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54화 (954/1,000)
  • 외전 80화 금 따는 콩밭 (1)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본격적인 레이드에 착수했다.

    그 첫 시작은…….

    [젠장, 수확철은 다가왔는데 일꾼 놈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도망쳐 버리니 원. 에잉! 요오오즘 것들은 당최 근성이 읎어! 돈 되는 거, 쉬운 거만 찾아서 하려고 하고! 나 때는 돈이 뭐야! 일 배울 수 있는 것도 감지덕지하면서…….]

    [이게 다 당신이 너무 잘해 줘서 그래요! 젊은 애들이 노오오오오오력을 할 수 있게끔 석식까지 제공해 주면서 일을 시켰어야지! 물론 그것은 급료에서 까고! 오호호호!]

    바로 중앙대륙 남부에 있는 커다란 커피콩 농장 ‘탄두리’였다.

    그곳에 있는 광활한 커피 밭의 중앙, 오두막 앞 나무 그루터기에는 두 명의 사람이 서 있었다.

    둘 다 표독스럽게 생긴 부부였다.

    [애농심을 가지고 일해! 너희들이 이 농장의 주인이 됐다고 생각하면서 일하란 말야! 다 너네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농장이 잘되어야 너희도 잘되지! 물론 농장이 잘된다고 해서 네 임금이 올라가지는 않지만!]

    험상궂게 생긴 얼굴에 사각턱이 두드러진 배불뚝이 레글리는 커다란 카우보이모자를 비스듬하게 걸치고 있는 아래로 두터운 시가를 두 개비나 태우고 있었다.

    [호호호! 이 취업난 시대에 일 시켜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 하세요! 너 아니더라도 이 일 할 사람 많아요!]

    그의 아내인 마리는 너무나도 욕심 많고 심술궂게 생겨서 마치 마녀 계열 몬스터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으레 입는 작업복을 입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검은 드레스라도 입었다면 영락없이 마녀 계열 몬스터로 오해받아 플레이어들에게 사냥당했을 것이다.

    “…….”

    이우주는 밀짚모자를 눌러쓴 채 고개를 돌려 죠르디를 바라보았다.

    “정말 여기서 일일퀘를 하는 게 히든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첫 단계야?”

    “그렇다니까.”

    죠르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커피콩 밭.

    중남부 특유의 따사로운 햇볕 아래 수많은 종류의 커피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주렁주렁 매달린 커피원두와 꽃에서 나는 달달한 향이 필드 전체를 풍요롭게 하고 있었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각각 한마디씩 했다.

    “일일 퀘스트 노가다(Daily Quest Nogada). 오랜만에 해 보네.”

    “겉으로 보기에는 하잘것없는 단순 퀘스트로 보이는데.”

    “이 안에 숨겨져 있다? 엄청난 히든 퀘스트? 그것은 확실한 정보?”

    “맞아. 내가 싸움 나락에서 찾아낸 정확한 정보라고. 내가 중간까지는 거의 성공할 뻔도 했었고.”

    일일 퀘스트.

    그것은 매일 매일 받을 수 있는 퀘스트를 뜻한다.

    24시간마다 1번씩 반복해서 꾸준히 수행할 수 있는 과업.

    누구나 쉽게 발견,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난이도는 매우 낮은 편이다.

    그렇다면 왜 ‘노가다’ 라는 단어가 뒤에 붙어 있느냐?

    그것은 대부분의 일일퀘스트들이 아주 긴 수행 시간을 요하는 단순 반복 작업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하루에 한 번씩 누구나 쉽게 발견하고 수행할 수 있는 퀘스트이지만 오래 걸리는 단순 노동이고 보상도 적은 퀘스트인 것이다.

    아무나 받을 수 없고, 까다로운 자격 요건을 필요로 하는데다가, 꼭꼭 숨겨져 있고, 위험도도 크고, 보상도 좋은 히든 퀘스트와는 아주 대조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종종, 이 하찮아 보이는 퀘스트들의 뒷면에는 아주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내용들이 숨겨져 있는 경우도 있다.

    ‘현실 세계에서야 쓰레기들이 넘쳐 난다지만, 적어도 이 게임 속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서는 그런 게 없다. 다 무언가 쓸모가 있어서 만들어진 것들이라는 소리.’

    “……아빠도 그러셨지. 뎀 세계관 안에 아무 의미 없는 것은 없다고. 다 어디엔가 쓸모가 있다고.”

    이우주는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산하 역시도 팔을 걷어붙였다.

    “와우의 고블린들이 시간은 금이라고 했어. 잡일은 모든 일의 근간이 되는 법. 이런 일일퀘도 하나하나 하다 보면 메인퀘의 발판이 될 수도 있지. 아빠가 늘 하던 말이 있잖아.”

    “아, 그거 말이지?”

    이우주도 고개를 끄덕인다.

    두 남매의 머릿속에 아빠가 늘 신문을 보면서 하던 말이 떠오른다.

    ‘요오,,즘,,, 것덜은~~아주 기냥,,, 편하고 보상 좋은 퀘만 깨려고,,!! 노오오오력을 해야지,,,!!!’

    뭐, 어쨌든.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그 ‘노오력’이라는 것을 하기 위해 농장주 레글리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커피 수확을 돕고 싶은데요.”

    이우주가 퀘스트의 시동어를 입에 담았다.

    그러자.

    짜악-

    난데없이 레글리가 휘두른 채찍이 날아들었다.

    “……?”

    이우주가 아니라 그 옆에 있던 이산하에게로 말이다.

    “뒤지고 싶으세요? 이 쉽……!”

    욕설과 함께 주먹을 내지르려는 이산하를 이우주와 솔레이크가 겨우 말렸다.

    HP는 얼마 깎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람이 느끼는 수치심이라는 게 꼭 HP 수치로만 정해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농장주 레글리는 다짜고짜 버럭 소리를 지른다.

    [뭘 멍하니 앉아 있어, 이 노예들아! 빨리 가서 커피나 따!]

    레글리가 시킨 일일퀘스트는 바로 커피콩을 따 오는 일이었다.

    “주, 죽여 버리고 싶다. 한번만…… 딱 한 번만 죽여 버리게 해 줘.”

    “참아 누나. NPC를 죽이면 카르마 수치가 폭등한다고.”

    이산하와 이우주가 태격태격 실랑이를 벌이거나 말거나 레글리는 마이페이스였다.

    [마! 일 시켜 주는 것만도 감사해 해! 너 아니더라도 이 일 할 사람 많아!]

    “…….”

    [아! 착용한 아이템은 모두 벗고 이 작업복으로 갈아입어! 딴마음 품을 수도 있으니까!]

    결국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중소농장 주인 레글리가 건네주는 구린 디자인의 카라티를 입고 바로 작업현장으로 투입되었다.

    수행해야 하는 일은 비교적 단순했다.

    1. 커피나무에서 커피콩을 따고 그것을 자루에 담아 운반한다.

    2. 그리고 그것을 커다란 솥에 넣고 볶은 뒤 개별 포장한다.

    하지만 말이 쉽지, 이것들을 실제로 수행하는 것은 상당히 고된 노가다였다.

    일단 잘 여물은 커피콩을 따서 바구니에 담는다.

    이후 바구니에 있는 커피콩 중 상품과 하품을 선별하고 그것을 물로 깔끔하게 씻은 뒤 햇볕에 말린다.

    돗자리에 말린 커피콩을 부엌으로 가져가 웍에 넣고 센 불에 찹찹- 볶아 준 뒤 그것을 종이로 만들어진 작은 봉투에 개별포장 하는 것이 일일퀘스트의 내용.

    “허, 허리 아파…….”

    이산하는 눈에 들어간 땀 때문에 인상을 찡그리며 허리를 두드렸다.

    아무리 따도 따도 콩밭은 지평선 너머로 끝이 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화덕에 커피콩을 볶는 쪽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크윽…….”

    골렘 제작에 잔뼈가 굵은 솔레이크조차도 이 중노동에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화덕 몇 개가 쉬지 않고 돌아가는 부엌의 열기는 가만히만 있어도 HP가 쭉쭉 닳을 정도로 무더웠다.

    거기에 커피원두들이 볶아지며 내뿜는 독한 커피향은 정신을 아득하게 만든다.

    원래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도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인데 커피향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마 두통 때문에 부엌을 뛰쳐나가리라.

    ……그뿐이 아니다.

    커피콩이 뜨거운 열기에 의해 바삭바삭해지며 그 껍질들이 가루가 되어 허공으로 풀썩풀썩 일어나는 것 때문에 눈도 제대로 못 뜰 정도였다.

    매캐한 분진이 무더운 부엌을 꽉 채우고 있었다.

    거기에 엄청나게 발생하는 커피 찌꺼기들을 자루에 담아 저 멀리 퇴비 저장고까지 옮기는 것도 고역이었다.

    물론 이 모든 작업은 땡볕이 쨍쨍 내리쬐는 밭과 화덕의 온도 때문에 펄펄 끓는 부엌을 오가며 반복해야 하는 일.

    “어우. 이 중노동이 24시간 이어진다고? 1분 1분이 소중한 타이밍에…….”

    “으음. 그래도 죠르디를 믿기로 했으니까.”

    이산하와 이우주는 묵묵히 일일퀘를 수행했다.

    “근데 이 일일퀘 말이야. 어딘가 좀 낯익지 않냐?”

    “옛날에 아빠와 드레이크 삼촌이 수행했던 퀘스트일 걸? 부유섬의 거미들을 쫓아내기 위해서 몸에 커피 냄새를 배게 하려고 일부러 이 퀘스트를 골랐다고 들었어.”

    “아빠도 이 과정을 참고 견뎠구나. 근데 저 농장주 부부는 진짜 열 받는데?”

    “그래서 아빠랑 드레이크 삼촌이 나중에는 콩밭을 죄다 불 질러 버렸다잖아.”

    “아빠다운 복수긴 하다. 크크크~”

    이산하와 이우주는 머릿속에 아빠의 젊었던 시절을 떠올렸다.

    ‘잘 봐라. 이제부터 네놈들 커피 밭이 어떻게 되는지.’

    [아아아아아안돼!!]

    ‘보통 맵의 지형은 파괴된 지 24시간 뒤면 자동으로 복구되지만, 이 맵만은 영원히 복구가 안 되니까 말이야. 이후로 노부부는 파산하기 때문에 명칭도 ‘레글리의 농장’에서 커피 원두가 탄 곳이라는 의미의 ‘탄두리’로 바뀐다고.’

    하지만 그 이후로 오랜 시간이 지나, 레글리와 마리 부부는 재기에 성공했다.

    [후후후. 이제 우리 농장에서 커피콩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아이템 같은 것은 일절 착용금지다! 특히나 가면 같은 것은 더더욱 말이야!]

    [자나깨나 불조심! 절대 불에 관련된 것은 금지!]

    그때의 대규모 화재사건 이후로 커피콩 수확 일일퀘스트 도중 아이템을 아예 쓸 수 없다는 규칙을 새로 제정했기에 이제는 같은 방식으로 복수당할 일도 없었다.

    따라서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완전한 맨몸으로 이런 중노동을 감당해야 했다.

    그래도 어느정도 성과가 있었는지, 시간이 지나자 다음과 같은 알림음이 떴다.

    -띠링!

    <일일 퀘스트 ‘헬반도 중소농장 취업’을 완료하셨습니다>

    <농장주 레글리가 당신들을 ‘쓸 만한 놈들’로 여깁니다>

    <안주인 마리가 당신들을 ‘밥값은 겨우 하는 것들’로 여깁니다>

    “좋았어! 이제 거의 끝이 보이는구나!”

    이산하가 땀을 닦으며 쾌재를 불렀다.

    바로 그때.

    -띠링!

    또 다른 알림음이 떴다.

    <옆 농장에 새로운 플레이어가 입장했습니다.>

    <농장주 레글리가 생산량 상승을 위해 노예들을 경쟁시키려 합니다.>

    <미니게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옆 구역의 콩밭에 일일퀘를 하러 온 플레이어가 등장했나 보다.

    죠르디가 미간을 찡그렸다.

    “이런. 하필 거의 다 끝냈을 때…… 이 농장의 미니게임은 골치 아픈데.”

    “그게 뭔데?”

    “간단해. 옆 구역의 콩밭보다 더 많은 생산량을 거둔 쪽이 보상을 전부 받아 가는 거야. 거부할 수가 없다는 것이 짜증스러운 점이지. 이 퀘스트는 인기가 없어서 보통 경쟁이 거의 없는 편인데…… 누가 온 거지?”

    죠르디는 고개를 빼어 저 멀리 보이는 옆 구역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의 눈이 동시에 커진다.

    저쪽에 있던 플레이어도 이쪽의 존재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것이 보인다.

    “으음? 이 콩밭에 사람이 있는 것은 처음 보는데?”

    아름다운 은색의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트린 미소녀 하나가 작업복과 밀짚모자를 착용한 채 서 있었다.

    손에는 낫과 호미까지 야무지게 들고 있다.

    ‘튜앙카’.

    분명 전에 몇 번인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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