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57화 (957/1,000)
  • 외전 83화 금 따는 콩밭 (4)

    -띠링!

    <커피콩 수확 미니게임의 최종 승리자는 ‘이우주, 눈누난나내가니누나네, 0개국어능력자, (계정정보없음)’님입니다.>

    <농장주 레글리가 커피콩 수확 미니게임에서 승리한 ‘이우주, 눈누난나내가니누나네, 0개국어능력자, (계정정보없음)’님을 마음에 들어합니다.>

    <‘이우주, 눈누난나내가니누나네, 0개국어능력자, (계정정보없음)’님의 신분이 ‘노예’에서 ‘마름’으로 격상됩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

    .

    알림음이 얘기한 바와 같이 보상이 지급되었다.

    “뭔가 엄청 힘든 과업을 해낸 기분이다.”

    “겨우 일일퀘스트 하나 클리어한 게 고작인데 말이지.”

    “최저로 low한 기분…….”

    “자, 이럴 게 아니라 얼른 보상이나 확인해 보자고.”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이우주, 눈누난나내가니누나네, 0개국어능력자, (계정정보없음)’님에게 탄두리 커피콩 농장의 밭 제 91-3021번 구역이 불하됩니다.>

    예상했던 대로의 보상이었다.

    키이이잉-

    레글리의 드넓은 콩밭들 중 일부가 파랗게 빛나더니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온다.

    느티나무와 대추나무가 심어져 있는 비탈길을 얼마간 올라가다 보면 나오는, 전면이 우뚝한 검은 산에 둘러싸여 막힌 곳.

    이곳이 앞으로 1년간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의 소유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이거 졸지에 지주가 되었네.”

    “지주는 아니지. 1년짜리 계약이니까 소작농이라고 보는 게 맞지.”

    “Peasantry. 어려운 단어. 세금 많이 내야 해?”

    “좋았어. 이제 첫 번째 관문을 넘었다.”

    레글리의 일일퀘스트에서 경쟁 미니게임을 추가로 수행하면 받을 수 있는 보상인 ‘주말 농장’.

    이름만큼이나 소소한 이 보상은 그냥 드넓은 커피콩 농장 한 구석을 1년간 임대받을 수 있는 특전이다.

    1년 동안 자신의 농사를 지어서 커피콩을 수확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소소한 퀘스트.

    거기다가 소작료로 수확한 커피콩의 절반 이상을 레글리에게 지불하고 나면 정말로 남는 것도 없는지라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이 퀘스트를 수행하지 않는다.

    튜앙카와 같은 몇몇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런데 지금 그 사장된 퀘스트를…….”

    “우리가 해야 한다 이거지.”

    이산하와 이우주는 서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쩐지 앞으로 갈 길이 매우 멀게 느껴졌다.

    *       *       *

    그 뒤로 사흘 정도가 더 지났다.

    “접속.”

    [음성 인식으로 보안 해제]

    .

    .

    [동기화 중입니다……]

    .

    .

    [동기화 완료!]

    -띠링!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당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

    .

    접속을 할 때마다 눈에 보이는 광경은 매번 똑같았다.

    흙. 흙. 흙. 흙. 흙. 흙. 흙. 흙.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온통 시커먼 흙더미뿐이다.

    지금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드넓은 커피콩 농장의 한구석에 있었다.

    “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힘내자! 북쪽으로 조금만 더!”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는 아까부터 죠르디의 지시에 따라 땅을 파고 있는 중이었다.

    일반적으로 밭을 갈기 위해서는 땅을 파야 했지만,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농사를 위한 땅파기가 아니었다.

    퍼억- 퍼억- 퍽! 퍼억!

    커다란 골렘까지 동원한 전투적인 땅파기.

    그것은 밭을 가는 것이 아니라 굴착(掘鑿)에 가까운 대공사였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삽과 곡괭이를 가지고 열심히 땅을 파 내려가고 있었다.

    마치 지저를 넘어 반대편 땅의 지면까지 뚫어 버릴 기세로 말이다.

    한창 골렘을 컨트롤하고 있던 솔레이크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우리. 이렇게 땅 파도 되나? 콩 농사. Perfectly. 망쳤다.”

    솔레이크는 흙더미에 파묻혀 있는 커피콩들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죠르디는 말했다.

    “콩 농사 같은 것은 지을 필요 없어. 우리가 이 땅을 불하받은 것은 다른 것을 찾기 위해서니까.”

    “다른 것? 뭐 말야?”

    “뭐긴.”

    이산하의 질문에 죠르디는 씩 웃어 보였다.

    “금맥(金脈)이지.”

    말을 마친 죠르디는 자신 역시도 곡괭이 자루를 잡고는 구덩이 안으로 뛰어들어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이 밑에 금맥이 파묻혀 있어. 줄을 잡는 거야. 금줄을.”

    무엇엔가 홀린 듯 삽질을 하는 죠르디를 따라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역시도 계속해서 땅을 팠다.

    -땅속 저 밑은 늘 음침하다.

    -고달픈 간드렛불, 맥없이 푸르끼하다.

    -밤과 달라서 낮엔 되우 흐릿하였다.

    -겉으로 황토 장벽으로 앞뒤 좌우가 콕 막힌 좁직한 구뎅이. 흡사히 무덤 속같이 귀중중하다.

    -싸늘한 침묵, 쿠더브레한 흙내와 징그러운 냉기만이 그 속에 자욱하다.

    -곡괭이는 뻔질 흙을 이르집는다. 암팡스러이 내려쪼며,

    -퍽 퍽 퍼억.

    -이렇게 메떨어진 소리뿐. 그러나 간간 우수수 하고 벽이 헐린다.

    “……옛날에 교과서에서 읽었던 소설 내용 같네. 김유정 소설가의 ‘금 따는 콩밭’이었던가?”

    이우주는 피식 웃으며 삽을 내리찍었다.

    커피콩들이 흙과 함께 사방으로 흩어지며 구덩이가 한층 더 깊어진다.

    -바닥에서 물이 스미어 무르팍이 흔건히 젖었다.

    -굿엎은 천판에서 흙방울은 내리며 목덜미로 굴러든다.

    -어떤 때에는 웃벽의 한쪽이 떨어지며 등을 탕 때리고 부서진다.

    애꿎은 커피콩 밭이 작살이 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 중 그 누구도 농장주 레글리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지 않았다.

    일일퀘스트를 하면서 레글리에게 얻어맞은 무수한 채찍질 때문이었다.

    한편, 자신의 커피콩밭에 커다란 구덩이가 뚫리자 레글리는 기절초풍을 하며 대노했다.

    [왜 또 파! 이것들이 미쳤나 그래!]

    [하덜 말라니까 왜 또 파는 게야!]

    [구구루 땅이나 파먹지 이게 무슨 지랄들이야!]

    [갈아먹으라는 밭이지 흙 쓰고 들어가라는 거야, 이 미친것들아! 콩밭에서 웬 금이 나온다구 이 지랄들이야 그래!]

    [오늘로 이 구뎅이를 도로 묻어놔야지 낼로 당장 징역 갈 줄 알게!]

    [내년부터는 농사질 생각을 말라고!]

    [내 말 듣고 있는 거냐아아아아아아!]

    하지만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레글리의 말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었다.

    애초에 아이템도 완전히 갖춰 장비한 마당에 레글리의 채찍질 따위는 간지럽기만 하다.

    “뭐, 언제는 청년들한테 노오오오오력을 하라면서? 그래서 지금 노오오오오오오오오오력하고 있잖아. 당신 밭 갈아엎는 것에 말이야.”

    [뭐, 뭣이라고!?]

    “요즘 젊은 것들은 근성이 없다며. 보여 줄게. 근성.”

    이산하는 곡괭이와 삽을 동시에 집어 들더니 땅을 마구 파헤치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콱!

    궁수 특유의 근력은 굴착을 하는 것에 아주 제격이었다.

    이산하가 한 번 양팔을 휘저을 때마다 한 수레에 가득 실을 수 있을 만큼의 흙더미가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간다.

    당연히 레글리의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 벼락 맞을 놈들!]

    레글리가 채찍을 휘둘렀다.

    ……하지만.

    콱!

    이산하는 머리를 향해 휘둘러지는 레글리의 채찍을 한 손으로 잡아채 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확 잡아당겨 레글리에게 바싹 다가갔다.

    “오늘만 좀 해 보고 고만 두겠어유.”

    […….]

    “그러니 이만 꺼지슈.”

    살기가 뚝뚝 묻어 떨어지는 그녀의 목소리에 레글리의 고개가 쑥 움츠러든다.

    한편, 죠르디는 계속해서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이리 와, 여기 좀 파 봐.”

    “땅속에 누운 줄맥을 어림잡는 중이야.”

    “15미터는 족히 파야 해. 좀 더 지펴보다가 북으로 밀어 보자.”

    “저쪽 산 너머 큰골로 이어지는 금맥이야. 혼자 팠을 때는 열흘 만에 줄을 잡았었어.”

    “큰 줄이란 본디 산운(山運) 산을 끼고 도는 법. 이 줄이 확실해. 이 켠으로 비스듬이 누워 있을 거야.”

    “확실하다니까. 안 나오면 내 목을 베어도 좋아.”

    죠르디의 확신 가득한 말에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는 계속해서 땅을 파 들어간다.

    하지만 시간이 한참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금맥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아우, 참. 드럽게도 깊이 묻혀 있나 보네. 보일 기미가 읎서~”

    “이거 뭐 산제라도 지내야 하는 거 아냐?”

    이산하와 이우주가 땀을 훔치며 중얼거린다.

    그리고 이렇게 작업이 잠시 중단될 때마다 어김없이 레글리가 나타나서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이렇게는 못 살아! 여긴 내 소유의 콩밭이야! 내 밭에서 당장 나가 이 밥버러지들아!]

    “야이 싯팔! 백색소음 선 넘네! 호잇!”

    이산하는 아까부터 구덩이 위에서 계속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레글리를 콩밭 저 너머로 집어 내던져 버렸다.

    [아이고 나 죽는다! 소작노예들이 땅주인 잡네!]

    레글리가 죽는 소리를 냈지만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 심지어 지나가던 다른 플레이어들이나 NPC들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만큼 레글리는 악덕 농장주로 악명이 높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어?”

    이산하는 레글리가 데굴데굴 굴러떨어진 고랑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반짝!

    그것은 시커먼 흙줄기만 잡히던 전과 달리 불그죽죽하게 드러난 황토 아래 파묻혀 있는 물건이었다.

    “꺄호! 뭔가 찾았다! 역시 나야! 행운만렙짱짱걸!”

    이산하가 깡충깡충 뛰어와 그것을 잡자.

    우르릉!

    갑자기 구덩이 아래가 무너져 내렸다.

    우르르 밀려오는 토사에 구덩이의 일부가 파묻혔고 그 안에서 아이템 하나가 드러났다.

    그것은 낡아 빠진 한 일기장이었다.

    “옛날에 누군가가 이곳을 한번 팠던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이우주는 구덩이 안쪽으로 드러난 빈 공동을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이윽고, 일기장을 집어든 이산하가 표지에 적힌 글자를 읽었다.

    -<광부의 일기> / 재료 / F

    광부 ‘하디르’가 남긴 금맥 탐사 일지이다.

    어디서 많이 본 아이템,

    “설마 엘 X 스크롤의 그 아이템? 이건 거의 표절 아닌……?”

    “찾았다! 이거야!”

    이우주의 말을 끊으며 죠르디가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황금룡의 던전으로 향하는 첫 이정표를 찾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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