본 적 없는 몬스터가 바로 미믹이라 이거지. 그래서 내게는 특별하다 이거야.”

    이우주는 말을 마친 즉시 태양살의 화살을 집어 들었다.

    퍼펑!

    작살처럼 휘둘러진 거대한 화살이 강력한 용오름을 만들어 낸다.

    이산하의 화살과 솔레이크의 골렘, 죠르디의 칼부림 역시도 뒤를 이어 쏟아졌다.

    콰콰콰쾅!

    미믹은 속절없이 부서져 갔다.

    의외로 HP통이 상당히 크고 견고했지만 네 사람의 연합공격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산하는 소라껍데기가 부서진 소라게처럼 쓰러져 버린 미믹을 보며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이곳의 미믹은 보물상자의 모양을 하는 대신 자판기 모양을 하고 있구나. 계단을 올라가는 플레이어들이 목마를 때를 노리는 것이겠지?”

    “그래. 그래서 내가 너를 막은 거야. 참고로 나는 첫 도전 때 이놈에게 손목을 잃었었거든.”

    죠르디는 축 늘어진 미믹의 커다란 집게발을 발로 걷어차며 자신의 손목을 까닥까닥 움직였다.

    그 이후로 간간히 몬스터들이 등장했다.

    청바지를 입고 곡괭이를 든 콧수염 해골들이 소가죽 구두를 우물우물 씹으며 나타났다.

    <골드러시의 망령> -등급: A / 특성: 어둠, 하수인, 백전노장, 뺑소니, 수전노, 내반슬, 외반슬, 내성발톱, 돈먹임

    -서식지: 미다스의 탑 1층

    -크기: 2.5m

    -황금광시대의 어느 날, 한 무리의 광부들이 금광을 찾기 위해 땅을 지나치게 깊이 파내려갔던 적이 있었다.

    그토록 원하던 금맥을 찾기는 찾았으나, 과도한 욕심의 대가로 그들은 영영 지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곡괭이를 휘두르는 해골들의 눈은 황금빛과 핏빛으로 충혈되어 있었다.

    죠르디는 침착하게 지휘를 내렸다.

    아니, 내리려 했다.

    “눈앞에 있는 이 해골들은 12.5%의 확률로 치명타 공격을 날려. 이렇게, 봐! 저 공격 패턴! 엄청 변칙적이라서 대응하기가 조금 힘들 수도 있…….”

    “오호. ‘악마성 드라큘라 서클 오브 X 문’이라는 고전게임에서 오마쥬된 건가. 이렇게 피하면 되려나?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휴. 되는군.”

    “……?”

    죠르디는 자신의 지휘 없이도 눈앞으로 슉슉 달려 나가는 이우주의 신들린 듯한 컨트롤에 입을 딱 벌릴 뿐이다.

    그런 죠르디의 어깨를 이산하와 솔레이크가 토닥거린다.

    “저 놈은 이론파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피지컬 괴물이거든.”

    “이해한다. 처음 보면. 충격. 넘을 수 없는. 소질의 벽. 재능폭력배.”

    세 여자가 해골들을 상대하며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이우주는 엄청난 무빙으로 주변에 있는 해골들을 모조리 날려 버리고 있었다.

    “HP를 다 빼놓을 필요도 없지. 그냥 좌우 옆으로 와리가리를 걸면서 계단 밑으로 떨어트리기만 하면 되니까.”

    이우주는 놀라운 속도로 해골병들을 정리해 나갔다.

    위험등급이 무려 A랭크나 되는 골드러시의 망령들이 이우주 하나가 내딛는 궤도를 따라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린 끝에 나선계단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그때.

    -띠링!

    이우주의 귓가로 알림음이 들려왔다.

    <‘미다스의 탑 1층-손님맞이용 로비’의 끝에 도달하셨습니다.>

    <최단 기록 경신! [1위-이우주(NEW)], [2위-(계정정보없음)(↓1)]……>

    <‘미다스의 탑 2층-힘의 시련’으로 넘어가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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